아는만큼 보인다

천제문화의 고향 환국②

진실의 역사

[환단고기] 천제天祭 문화

 

신교 문화의 꽃, 대천제


천제 문화의 고향 환국


인류 최고最古의 국가 환국桓國의 흔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이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제천단祭天壇입니다.

 

환국에서 산악지대를 거쳐 메소포타미아 평원에 도착한 수메르인 역시 BCE 3000년경 이래 도시의 신성한 구역에 흙벽돌로 거대한 지구라트라는 제단을 쌓고, 그 위에 신전을 세워 하늘에 제사를 지냈습니다.

 

수메르의 영향을 받은 이집트 역시 초기에는 계단식 측면과 평평한 상단을 갖춘 모습의 피라밋을 만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중국 북부, 티벳, 중앙아시아, 이집트, 아메리카 대륙, 동유럽 등 지구촌 곳곳에서 거석문화의 흔적과 정상부가 편편하게 만들어진 피라밋들이 발견되고 있는데 이는 모두 태고시절의 제천단입니다.

 

과연 옛 사람들은 가장 높은 곳에, 가장 큰 제단을 만들어 놓고 누구에게 제례를 지냈을까요?

그들의 행위는 대상도 주체도 없었던 관념적인 의례행위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요?

 

그 해답은 중국 천제문화의 성지라 할 수 있는 산동성 태산 정상의 옥황전玉皇殿에 가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태산에서 천제를 올리는 봉선제는 단군조선 때부터 시작하여 역대 중국의 수많은 황제들이 전통에 따라 태산에 올라 천제를 올렸습니다.

 

지금도 옥황대제玉皇大帝라는 위패를 써 붙인 황금빛 상제님 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바로 태고시절부터 계승되어온 천제의 대상은 천상의 보좌에서 우주를 통치하시는 삼신상제님, 옥황상제님이십니다.

 

昔(석)에 有桓仁(유환인)하시니 降居天山(강거천산)하사 主祭天神(주제천신)하시니라

옛날에 환인이 계셨다. 천산天山에 내려와 거처하시며, 천신께 지내는 제사를 주관하셨다. - 환국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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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산 참성단-천제 문화①

진실의 역사

[환단고기] 천제天祭 문화


마리산 참성단

강화도 화도면에 마리산이 있습니다.

마리는 머리의 옛말입니다.

비록 472m에 불과하지만 뭇 산들의 머리가 되기에 마리산이라 불렀습니다.

마리산은 한라산과 백두산의 중앙에 놓여 마리산을 기점으로 한라산과 백두산에 이르는 거리가 같다고 합니다.

 

마리산에는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참성단이 있습니다.

매년 열리는 전국체육대회의 성화聖火를 채화하는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하늘로부터 성스런 불을 받을 수 있는 적합한 장소로 참성단이 가장 유력했나 봅니다.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사에서 참성단이 차지하는 위치는 어디쯤일까요?

참성단에 대한 가장 오래된 역사기록은 행촌 이암선생(1297~1364)이 편찬한 단군세기에 나옵니다.

 

참성단塹城壇은 지금으로부터 4297년 전, 단군조선의 초대 단군왕검께서 운사 배달 신하에게 명하여 장정 8천명을 동원하여 세운 제천단祭天壇입니다.

단군조선부터 근세 조선에 이르기까지 우주의 주재자이신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지내온 한민족의 고유한 제천성소祭天聖所입니다.

 

戊午五十一年(무오오십일년)이라 帝命雲師倍達臣(제명운사배달신)하사
設三郞城于穴口(설삼랑성우혈구)하시고 築祭天壇於摩璃山(축제천단어마리산)하시니
今塹城壇(금참성단)이 是也(시야)니라.
재위 51년 무오(단기 51, BCE 2283)년에 왕검께서 운사雲師 배달신倍達臣에게 명하여 혈구穴口에 삼랑성三郞城 을 건설하게 하시고, 마리산摩璃山에 제천단을 쌓게 하시니 지금의 참성단塹城壇이 곧 그것이다. - 단군세기

 

辛酉三月(신유삼월)에 天王(천왕)이 親幸摩璃山(친행마리산)하사 祭天(제천)하시니라.
(91세 되시던) 신유(단기 54, BCE 2280)년 3월에 천왕께서 친히 마리산에 행차하여 천제를 올리셨다. - 삼한관경본기

 
참성단은 대한의 국보 1호

현재 대한민국의 국보1호는 남대문(숭례문)이고 보물1호는 동대문(흥인지문)입니다.

놀랍게도 남대문과 동대문은 일제 강점기때 일본이 보물1, 2호로 지정한 것입니다.

 

지난 임진왜란 때 일본의 두 장수 고니시 유키나가(소서행장小西行長)와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加藤淸正)가 한양으로 입성할 때 제일 먼저 들어온 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남대문과 동대문은 대對조선전쟁을 승리로 이끈 전승기념문이었던 것입니다.

 

일제는 1933년 8월〈조선 보물 고적 명승 천연기념물 보존령朝鮮 寶物·古蹟·名勝·天然記念物 保存令〉을 제정하여 남대문을 보물 1호로, 동대문을 보물 2호로 지정하고 나머지 의미없는 4대문들은 철거해 버렸습니다.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는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남대문을 국보1호로(1962.12.20), 동대문을 보물1호(1963.1.21)로 각각 지정하였습니다.

일제가 만든 틀을 그대로 수용한 것입니다.

 

참성단은 남한에서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제천祭天 문화의 성지입니다.

제천은 한민족과 인류 원형문화의 핵심입니다.

참성단은 우리의 시원문화를 오롯이 증명하는 문화유산이자 초대 단군할아버지의 손길이 서려있는 유구한 역사유물입니다.

 

기껏 역사가 600년 밖에 되지 않고 도성都城의 대문에 불과한 남대문, 동대문과는 그 가치가 비교되지 않습니다.

참성단이 국보 1호가 되지 못하고 남대문과 동대문이 국보1호와 보물 1호로 남아 있는 것, 이것 역시 청산되지 못한 일제 잔재의 상징이자 역사를 잃어버린 우리 민족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시금석입니다.


정리 역주자가 전해주는 말씀
환국 시대 이래 수천 년 간 한민족은 천제를 올림으로써 하늘에 계신 상제님께 믿음과 공경을 표현해 왔다.

천제는 고조선 22세 색불루단군 때의 제문祭文에서 알 수 있듯이, 상제님께 폐백을 바쳐 나라의 부강과 백성의 번영을 기원하며 상제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국가 행사였다.(『태백일사』「삼한관경본기」)

 

천제를 올린 뒤에는 모든 백성이 어울려 음주와 놀이를 즐기는 제전祭典의 장을 열었다.

천제는 제사와 놀이로써 모두가 한마음이 되는 ‘태일太一의 한마당’이었다.(환단고기 역주본 해제 4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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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호의 변천

진실의 역사

국호의 변천


『환단고기』에 따르면 단군조선의 44세 구물 단군께서 BCE 425년 도읍을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기면서 국호를 조선에서 ‘대부여大夫餘’로 바꾸셨다.

 

이후 해모수 단군께서 ‘대부여’를 계승하여 북부여를 개창하셨다.

 

혈통으로는 해모수의 현손玄孫으로 북부여의 7대 단군이 된 고주몽 성제께서 국호를 고구려로 바꾸었다.

 

환단고기』에서는 그동안 미궁에 빠져있었던 부여 역사의 전모를 밝혀줌으로써 고조선에서 열국列國시대를 거쳐 고구려로 이어지는 나라의 계보를 온전하게 밝혀주었다.

 

우리나라 국호는 첫 번째인 환국부터 마지막 대한민국까지 모두가 광명을 상징한다.

 

우리 민족은 하늘의 광명을 환桓, 땅의 밝음을 단檀, 천지와 하나 되어 이상을 이룬 완성된 인간을 한韓이라 불렀다.

 

먼저 환한 광명의 나라 환국桓國에서 밝은 땅이란 의미의 밝달-배달로 이어졌다.

 

배달국은 달리 단국檀國이라고도 불렀다.

 

아침에 해가 제일 먼저 비치는 곳(朝光先授之地)이라는 의미의 조선朝鮮을 거쳐,

 

날이 뿌옇게 밝아온다는 의미의 부여夫餘,

 

고대광려高大光麗의 의미에서 고구려高句麗,

 

동방의 대국大國이라는 뜻에서 대진국大震國,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高麗에서 다시 조선朝鮮으로 이어졌다.

 

이제 ‘크게 밝은 대인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우리 민족의 천명인 홍익인간을 완성하고 가을우주의 새 역사를 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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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임금

진실의 역사

순임금의 「동순망질 사근동후東巡望秩 肆覲東后」


‘동순망질 사근동후’라는 구절은 『서경』「우서虞書의 순전舜典」에 나온다.

 

“(순임금이) 동쪽 지역을 순수하여 태산泰山에 이르러 시柴 제사를 지내고, 산천을 바라보며 차례대로 제사한 뒤 마침내 동방의 천자를 찾아뵈었다”[東巡守至于岱宗, 柴, 望秩于山川, 肆覲東后].

 

여기서 동후東后는 결코 제후가 아니다.

그런데 중국 사가들은 한결같이 동후를 동방의 제후[東方之諸侯也]라 해석해 왔다.

 

또한 요즈음 나오는 『서경』번역서들도 모두 중국측 억지 해석을 그대로 추종하는 한심한 실정이다.

 

『강희자전康熙字典』에서는 “后:君后. 我后. 夏后. 夏言后者. 白虎通云: 以揖讓受于君, 故稱后. 告于皇天后土.”라고 하였다.

 

여기서‘ 후后’ 자는 군주君主를 지칭하는 말이다.

제후를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또‘ 근覲’ 자는 ‘하현상下見上’, 즉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문안 드린다는 말이다.

 

『강희자전』은 “천자가 즉위하면 제후들이 북면하여 천자께 알현하는 것을 일러 근覲이라 한다”[天子當依而立, 諸侯北面, 而見天子曰覲.]라고 하였으니, ‘제후인 순舜임금이 그 종주국의 천자인 단군왕검을 알현하였다’는 것이 ‘사근동후’의 본뜻이다.

 

그러므로 “동방의 제후를 찾아뵙다”라고 한 중국측의 해석은 역사의 진실을 왜곡한 아전인수격의 억지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

 

『서경』의 이 구절이야말로 고대 한·중 관계사를 사실 그대로 극명하게 밝힌 매우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여기서 『서경』 본래의 뜻을 살려 원문을 해석하면, “순임금이 요임금에게서 왕위를 물려받은 뒤에 차례로 천신과 산천에 제사를 지내고 동방의 천자이신 단군왕검을 찾아뵈었다”[肆覲東后]가 된다. (『환단고기』역주본 본문 488쪽 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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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 천자의 나라⑤

진실의 역사

환단고기가 밝혀주는 천자의 나라

 

천자국의 위상이 무너지는 과정


고려의 쇠망
고려 초기에는 천자국으로서 당당히 건원칭제建元稱帝를 하였습니다.
고려는 예종 때 와서 윤관을 앞세워 여진을 물리치고 동북쪽에 9성을 구축함으로써 고구려의 후예라는 건국이념에 보다 가까이 다가섰습니다.

 

그러나 동북 9성은 설치된 지 1년 만에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섬기고 매년 공물을 바친다’는 언약을 받고 다시 여진족에게 돌려주게 됩니다.

이후 여진은 성장을 계속하여 9성을 환부받은 지 6년째에 금나라를 세우게 됩니다.

 

드디어 고려 인종 3년(1125년), 요나라를 멸망시킨 금나라는 유화적인 태도를 거두고 고려에 군신君臣관계를 강요해 왔습니다.

전쟁을 두려워한 고려 조정은 금나라에 상표上表를 올리고 칭신稱臣하였습니다.

고려를 부모로 섬기던 여진족을 이제 고려가 임금의 나라로 섬기게 된 것입니다.

 

유교식 정치체제를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고려는 어느 새 문약에 빠져 버렸습니다.

이후 금나라, 송나라의 연호를 쓰기 시작하며 사대주의의 길을 걷게 됩니다.

말엽에는 세계 제국을 건설한 원나라의 정치적 간섭이 시작되면서 황제국 고려는 제후국으로 전락하였고 국왕에 대한 칭호는 황제에서 왕으로 격하되었습니다.

 

그 첫째 왕인 충렬왕은 원나라 쿠빌라이 황제의 딸인 제국대장공주을 왕비로 맞았습니다.

이후로 고려는 줄곧 원나라의 부마국이 되었습니다.

환국, 배달, 조선 이래 줄곧 천자국이었던 우리의 위상이 처참하게 무너진 것입니다.

 

이암 때에는 원나라에 대한 사대주의가 더욱 강화되어 오잠, 류청신 등이 국호 ‘고려’를 폐지하고 원나라의 일개 성이 되고자 하는 청원을 원의 조정에 제출하였고 원으로부터 ‘원나라의 삼한성으로 한다’는 칙령이 내려오기도 하였습니다.

이즈음 이존비와 이암은 상소문을 통해 자주독립정신을 상실한 고려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였습니다.

 

本國(본국)이 自桓檀朝鮮北夫餘高句麗以來(자환단조선북부여고구려이래)로 皆富强自主(개부강자주)하고
且建元稱帝之事(차건원칭제지사)는 至我太祖初(지아태조초)하야 亦嘗行之(역상행지)나
而今則事大之論(이금즉사대지론)이 定爲國是(정위국시)하야 君臣上下(군신상하)가 甘受屈辱(감수굴욕)하고 不圖所以自新(불도소이자신)하니
其畏天保國則誠美矣(기외천보국즉성미의)어니와 奈天下後世之笑(내천하후세지소)에 何(하)
우리나라는 환단.조선.북부여.고구려 이래로 모두 부강하였고 자주를 유지하였습니다. 또 연호를 정하고 황제라 칭한 일은 우리 태조 때에 이르러서도 일찍이 실행하였으나, 지금은 사대事大의 주장이 국시로 정해져 있어 군신상하가 굴욕을 달갑게 받아들이고 스스로 새로워지는 방법을 도모하지 않으니, 하늘의 뜻을 두려워하고 나라를 보존하는 것은 진실로 훌륭하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천하 후세의 비웃음은 어찌하겠사옵니까? (「고려국본기」 이존비의 상소문)

 

國界(국계)를 不可破也(불가파야)며 民俗(민속)을 亦不可混也(역불가혼야)니이다.
况我國(황아국)이 自桓檀以來(자환단이래)로 皆稱天帝之子(개칭천제지자)하고 行祭天之事(행제천지사)하니
自與分封諸侯(자여분봉제후)로 元不相同(원불상동)이오 今雖一時爲人轅下(금수일시위인원하)나
旣有魂精血肉(기유혼정혈육)하야 而得一源之祖(이득일원지조)하니 是乃神市開天(시내신시개천)과
三韓管境之爲大名邦於天下萬世者也(삼한관경지위대명방어천하만세자야)니이다.
하늘 아래 모든 사람은 각기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를 조국으로 삼고 제 풍속으로 민속을 삼으니, 나라의 경계를 깨뜨릴 수 없으며 민속 또한 뒤섞이게 할 수 없는 일이옵니다. 하물며 우리나라는 환桓·단檀(환국-배달-고조선) 시대 이래로 모두 천상 상제님의 아들(천제자天帝子, 天子)이라 칭하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분봉을 받은 제후와는 원래 근본이 같을 수 없습니다. 비록 지금은 일시적으로 남의 굴레 밑에 있으나 뿌리가 같은 조상[一源之祖]에게 물려받은 정신과 육신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배달의) 신시개천神市開天과 (고조선의) 삼한관경三韓管境이 천하 만세에 대국으로 명성을 크게 떨치게 된것입니다. (「고려국본기」 이암의 상소문)

 

조선왕조의 멸망
고려를 계승하여 새롭게 열린 조선왕조는 고려 때보다 더한 중국의 속국으로 전락하였습니다.

조선 사회는 철저한 모화사대주의 慕華事大主義 사회였습니다.

 

선비들은 말끝마다 명나라를 본조本朝 또는 천조天朝, 성조聖朝라고 했고 조상의 비문에도 항상 유명조선有明朝鮮이라고 내세웠습니다.

유교를 국교로 숭상한 조선은 개국초 태종 때에 서운관에 보관되어 있던 한민족의 고유사서를 이단이라 하여 모조리 소각하였습니다.

 

그 이후 세조에서 성종까지 3대에 걸쳐 사서수거령을 내려 유교 지상주의에 반하는 수많은 사서들을 압수, 소각하였습니다.

이는 자기 스스로 자기의 역사를 파괴하는 해괴한 행위입니다.

이미 국초國初부터 망국으로 가는 비운의 단초가 시작된 것입니다.

 

1910년의 경술국치는 사실상 죽어가는 환자의 숨통을 일본이 와서 끊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조선은 이미 정신적으로 한·중합병으로 망한 상태였습니다.

 

조선의 명운이 촛불처럼 꺼져가던 1897년 고종 임금은 원구단에서 천제를 올리고 스스로 천자의 보위에 올라 새로운 국호 ‘대한제국’을 선포합니다.

비록 대한제국은 곧바로 망했지만 이 사건은 끊어진 한민족의 천제문화의 맥을 되살리고 동방의 한민족이 본래부터 천자국임을 만천하에 알린 역사적인 대사건입니다.

한·중·일은 역사전쟁 중

바야흐로 동북아는 역사전쟁이 한창입니다.

일본은 자국의 교과서까지 왜곡하면서 집요하게 독도 침탈을 노리고 있습니다.

중국은 동북공정이라는 역사왜곡 프로젝트를 통해 만주 지역에 있었던 우리의 고대사인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강탈해갔습니다.

 

이러한 역사전쟁의 이면을 보면 한·중·일 삼국三國이 사실상 천자국의 종주권宗主權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천자국이 되면 인류문명의 종주국宗主國이자 장자국長子國의 위치에 서게 됩니다.

 

중국은 ‘세계의 중심에서 빛나는 나라’라고 해서 나라 이름을‘ 중화中華’라고 합니다.

그들은 급속도로 성장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주변으로 패권의 영역을 확대해나가고 있습니다.

이름 그대로 자기네가 인류 역사의 천자국임을 내세워 앞으로 미국을 제치고 세계무대에서 당당히 넘버원 행세를 해보겠다는 것입니다.

 

‘태양이 떠오르는 근본’이라는 일본日本 역시 그들의 왕을 천황天皇이라고 해서 진짜 천자국임을 표방합니다.

천자국이 성립되려면 제후국을 점령하여 다스린 역사가 필요합니다.

「임나일본부」라는 가공의 역사가 이러한 배경에서 생겨났습니다.

독도 침탈 야욕이 끊이지 않는 것 역시 그 깊은 심연에는 천황제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결국 중국과 일본이 천자국 다툼을 벌이는 것은 인류 최고最古의 문명이자 동북아의 원형 문화인 홍산문화에 대한 소유권 다툼을 벌이는 것과 같습니다.

대한민국大韓民國이라는 국호를 쓰는 우리가 홍산문화의 주인공인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입니다.

드러난 유물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고, 역사기록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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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 천자의 나라④

진실의 역사

환단고기가 밝혀주는 천자의 나라

 

중국으로 전해진 천자문화

 

금간옥첩 전수 지금으로부터 4,300년 전 동북아에는 9년 홍수라는 사상 최대의 대재난이 있었습니다.

당시 초대 단군왕검은 우주변화원리로 무사히 홍수를 다스렸고 순임금은 이를 다스리지 못해 국가가 존망의 위기에 놓여있었습니다.

이때 순의 신하로서 사공司空 우禹가 도산塗山에서 부루 태자에게서 오행치수법(금간옥첩)을 전수 받아 홍수를 해결하게 됩니다.

 

그 공덕으로 우는 하夏 왕조를 개창하게 되는데 나중에 죽을 때에도 부루태자의 은혜를 잊지 못하여 자기를 회계산(도산)에 묻어 달라고 유언하였습니다.(『오월춘추』)

우가 전수받은 금간옥첩은 치수의 요결일 뿐만 아니라, 나라를 다스리는 천자의 도道와 동방 고조선의 정치제도, 문화가 수록된 국가 경영지침서입니다.

여기에 나라를 다스리는 아홉 가지 큰 법도, 홍범구주의 내용도 실려있었습니다.

 

홍범구주의 다섯 번째가 황극皇極사상입니다.

바로 이 황극으로부터 천자사상이 나왔습니다.

즉 천자제도의 기틀, 동양문화의 근본정신이 담겨 있는 금간옥첩이 전해짐으로써 고조선의 천자문화가 본격적으로 중국으로 흘러 들어간 것입니다.

汝后請予(여후청여)하야 以欲導治水土(이욕도치수토)하야 拯救百姓(증구백성)일새 三神上帝(삼신상제)가
悅予往助故(열여왕조고)로 來(래)라
너희 임금(순임금)이 나에게 수토를 다스려 백성을 구해 주기를 청원하니, 삼신상제님께서 내가 가서 도와주는 것을 기뻐하시므로 왔노라 (『태백일사』 「번한세가上」)


且其五行治水之法(차기오행치수지법)과 黃帝中經之書(황제중경지서)가 又出於太子扶婁(우출어태자부루)오
而又傳之於虞司空(이우전지어우사공)하고 後(후)에 復爲箕子之陳洪範於紂王者(부위기자지진홍범어주왕자)가
亦卽黃帝中經(역즉황제중경)과 五行治水之說(오행치수지설)이니 則蓋其學(즉개기학)이
本神市邱井均田之遺法也(본신시구정균전지유법야)니라.
또 오행치수법과『 황제중경黃帝中經』이 부루태자에게서 나와 우虞 사공司空에게 전해졌는데, 후에 기자箕子가 은나라 주왕紂王에게 진술한 홍범구주洪範九疇또한『 황제중경』과 오행치수설이다. 대저 그 학문은 본래 배달 신시 시대의 구정법邱井法과 균전법에서 전해져 내려온 법이다. (『태백일사』 「신시본기」)

하·상·주 3왕조는 조선朝鮮의 신하국 하나라에서 상나라로 교체될 때에도 고조선의 힘이 작용하였습니다.

상나라 개국공신인 이윤은 고조선 11세 도해단군 때의 국사國師인 유위자의 제자였습니다.

상나라 말기의 도읍지였던 하남성 안양시 은허 유적에서 출토된 궁전, 성벽, 무덤 등이 동북방(고조선 쪽)을 향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고조선을 상국上國으로 지극히 받들었음을 보여줍니다.

 

상나라 다음으로 550년 동안 중원을 지배한 주나라도 그 창업 당시부터 고조선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많은 병력과 전차를 보유한 상나라 군대를 이기기 위해서 주 무왕은 동이족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였습니다.

무왕을 도운 동이족의 대표적 인물이 바로 강태공입니다.

 

주나라도 이전의 왕조와 마찬가지로 고조선에 조공과 방물을 바쳐 예를 표하였습니다.

『환단고기』에는 주나라 왕 하가 고조선에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친 일, 32세 추밀단군 때 주나라가 번조선에 방물方物을 바친 일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상·주 중국 3왕조는 모두 고조선을 문화의 조국으로 모시던 제후국이었습니다.

是歲冬(시세동)에 殷人(은인)이 伐夏(벌하)한대 其主桀(기주걸)이 請援(청원)이어늘
帝以邑借末良(제이읍차말량)으로 率九桓之師(솔구환지사)하사 以助戰事(이조전사)하신대
湯遣使謝罪(탕견사사죄)어늘 乃命引還(내명인환)이러시니 桀(걸)이 違之(위지)하고 遣兵遮路(견병퇴로)하야
欲敗禁盟(욕패금맹)일새 遂與殷人(수여은인)으로 伐桀(벌걸)하시고 密遣臣智于亮(밀견신지우량)하사
率畎軍(솔견군)하시고 合與樂浪(합여낙랑)하사 進據關中邠岐之地而居之(진거관중빈기지지이거지)하시고
設官制(설관제)하시니라.
이 해(BCE 1767) 겨울, 은殷 나라 사람이 하夏나라를 치자 하나라 왕걸桀이 구원을 청하였다. (13세 흘달단군)임금께서 읍차邑借 말량末良에게 구환의 병사를 이끌고 전투를 돕게 하셨다. 이에 탕湯이 사신을 보내 사죄하므로 군사를 되돌리라 명하셨다. 이때 걸이 약속을 어기고 군사를 보내어 길을 막고 맹약을 깨뜨리려 하였다. 그리하여 임금께서 마침내 은나라 사람과 함께 걸을 치는 한편, 은밀히 신지臣智 우량于亮을 보내어 견군畎軍 을 이끌고 낙랑樂浪군사와 합세하여 관중의 빈邠·기岐 땅을 점령하여 주둔시키고 관제官制를 설치하셨다. (「단군세기」13세 흘달단군」)

 

정리 역주자가 전해주는 말씀
☞ 국통 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3단계씩 세 번에 걸쳐 이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환국 → 배달 → 조선으로 3단계, 이어 열국 시대(북부여·동부여·남삼한) → 사국 시대(고구려·백제·신라·가야) → 남북국 시대(대진〔발해〕·통일〔후〕신라)로 3단계, 그리고 고려 → 조선 → 대한민국(남한·북한〔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으로 다시 3단계인 것이다.

 

한국사에서 국통은 이처럼 면면히 아홉 굽이를 거쳐[九變之道] 오늘까지 이어 왔다.

한민족의 9천 년 역사는 계승되어 내려온 국가들의 마디만 따져 보아도 삼신의 3수 원리가 그대로 펼쳐진 것임을 알수 있다.(환단고기 역주본 해제5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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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 천자의 나라③

진실의 역사

환단고기가 밝혀주는 천자의 나라

 

동방의 한민족은 원래 천자의 나라

 

천자는 동이의 호칭 처음으로 천제자天帝子라는 말을 쓴 것은 배달국 환웅 때부터였습니다.

환인, 환웅, 단군 이들은 상제님으로부터 국가건설과 통치의 대권을 신탁받아 삼신상제님의 가르침으로 백성을 교화하고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한민족사 최고의 전성기인 단군조선은 몽골, 티벳, 흉노, 중국 대륙 전체와 한반도, 일본을 아울러 산하에 70여개의 제후국을 거느린 대제국大帝國이었습니다.

중국에서는 6국을 통일한 진秦왕 영정嬴政이 최초의 천자로 ‘황제皇帝’가 되었습니다.

배달국 환웅천황 때보다 3,600년이나 늦은 일입니다.

이 천자라는 말과 천자제도가 한민족에게서 유래했음을 중국의 사서에서도 증명하고 있습니다.

 

한나라의 채옹이 지은 『독단』에 보면 “천자는 동이족이 부르든 호칭이다. 하늘을 아버지로 땅을 어머니로 하는 까닭에 천자라 부른다[天子, 夷狄之所稱, 父天母地, 故稱天子.]”는 대목이 있습니다.

 

사기에서도 “치우는 구려의 천자다. 치우는 옛 천자의 이름이다[孔安國曰 九黎君號가 蚩尤라.(『사기색은史記索隱』), 應劭曰 蚩尤는 古天子之號라(『사기집해史記集解』), ]라고 하였습니다.

 

後(후)에 桓雄氏繼興(환웅씨계흥)하사 奉天神之詔(봉천신지조)하시고 降于白山黑水之間(강우백산흑수지간)하시니라
그 후 환웅씨가 환국을 계승하여 일어나 하늘에 계신 상제上帝님의 명을 받들어 백산과 흑수 사이의 지역에 내려오셨다. (「삼성기 상上」)

 

神人王儉(신인왕검)이 降到于不咸之山檀木之墟(강도우불함지산단목지허)하시니 其至神之德(기지신지덕)과
兼聖之仁(겸성지인)이 乃能承詔繼天而建極(내능승조계천이건극)하사 巍蕩惟烈(외탕유열)이어시늘 九桓之民(구환지민)
이 咸悅誠服(함열성복)하야 推爲天帝化身而帝之(추위천제화신이제지)하니 是爲檀君王儉(시위단군왕검)이시라.
신인神人 왕검이 불함산不咸山의 박달나무가 우거진 터[墟]에 내려오셨다. 왕검께서 지극히 신성한 덕성과 성인의 인자함을 겸하시고, 능히 선대 환인·환웅 성조의 법을 이어 받고 하늘의 뜻을 받들어 인륜의 푯대를 세우시니, 그 공덕이 높고 커서 찬란하게 빛났다. 이에 구환九桓의 백성이 모두 기뻐하고 진실로 복종하여 천제의 화신으로 추대하여 임금으로 옹립하니, 이분이 바로 단군왕검이시다. (「삼성기 상上」)

열국시대에서 고려까지 대부여를 계승한 북부여는 물론이고 해모수의 후예, 고주몽이 건국한 고구려 역시 천자가 다스리던 나라였습니다.

천자국 고구려인들의 자부심이 만주 집안현集安縣에 1,500년 동안 굳건히 서 있는 광개토태왕비문에도 잘 나타납니다.

 

비문에는 ‘천제지자天帝之子’, ‘황천지자皇天之子’라는 문구가 있어 그들이 하늘의 자손, 천제의 아들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구려를 이은 대진국 역시 당나라에 예속된 지방정권이 아니라 당당히 천자국의 위상을 떨친 독립국이었습니다.

이것은 최근에 발굴된 상경성의 제2궁전지의 전면이 19칸인 사실(당나라 장안성의 함원전은 11칸)과 1980년 발견된 정효공주의 묘지명에서 그 아버지인 문왕을 ‘황상皇上’이라 부른 것, 왕비의 묘비명에서 황후라는 표현을 쓴 것 등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고려 역시 출발은 천자국이었습니다.

태조 왕건은 천수天授, 광종은 광덕光德, 준풍峻豊이라는 연호를 사용하였습니다.

수도 개성을 황도皇都라 일컫고 원구단을 설치하여 천제天祭를 올렸습니다.

 

甲午三十四年(갑오삼십사년)이라 十月(시월)에 東明國高豆莫汗(동명국고두막한)이 使人來告(사인래고)하야 曰(왈)
我是天帝子(아시천제자)라 將欲都之(장욕도지)하노니 王其避之(왕기피지)하라 한대 帝難之(제난지)러시
니 是月(시월)에 帝憂患成疾而崩(제우환성질이붕)하시고 皇弟解夫婁(황제해부루)가 立(입)하시니라.
재위 34년 갑오(단기 2247, BCE 87)년 10월에 동명국東明國 고두막한이 사람을 보내어 고하기를, “나는 천제의 아들[天帝子]이로다. 장차 여기에 도읍하고자 하나니, 임금은 이곳을 떠나도록 하시오” 하니, 임금께서 난감하여 괴로워하셨다. 이 달에 고우루단군께서 근심과 걱정으로 병을 얻어 붕어하셨다. 아우 해부루解夫婁가 즉위하였다.(「북부여기 上」)

 

時(시)에 下夫餘人(하부여인)이 將欲殺之(장욕살지)어늘 奉母命(봉모명)하사
與烏伊摩離陜父等三人(여오이마리협보등삼인)으로 爲德友(위덕우)하시고 行至岔陵水(행지차릉수)하사
欲渡無梁(욕도무량)이라 恐爲追兵所迫(공위추병소박)하야 告水曰(고수왈) 我是天帝子(아시천제자)오
河伯外孫(하백외손)이라 今日逃走(금일도주)에 追者垂及(추자수급)하니 奈何(내하)오 於是(어시)에 魚鼈(어별)
이 浮出成橋(부출성교)하야 始得渡(시득도)하시고 魚鼈(어별)이 乃解(내해)하니라.
당시 동부여 사람들이 주몽을 죽이려 하므로, 주몽이 어머니의 명을 받들어 오이烏伊, 마리摩離, 협보陜父 세 사람과 친구의 의를 맺고 함께 길을 떠났다. 차릉수岔陵水에 이르러 강을 건너려 하였으나 다리가 없었다. 뒤쫓아 오는 군사들에게 붙잡힐까 두려워하여 강에 고하기를, “나는 천제(천상 상제님)의 아들이요, 하백의 외손으로 오늘 달아나는 길인데 쫓는 자가 다가오고 있으니 어찌하리까?” 하니, 물속에서 물고기와 자라가 수없이 떠올라 다리가 되었다. 주몽이 물을 건너자 물고기와 자라가 곧 흩어졌다.(「북부여기 下」)

정리 역주자가 전해주는 말씀
☞ 천자는 용봉龍鳳으로 상징된다.

용봉은 ‘상서로운 동물[吉祥物]’로서 천지음양 기운을 상징하는 영물이다.

용은 음을 상징하는 신수神獸이고, 봉은 양을 상징하는 신수이다.

 

그래서 용은 천지의 물의 조화를 다스리고, 봉은 불의 조화를 다스린다.

일월에 비유하면 용은 달의 광명을, 봉은 태양의 광명을 상징한다.

용봉이 음양, 수화, 일월을 나타내는 상징적 신물이기 때문에, 용봉은 인간 세상에서 천자 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환단고기 역주본 해제 4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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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 천자 나라②

진실의 역사

환단고기가 밝혀주는 천자의 나라


환국은 천자 문화의 고향

천자天子는 천제지자天帝之子의 준말입니다.

환국의 백성들은 환인을 삼신상제님(天帝)의 아들로 받들었습니다.

천자 문화 역시 인류 최초의 국가이자 동서 문명의 고향인 환국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상제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상제님으로부터 선택되었다, 상제님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의미로 서교의 ‘Son of God’이라는 말과 상통합니다.

곧 상제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 세상을 다스린 것입니다.

바로 통치와 제사의 일치입니다.

 

천자가 등극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국태민안國泰民安을 하늘에 비는 천제天祭를 올리는 일이었습니다.

예로부터 천자는 통치자이며 스승이었고 신의 뜻을 전하는 대무大巫였습니다.

 

우리는 무당을 단골(=단군) 또는 당골로 불렀습니다.

단군은 제사장을 뜻하고, 왕검은 통치자의 의미입니다.

‘단군왕검’은 정교가 합일된 호칭입니다.

 

동방 신교에서는 예로부터 군사부君師父 일체를 얘기합니다.

다시 말해 천자는 다스리는 군君이자, 가르치고 깨우치는 스승(師)이고 새로운 생명을 열어주는 아버지(父)입니다.

군사부 문화가 신교의 삼신문화에서 나왔습니다.

또한 군사부는 삼신의 현현顯現인 천지인의 덕성이기도 합니다.

 

桓仁(환인)이 高御上上天(고어상상천)하사 惟意懇切百途(유의간절백도)가 咸自和平(함자화평)이어시늘 時(시)에
稱天帝化身而無敢叛者(칭천제화신이무감반자)오 九桓之民(구환지민)이 咸率歸于一(함솔귀우일)하니라.


환인께서는 높고 높은 하늘[上上天] 나라에 임어해 계시며 오직 온천하가 모두 저절로 화평해지기를 간절히 생각하시니, 이때에 백성이 환인을 천제(천상 상제님)의 화신이라 부르며 감히 거역하는 자가 없었고, 구환의 백성이 모두 하나가 되었다.(『태백일사』「환국본기」)

          

정리 역주자가 전해주는 말씀
☞ 천자는 상제님을 대신하여 땅 위의 백성을 다스리는 통치자요, 하늘에 계신 상제님께 천제天祭를 올리는 제사장이다.

한마디로 상제님과 인간을 연결하는 다리와 같은 존재다.

환국·배달·고조선 이래로 이 땅은 원래 천제의 아들이 다스리는 천자국天子國이었다.

 

천자의 가장 근본적인 소명은 자연의 법칙을 드러내어 백성들이 춘하추동 제때에 맞춰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책력을 만드는 것이었다.

배달 시대에 지은 한민족 최초의 책력인 칠회제신력七回祭神曆(『태백일사』「신시본기」) 또는 칠정운천도七政運天圖(『태백일사』「소도경전본훈」)는 인류 최고最古의 달력이다. (환단고기 역주본 해제 86쪽)

 

☞ 아버지의 본성과 소임은 우주 만물을 낳는 하늘과 상통하고, 스승의 본성과 소임은 온갖 생물을 키우고 번성시키는 땅과 상통하고, 임금의 본성과 소임은 서로 화합하며 살아가는 인간과 상통한다.

환국·배달·고조선의 삼성조를 세운 환인·환웅·단군은 군사부의 도를 역사 속에서 실현한 분들이다.

『환단고기』에 따르면, 환인천제는 아버지의 도를 집행하여 천하를 한 곳에 모았고, 환웅천황은 스승의 도를 집행하여 천하를 거느렸고, 단군천황은 임금의 도를 집행하여 천하를 다스렸다. (환단고기 역주본 해제 4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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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 천자 문화①

진실의 역사

환단고기 천자天子 문화

 

옥웅룡

1984년 중국 요녕성 우하량에서 적석총을 발굴하던 도중에 한 쌍의 옥룡玉龍이 출토되었습니다.

발굴되는 유물과 유적이 대부분 ‘사상 처음’이고 ‘인류사 최고最古’인 홍산문화의 일부입니다.

 

서로 대응하는 모습의 C자형 옥룡은 면밀한 검토 후 웅룡熊龍으로 명명됐습니다.

이른바 옥웅룡玉熊龍입니다.

풀이하자면 옥으로 만든 곰과 용 모양의 형상물입니다.

옥과 곰, 용의 의미가 이 유물의 문화·역사적 가치를 해석하는 키워드입니다.

 

옥은 변하지 않는 보석으로 영생불멸을 상징합니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옥을 ‘오덕五德을 갖춘 아름다운 돌’이라 하였고, 공자는 ‘군자는 옥으로 덕을 견준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주역』 「설괘전說卦傳」에서는 팔괘의 첫째인 건괘乾卦의 성격을 옥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그 까닭은 옥이 하늘의 빛깔과 하늘의 신성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홍산문화 유적지 전체에서 옥기가 많이 출토되었는데 이들이 대부분 죽은 자의 가슴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가장 성스러운 보석이 놓였다는 것은 고인故人의 신분이 특별한 위치에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곰하면 제일 먼저 연상되는 것이 『삼국유사』의 ‘일웅일호一熊一虎’입니다.

바로 곰을 토템으로 섬기는 웅족熊族을 말합니다.

 

지금의 강단사학계에서는 일웅일호를 ‘한 마리의 곰과 한 마리의 호랑이’로 해석하여 엄연한 실존역사를 신화의 세계로 날려버렸습니다.

홍산인들이 곰을 얼마나 신성시 했는지는 우하량의 여신묘 터에서 여신상과 함께 곰 소조상이 나온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여신과 곰은 당연히 『환단고기』의 웅녀군熊女君으로 연결됩니다.

역사의 기록이 현실의 유물로 증명된 셈입니다.

 

용은 동북아에서 경이롭게 모셔지는 동물로 봉황과 함께 천자天子를 상징합니다.

역대 황제와 왕들이 정복으로 곤룡포衮龍袍를 입었으며,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을 상징하는 청와대의 문장紋章은 봉황입니다.

용과 봉에 대한 숭배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용 모양의 옥기를 죽어서까지 소장했다는 것은 이 대형묘의 주인공은 신과 통하는 제사장(화이트 샤먼)이자, 왕의 신분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당시의 천자天子가 그곳에 묻혔다고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가까운 나만기 유적에서 옥쇄玉璽로 추정되는 BCE 4500~BCE 3000년 경의 옥인장玉印章이 발굴되어 그 설득력을 높여줍니다.

과연 이 사람은 누구이며, 홍산문화 유적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정리 역주자가 전해주는 말씀
☞ 홍산문화는 동북아 신석기 문화의 최고봉으로서 중국 한족의 것과는 계통이 전혀 다른 문화이다.

오히려 그들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환단 시대 배달동이족의 독자적인 문화이다.

홍산문화는 환단 시대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올바르게 해석할 수 없다.

환국·배달·고조선이라는 동북아 시원역사를 인정해야 홍산문화를 포함한 발해연안의 그 엄청난 유적과 유물을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환단고기 역주본 해제 264쪽)

 

☞ 홍산문화 우하량에서는 무려 BCE 35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적석총[塚], 신묘[廟], 대형 원형제단[壇]을 모두 갖춘 동북아 최고最古 문명이 발굴되었다.

이것은 5,500년 전에 이미 종교를 중심으로 제정일치의 국가조직을 갖춘 상고문명이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문명은 인류의 4대 문명이라 불리는 이집트·메소포타미아·인더스·황하문명보다 1~2천 년이나 앞선 인류의 시원문명으로서, 인류 제천祭天문화의 고향이요, 동서양 피라미드, 거석문화의 원조이다. (환단고기 역주본 해제 2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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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역사

환단고기 수행문화

 

3. 신교를 받는 공식, 믿음과 수행


봉청수와 기도
우리 조상님들은 예로부터 장독대에 정화수井華水를 모시고 삼신상제님께 가족의 강녕과 소원성취를 빌었습니다.

항상 정결한 물을 모시는 행위를 수행과 기도에 앞서 행하였습니다.

이 물을 청수淸水라고도 불렀습니다.

 

청수는 인간과 신명이 교류하는 교통처입니다.

인류의 첫 조상인 나반과 아반께서 혼례를 올릴 때도 명수明水를 떠놓고 하늘에 고하였습니다.

인간의 심성을 밝혀주는 물, 천지광명을 체험하게 하는 물이기에 명수라 하였습니다.

 

人類之祖(인류지조)를 曰(왈) 那般(나반)이시니 初與阿曼(초여아만)으로 相偶之處(상우지처)를 曰(왈)
阿耳斯庀(아이사비)오 亦稱斯庀麗阿也(역칭사비려아야)라
日(일)에 夢得神啓(몽득신계)하사 而自成昏禮(이자성혼례)하시고 明水告天而環飮(명수고천이환음) 하시니라

 

역주 인류의 조상은 나반이시다. 나반께서 아만과 처음 만나신 곳을 아이사비라 부르고 또 사비려아라 하기도 한다.

하루는 꿈에 천신의 계시를 받아 스스로 혼례를 올리시고, 청수를 떠놓고 하늘에 고하신 다음 돌려가며 드셨다.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

정리 역주자가 전해주는 말씀
☞ 삼신의 도를 아는 철인들은 일상 생활에서 감정을 다스리는 ‘지감止感’, 호흡을 고르게 하는 ‘조식調息’, 촉감을 금하는 ‘금촉禁觸’으로써 삼도를 잘 다스려, 궁극에는 자기 안에 내재된 조물주 삼신을 발현시켜 삼신의 조화세계에 들어간다.

그래서 지감, 조식, 금촉은 수행의 3대 요체이다.

 

신라 시대에 불교의 대중화에 힘쓴 원효대사나 화엄종을 확립한 의상대사도 이를 수행의 대의로 삼았다고 한다.

그들은 바로 삼신문화의 수행 원리로 도를 닦았던 것이다.

신교의 수행 문화는 궁극적으로 성명정 삼진을 회복함으로써 천지와 더불어 영원히 사는 우주적인 인간, 즉 태일의 인간이 되기 위한 것이다. (환단고기 역주본 해제 410쪽)

 

제천과 수도, 그리고 신교

동방 신교에서는 상제님에 대한 신앙과 수행을 일체로 행하였습니다.

『환단고기』에서는 깨달음을 여는 공통 코드로 제천祭天, 수도修道, 신교神敎를 말하고 있습니다.

제천은 상제님께 지극한 믿음과 정성을 드리는 신앙행위입니다.

평소 생활 속에서 닦여진 신앙력이 바탕이 되어 입산수도라는 집중수행과정을 통해 신교를 받고 도통한 것입니다.

 

『환단고기』에서는 인류의 원 조상 나반 때부터 꿈을 통해 신교를 받았음을 보여줍니다.

꿈은 단지 무의식의 표현이 아닙니다.

수도가 지극해지면 자신의 영신靈神이 신명계를 간다든지, 돌아가신 조상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게 되는데 이것을 일러 꿈이라고 합니다.

삼신상제님께서 꿈을 통해 계시를 내려주는 것은 동서고금의 역사에 보편적인 일이었습니다.

 

有子十二人(유자십이인)하니 長曰多儀發桓雄(장왈다의발환웅)이시오 季曰太皞(계왈태호)시니 復號伏羲(득호복희)시라
日(일)에 夢三神(몽삼신)이 降靈于身(강령우신)하사 萬理洞徹(만리동철)하시고 仍徃三神山(내왕삼신산)하사
祭天(제천)이라가 得卦圖於天河(득괘도어천하)하시니라

 

역주 태우의환웅의 아들은 열둘이었는데 맏이는 다의발多儀發환웅이시요, 막내는 태호太皞이시니 복희伏羲라고도 불렸다. 태호복희씨가 어느 날 삼신께서 성령을 내려 주시는 꿈을 꾸고 천지만물의 근본 이치를 환히 꿰뚫어 보시게 되었다. 이에 삼신산三神山에 가시어 하늘에 제사 지내고 천하天河에서 괘도卦圖를 얻으셨다. (『태백일사』 「신시본기」)

 

乙支文德(을지문덕)은 高句麗國石多山人也(고구려국석다산인야)라 嘗入山修道(상입산수도)하야
得夢天神而大悟(득몽천신이대오)하고 每當三月十六日則馳徃摩利山(매당삼월십육일즉치왕마리산)하야
供物敬拜而歸(공물경배이귀)하며 十月三日則登白頭山祭天(시월삼일즉등백두산제천)하니
祭天(제천)은 乃神市古俗也(내신시고속야)라.

 

역주 을지문덕은 고구려 석다산 사람이다. 일찍이 산에 들어가 도를 닦다가 삼신의 성신이 몸에 내리는 꿈을 꾸고 신교 진리를 크게 깨달았다. 해마다 3월 16일(대영절大迎節)이 되면, 말을 달려 강화도 마리산에 가서 제물을 바쳐 경배하고 돌아왔다. 10월 3일에는 백두산에 올라가 천제를 올렸다. 이런 제천 의식은 배달 신시의 옛 풍속이다. (『태백일사』「고구려국본기」)

정리 역주자가 전해주는 말씀
☞ 삼진, 삼망, 삼도를 서양 철학으로 말하자면, 생명의 동력원인 성명정은 ‘순수 이성’의 경계이고, 감식촉은 인간이 몸을 가지고 사물을 직접 체험하는 ‘경험주의’의 경계이다.

 

다시 말해서 성명정 삼관은 추상적인 순수이성, 직관의 세계이고, 감식촉 삼문은 감각을 통해서 온 몸으로 사물을 체험하는 경험의 세계이다.

심기신 삼방은 삼관과 삼문, 이 두 가지를 통합하는 자리이다.

이것을 유가에서 심통성정心統性情, ‘마음이 성과 정을 통괄한다’고 표현한 것이다.

 

결국 성명정 심기신 감식촉, 이 아홉 가지의 유기적인 작용을 통해 인간의 몸속에서 이성주의와 경험주의의 통합이 이루어진다.

신교 원형 문화의 인성론에 서양 철학을 뛰어넘는 진리의 한 소식이 들어 있는 것이다. (환단고기 역주본 해제 4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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