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만큼 보인다

한민족 시원 밝혀준 홍산문화 유물②

진실의 역사

한민족의 시원始原을 밝혀준 홍산문화 유물들

중국은 홍산문화를 자기네 문화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역사기록은 없다.

 

홍산문화는 황하문명을 넘어서

한민족의 조상인 동이문명의 것임이 밝혀지고 있다.

 

홍산문화는 환국의 후손인 배달겨레가 중심이 되어 이룩한 문화이며,

그 기반 위에 단군조선이 건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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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시원 밝혀준 홍산문화 유물①

진실의 역사

한민족의 시원始原을 밝혀준 홍산문화 유물들


중국은 홍산문화를 자기네 문화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역사기록은 없다.

 

홍산문화는 황하문명을 넘어서

한민족의 조상인 동이문명의 것임이 밝혀지고 있다.

 

홍산문화는 환국의 후손인 배달겨레가 중심이 되어 이룩한 문화이며,

그 기반 위에 단군조선이 건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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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열차분야지도③

진실의 역사

박물관에서 본 우리 역사 | 천상열차분야지도

  

‘천상열차분야지도’는 간단하게 말하면 천문도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이름에서 끝에 ‘지도’라는 것은 ‘~하는 그림’이란 뜻이다.

천상天象이란 하늘의 모습을 의미한다.

현대적인 표현으로 말하면 천문현상天文現象의 줄임 말이다.

열차列次란 하늘 별자리를 구획으로 나누어 펼쳐 놓았다는 의미이고, 분야分野라는 것은 하늘 구획을 땅의 특정 지역과 대비시키는 것을 말한다.

 

별들이 반짝이는 하늘 공간을 방위와 방향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3차원 우주 공간에 퍼져 있는 별들을 사람이 이해하기 쉽도록 지상의 방위와 방향에 맞게 2차원 평면에 펼쳐 놓은 것이 천문도이다.

북극성을 기준으로 삼아 관측할 수 있는 별자리들을 12구역으로 나누었다.

 

‘천상열차분야지도’란 조선 백성들이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지침서로서 ‘표준 천문도’였다.

이 표준 천문도에 담긴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보기로 한다.

 

일월오봉병(도)日月五峯屛(圖)

자미원에 있는 ‘옥황상제’가 북두칠성이라는 수레를 타고 1년 동안 온 우주를 돌며 다스리는 것을 칠정七政이라고 한다.

옥황상제는 우주를 다스리는 통치자이자 신神이다.

북두칠성은 상제의 명령을 받아 4계절마다 각 7수(28수 중 7별자리)를 지휘한다.

 

각 7수는 북두칠성의 지휘 아래 맡은 바 영역에서 정해진 시기(계절)에 맞게 활동을 한다.

7수의 활동은 다시 온 우주에 영향을 미쳐서 우리가 속한 태양계의 일월과 오행성(목성, 화성, 토성, 금성, 수성)까지 이르게 된다.

일월과 오행성은 7수의 지휘 아래 각기 자전과 공전을 하면서 이 땅의 만물에 낳고 기르고 결실시키고 죽이는 작용을 한다.

 

이처럼 자미원에 있는 상제(혹은 천제)가 온 우주를 다스리듯 천제의 대행자인 임금은 하늘로부터 인간 세상의 통치권을 부여받았기에 하늘을 본받아 이 땅의 백성들을 다스린다.

이것이 천상의 칠정을 본받아 임금이 인간 세상에 펼치는 정치政治이다.

그래서 역대 제왕들은 하늘의 변화하는 모습을 관찰하는 관청을 설치하고 1년 365일 일월 오행성의 움직임과 별자리들을 관찰하고 기록하게 했다.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통치권을 행사하기 위해서 자미원에 계신 상제의 뜻을 알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하늘(천제)은 말도 몸짓도 없기에 임금께서는 하늘의 기색(상象)을 살펴서라도 천심을 알고자 했다.

그래서 조선 시대에는 관상감觀象監이라는 관청을 두어 천문을 관측하고 기록하여 임금님에게 주요 사항을 보고하게 했다.

이렇게 천문을 관측하고 그 기록과 역량이 축적되면서 달력을 만들어 냈고 이는 어로, 수렵, 목축, 채취, 농사 등 백성들의 생활 전반에 도움을 주게 되었다.

 

앞서 소개한 여러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천문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다.

하늘의 이치대로 사람들이 살아야 했기 때문에 천문도를 바탕으로 나라를 다스리고자 했다.

이것이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만들었던 이유인 것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②

진실의 역사

박물관에서 본 우리 역사 | 천상열차분야지도

  

‘천상열차분야지도’는 간단하게 말하면 천문도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이름에서 끝에 ‘지도’라는 것은 ‘~하는 그림’이란 뜻이다.

천상天象이란 하늘의 모습을 의미한다.

현대적인 표현으로 말하면 천문현상天文現象의 줄임 말이다.

열차列次란 하늘 별자리를 구획으로 나누어 펼쳐 놓았다는 의미이고, 분야分野라는 것은 하늘 구획을 땅의 특정 지역과 대비시키는 것을 말한다.

 

별들이 반짝이는 하늘 공간을 방위와 방향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3차원 우주 공간에 퍼져 있는 별들을 사람이 이해하기 쉽도록 지상의 방위와 방향에 맞게 2차원 평면에 펼쳐 놓은 것이 천문도이다.

북극성을 기준으로 삼아 관측할 수 있는 별자리들을 12구역으로 나누었다.

 

‘천상열차분야지도’란 조선 백성들이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지침서로서 ‘표준 천문도’였다.

이 표준 천문도에 담긴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보기로 한다.

 

하늘의 명당을 땅에 내린 경복궁

풍수란 하늘의 명당과 닮은 땅의 명당을 찾는 학문이다.

그렇다면 하늘은 어디가 명당일까?

 

북극성과 북두칠성에는 온 우주를 다스리는 하늘의 제왕(천제天帝 혹은 옥황상제玉皇上帝)이 머문다고 믿었다.

그래서 북극성과 북두칠성이 있는 별자리 영역을 명당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천상열차분야지도에서 가장 안쪽 원 내규內規인 ‘자미원紫微垣’ 혹은 ‘자미궁紫微宮’이 최고의 명당이다.


하늘의 28개의 별자리를 땅에 적용한 내용

자미원에 기거하는 하늘의 제왕이 있으면 하늘의 신하도 있고 하늘의 백성도 있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하늘 임금 아래에서 우주 정치를 수행하는 정부기관이 있는 곳을 ‘태미원’이라 하며, 하늘 백성들이 사는 곳을 ‘천시원’이라고 한다.

이렇게 자미원, 태미원, 천시원은 삼원三垣이라 하며, 뒤에서 이야기할 28수와 더불어 동아시아 천문 사상의 특징이다.

즉 동아시아 천문도의 특징은 3원 28수이다.

조선을 만든 사람들은 하늘의 삼원을 지상에 배치시켰는데 자미원은 경복궁, 태미원은 육조거리로 지금의 광화문 광장에 해당한다.

육조 거리엔 중앙관청인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 이외에 조선 시대 국가 최고 의사결정기관인 의정부를 비롯하여 서울시청에 해당하는 한성부, 감사원격인 사헌부 외에 정부 중앙 관청인 6조가 있었다.

천시원은 현대적인 의미로 백화점과 쇼핑센터가 있어서 종로의 시전이 바로 천시원에 해당한다 하겠다.

천상열차분야지도①

진실의 역사

박물관에서 본 우리 역사 | 천상열차분야지도

 

그대 반짝이는 별을 보거든...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


혹시 지갑에 일만 원권 지폐를 가지고 있다면 꺼내서 천문도를 찾아보기 바란다.

세종대왕이 그려진 뒷면에 천체 관측 기구가 그려져 있고 그 배경을 별자리가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번은 들어 봤을 이 천문도의 이름은 ‘천상열차분야지도’로서 동아시아에서 최고로 정밀한 별자리 그림이다.

무심코 지갑 속에 넣어 다니고 있지만 알고 보면 사람들이 저마다 우주의 그림을 휴대하고 다니는 것이다.

태극기에 우주의 이치를 그려 넣었다면 만 원의 지폐 속에는 별자리를 담았다.

우리가 주머니에 우주를 들고 다니게 된 것은 한민족이 오랜 세월동안 별과 친하게 지내온 결과물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이름이 좀 어렵다.

간단하게 말하면 천문도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이름에서 끝에 ‘지도’라는 것은 ‘~하는 그림’이란 뜻이다.

천상天象이란 하늘의 모습을 의미한다.

현대적인 표현으로 말하면 천문현상天文現象의 줄임 말이다.

열차列次란 하늘 별자리를 구획으로 나누어 펼쳐 놓았다는 의미이고, 분야分野라는 것은 하늘 구획을 땅의 특정 지역과 대비시키는 것을 말한다.

 

별들이 반짝이는 하늘 공간을 방위와 방향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3차원 우주 공간에 퍼져 있는 별들을 사람이 이해하기 쉽도록 지상의 방위와 방향에 맞게 2차원 평면에 펼쳐 놓은 것이 천문도이다.

북극성을 기준으로 삼아 관측할 수 있는 별자리들을 12구역으로 나누었다.

 

‘천상열차분야지도’란 조선 백성들이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지침서로서 ‘표준 천문도’였다.

이 표준 천문도에 담긴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보기로 한다.


분야설分野說
목성은 공전 주기가 약 12년(정확히는 11.86년)으로 매년 천구상의 황도 둘레를 약 30도씩 운행한다.

이 목성의 12년 1주천 주기를 12등분 한 것을 ‘십이차 분야설’이라 한다.

이 12차는 천상의 공간을 구획하는 분야론으로 전개되었으며 지구로 확장되어 12주, 12국에 배속되었다.

『환단고기』의 ‘12환국’과 동학의 ‘12제국’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복잡한 듯 간단한 지도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조선에서 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모든 별자리가 그려졌다.

그래서 ‘전천천문도全天天文圖’라고 분류한다.

돌에 새긴 석각본, 나무에 새긴 목판본, 종이에 찍은 필사본으로 제작되어 조선 백성들에게 다양하게 보급되었다.

별자리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별은 총 1,467개이고 별자리는 모두 295개이다.

 

이 천문도를 언뜻 보면 아주 복잡하다.

하지만 관심을 갖고 유심히 들여다보면 의외로 쉽게 다가온다.

 

먼저, 이 천문도에서 네 개의 원을 구별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가장 바깥쪽 첫 번째 큰 원을 외규外規라고 부른다.

바깥쪽에서 중심부 쪽으로 시선을 옮기다 보면 중간 크기 원이 2개가 겹쳐진 채로 보인다.

 

중심 쪽에 있는 원은 천구(밤하늘)의 적도이다.

그리고 중심이 어긋난 원은 태양이 1년 동안 별자리를 지나는 경로를 나타내는 황도라고 한다.

 

네 번째로 가장 중심부에 있는 작은 원 안쪽이 ‘자미원紫微垣’이라고 부르는 내규內規이다.

이 4개의 원이 보이기 시작하면, 자미원을 중심으로 뻗어나간 방사선들도 눈에 들어온다.

이것은 황도 근처에 배열된 28개의 대표적인 별자리를 중심으로 구획을 나눈 것이다.

자미원을 중심으로 360도를 28개의 영역으로 나누었다.

 

그러나 방사선으로 뻗어나간 선의 각도가 일정하지 않아 더욱 복잡해 보인다.

대표적인 별자리를 두고 그 크기만큼 나누었기 때문에 어떤 구획은 폭이 넓고 어떤 구획은 좁다.

이렇게 28개의 대표적인 별자리를 28수宿라고 한다.

박물관에서 본 우리역사-국립중앙박물관의 역사왜곡⑤

진실의 역사

박물관에서 본 우리 역사 | 국립중앙박물관의 역사 왜곡 부분

 

국립중앙박물관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용산구에 있는 국립 박물관이다.

1946년에 개관했으며 2005년 현재의 위치인 용산으로 신축 이전 개관을 하였다.

한 해 350만 이상이 방문하는 곳이고 약 100만 명의 외국인이 다녀가는 곳이 바로 국립중앙박물관이다.

규모면에서는 세계 6대 박물관이라고까지 얘기하는데, 사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외국 박물관에 못지않은 외관과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박물관의 유물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역사를 인식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박물관은 대한민국의 바른 역사와 문화를 바르게 전해 주어야 하는 중대한 사명이 있는 곳이다.

그런데 박물관에 담겨진 역사는 왜곡된 사실을 그대로 반영할 여지가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보러 갔다가는 어느 것이 맞는지 헤맬 수 있다.

그렇기에 우선적으로 박물관에 진열된 왜곡된 역사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아직도 원삼국 시대로 표기하는 박물관들

‘원삼국시대’ 라는 용어는 고故 김원룡 박사가 1973년 한국고고학개설에서 처음 사용한 이래 고고학계에서 일반화됐다.

그는 1970년대 초에 ‘원삼국시대原三國時代: Proto-Three Kingdoms Period’라는 용어를 주창하였다.

이후 한국고고학에서는 원삼국시대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절대 연대로 환산하면 기원 전후에서 서기 300년 무렵까지는 원시삼국이라는 얘기다.

서강대 사학과 이종욱 교수는 고고학에서 말하는 원삼국시대론이라든가, 서력기원 전후부터 서기 300년 무렵까지 백제와 신라의 초기 역사를 인정하지 않은 문헌 사학계를 겨냥해 “후기 식민사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맹비판을 했다.

 

신라와 백제는 엄연히 기원전 1세기에 건국했음에도 그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두 왕조의 실질적 건국시기를 4세기 이후로 보는 일본 식민사학을 답습한 유산이라는 것이다.

 

원삼국론은 국립중앙박물관이 2009년 고조선실을 만들면서 사라진 듯하였으나 아직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다.

지방 국립박물관 등에는 아직도 일부 쓰이고 있으며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에도 몇몇 기증 유물을 소개하는 곳에는 ‘원삼국 시절’이라는 표기가 뚜렷이 되어 있다.

 

이상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몇 가지 왜곡된 부분을 알아보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을 여러 차례 답사를 한 결과 이 박물관은 한사군 한반도설, 낙랑군 평양설을 고착화시키기 위한 장치가 여러 곳에 되어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빼앗기고 싶지 않은 무엇인가가 있는가 보다.

그 지키고 싶어 하는 것이 대한민국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본 중심, 중국 중심이라는 것이 문제다.

거짓의 역사라 하더라도 이를 수정하거나 고치지 않고 기득권만을 유지하려는 것이 또한 문제다.

 

박물관은 우리 역사문화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역사의 진실을 알고 바르게 유물유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진실된 역사를 알리려는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절감한다.

 

사실 그 외에도 왜곡된 것은 너무나 많다.

고조선실은 개설이 되었지만 그 안에도 많은 왜곡이 있다.

고조선과 청동기 시대를 동일시하는 문제, 청동기의 연대 문제, 고조선과 진국의 문제, 고조선과 한나라의 문제, 고인돌 문제, 명도전을 중국 화폐로 보는 문제 등 숱한 왜곡의 문제들이 고조선실에 존재한다.

박물관에서 본 우리역사-국립중앙박물관의 역사왜곡④

진실의 역사

박물관에서 본 우리 역사 | 국립중앙박물관의 역사 왜곡 부분

 

국립중앙박물관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용산구에 있는 국립 박물관이다.

1946년에 개관했으며 2005년 현재의 위치인 용산으로 신축 이전 개관을 하였다.

한 해 350만 이상이 방문하는 곳이고 약 100만 명의 외국인이 다녀가는 곳이 바로 국립중앙박물관이다.

규모면에서는 세계 6대 박물관이라고까지 얘기하는데, 사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외국 박물관에 못지않은 외관과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박물관의 유물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역사를 인식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박물관은 대한민국의 바른 역사와 문화를 바르게 전해 주어야 하는 중대한 사명이 있는 곳이다.

그런데 박물관에 담겨진 역사는 왜곡된 사실을 그대로 반영할 여지가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보러 갔다가는 어느 것이 맞는지 헤맬 수 있다.

그렇기에 우선적으로 박물관에 진열된 왜곡된 역사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영어 설명에만 낙랑군을 몰래 넣은 의도

전시실 내부에는 고조선과 한漢이라는 설명문이 있다.

이 설명문의 영문을 보면 국문에는 나와 있지 않은 부분이 들어가 있다.


“Gojoseon fell in 108 BCE, after a year-long war with Han China. As a result, Han set up Lelang Commandery as an outpost in the former Gojoseon territory.”

 

바로 고조선이 한나라의 식민지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한나라는 고조선의 영역이었던 곳에 낙랑(Lelang)이라는 식민지를 건설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처음 한국사 연대표에는 낙랑(Nakrang)이라는 우리말식 표기를 쓰더니 이 설명글에는 중국어 발음으로 르랑(Lelang)으로 표기해 놓았다.

중국 식민지라는 얘기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박물관을 가면 그냥 지나치는 데 비해서 외국인들은 고대로부터 한국은 중국의 식민지가 되었다는 것으로 알고 지나가게 된다.

 

일본인 기증자들이 기증한 낙랑군 유물

중앙박물관 2층에 가면 몇 일본 기증자 현판이 있다.

이 일본인들이 기증한 것이 우리에게 무슨 기여를 했는지 모르겠다.

진짜 가관인 것은 이들이 평양에서 도굴한 유물을 한사군 낙랑군 것이라고 떡하니 적어 놓은 것이다.

 

대부분 처음 박물관을 방문하면 2층의 기증관까지는 둘러보지 않아서 모르고 지나치기 일쑤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낯 뜨거운 설명들이 담겨 있다.

 

상설전시관에는 ‘낙랑’이라고 쓰고 ‘낙랑군’이라고 읽어야 한다며 기증관에는 버젓이 ‘낙랑군’이라고 써놓고 있고 도장, 옥, 쇠뇌, 수막새 등 낙랑군 유물이 나왔다고 진열해 놓고 있는 것이다.

박물관에서 본 우리역사-국립중앙박물관의 역사왜곡③

진실의 역사

박물관에서 본 우리 역사 | 국립중앙박물관의 역사 왜곡 부분

 

국립중앙박물관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용산구에 있는 국립 박물관이다.

1946년에 개관했으며 2005년 현재의 위치인 용산으로 신축 이전 개관을 하였다.

한 해 350만 이상이 방문하는 곳이고 약 100만 명의 외국인이 다녀가는 곳이 바로 국립중앙박물관이다.

규모면에서는 세계 6대 박물관이라고까지 얘기하는데, 사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외국 박물관에 못지않은 외관과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박물관의 유물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역사를 인식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박물관은 대한민국의 바른 역사와 문화를 바르게 전해 주어야 하는 중대한 사명이 있는 곳이다.

그런데 박물관에 담겨진 역사는 왜곡된 사실을 그대로 반영할 여지가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보러 갔다가는 어느 것이 맞는지 헤맬 수 있다.

그렇기에 우선적으로 박물관에 진열된 왜곡된 역사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아직도 점제현 신사비秥蟬縣神祠碑가 있다?

낙랑군에는 25현이 있는데 그중에 점제현이라는 현이 있다.

만약 낙랑군의 속현이 적힌 비석이 발견된다면 그 땅은 낙랑군이라는 확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노린 이마니시류(금서룡今西龍)는 1913년에 <점제현신사비秥蟬縣神祠碑>를 발견하였다고 발표하고 평양에서 고대 유물을 발굴하고 그 증거로 삼았다.

그러나 이 비석은 후에 거짓으로 규명되었다.

 

1990년 고故 손보기 연세대 교수는 “일본인 금서룡이 중국 하북성 갈석산에 있었던 비석을 파내어 한반도 평남 온천군으로 배로 실어 가져와 한반도 내 한사군설을 조작하는데 이용하였다”고 확언했다.

이어 1995년 북한 학자들은 이 비가 일본인 이마니시 류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는 것을 밝혔다.

 

이렇게 조작된 비석임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점제현신사비가 문제없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이 비문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문자가 써진 비석으로 기록되어 있다.


낙랑군 재在평양설의 탄생배경
조선통감부 시절 세키노타다시關野貞를 필두로 한 일명 세키노조사단 일행은 유물 조작을 통해서 우리 역사를 만들어 갔다.

조선통감부가 조선총독부로 바뀌고, 일본이 본격적으로 한국의 식민지화 정책을 펼쳐 나가면서 어떻게든 한국인의 의식 속에 식민의식을 심어야겠다는 시도가 나타났다.

그 대표적인 것이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낙랑군 재在평양설이다.


낙랑군의 위치를 밝히는 중국사서들
● 『한서漢書』「설선 薛宣 열전」“ 사고왈 師古曰(사고가 말하기를) 낙랑속유주樂浪屬幽州(낙랑은 유주에 속해있다)”

 

● 『후한서後漢書』「최인 崔駰 열전」“장잠현 속낙랑군長岑縣 屬樂浪郡(장잠현은 낙랑군에 속해 있는데),기지재요동其地在遼東(그 땅은 요동에 속해있다)”

 

● 『후한서後漢書』「광무제본기 光武帝本紀」 “낙랑군樂浪郡 고조선국야故朝鮮國也(낙랑군은 옛 조선국이다),재요동在遼東(요동에 있다)”

 

● 『사기색은史記索隱』「하본기 夏本紀」“ 낙랑수성현유갈석산 樂浪遂城縣有碣石山(낙랑수성현에는 갈석산이 있으며),장성소기長城所起(만리장성의 기점이다)”

 

● 『진서晉書』「지리지 地理志」‘ 낙랑군조 樂浪郡條’ “수성遂城, 진축장성지소기秦築長城之所起(수성현은 진나라 만리장성이 일어난 곳이다)”

 

● 『명사明史』 「지리지地理志」 영평부조永平府條 “창려昌黎-서북유갈석산西北有碣石山(창려 서북에는 갈석산이 있고), 동남유명해東南有溟

海(동남에는 어두운 바다가 있다)”


점제현 신사비의 재질
신사비 내용이 옳고 그르고를 따지기 이전에 점제현신사비 재질부터 따져 보면 간단하다.

그 비석의 재질은 화강석이다.

 

그런데, 근방에서 구할 수 있는 재질의 화강석이 아니다.

주위 화강석(한반도 북부)은 1억 7백만 년 전에 형성되어 있으나, 점제현비의 화강석은 1억 2천9백만 년 전에 형성된 화강석이다.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화강석의 성분구성 자체가 다르다. - 이덕일,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p48 (근거 논문: 조선고고연구 / 북한)


한사군 문제의 심각성- 중국의 북한 복속
2012년 미 의회조사국에 중국은 중국의 입장을 보내게 되는데 이때 중국의 학자인 지앙(창춘 사범대학 동북아시아 연구소)은 고구려가 중국의 땅이었다는 사실을 개의치 않고 말한다.

그는 “주로 한나라 이주민에 의해 건설된 지방정권이었다.”라고 썼다.

 

왜냐하면 지정학적으로 고구려의 경제와 문화는 그들 내부에 의해서 발전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가 한사군이 한반도 북부에서 420년 동안 지속되었다고 인정할 경우, 중국은 북한 땅이 과거 자신들의 땅이었음을 주장할 수 있다.

박물관에서 본 우리역사-국립중앙박물관의 역사왜곡②

진실의 역사

박물관에서 본 우리 역사 | 국립중앙박물관의 역사 왜곡 부분

 

국립중앙박물관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용산구에 있는 국립 박물관이다.

1946년에 개관했으며 2005년 현재의 위치인 용산으로 신축 이전 개관을 하였다.

한 해 350만 이상이 방문하는 곳이고 약 100만 명의 외국인이 다녀가는 곳이 바로 국립중앙박물관이다.

규모면에서는 세계 6대 박물관이라고까지 얘기하는데, 사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외국 박물관에 못지않은 외관과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박물관의 유물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역사를 인식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박물관은 대한민국의 바른 역사와 문화를 바르게 전해 주어야 하는 중대한 사명이 있는 곳이다.

그런데 박물관에 담겨진 역사는 왜곡된 사실을 그대로 반영할 여지가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보러 갔다가는 어느 것이 맞는지 헤맬 수 있다.

그렇기에 우선적으로 박물관에 진열된 왜곡된 역사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2012년 낙랑 유물을 다시 꺼낸 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에서 낙랑 유물은 퇴출되었었다.

그런데 2012년 겨울에 다시 낙랑 유물을 슬그머니 공개했다.

그들이 전시한 유물은 기원전 108년, 중국 한 무제가 고조선을 무너뜨리고 설치한 4개 군 중 하나인 낙랑樂浪이 남긴 유물이라는 것이다.

 

꺼내어 전시했다가 많은 논란과 함께 시민들의 항의를 받고 지하수장고로 들어갔던 낙랑 유물.

지금도 낙랑군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둘러싸고 평양설과 한반도 바깥에 있었다는 요동설, 요서설이 민족사학 진영과 강단사학 진영 사이에서 팽팽히 맞서고 있는 대척점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립중앙박물관은 낙랑 유물을 다시 꺼내 지금까지도 전시해 놓고 있는 것이다.

 

낙랑樂浪이 420년간 존재했다는 한국사 연표

국립중앙박물관을 처음 들어서면 마주하는 것이 바로 연대표다.

연대표는 최초의 국가를 고조선으로 기록하고 있고 고조선이 BCE 108년에 한나라에 의해 멸망당하고 그 자리에 낙랑군을 설치했으며 이 낙랑군은 BCE 108년부터 CE 313년까지 420년간 존속되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알다시피 중국은 200년 이상 유지된 국가가 거의 없다.

중국 본토에 있는 국가는 생멸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식민지라는 낙랑은 400년 이상을 유지해 왔다는 것 자체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이는 문헌 기록이 뒷받침하고 있다.

『삼국사기』의 낙랑에 관한 기록을 보면 고구려본기, 백제본기, 신라본기에서 공통적으로 서기 1세기경까지 낙랑이라는 존재가 나타나다가 갑자기 사라진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백 년이 지나서야 다시 등장한다.

여기서 처음에 나온 낙랑은 최씨의 낙랑국國으로 봐야 할 것이며 뒤에 서기 3세기~4세기 경에 고구려, 백제와 충돌한 낙랑은 낙랑군郡으로 봐야 할 것이다.

 

낙랑군이 평양에 있다는 지도

고조선실을 지나서 부여삼한실로 들어서면 벽면에 지도가 그려져 있다.

이 지도에는 한나라 식민지라는 낙랑을 한반도 안으로 집어넣었다.

 

소위 한사군을 설치했을 당대의 기록인, 사기, 후한서 등의 일차사료에서 낙랑군이 요서에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런데 유물과 유적을 조작해서라도 한사군 한반도설, 낙랑군 평양설을 믿게 해야겠다는 것이 바로 일제 식민사관의 폐해다.

박물관에서 본 우리역사-국립중앙박물관의 역사왜곡①

진실의 역사

박물관에서 본 우리 역사 | 국립중앙박물관의 역사 왜곡 부분

 

국립중앙박물관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용산구에 있는 국립 박물관이다.

1946년에 개관했으며 2005년 현재의 위치인 용산으로 신축 이전 개관을 하였다.

한 해 350만 이상이 방문하는 곳이고 약 100만 명의 외국인이 다녀가는 곳이 바로 국립중앙박물관이다.

규모면에서는 세계 6대 박물관이라고까지 얘기하는데, 사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외국 박물관에 못지않은 외관과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박물관의 유물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역사를 인식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박물관은 대한민국의 바른 역사와 문화를 바르게 전해 주어야 하는 중대한 사명이 있는 곳이다.

그런데 박물관에 담겨진 역사는 왜곡된 사실을 그대로 반영할 여지가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보러 갔다가는 어느 것이 맞는지 헤맬 수 있다.

그렇기에 우선적으로 박물관에 진열된 왜곡된 역사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2009년에야 고조선古朝鮮실이 생기다.

1945년 해방 이후 2009년이 되어서야 국립중앙박물관에 고조선실이 신설돼 문을 열었다.

그 전에는 선사실이 있고 원삼국실은 있었으나 고조선실은 없었다.

해방 후 60여 년이 지난 후에야 고조선의 역사를 박물관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고조선실 개설도 그냥 된 것이 아니다.

2002년 이후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여론이 형성되고 2007년 국사교과서가 개편되었다.

 

고조선 부분에서는 “고조선이 건국되었다고 한다.”라고 하여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는 듯했던 문구가 “건국했다”로 한 문장이 바뀌었다.

이 한 문장이 바뀌는 데에도 60년이 넘게 걸렸다.

이러한 우리 상고사 복원에 대한 국민들의 바램과 요청이 있어서 2년 후인 2009년이 되어서 비로소 고조선실이 개설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고조선실을 개설함에 따라서 지방에 있는 국립박물관 중에서 고조선실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모든 박물관에현재 고조선실이 있는 것은 아니다.

국립전주박물관의 경우 2013년이 되어서 고조선에 대한 설명을 넣었다고 한다.

전국의 국립박물관에 일괄적으로 고조선이 들어간 것이 아니므로, 이런 점은 앞으로 전국 지역 국립박물관이 해야 할 과제 중의 하나다.


영국박물관에는 아직도 고조선이 없다.
영국박물관에도 고조선은 없다.

대영박물관으로 알려져 있는 영국박물관은 세계 3대 박물관으로 중국관과 일본관만 있었는데 2000년에 한 독지가의 투자에 의해서 한국관이 오픈하게 되었다.

 

그런데 한국관에 있는 한중일 역사연표가 한국과 중국과 일본의 역사를 비교하고 있는데 중앙에 있는 한국역사 연표에는 현재까지도 고조선이 빠져 있다.

또한 우리 역사를 CE 300년에 시작된 것처럼 기록하고 있다.

유럽에 알려지는 우리역사의 현주소가 바로 영국박물관 한국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