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만큼 보인다

박물관에서 본 우리역사-국립중앙박물관의 역사왜곡③

진실의 역사

박물관에서 본 우리 역사 | 국립중앙박물관의 역사 왜곡 부분

 

국립중앙박물관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용산구에 있는 국립 박물관이다.

1946년에 개관했으며 2005년 현재의 위치인 용산으로 신축 이전 개관을 하였다.

한 해 350만 이상이 방문하는 곳이고 약 100만 명의 외국인이 다녀가는 곳이 바로 국립중앙박물관이다.

규모면에서는 세계 6대 박물관이라고까지 얘기하는데, 사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외국 박물관에 못지않은 외관과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박물관의 유물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역사를 인식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박물관은 대한민국의 바른 역사와 문화를 바르게 전해 주어야 하는 중대한 사명이 있는 곳이다.

그런데 박물관에 담겨진 역사는 왜곡된 사실을 그대로 반영할 여지가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보러 갔다가는 어느 것이 맞는지 헤맬 수 있다.

그렇기에 우선적으로 박물관에 진열된 왜곡된 역사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아직도 점제현 신사비秥蟬縣神祠碑가 있다?

낙랑군에는 25현이 있는데 그중에 점제현이라는 현이 있다.

만약 낙랑군의 속현이 적힌 비석이 발견된다면 그 땅은 낙랑군이라는 확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노린 이마니시류(금서룡今西龍)는 1913년에 <점제현신사비秥蟬縣神祠碑>를 발견하였다고 발표하고 평양에서 고대 유물을 발굴하고 그 증거로 삼았다.

그러나 이 비석은 후에 거짓으로 규명되었다.

 

1990년 고故 손보기 연세대 교수는 “일본인 금서룡이 중국 하북성 갈석산에 있었던 비석을 파내어 한반도 평남 온천군으로 배로 실어 가져와 한반도 내 한사군설을 조작하는데 이용하였다”고 확언했다.

이어 1995년 북한 학자들은 이 비가 일본인 이마니시 류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는 것을 밝혔다.

 

이렇게 조작된 비석임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점제현신사비가 문제없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이 비문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문자가 써진 비석으로 기록되어 있다.


낙랑군 재在평양설의 탄생배경
조선통감부 시절 세키노타다시關野貞를 필두로 한 일명 세키노조사단 일행은 유물 조작을 통해서 우리 역사를 만들어 갔다.

조선통감부가 조선총독부로 바뀌고, 일본이 본격적으로 한국의 식민지화 정책을 펼쳐 나가면서 어떻게든 한국인의 의식 속에 식민의식을 심어야겠다는 시도가 나타났다.

그 대표적인 것이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낙랑군 재在평양설이다.


낙랑군의 위치를 밝히는 중국사서들
● 『한서漢書』「설선 薛宣 열전」“ 사고왈 師古曰(사고가 말하기를) 낙랑속유주樂浪屬幽州(낙랑은 유주에 속해있다)”

 

● 『후한서後漢書』「최인 崔駰 열전」“장잠현 속낙랑군長岑縣 屬樂浪郡(장잠현은 낙랑군에 속해 있는데),기지재요동其地在遼東(그 땅은 요동에 속해있다)”

 

● 『후한서後漢書』「광무제본기 光武帝本紀」 “낙랑군樂浪郡 고조선국야故朝鮮國也(낙랑군은 옛 조선국이다),재요동在遼東(요동에 있다)”

 

● 『사기색은史記索隱』「하본기 夏本紀」“ 낙랑수성현유갈석산 樂浪遂城縣有碣石山(낙랑수성현에는 갈석산이 있으며),장성소기長城所起(만리장성의 기점이다)”

 

● 『진서晉書』「지리지 地理志」‘ 낙랑군조 樂浪郡條’ “수성遂城, 진축장성지소기秦築長城之所起(수성현은 진나라 만리장성이 일어난 곳이다)”

 

● 『명사明史』 「지리지地理志」 영평부조永平府條 “창려昌黎-서북유갈석산西北有碣石山(창려 서북에는 갈석산이 있고), 동남유명해東南有溟

海(동남에는 어두운 바다가 있다)”


점제현 신사비의 재질
신사비 내용이 옳고 그르고를 따지기 이전에 점제현신사비 재질부터 따져 보면 간단하다.

그 비석의 재질은 화강석이다.

 

그런데, 근방에서 구할 수 있는 재질의 화강석이 아니다.

주위 화강석(한반도 북부)은 1억 7백만 년 전에 형성되어 있으나, 점제현비의 화강석은 1억 2천9백만 년 전에 형성된 화강석이다.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화강석의 성분구성 자체가 다르다. - 이덕일,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p48 (근거 논문: 조선고고연구 / 북한)


한사군 문제의 심각성- 중국의 북한 복속
2012년 미 의회조사국에 중국은 중국의 입장을 보내게 되는데 이때 중국의 학자인 지앙(창춘 사범대학 동북아시아 연구소)은 고구려가 중국의 땅이었다는 사실을 개의치 않고 말한다.

그는 “주로 한나라 이주민에 의해 건설된 지방정권이었다.”라고 썼다.

 

왜냐하면 지정학적으로 고구려의 경제와 문화는 그들 내부에 의해서 발전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가 한사군이 한반도 북부에서 420년 동안 지속되었다고 인정할 경우, 중국은 북한 땅이 과거 자신들의 땅이었음을 주장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