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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황태일-태일문화⑤

진실의 역사

[환단고기] 태일太一문화

 

동황태일

동황태일東皇太一은 『초사楚辭』「구가 九歌」<동황태일東皇太一>에 나온다.

굴원屈原의 『초사』「구가」는 본래 신령에게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던 악곡인데, 특히 최고의 주신인‘ 동황태일’을 노래하였다.

 

동황태일이라 이름한 것은, 태일이 동쪽을 관장하는 신이고 그 사당이 동쪽에 있기 때문이다.

 

단군조선 시대 때 전 영토를 삼신의 우주관인 천지인 삼계의‘ 천일天一·지일地一·태일太一’정신에 따라 삼한三韓(진한·번한·마한)으로 나누어 다스렸다.

 

동황태일은 곧 삼한 중에 진한辰韓의 대왕[天王, 대단군]이 되어 천하를 다스리신 단군왕검을 말한다.

 

단재 신채호는“ 『초사楚辭』에 보면 동황태일 곧 단군왕검을 제사하는 풍속이 (중국 양자강 유역인) 호북湖北, 절강浙江 등지에서 많이 유행하였다”라고 하였다.(신채호,『조선상고사』상, 115쪽)

 

동황태일
吉日兮辰良(길일혜진량)
穆將愉兮上皇(목장유혜상황)
撫長劍兮玉珥(무장검혜옥이)
璆鏘鳴兮琳琅(구장명혜림랑)
瑤席兮玉瑱(요석혜옥전)
盍將把兮瓊芳(합장파혜경방)
蕙肴蒸兮蘭藉(혜효증혜란적)
奠桂酒兮椒漿(존계주혜초장)
揚포兮拊鼓(양포혜부고)
疏緩節兮安歌(소완절혜안가)
陳竽瑟兮浩倡(진우슬혜호창)
靈偃蹇兮姣服(영언건혜교복)
芳菲菲兮滿堂(방비비혜만당)
五音紛兮繁會(오음분혜번회)
君欣欣兮樂康(군흔흔혜락강)

 

길한 날 좋은 때에 경건하게
상황을 즐겁게 하리라.
손에는 장검의 옥 손잡이 거머쥐고,
몸에는 달강이며 우는 패옥 소리.
옥자리와 옥압진을 갖추고서,
옥방초를 곁들였네.
혜초로 싼 고기 난초에 받치어,
정결한 계수나무 술과 후초 술을 함께 올리자.
북채를 들고서 북을 치면서
느린 박자로 연주하며 가락 맞추어
생황과 가야금으로 성대히 어울리는도다!
신내린 여인의 화려한 옷이여,
향기가 그윽하여 사당에 가득 차네.
오음이 요란하게 소리가 조화를 이루니
신령께서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는도다.

동북아의 태일신太一神 숭배
동북아에서는 이 태일을 신격화하여 오랜 옛날부터 태일신으로 숭배하여 왔다.

 

한 무제가 태일신에게 제사 지낸 일을 기록한 『사기』「봉선서」에 따르면, 무제는 태일신을 국가적 제천행사의 주신으로 받들어, 수도 장안의 동남방에 태일단을 쌓고 봄가을로 제사를 올렸다.

 

이 제사를 청한 신하 유기謬忌는 ‘천신 중에 가장 존귀한 분은 태일신’이라고 무제에게 고하였다.

이 태일신 제사는 서한西漢 시대를 풍미하였고, 태일신은 중국사에서 지고신至高神으로 추앙되었다.

 

이 땅에서 태일신에게 제사를 드린 것은 고려 시대의 사료에서 비로소 확인된다.

『고려사』의 스물여덟 곳에서 태일의 용례를 찾아볼 수 있는데, 그 중 태일초례를 거행한 기록은 20회에 이른다.

최소한 고려시대까지 태일신 신앙은 국가적 의례로 전승되어 온 것이다.

 

조선 시대에는 궁궐의 소격전과 지방의 태일전太一殿에서 태일신을 모셨다.

 

고려 때는 궁궐 안에 태일전이 따로 있었으나, 조선 태조 때에 이르러 태일전을 파하여 소격전에 합하였다.

지방에는 태일성太一星이 움직이는 방위에 따라 통주(현 강원도 통천), 의성(현 경상북도 의성) 등에 태일전을 지었다.

 

하지만 조선 시대 소격전의 초제醮祭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 말하듯, 태일신에게 예를 바치는 제사라기 보다 계절의 조화를 빌고 왕실의 건강과 치병을 기원하는 예식에 그쳤다.

이마저도 중종 13년(1518)에 조광조의 상소로 소격전이 철폐되어 중지되었다.

 

8년 뒤 중종 21년에 모후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하여 소격전을 다시 설치하였지만 임진왜란 후에 완전히 폐지되면서 이 땅의 태일 신앙은 명맥이 거의 끊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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