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만큼 보인다

미국 현대문학 아버지 마크 트웨인

자기계발-명언

미국 현대문학의 아버지 마크 트웨인

 

프로필
마크 트웨인Mark Twain은 미국 문학의 전통을 창조한 작가이다.

 

『톰 소여의 모험』(1876), 『미시시피 강의 생활』(1883), 『허클베리 핀의 모험』(1884) 등의 청소년 모험담을 써서 심리적, 문화적, 영적 측면에서 미국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작가로 일컬어진다.

 

소위 미시시피 3부작으로 일컬어지며 전 세계에 독자를 만들어낸 이 세 권의 소설은 가장 미국적인 서사시로 불리며 19세기 미국 문학의 장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윌리엄 포크너는 그를 ‘미국 문학의 아버지’로 칭했으며,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미국의 모든 현대문학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시작되었다.”라고 말했다.

 

‘마크 트웨인’이라는 이름은 1863년 2월 3일 버지니아 시에서 우스꽝스러운 여행기를 발표하면서 비로소 탄생하였다.

뱃사람들의 용어로 ‘깊이가 두 길’밖에 안 되어 가까스로 항해할 수 있는 강을 뜻하는 말이었다.

 

마크 트웨인은 어린 시절부터 강을 따라 펼쳐지는 흥미로운 사건들에 매료되었는데, 1847년 11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가족의 생계를 도와 10세 위의 형이 창간한 신문의 식자공이 되었다.

『톰 소여의 모험』은 이때의 기억에서 비롯되었다.

 

한편 1840, 1850년대는 뉴잉글랜드와 남서부에서 지방적 색채를 띤 우수한 유머 작품들이 융성하던 시기였고 이러한 작품들로부터 마크 트웨인의 몇몇 후기작품에서 두드러지는 유머의 기술을 터득하게 되었다.

 

출생 1835년 11월 30일
본명 클레멘스(Samuel Langhorne Clemens)
국적 미국
활동분야 문학
출생지 미국 미주리주
주요저서 『톰소여의 모험The Adventures of Tom Sawyer』(1876)

마크 트웨인의 명언

*사람은 진정한 자신의 진가를 깨닫지 못하면 스스로에게 만족할 수 없다.

*우리들의 죽음 앞에서는 장의사마저도 슬퍼해 줄만큼 훌륭한 삶이 되도록 힘써야 한다.

*인생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딱 두 가지다.
무시할 수 있는 능력과 자신감, 그러면 성공은 보장된다.

*너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친절은 장님과 귀머거리도 보고 들을 수 있는 언어이다.

*사랑을 낚고 싶을 때는 머리를 걸지 말고 목숨을 걸어라.

*앞서는 비밀은 간단하다. 먼저 시작하는 것이다.

*슬픔은 혼자서 간직할 수 있다. 그러나 기쁨이 충분히 가치를 얻으려면 기쁨을 누군가와 나누어 가져야 한다.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어떤 물건을 몹시 탐내도록 만들려면, 그것을 손에 넣기 어려운 것으로 만들면 된다.

*인간은 얼굴을 붉히기도 하며, 혹은 붉힐 필요가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

*진실만 말하고 다닌다면 무엇을 말했는지 기억할 필요가 없다.

*죽음의 두려움은 인생의 두려움 때문에 생긴다. 하루하루를 제대로 산다면 언제나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

*주변에서 당신이 얼마나 어려 보이는지 아부하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늙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다.

*모든 위대한 발명의 이름은 바로 사고다!

*곤경에 빠지는 것은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다.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

페이스북 마크 저커버그

자기계발-명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

 

프로필
가입자 수로 따지면 중국(13억 4,300만 명), 인도(12억 500만 명)에 이어 지구상 3번째로 큰 국가랑 다름없고, 매일 전 세계 5억 명의 사람들이 접속해 약 10억 개의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곳.

국적, 인종, 성별, 나이를 불문하고 전 세계 9억 명이 가입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의 얘기다.

 

2004년 친구들과 함께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저커버그Mark Elliot Zuckerberg는 6년 만인 2010년 《타임》의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었다.

역대 두 번째 최연소 선정자였다.

첫 번째 인물은 1927년 대서양을 횡단한 찰스 린드버그.

 

《타임》은 그를 선정한 이유로 “페이스북이 인간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이라면 세계 누구와도 ‘친구’로 이어져 생각과 일상을 공유하는 페이스북은 실제로 많은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삶의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저커버그는 억만장자가 되었다.

《포브스》 집계에 따르면 2012년 그의 재산은 175억 달러(약 20조 원)로 세계 35번째 갑부다.

당연히 세계 100대 억만장자 중 최연소다.

하지만 이 드라마틱한 성공을 둘러싼 의혹과 페이스북 거부 움직임도 적지 않다.

출생 1984년 5월 14일 (만 32세), 미국
소속 페이스북 최고경영자
가족 배우자 프리실라 챈, 누나 랜디 주커버그,
동생 아리엘 주커버그

학력 하버드 대학교

수상 2010 미국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

경력 2004 페이스북 최고경영자
페이스북 공동창립자

 

마크 저커버그의 명언 모음

“빠르게 움직이고 주변의 틀을 깨부숴라.
주변의 틀을 부셔버리지 않는다면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아침마다 어떤 옷을 입을지, 뭘 먹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아깝다.
사소한 것들에 내 에너지를 소비하면 내가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구축하고, 지역사회에 봉사하기 위한 최고의 방법을 찾기 위해 내 모든 에너지를 바치고 싶다.”

“비즈니스의 기본 원칙은 쉬운 것부터 먼저 시작하면 큰 성과를 이룰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무엇인가에 열정을 가진 사람을 찾는다.
어떤 것에 열정을 가졌는지는 상관이 없다.”

“사람들은 매우 똑똑하거나 실무에 적용할 수 있는 응용력이 있을 수 있지만, 그들 스스로가 이를 믿지 않으면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큰 조직을 이끌 수 있는 능력 있는 관리자 같은 사람들이 있는 반면, 아주 분석적이고 전략에 집중하는 사람이 있다.

이 두 가지 특징은 보통 한 사람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다. 나는 나 자신을 후자에 가깝다고 말하고 싶다.”

 

“‘나의 목표는 절대 회사를 설립하는 것이 아니었다.’고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내가 돈벌이에 관심이 없다고 잘못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단순히 회사를 설립하는 것이 목표가 아닌 세상에 아주 큰 변화를 가져올 다른 무언가를 만들겠다는 의미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돈을 번다.”

“사람들은 ‘혁신’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갖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혁신은 빨리 움직이고, 많은 것을 시도해보는 것이다.”

“시도해보고 실패를 통해서 학습하는 것이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


마크 저커버그의 명언 8가지

1. 작은 일을 시작해야 위대한 일도 생긴다.
2. 모두가 원하지만 아무도 하지 않는 일에 도전하라.
3. 수십 번 넘어져도 젊음을 무기삼아 도전하라.
4. 뜨거운 열정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적인 열정이다.
5.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면 비즈니스로 이어진다.
6. 주위의 비난에 흔들리지 말고 묵묵히 나아가라.
7. 옳다고 믿으면 끝까지 밀고 나가라.
8. 결국에는 신념을 가진 자가 승리한다.

아마존닷컴 CEO 제프 베조스

자기계발-명언

아마존닷컴의 CEO 제프 베조스

 

프로필
제프리 프레스턴 베조스Jeffrey Preston Bezos는 미국의 기업가이자 투자자이며, 아마존닷컴을 설립한 CEO(Chief executive officer, 최고경영자)이다.

 

프린스턴 대학교를 졸업하고 1994년에 아마존닷컴을 설립하였다.

처음에는 인터넷 상거래를 통해 책을 판매하였지만, 이후에 넓고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프린스턴 대학교를 졸업하고 1994년에 아마존닷컴을 설립하였다.

 

1999년 《타임》지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었다.

2000년 블루 오리진Blue Origin이라는 민간 로켓 회사를 설립하고 우주여행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2013년에는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해 전 세계 언론사를 깜짝 놀라게 했다.

 

출생 1964년 1월 12일(만 53세), 미국
소속 아마존


학력 프린스턴 대학교


수상 1999 타임지 올해의 인물


경력 現 아마존 CEO 
1994 아마존 설립, 회장
1994 디이쇼DE Shaw(데이비드 E 쇼 컴패니) 수석 부사장
1990 뱅커스트러스트 부사장

통찰력 넘치는 명언

만족 회사는 화려하게 보이는 데 연연해서는 안 된다. 빛나는 것은 지속되지 않는다.

 

혁신 다른 통제 요소와 마찬가지로 절약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혁신을 채찍질한다.

비좁은 박스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빠져나가는 특별한 방법을 고안해 내야 한다.

 

발전 경쟁자만 바라본다면, 경쟁자가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고객에 집중하면 보다 선구자가 될 것이다.

 

새로운 아이디어 발명을 하다 보면, 늘 예기치 않은 행운이 따르기 마련이다.

 

동기 나는 선구자가 더 좋은 제품을 만든다고 확신한다. 그들은 더 많이 고민한다.

선구자에게는 어떤 일이 단순한 사업이 아니다. 돈이 돼야 하고, 말이 돼야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선

구자는 자신을 설레게 만드는, 가치 넘치는 일을 한다.

 

전략 아마존은 18년 동안 3가지 생각으로 성공을 이룩했다.

고객을 우선 생각하라, 개발하라, 그리고 인내하며 기다려라.

 

성장 모든 사업은 계속해서 젊어져야 한다.

고객이 당신과 함께 늙어 간다면 당신은 지루하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방향 선회 당신이 고집스럽지 않다면 실험을 너무 빨리 포기할 것이다.

당신이 유연하지 않다면 벽에 머리를 박기만 할 뿐, 문제를 풀 다른 해결책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마케팅 과거에는 멋진 서비스를 만드는 데 30%, 이를 알리는 데 70% 시간을 썼다. 새 시대에는 반대다.

 

가격 세상에는 두 종류의 회사가 있다. 고

객에게서 돈을 더 받기 위해서 일하는 회사와 덜 받기 위해서 일하는 회사. 아마존은 후자다.


기타 명언 모음

*아마존이 혁신하는 방법은 소비자 중심으로 생각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이게 아마존이 혁신하는 방법의 기준이다.

 

*보통 회사들은 매일 어떻게 경쟁 회사보다 앞지를 수 있을까 고민하지만, 우리 회사는 어떻게 소비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혁신을 만드는가를 고민한다.

 

*부재가 혁신을 부른다.

무엇인가(인력, 시간, 자금 등이) 부재한 어려운 상황은 결국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일 년에 하는 실험 횟수를 2배로 늘리면 창의력이 2배가 된다.

 

*창조란 오랫동안 오해를 받을 의지가 있어야 한다.

진심으로 믿는 일을 해도 도와주려는 사람들조차 때로는 비판을 할 것이다.

이때 사람들의 비판이 맞는다면 그들의 말을 수용해야 되고, 반대로 그들이 맞지 않는다고 믿는다면 오랜 시간 동안 오해를 받을 의지가 있어야 한다. 이게 창조의 핵심이다.

 

*다른 회사들이 무엇을 하는지 시장 조사를 해야 한다. 세상과 동떨어져 있으면 안 된다.

“저거 베껴야 되겠다” 하지 말고, “저거 괜찮은데? 저거를 보고 영감을 받아서 무엇을 만들어 볼까?”라고 생각해서 당신만의 유일한 색깔을 만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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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신 이나모리 가즈오

자기계발-명언

경영의 신 이나모리 가즈오稲盛和夫

 

프로필
이나모리 가즈오(いなもり かずお, Inamori Kazuo)는 일본의 기업인이다.

마쓰시타 고노스케, 혼다 쇼이치로와 더불어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3대 기업가’로 꼽힌다.

교세라, 다이니덴덴(현 KDDI)의 창업주이며, 일본 대표 항공사인 일본항공JAL의 회장을 역임했다.

 

가고시마 대학 공학부를 졸업하고, 쇼후 공업에 입사한 후, 1959년 교세라를 설립했다.

10년 뒤에 주식 상장을 했으며, 파인 세라믹 기술로 성장했다.

1984년 다이니덴덴을 설립했다.

같은 해 재단법인 이나모리 재단을 설립했으며, 교토 상을 제정했다.

 

2010년 일본항공이 파산하자 단 세 명의 측근만 데리고 투입되어 13개월 만에 흑자로 전환시켰으며, 2012년 3월에는 역대 최고액을 경신했다.

2013년 3월에 일본항공의 회장에서 물러나 교세라에 복귀했다.

 

주요 저서로는 『아메바 경영』, 『카르마 경영』, 『소호카의 꿈』, 『성공을 향한 정열』, 『이나모리 가즈오의 철학』 등이 있다.

출생 1932년 1월 21일(만 85세), 일본
소속사 교세라

학력 가고시마 대학교

경력 1997 교세라 명예회장
1984 다이니덴덴 설립
1984 이나모리 재단 설립
1959 교토세라믹 설립
(1982년 교세라로 변경)


명언 모음

성공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종이 한 장이다.

성공하지 않은 사람에게 열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차이는 끈끈함과 인내심이다.

실패하는 사람은 벽에 부딪혔을 때 형편 좋은 핑계를 찾아서 노력하는 것을 그만둬 버린다.

 

자신의 운명은 자신이 관리하라.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가 당신의 운명을 정해 버린다.

 

신이 손을 뻗어 도와주고 싶을 정도로 일에 전념하라.

 

마음의 등불이나 나침반이 되는 것은 바로 강렬한 의지이다.

 

사람은 영감을 밖에서 추구한다. 하지만 나는 안에서 추구한다.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의 가능성을 맘껏 추구하고 개량을 더해 가면 상상도 안됐던 큰 혁신을 도모할 수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천직이라는 마음으로 즐겁게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어진 일이라서 어쩔 수 없이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절대로 일하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생을 보다 잘 살고자 한다면 평소보다 더 잘 살려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생각해야 한다.

 

낙관적으로 구상하고 비관적으로 계획하며 낙관적으로 실행하는 것이, 사물을 성취시키고 바람을 현실로 바꿔 내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것은 지금의 자신이 못하는 것이고, 장래의 자신이라면 가능하다고 미래진행형으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짧은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것은 자신의 마음과 맞는 사람과의 만남이다.

 

인생이란 자기 자신이 각본을 쓰고 주역을 맡은 드라마다.

어떠한 드라마를 그릴지는 본인이 하기 나름이며, 마음이나 사고방식의 수준을 높임으로써 운명을 바꿀 수 있다.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한 깨끗한 마음을 바탕으로 한 신념, 소원은 꼭 성취된다.

반대로 사리사욕을 바탕으로 한 ‘흐려진 원망’은 한 번은 실현되더라도 일시적인 효력으로 끝나고 만다.

 

리더는 항상 겸손해야 한다.

겸손한 리더만이 협조성 있는 집단을 구축해 그 집단을 조화롭고 영속적인 성공으로 유도할 수 있다. .


1,155일간의 투쟁 명언들

(일본항공JAL의 회생 과정 1,155일 동안의 명언)

 

*나는 매일 ‘나의 동기는 선한가? 사심은 없는가?’라는 질문을 나에게 던집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지금의 세 배로 일해야 합니다.

임원은 열 배로 일하고, 저는 그 이상으로 일하겠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마라. 정직하라. 욕심부리지 마라.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마라. 남에게 친절히 대해라.”

어릴 적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배운, 인간으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규칙들, 그런 것을 규범 삼아 경영을 하면 됩니다.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했습니다.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한 번이라도 품게 되면 정말로 실패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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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경영인 잭 웰치

자기계발-명언

세기의 기업 경영인 잭 웰치Jack Welch

 

프로필
‘경영의 달인’, ‘경영의 귀재’, ‘세기의 경영인’ 등으로 불리는 미국의 기업인.

매사추세츠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일리노이 대학에서 화학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 Company, GE)에 입사하였다.

 

33세에 GE 역사상 가장 젊은 사업담당 총괄관리자가 되었으며 부회장을 거쳐 1981년 45세의 나이로 GE의 8대 회장이 되었다.

2001년 퇴임할 때까지 1,700여 건에 달하는 기업의 인수합병을 추진하였으며 회사의 가치는 부임 당시 120억 달러에서 4500억 달러로 40배 성장하였다.

 

세계 최정상만을 고집해 온 잭 웰치의 독특하면서도 탁월한 경영철학과 지속적인 경영혁신운동으로 세계 초일류 기업의 모범을 보인 GE는 현재까지도 세계적인 기업으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2001년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가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경영인’으로 선정하였으며, GE 역시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선정되었다.

출생 1935년 11월 19일, 미국
직업 전직 기업인


학력 ~1960 일리노이 대학교 화공학 박사
~1957 매사추세츠 대학교 앰허스트 캠퍼스


경력 1985 NBC 방송국 인수
1981~2001 GE 회장, 최고경영자
1960 제너럴일렉트릭GE 플라스틱비즈니스담당 총책임자


조직경영 명언

-자발적으로 변화하려는 노력은 그것이 비록 잠시 동안 회사의 상당 부분을 총체적인 혼란 속에 몰아넣는 것을 뜻할지라도 강력한 것이다.

-변화의 힘을 활용하라.

변화를 적으로 인식하는 지도자는 조직에서 실패하게 될 것이다.


-학습하는 지도자가 되라.

끊임없이 학습하고 올바른 의사결정을 위해 노력하라.

실패를 통한 학습은 성공의 환희보다 훨씬 중요하다.


-배우고 익혀서 그것을 신속하게 실행에 옮기는 조직의 능력이야말로 궁극적인 경쟁의 이점이다.

-‘S’비법을 통해 생산성을 촉진해야 한다.

빠른 결정, 단순화된 조직 구조, 그리고 자신감이 그 비법이다. (Speed, Simplicity, and Self-Confidence.)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자원을 분배하라. 그리고 간섭하지 마라.


-비전을 제시하라. 그 다음 구성원들이 조직의 비전을 자기 스스로 실천하도록 하라.


-사람에게 투자하라.

가장 소중한 것은 당신과 일하는 사람이며, 그들의 능력을 개발하면서 함께 일해 나갈 수 있는 자질이다.


-기업이 잘 될 때 개혁을 하는 것이 지혜이다.

사실 꿈꾸던 것 이상의 결과를 가져올 경우 조직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어야 한다.


-너무 사소해서 땀 흘릴 만한 가치가 없는 일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실현되길 바라기엔 너무 큰 꿈이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기억하라! 열정은 천재의 재능보다 낫다. 열정은 당신의 최고의 경쟁력이다.


-우리가 어떤 분야에서 1등이나 2등이 될 수 없다면 그 사업은 포기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 세계 최고를 하고 있거나, 세계 최고를 할 가능성이 있는 아이템을 빼고는 모두 버려라.


잭 웰치의 인사 정책

1. 어떤 분야에서 뛰어난 인재인지 파악한다. 인재와 직무의 조화에 포커스를 맞춘다.
2. 여러 후보 중에 선택함으로써 인사 정책에 소모되는 시간을 줄인다.
3. 인사 결정에 충분한 시간을 가진다.
4. 자신보다 나은 사람들과의 교류를 살펴본다.
5. 개인의 특징을 관찰한다.
6.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지 파악한다.


잭웰치의 4E 리더십

Energy(에너지) Energize(동기부여) Edge(결단) Execute(실행)

자신의 팀과 구성원에게 에너지를 불어넣을 수 있어야 하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휘둘리지 말고 소신껏 결단할 수 있어야 하고, 무엇이든 실행으로 옮길 줄 알아야 한다.

4E는 하나인 ‘P’에 묶여 있다. 그것은 바로 ‘Passion(열정)’이다.

열정이 있어야 그 위에 4E가 존재하고 성립할 수 있다.


잭웰치의 2:7:1 시스템

전 조직원을 능력과 실적에 따라 상위 20%, 중간 70% ,하위 10%로 나눠 관리하는 인력관리 시스템이다.

여기서 20%의 조직원은 많은 혜택이 주어지는 반면 하위 10%의 조직원은 조직에서 탈락될 위험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10% 조직원이 자신의 수준을 정확히 파악하고 부족한 점을 개선할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이지 솎아 내는 제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잭 웰치가 중요하게 생각한 그룹은 바로 70%의 중간 그룹이다.

이들이 바로 조직의 심장, 핵심이라는 것이다.

 

20%의 상위 그룹처럼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지만 묵묵히 직무를 수행한다.

훌륭한 수장이라면 이 중간 그룹을 20%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할 것이다.

주식투자가 워렌 버핏

자기계발-명언

20세기의 전설적인 주식투자가 워렌 버핏Warren Buffett

 

프로필
20세기의 대표적인 미국 기업인이자 전설적인 주식투자가.

26세 이후 고향 오마하를 벗어나지 않고 활동하며 주식시장의 흐름을 정확히 꿰뚫는 눈을 가졌다 하여 ‘오마하의 현인’(Oracle of Omaha)이라고 불린다.

사업가이자 투자가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돈을 벌고 모으는 데 관심이 많았다.

 

11살 때 100달러의 자금으로 주식투자를 시작했으며, 17살부터 21살 때까지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 비즈니스 스쿨, 네브래스카-링컨대학, 컬럼비아대학 경영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스승 벤저민 그레이엄(Benjamin Graham, 1894~1976)의 가치투자(단기적 시세차익이 아닌, 기업의 내재가치와 성장률에 근거한 주식투자) 방식에 영향을 받았다.

 

1965년 인수한 방직회사 버크셔 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의 최고경영자로 활동하고 있다.

재산의 85%를 사회에 환원하기로 약정하는 등 적극적인 기부활동으로도 유명하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지가 2006년 세계재력가 1위(재산 58조 8천억 원)로 선정했다.

출생 1930년 08월 30일, 미국 오마하
소속 버크셔 헤더웨이 (회장)


학력 1951 컬럼비아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제학 석사
1950 네브래스카 대학교 경제학과
1947~1949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졸업


경력 1996~2011 워싱턴 포스트 이사
1987 코카콜라 이사
1965 버크셔 헤더웨이 회장
1956 버핏 투자회사 설립


수상 2012 미국 타임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2011 미국 대통령 자유메달 시상식 자유훈장
2010 미국 대통령 자유메달


명언

-아기들이 배고프면 손가락을 빨며 ‘밥 달라’는 표현을 한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그런 나이가 지났다.

기회와 성공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지 말라.

그 기회와 성공을 찾고 직접 만들어야 한다.


-습관의 고리는 도저히 깰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지기 전까지 너무 가벼워서 느끼지 못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성공과 행복이 무엇인지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보라.

어떤 성공은 그 사람에게 성공이었을지 모르나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에게는 불행으로 보이기도 한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투자에 있어서 본인의 능력을 정확하게 인지하는 것은 성공을 위한 발판이 된다.


-평소에 큰돈이 나가는 것은 신경 쓰면서 사소하게 작은 돈이 나가는 것들은 신경을 덜 쓴다.

하지만 이게 반복되면 크나큰 지출로 이어진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같은 물건을 똑같이 만들어 낸다면, 남들과 똑같은 서비스를 한다면 현재로서는 통할지 모르나 결국에는 밀려나게 된다.


-위험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데서 온다.


-다른 사람을 먼저 사랑하고 그 사랑하는 사람이 다시 나를 사랑하면 성공한 삶이 될 것이다.


-남을 움직이게 하려면 나부터 움직여라.


-정직은 아주 비싼 선물이다.

싸구려 같은 사람한테서 받을 수 있다는 기대를 버려라.


-스스로 기회를 찾아서 쟁취해야 한다.

만약 결정하였다면 우유부단하게 있지 말고 신속히 결단해야 한다.


-성공한 사람은 모두 끈기가 있다.

한 가지 일을 할 때, 해야 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끝까지 밀어붙여라.

끈기 없이 쉽게 포기하는 사람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

끊임없는 노력과 포기하지 않는 의지만 있다면 어떤 상황도 이겨 낼 수 있다.


-할 만한 가치가 없는 일은 잘 할 필요가 없다.


-잠자는 시간에도 돈이 들어오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면 당신은 죽기 전까지 일을 해야만 할 것이다.


워렌 버핏과의 점심 식사

투자의 황제,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세계적인 투자자 워렌 버핏과의 점심 식사는 매년 경매에 붙여 어려운 이웃을 위해 전액 기부된다.

1999년부터 웨렌 버핏이 스스로 시작한 이 행사는 올해에는 30억 원에 낙찰되었다.

경매 시작 2분 만에 11억 원을 써낸 입찰자가 나왔다고 하는데, 낙찰가는 최종 267만 9001달러(원화 30억 원)를 써낸 사람에게 돌아갔다.

세계의 부호들은 그와의 대화만으로 수업이 된다고 느끼고 그 가치를 매겨 경매에 참석하는데, 경매 사상 최고가는 345만 달러로 원화로 환산하면 40억 원에 육박한다고 한다.

한눈에 보는 고려 역사

진실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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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건적 침입 막아낸 충장 정세운

진실의 역사

홍건적의 침입을 막아낸 국난의 해결사, 충장 정세운鄭世雲 (1361년)

고려는 연이은 전쟁과 내란에도 불구하고 500년의 역사를 지속한 나라이다.

고려의 대외관계를 보면 11세기에는 거란과, 12세기에는 여진과, 13세기에는 몽골과 전쟁을 벌였고 14세기에는 홍건적의 침략을 물리쳤다.

 

홍건적은 원나라 말기 하북성 일대에서 일어난 농민반란군으로 머리에 붉은 수건을 둘러서 홍두적紅頭賊, 홍건적紅巾賊이라 불렸다.

홍건적은 원의 반격에 쫓겨 1359년 12월 고려를 침범하여 압록강 연안의 백성들을 짓밟았다.

이듬해 초가 되서야 최영崔瑩 장군의 큰 힘으로 고려는 그들을 압록강 이북으로 몰아낼 수 있었다.

1361년 10월에는 홍건적이 20만의 대군을 거느리고 2차 침략을 감행했다.

개경이 함락되고 공민왕은 안동으로 피난을 떠났다.

 

이런 국난의 상황에서 해결사로 등장한 이가 정세운 장군이다.

원래 정세운은 공민왕이 원나라에 있을 때부터 수행원으로 있 었고 공민왕이 귀국한 뒤에는 왕궁 수비를 담당하고 있었다.

 

또한 공민왕이 개혁정치를 시작할 때 걸림돌이 된 친원파의 핵심인물 기철을 죽인 인물이다.

고려국본기에는 정세운의 성품을‘ 충성스럽고 청백하다[忠淸]’고 말하고 있다.

 

그는 임금이 파천播遷한 이후 밤낮으로 근심하고 분하게 여겼다.

홍두적을 소탕하고 경성을 수복하는 것을 자신의 소임으로 여겼고 임금 또한 그를 믿고 총병관으로 임명했다.

 

그는 “빨리 애통교서哀痛敎書를 내리시어 백성의 마음을 위로하고, 사자使者를 보내 여러 도의 군사를 독려하여 적을 토벌하게 하소서”라고 임금에게 여러 번 청원했고 마침내 20만명의 군사를 모았다.

 

반격준비를 마치고 전선으로 출발하려 할 때 수문하시중이었던 이암이 격려의 말을 전했다.

“강력한 외적이 갑자기 쳐들어와 황성을 지키지 못하고 임금의 수레가 파천하여 천하의 웃음거리가 된 것은 삼한三韓의 치욕이로다. 공이 앞장서서 대의를 부르짖어 무기를 들고 군사를 거느리니, 사직이 다시 편안해지고 왕업이 중흥함이 이번 한판 싸움에 달려 있도다. 우리 임금과 신하는 밤낮으로 공이 이기고 돌아오기를 바랄 뿐이로다.”

 

정세운이 지휘하는 고려군은 개경을 완전 포위하여 총공격을 퍼부었고 홍건적 20만명 중에 10만명이 죽고 남은 무리는 패주함으로서 전쟁은 끝이 났다.

 

정세운이 아니었다면 몽골의 피해를 당한 고려의 백성들은 다시 한번 약탈과 살육을 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세운은 승전 후에 김용金鏞의 시기심으로 인해, 김용의 사주를 받은 안우安祐에 의해 죽게 된다.

 

김용은 다시 공민왕을 죽이려고 했으나 최영 장군에 의해 반란이 진압되 고 결국 처형되었다.

나라를 구하자마자 시기질투로 죽음을 맞이한 비운의 장군.

그나마 환단고기에 그의 역사가 기록되어 그의 한을 달래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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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이씨의 맥

진실의 역사

한민족의 역사를 전수해준 고성 이李씨의 맥

고려국본기에는 고성 이씨의 중시조라 할 수 있는 이존비 선생으로부터 아들인 이우李瑀, 손자인 이암李?, 증손자인 이강李岡, 현손자인 이원李原의 맥과 연관된 부분이 있다.

 

이존비李尊庇(1233~1287)는 고려 25세 충렬왕 때의 문관이다.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고 왕세자가 글을 배우던 곳인 서연에서 우리나라의 자주와 부강의 정책을 논하였다.

 

그는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환단桓檀·조선·북부여·고구려 이래로 모두 부강하였고 자주自主를 유지하였습니다.

또 연호를 정하고 황제라 칭한 일은 우리 태조 때에 이르러서도 실행하였습니다”라고 명시하고 충렬왕 당시의 사대적 사고가 후세의 비웃음을 받을 것이니 자강을 꾀해야 한다고 거듭 아뢰었다.

그의 주장은 비록 당시에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옳다고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충렬왕이 연경(지금의 북경)에서 돌아오는 도중에 사랑하는 연녀 생각에 다시 연경으로 돌아가려 하자 이존비가 거짓으로 시를 지어 충렬왕이 연녀를 포기하고 고려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이존비는 나중에 그 일로 인해 귀양가게 되었고 태자(충선왕)와 조정 대신들의 간청으로 다시 복직되었으나 사자가 이르기 전에 숨을 거두고 만다. 충렬왕은 몹시 슬퍼하며 왕례로 장사지내도록 했다.

 

그는 3남 4녀를 두었는데 고려국본기에 실린 칠언율시는 이존비가 둘째아들의 스승인 원오국사에게 보낸 시이다.

이 시는 첫째 아들 이우李瑀가 원나라 조정에 숙위宿衛로 들어가 일하고, 둘째 아들 이복구李復丘는 회당 상인에게 출가한 사실을 포함하고 있다.

복구는 원오국사 양천영에게 출가하여 뒤에 각진국사가 되었다.

이우의 아들이 바로 환단고기의 세 번째 책인 『단군세기』의 저자 행촌 이암(1297~1364) 선생이다.

행촌 선생이 일찍이 천보산天寶山에서 유람을 하다가 밤에 태소암太素庵에서 묵게 되었다.

그곳에 소전素佺이라 하는 한 거사가 기이한 옛 서적[奇古之書]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이에 이명李茗, 범장范樟과 함께 신서神書를 얻었는데, 모두 환단桓檀시절부터 전해 내려온 역사의 진결[桓檀傳授之眞訣]이었다.

이 책을 바탕으로 행촌 시중侍中이 지은 저서가 3종이 있다.

『단군세기』를 지어 시원국가의 체통을 밝혔고, 『태백진훈』을 지어 환단시대부터 전수되어 온 도학道學과 심법心法을 이어받아 밝혔다.

『농상집요』는 세상을 다스리는 실무實務관련 학문을 담은 것이다.

 

고려국본기에는 이암의 정신을 알 수 있는 글이 여러 군데에 있다.

고려 조정에서 국호를 폐하고 고려 내정간섭을 위해 행성을 세우고자 의논할 때, 이암이 이를 저지하기 위해 올린 상소문에서는 “조국과 민속의 존재 당위성을 강조하며 태조왕건의 건국 정신을 일깨워주고 지금이라도 자주부강의 계책을 꾀하고 간신배의 죄를 엄히 다스리자”고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또한 신교에 대해 언급한 부분에서는 “환웅천황의 신시개천의 의미를 강조하고 아직도 우리는 신교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구도자로서의 느낌을 말하고 있고, 어명을 받아 참성단에서 천제를 올릴 때 백문보에게 말한 내용을 보면 국가발전 차원에서 신교신앙을 강조하며 천제의 근본정신이 보은임을 말하고 있다.

 

혼란한 시기에 정치가로서 그리고 대학자로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고뇌하며 대책을 갈구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고려가 원나라의 침략과 통치를 받으면서도 끝내 문닫지 않고 다시 일어선 정신적 힘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암의 막내아들 이강李岡(1333∼1368)은 밀직사로서, 어명을 받들고 참성단에서 천제를 올리고 나서 시를 지었다.

복잡한 세상을 떠나 고요하고 한가로운 풍경 속에서 잠시 여유를 느끼며 그는 홍건적을 물리치고 개경을 수복한 해(1362년)를 특별히 기억하자고 말하고 있다.

 

이강의 친구 중에 고려국본기에는 이색이 나온다.

이색은 이암을 아버지처럼 섬겼는데 이암이 이색에게 선가적 기풍을 전해주었다고 한다.

이색은 이암의 농상집요 서문에 글을 실었다.

 

이강의 사위는 권근으로 고려국본기에는 권근이 참성단에서 천제드릴 때의 서고문이 있다.

서고문에는 마리산은 단군왕검께서 천제를 지내시던 곳이라고 하고 사직이 반석 위에 올라설 수 있도록 삼신께 고하고 있다.

촌이암 선생과 일십당 이맥 선생, 해학 이기 선생과 한암당 이유립 선생이 모두 고성 이씨로서 이존비 선생의 후손이니 지금 우리에게 환단고기가 전해지는 것은 고성이씨 가문의 노력과 공헌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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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청의 난

진실의 역사

고려 왕조를 뒤흔든 묘청의 난(17세 인종, 1135년)

고려국본기를 반복해서 읽다보면 김부식의 모함에 대해 윤언이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자해표自解表에서 한번쯤 멈추고 갖가지 생각에 잠기게 된다.

 

묘청이 이끄는 서경파와 김부식이 중심이 된 개경파 사이에 얽힌 복잡한 갈등관계를,

그것도 천년 전 격동의 시기에 일어났던 복잡한 사건을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기록에 의존해서 큰 맥락을 파악할 수는 있다.

 

윤언이尹彦頤(1090~1149)는 윤관의 넷째 아들로서 인종 때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당시 김부식金富軾(1075~1151)과 쌍벽을 이루었던 인물이다.

사실 윤언이와 김부식의 관계는 상당히 오래 전부터 뒤틀린 관계였다.

 

윤언이는 아버지 윤관이 지은 대각국사 의천義天의 비문을 예종이 김부식金富軾에게 고치게 하자, 김부식이 사양하지 않고 함부로 고친 것에 대해 섭섭함을 갖고 있었다.

1133년 인종의 명을 받아 김부식이 주역 강의를 했는데 이때 윤언이는 김부식이 대답하지 못할 정도로 반론을 제기하여 이번에는 김부식이 원한을 품게 되었다.

1135년 서경에서 ‘묘청의 난’이 일어났다.

서경파를 중심으로 하는 서경 천도운동이 결국 개경파의 격렬한 반대로 실패로 돌아가자 서경파 중에서도 강경파였던 묘청이 조광, 유참 등과 함께 서경을 기반으로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이때 인조로부터 묘청 토벌을 명받은 김부식은 먼저 개경에 머물고 있던 서경파 인물들인 정지상鄭知常, 백수한白壽翰, 김안金安 등의 목부터 베었다.

이것은 개경파가 서경파를 제거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다분했다고 한다.

 

윤언이는 김부식의 부하가 되어 난을 진압하는데 큰 공을 세웠지만 이 과정에서 김부식은 윤언이가 공을 세우지 못하게 하려고 그의 부대를 작전 방향과 전혀 상관없는 곳으로 보내버리기도 했다.

 

이후 김부식은 묘청의 난을 함께 진압했던 윤언이에 대해‘ 정지상 등과 결탁하여 칭제건원을 언급하고 붕당을 조성하여 반역을 꾀했다’는 상소를 인종에게 올려서, 윤언이마저 좌천시켜 버렸다.

이로써 김부식은 고려의 정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광주목사로 좌천된 윤언이가 억울함을 호소하자 인종은 김부식의 상소문을 윤언이에게 보내 주었고, 이 상소문을 읽어 본 윤언이는 비로소 자신의 억울함을 표하는 상소를 올리는데, 이것이 바로 윤언이의 자해표이다.

 

이후 윤언이에게 사면령이 내려져서 중앙 정계로 복귀하게 되면서 김부식은 수차례 은퇴를 청원한다.

이렇게 은퇴할 때가 된 김부식이 인종의 명을 받고 만든 것이 『삼국사기』이다.

 

사실 윤언이는 묘청, 정지상 등이 서경 천도설을 주장하였을 때 서경 천도론에 동의하였으나, 묘청 등이 정변을 기도하자 이를 반대하였다.

그런데 김부식은 윤언이를 정지상과 내통했다고 모함한 것이다.

 

또한 김부식은 정지상과도 악연을 맺었다.

정지상은 서경파였기 때문에 묘청과 연결고리는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묘청이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킬 때 태평스럽게 개경에 남아있었다는 것만 봐도 반란과는 연관이 적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김부식은 묘청의 난을 진압하기 전에 먼저 정지상을 죽여버렸다.

 

약 백년 뒤에 무신집권기의 대표적인 문인인 이규보李奎報(1168∼1241)가 지은 『백운소설白雲小說』에 의하면 김부식이 정지상을 죽이고 난 뒤 어느 날 헛간에서 쭈그리고 앉아 큰일을 보고 있었는데, 원한을 품은 정지상이 귀신이 되어 나타나 김부식의 불알을 잡아당겨 죽였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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