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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건적 침입 막아낸 충장 정세운

진실의 역사

홍건적의 침입을 막아낸 국난의 해결사, 충장 정세운鄭世雲 (1361년)

고려는 연이은 전쟁과 내란에도 불구하고 500년의 역사를 지속한 나라이다.

고려의 대외관계를 보면 11세기에는 거란과, 12세기에는 여진과, 13세기에는 몽골과 전쟁을 벌였고 14세기에는 홍건적의 침략을 물리쳤다.

 

홍건적은 원나라 말기 하북성 일대에서 일어난 농민반란군으로 머리에 붉은 수건을 둘러서 홍두적紅頭賊, 홍건적紅巾賊이라 불렸다.

홍건적은 원의 반격에 쫓겨 1359년 12월 고려를 침범하여 압록강 연안의 백성들을 짓밟았다.

이듬해 초가 되서야 최영崔瑩 장군의 큰 힘으로 고려는 그들을 압록강 이북으로 몰아낼 수 있었다.

1361년 10월에는 홍건적이 20만의 대군을 거느리고 2차 침략을 감행했다.

개경이 함락되고 공민왕은 안동으로 피난을 떠났다.

 

이런 국난의 상황에서 해결사로 등장한 이가 정세운 장군이다.

원래 정세운은 공민왕이 원나라에 있을 때부터 수행원으로 있 었고 공민왕이 귀국한 뒤에는 왕궁 수비를 담당하고 있었다.

 

또한 공민왕이 개혁정치를 시작할 때 걸림돌이 된 친원파의 핵심인물 기철을 죽인 인물이다.

고려국본기에는 정세운의 성품을‘ 충성스럽고 청백하다[忠淸]’고 말하고 있다.

 

그는 임금이 파천播遷한 이후 밤낮으로 근심하고 분하게 여겼다.

홍두적을 소탕하고 경성을 수복하는 것을 자신의 소임으로 여겼고 임금 또한 그를 믿고 총병관으로 임명했다.

 

그는 “빨리 애통교서哀痛敎書를 내리시어 백성의 마음을 위로하고, 사자使者를 보내 여러 도의 군사를 독려하여 적을 토벌하게 하소서”라고 임금에게 여러 번 청원했고 마침내 20만명의 군사를 모았다.

 

반격준비를 마치고 전선으로 출발하려 할 때 수문하시중이었던 이암이 격려의 말을 전했다.

“강력한 외적이 갑자기 쳐들어와 황성을 지키지 못하고 임금의 수레가 파천하여 천하의 웃음거리가 된 것은 삼한三韓의 치욕이로다. 공이 앞장서서 대의를 부르짖어 무기를 들고 군사를 거느리니, 사직이 다시 편안해지고 왕업이 중흥함이 이번 한판 싸움에 달려 있도다. 우리 임금과 신하는 밤낮으로 공이 이기고 돌아오기를 바랄 뿐이로다.”

 

정세운이 지휘하는 고려군은 개경을 완전 포위하여 총공격을 퍼부었고 홍건적 20만명 중에 10만명이 죽고 남은 무리는 패주함으로서 전쟁은 끝이 났다.

 

정세운이 아니었다면 몽골의 피해를 당한 고려의 백성들은 다시 한번 약탈과 살육을 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세운은 승전 후에 김용金鏞의 시기심으로 인해, 김용의 사주를 받은 안우安祐에 의해 죽게 된다.

 

김용은 다시 공민왕을 죽이려고 했으나 최영 장군에 의해 반란이 진압되 고 결국 처형되었다.

나라를 구하자마자 시기질투로 죽음을 맞이한 비운의 장군.

그나마 환단고기에 그의 역사가 기록되어 그의 한을 달래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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