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만큼 보인다

고성 이씨의 맥

진실의 역사

한민족의 역사를 전수해준 고성 이李씨의 맥

고려국본기에는 고성 이씨의 중시조라 할 수 있는 이존비 선생으로부터 아들인 이우李瑀, 손자인 이암李?, 증손자인 이강李岡, 현손자인 이원李原의 맥과 연관된 부분이 있다.

 

이존비李尊庇(1233~1287)는 고려 25세 충렬왕 때의 문관이다.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고 왕세자가 글을 배우던 곳인 서연에서 우리나라의 자주와 부강의 정책을 논하였다.

 

그는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환단桓檀·조선·북부여·고구려 이래로 모두 부강하였고 자주自主를 유지하였습니다.

또 연호를 정하고 황제라 칭한 일은 우리 태조 때에 이르러서도 실행하였습니다”라고 명시하고 충렬왕 당시의 사대적 사고가 후세의 비웃음을 받을 것이니 자강을 꾀해야 한다고 거듭 아뢰었다.

그의 주장은 비록 당시에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옳다고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충렬왕이 연경(지금의 북경)에서 돌아오는 도중에 사랑하는 연녀 생각에 다시 연경으로 돌아가려 하자 이존비가 거짓으로 시를 지어 충렬왕이 연녀를 포기하고 고려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이존비는 나중에 그 일로 인해 귀양가게 되었고 태자(충선왕)와 조정 대신들의 간청으로 다시 복직되었으나 사자가 이르기 전에 숨을 거두고 만다. 충렬왕은 몹시 슬퍼하며 왕례로 장사지내도록 했다.

 

그는 3남 4녀를 두었는데 고려국본기에 실린 칠언율시는 이존비가 둘째아들의 스승인 원오국사에게 보낸 시이다.

이 시는 첫째 아들 이우李瑀가 원나라 조정에 숙위宿衛로 들어가 일하고, 둘째 아들 이복구李復丘는 회당 상인에게 출가한 사실을 포함하고 있다.

복구는 원오국사 양천영에게 출가하여 뒤에 각진국사가 되었다.

이우의 아들이 바로 환단고기의 세 번째 책인 『단군세기』의 저자 행촌 이암(1297~1364) 선생이다.

행촌 선생이 일찍이 천보산天寶山에서 유람을 하다가 밤에 태소암太素庵에서 묵게 되었다.

그곳에 소전素佺이라 하는 한 거사가 기이한 옛 서적[奇古之書]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이에 이명李茗, 범장范樟과 함께 신서神書를 얻었는데, 모두 환단桓檀시절부터 전해 내려온 역사의 진결[桓檀傳授之眞訣]이었다.

이 책을 바탕으로 행촌 시중侍中이 지은 저서가 3종이 있다.

『단군세기』를 지어 시원국가의 체통을 밝혔고, 『태백진훈』을 지어 환단시대부터 전수되어 온 도학道學과 심법心法을 이어받아 밝혔다.

『농상집요』는 세상을 다스리는 실무實務관련 학문을 담은 것이다.

 

고려국본기에는 이암의 정신을 알 수 있는 글이 여러 군데에 있다.

고려 조정에서 국호를 폐하고 고려 내정간섭을 위해 행성을 세우고자 의논할 때, 이암이 이를 저지하기 위해 올린 상소문에서는 “조국과 민속의 존재 당위성을 강조하며 태조왕건의 건국 정신을 일깨워주고 지금이라도 자주부강의 계책을 꾀하고 간신배의 죄를 엄히 다스리자”고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또한 신교에 대해 언급한 부분에서는 “환웅천황의 신시개천의 의미를 강조하고 아직도 우리는 신교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구도자로서의 느낌을 말하고 있고, 어명을 받아 참성단에서 천제를 올릴 때 백문보에게 말한 내용을 보면 국가발전 차원에서 신교신앙을 강조하며 천제의 근본정신이 보은임을 말하고 있다.

 

혼란한 시기에 정치가로서 그리고 대학자로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고뇌하며 대책을 갈구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고려가 원나라의 침략과 통치를 받으면서도 끝내 문닫지 않고 다시 일어선 정신적 힘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암의 막내아들 이강李岡(1333∼1368)은 밀직사로서, 어명을 받들고 참성단에서 천제를 올리고 나서 시를 지었다.

복잡한 세상을 떠나 고요하고 한가로운 풍경 속에서 잠시 여유를 느끼며 그는 홍건적을 물리치고 개경을 수복한 해(1362년)를 특별히 기억하자고 말하고 있다.

 

이강의 친구 중에 고려국본기에는 이색이 나온다.

이색은 이암을 아버지처럼 섬겼는데 이암이 이색에게 선가적 기풍을 전해주었다고 한다.

이색은 이암의 농상집요 서문에 글을 실었다.

 

이강의 사위는 권근으로 고려국본기에는 권근이 참성단에서 천제드릴 때의 서고문이 있다.

서고문에는 마리산은 단군왕검께서 천제를 지내시던 곳이라고 하고 사직이 반석 위에 올라설 수 있도록 삼신께 고하고 있다.

촌이암 선생과 일십당 이맥 선생, 해학 이기 선생과 한암당 이유립 선생이 모두 고성 이씨로서 이존비 선생의 후손이니 지금 우리에게 환단고기가 전해지는 것은 고성이씨 가문의 노력과 공헌 덕분이다.

'진실의 역사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눈에 보는 고려 역사  (0) 2017.12.19
홍건적 침입 막아낸 충장 정세운  (0) 2017.12.18
묘청의 난  (0) 2017.12.16
고려⑤  (0) 2017.12.15
고려④  (0) 2017.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