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만큼 보인다

동북아 역사조작 임나일본부 허구①

진실의 역사

[동북아 역사조작극]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의 허구성


임나일본부 주장의 두 가지 사료근거

임나일본부설은 19세기 후반 일본에서 정한론이 대두되었을 때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한국을 무력으로 점령하고 통치할 역사적 근거를 임나일본부설에서 구하였다.

 

임나일본부설이란 당시 일본의 통일국가인 야마토(大和) 조정이 4세기 중반에서 6세기 중반까지 약 200년간 한반도 남부의 임나를 직접 지배했고, 이를 기반으로 백제와 신라를 간접 지배했는데 그 지배기구가 바로 임나일본부라는 주장이다.

 

▶일본의 고대사서인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임나일본부가 나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서기』는 일본 천황가의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많은 역사적 사실들을 개변하고 윤색하였다는 것은 모든 학자들이 인정하는 사실이다.

 

▶일본인들이 임나에 대한 일본의 지배를 주장하는 또 하나의 주요한 사료적 근거는 광개토대왕 비문이다.

이 비문에는 한반도에 왜병이 다수 파견되어 있었으며 이를 광개토대왕이 군대를 파견하여 격파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제 사료를 통해 임나일본부의 실체에 접근해 보자.


임나는 가야에 대한 총칭

▶우리나라 기록에도 임나가 심심치 않게 나오는데 가장 이른 기록이 앞에서 언급한 광개토대왕 비문이다.

 

▶그 외에도 신라 문무왕 때의 문장가 강수의 전기를 실은 『삼국사기』 「강수전」에는 강수가 ‘임나가랑任那加良’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으며 신라말의 「진경대사탑비」에도 진경대사가 임나왕족의 후손이라 하면서 그 선조가 김유신이었다고 한다.

주지하다시피 김유신은 김수로 왕이 세운 가락국 즉 금관가야 사람이다.

그러므로 임나는 금관가야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일본서기』 긴메이 천황기에 신라가 임나의 관가를 쳐서 멸망시켰다는 언급을 하면서 그 주에 “통틀어 임나라 하고 세분해서는 가야국, 안라국, 사이기국, 다라국, 졸마국, 고차국, 자타국, 산반하국, 걸찬국, 염례국 합해서 10국이다.”라는 중요한 기록이 덧붙여져 있다.

임나가 가야를 통틀어 일컫는 지명으로 사용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 외에 『일본서기』에서 나오는 임나는 특정한 가야를 말하는 것으로 김해가야(금관가야)를 지칭한다.

김해가야가 가야연맹*을 주도하던 나라라서 임나가 가야에 대한 총칭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물론 예외적으로 고령가야를 지칭하는 경우도 더러 보이는데 이는 금관가야는 4세기초 광개토대왕의 공격으로 약화된 뒤 고령의 대가야가 가야연맹을 주도하게 되면서 고령가야를 가야를 대표하는 대가야로 부르다보니 그렇게 된 것으로 보인다.

 

* 『삼국유사』에는 가야국이 모두 6국으로 나온다.

아라가야(경남 함안), 고령가야(경북 함령 즉 함창), 대가야(경북 고령), 성산가야(경북 성주), 소가야(경남 고령), 그리고 김해에 있던 금관가야이다.

그러나 가야연맹에는 6가야 외에도 반독립적인 소국들이 많이 있었다.

환단고기 3수 삼신③

진실의 역사

[환단고기 한문화 코드] 3수와 삼신

 

오늘의 한민족은 역사와 문화를 잃어버린 민족입니다.

그리하여 몸은 한민족이되 자신의 정신과 문화를 모르는 무국적자로 살고 있습니다.

 

환단고기는 우리의 잃어버린 역사와 문화를 찾는 역사경전이요 문화경전입니다.

환단고기를 통해 한민족의 원형문화를 추적해보고자 합니다.

서양 역사의 출발이라고 하는 수메르 민족에게서도 3수 정신이 나타납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최초로 통일하여 통일왕조를 건설한 샤르곤 왕의 모습을 통해서

이들에게 3수가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지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BCE 2300년경에 만든 석재 부조를 보면 왕 앞에 생명의 나무가 있습니다.

이 생명의 나무에 인류의 시원종교로서 동서양 문화의 시원인 신교의 삼신 사상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본줄기가 3개로 이루어져 있고, 가지에 달린 열매도 3개씩 한 단위를 이루고 있습니다.

왕이 들고 있는 나뭇가지에도 3개의 열매가 달려있습니다.

알고보면 수메르 역시 동방의 환국에서 넘어간 한민족인 것입니다.

 

서양에서는 실제적인 수의 시작을 3으로 봅니다.

서양의 철학과 수학의 기초를 세웠다고 평가받는 피타고라스는 3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우주는 3으로 구성되어 있고, ‘불’에 둘러싸여 있다.”

“3이라는 수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하는 중심 축’에 있는 숫자다.”

환단고기 3수 삼신②

진실의 역사

[환단고기 한문화 코드] 3수와 삼신

 

오늘의 한민족은 역사와 문화를 잃어버린 민족입니다.

그리하여 몸은 한민족이되 자신의 정신과 문화를 모르는 무국적자로 살고 있습니다.

 

환단고기는 우리의 잃어버린 역사와 문화를 찾는 역사경전이요 문화경전입니다.

환단고기를 통해 한민족의 원형문화를 추적해보고자 합니다.

삼일정신과 삼신문화

인류문화의 뿌리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3수문화를 만나게 되고 그것은 삼신신앙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 삼신문화의 원류가 다름아닌 동방의 한민족임을 『환단고기』는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삼신문화는 과연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요?

 

大始에 上下四方이 曾未見暗黑하고 古往今來에 只一光明矣러라. 自上界로 却有三神하시니 卽一上帝시오 主体則爲一神이시니 非各有神也시며 作用則三神也시니라.

대시에 상하와 동서남북 사방에는 일찍이 암흑이 보이지 않았고, 언제나 오직 한 광명뿐이었다. 천상 세계에 ‘문득’ 삼신이 계셨으니 곧 한 분 상제님이시다. 주체는 일신이시니. 각기 따로 신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작용으로 보면 삼신이시다.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

 

일신과 삼신의 관계를 『환단고기』「소도경전본훈」에서는 “회삼귀일會三歸一 집일함삼執一含三” 곧 ‘셋을 모아 하나로 돌아간다’와 ‘하나를 잡으면 셋을 포함한다’라는 간결한 논리로 표현하였습니다.

 

회삼귀일은 삼신의 이치를 제대로 깨치면 우주를 움직이는 하나의 조화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고, 집일함삼은 일신(일기一氣)에 대한 철저한 깨달음이 이루어지면 삼신의 세 가지 조화의 손길을 체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한민족은 우주를 살아있는 신으로 인식했고 그것은 곧 광명임을 알았습니다.

이것을 일신一神 또는 삼신三神으로 불렀습니다.

이 일신은 얼굴 없는 하느님으로, 모든 만물을 태어나게 하고 살아있게 하는 궁극적 근거가 되는 원신元神(primordial God)입니다.

 

일신을 삼신三神으로 부르는 것은 ‘신이 세 분이다’라는 뜻이 아니고 일신이 세 가지 손길(덕성)로 작용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세 가지 덕성을 조화신(만물을 낳는 것), 교화신(만물을 깨우치고 기르는 것), 치화신(만물의 질서를 잡아나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일신이 삼신으로 작용을 하는 것을 삼신일체의 도, 또는 일즉삼一卽三, 삼즉일三卽一의 이치라 합니다.

이 삼신과 하나되어 우주 만유를 다스리시는 하느님을 우리 민족은 삼신일체상제, 줄여서 삼신상제 또는 상제님이라 불러왔습니다.

심신일체의 도는 우주관, 인간관이자 국가경영관

‘삼신일체지도三神一體之道’ 즉 삼신이 한 몸이 되는 원리에 의해 옛부터 우리 민족은 삼일三一정신을 문화와 생활에 구현해왔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단군조선의 삼한관경제三韓管境制입니다.

이는 나라를 셋으로 나누어 마한, 번한, 진한으로 다스린 것입니다.

 

대단군이 진한을 다스리고, 부단군 두 분이 마한과 번한을 다스리며 진한의 대단군에 복종하는 제도입니다.

뿐만 아니라 풍백·우사·운사의 삼백을 두어 입법, 행정, 사법을 맡게 하였습니다.

현재 민주주의 삼권분립 제도의 원형인 것입니다.

 

옛부터 동양에서 우주를 인식했던 천지인 삼재사상 역시 삼신신앙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삼신을 천일신天一神, 지일신地一神, 태일신太一神이라 하여 하늘, 땅, 인간을 삼신의 현현체顯現體로 인식하였습니다.

 

또한 조화신, 교화신, 치화신의 삼신이 사람에게 그대로 내려와서 성명정性命精의 삼진三眞이 되었습니다.

『환단고기』에서 우리 선조들은 “하늘에는 삼신三神, 땅에는 삼한三韓, 인간 몸속에는 삼진三眞이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로 볼 때 삼신관에는 한민족의 우주관, 신관, 조직관, 인성관이 융합되어 있습니다.

환단고기 3수 삼신①

진실의 역사

[환단고기 한문화 코드] 3수와 삼신

 

오늘의 한민족은 역사와 문화를 잃어버린 민족입니다.

그리하여 몸은 한민족이되 자신의 정신과 문화를 모르는 무국적자로 살고 있습니다.

 

환단고기는 우리의 잃어버린 역사와 문화를 찾는 역사경전이요 문화경전입니다.

환단고기를 통해 한민족의 원형문화를 추적해보고자 합니다.

삼족오三足烏, 왜 3인가?

위의 그림은 일본의 121대 고메이천황(효명천황)이 즉위식 때 입은 곤룡의입니다.

왼쪽 어깨위에 삼족오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삼족오라면 당연히 고구려의 삼족오인데 왜 일본천황이 삼족오가 그려진 옷을 입고 있을까요?

일본 국가대표 축구선수의 유니폼에도 삼족오가 박혀 있습니다.

 

삼족오는 고대 동이족의 태양숭배와 조류숭배(새 토템)신앙이 합치된 대표적인 상징물입니다.

즉 삼족오는 태양의 사자이며 삼신상제님의 전령입니다.

 

삼족오 문양은 한민족사에서 고구려 시대에 화려한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왜 삼족오의 다리는 셋이며, 왜 하필 검은 색의 까마귀일까요?

 

검은 색은 음양오행에서 북방을 상징하는 색입니다.

상수로는 1수水의 기운을 의미합니다.

 

북방 1수는 우주만물의 생명과 역사의 근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몸통에 다리가 셋인 것은 ‘하나는 셋으로 벌여지고 그 셋은 하나로 돌아간다’는 삼일철학을 상징합니다.


우리 문화 속의 3수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수가 뭐냐고 물어본다면 대부분 ‘3’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문화에서는 모든 것이 3수로 집약되고 있습니다.

 

홍어는 삼합으로 먹어야 제 맛이고,

가위바위보도 삼세판은 해야 하고

여러 사람이 자주 하는 게임인 3, 6, 9게임도 역시 3수와 연결됩니다.

 

음양의 이치로 순환 무궁하는 태극을 우리는 삼태극의 모습으로 그려

경복궁, 강녕전, 창경궁 명정문, 사찰 대웅전, 서낭당 문, 향교 외삼문, 소고, 북 등에서 너무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삼족오뿐만 아니라 삼재충三災蟲을 다 잡아먹어 버린다는 세 머리 매나

아이를 낳았을 때 금줄에 다는 고추나 숯의 숫자도 세 개입니다.

숫자 3과 얽힌 우리 민족의 문화모습을 찾는 것은 그 예가 끝이 없을 정도입니다.

3수는 완성을 상징

모든 변화는 생장성으로 이루어지며, 생각의 논리도 정·반·합으로 전개됩니다.

 

우주의 공간과 시간은 하늘·땅·인간의 삼계와

과거·현재·미래 삼세로 벌어져 있고,

물질의 기본 단위인 원자는 양자·전자·중성자라는 세 입자로 이루어집니다.

 

인간 사회의 기본조직인 가족은 아버지, 어머니, 자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몸의 각 부분도 머리-몸통-팔다리, 상박-하박-손, 상퇴-하퇴-발 등의 세 마디로 되어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 민족에게는 기독교의 성부, 성자, 성신의 삼위일체三位一體說과

불가의 법신, 응신, 보신불의 삼불설三佛說,

유교에서 말하는 군사부일체의 원조 격에 해당하는

동방의 천일天一, 지일地一 태일太一의 삼신일체신관三神一體神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실하 한국항공대교수는 북방 수렵문화의 전통을 나타내는

3수는 신神 중심적이고 초월적이고 탈세간脫世間적이며 영적 세계를 중시하는 ‘3수 분화의 세계관’이라 하였습니다.

 

3은 만물의 변화를 일으켜 전체를 완성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수입니다.

아울러 3수는 양과 음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어 만물이 서로 화생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하여 3수야말로 새로운 탄생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한민족 시원 밝혀준 홍산문화 유물②

진실의 역사

한민족의 시원始原을 밝혀준 홍산문화 유물들

중국은 홍산문화를 자기네 문화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역사기록은 없다.

 

홍산문화는 황하문명을 넘어서

한민족의 조상인 동이문명의 것임이 밝혀지고 있다.

 

홍산문화는 환국의 후손인 배달겨레가 중심이 되어 이룩한 문화이며,

그 기반 위에 단군조선이 건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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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시원 밝혀준 홍산문화 유물①

진실의 역사

한민족의 시원始原을 밝혀준 홍산문화 유물들


중국은 홍산문화를 자기네 문화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역사기록은 없다.

 

홍산문화는 황하문명을 넘어서

한민족의 조상인 동이문명의 것임이 밝혀지고 있다.

 

홍산문화는 환국의 후손인 배달겨레가 중심이 되어 이룩한 문화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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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황제는 누구에게 천제를 올렸는가?

진실의 역사

고종황제는 누구에게 천제를 올렸는가?

1897년 고종이 황제 즉위식을 거행한 원구단圓丘壇의 모습이다.

 

고종임금은 1897년 10월 원구단에서 하늘에 천제를 올리고 황제로 등극하였다.

곧 이어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연호를 광무로 정하여 대내외에 선포하였다.

 

그러면 고종황제는 누구에게 천제를 올렸을까?

원구단 천제의 1호 대상은 바로 ‘상제님’이다.

상제님은 원구단에 모신 여러 신위 중 제일 상단에 모셔진 분으로서, 고종은 상제님께 천제를 올려서 자신의 황제등극과 대한제국의 탄생을 신고한 것이다.

고종은 천자의 보위에 오르면서 조선 초기 명나라의 압력으로 폐지했던 천제문화를 다시 복원한 것이다.

 

호천상제昊天上帝, 황지기皇地祇, 태조太祖 등의 신위를 제천의례 때는 원구단에 모시고 평소에는 황궁우皇穹宇에 모셨다.

원구단은 제천단, 황궁우는 사당의 역할을 한 것이다.

일제는 1919년 원구단을 파괴하여 현재는 황궁우만 남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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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상제님

진실의 역사

[환단고기] 삼신상제님

 

천하제일산天下第一山 태산泰山

중국에서는 오악五岳이라 하여 동서남북중앙에 각각 유명한 산이 있습니다.

이 중 태산은 산동성에 있어 동악東岳에 해당됩니다.

하지만 태산은 여느 산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오악독존五嶽獨尊 또는 천하제일산天下第一山이라하여 중국인들의 숭상이 가히 타산他山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태산은 역대 중국황제 72명이 올라가 봉선封禪의식(하늘과 땅에 올리는 제사)을 거행한 산입니다.

천하제일산이라서 봉선의식을 거행한 것일까요?

아니면 봉선의식을 거행하여 천하제일산이 되었을까요?

태산 정상을 옥황정玉皇頂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옥황전玉皇殿이 있는데 옥황대제玉皇大帝를 모시고 있습니다.

옥황대제 곧 옥황상제, 여기에 태산이 천하제일산으로 등극한 이유가 숨어 있답니다.

과연 옥황상제는 누구이며 그분에게 천제를 올리는 풍습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환단고기』「삼한관경본기」에 나오는 태산과 금간옥첩전수

 

『환단고기』는 우리나라의 뿌리역사 뿐만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국가형성과 문화의 기원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밝혀줍니다.

태산의 봉선제, 그 오랜 전통의 기원은「태백일사」의 ‘삼한관경본기’ 번한세가 상편에 자세히 나옵니다.

약 4300년 전 단군조선의 왼쪽날개였던 번한 왕이 태산에서 천제를 올린 것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옥황대제는 원래 삼신상제님이었습니다.

①번한 왕이 태산에서 천제를 올림
甲戌(갑술)에 太子扶婁(태자부루)가 以命(이명)으로
왕使塗山(왕사도산)할새 路次琅邪(노차낭야)하야 留居半月(유거반월)하야
聽聞民情(청문민정)하니
虞舜(우순)이 亦率四岳(역솔사악)하야 報治水諸事(보치수제사)하니라 番韓(번한)이
以太子命(이태자명)으로 令境內(영경내)하야
大興경堂(대흥경당)하고 병祭三神于泰山(병제삼신우태산)하니 自是(자시)로
三神古俗(삼신고속)이 大行于淮泗之間也(대행우회사지간야)라. - 환단고기 완역본 본문 462쪽

갑술(단기 67, BCE 2267)년에, 부루태자가 명을 받고 특사로 도산에 갈 때 도중에 낭야에 들러 반 달 동안 머무르며 백성의 사정을 묻고 들었다. 이때 우순이 사악四岳을 거느리고 치수에 대한 모든 일을 보고하였다. 번한 왕이 태자의 명으로 경내境內에 경당을 크게 일으키고, 아울러 태산에서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올렸다. 이로부터 삼신을 받드는 옛 풍속이 회수淮水와 사수泗水 지역 일대에서 크게 행하여졌다.


②부루태자가 우사공에게 말함
太子(태자)가 至塗山(지도산)하사
主理乃(주리내)여 會(회) 하실새 因番韓(인번한)하사 告虞司空曰(고우사공왈)
予(여)는 北極水精子也(북극수정자야)라 汝后請予(여후청여)하야 以欲導治水土(이욕도치수토)하야
拯救百姓(증구백성)일새 三神上帝(삼신상제)가 悅予왕助故(열여왕조고)로 來也(내야)라 하고 - 환단고기 완역본 본문 464쪽

태자가 도산에 도착하여 주장[主理]의 자격으로 회의를 주관하실 때 번한 왕을 통해 우사공虞司空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북극수의 정기를 타고난 아들이니라. 너희 임금(순임금)이 나에게 수토水土를 다스려 백성을 구해 주기를 청원하니, 삼신상제님께서 내가 가서 도와주는 것을 기뻐하시므로 왔노라.”


③ 금간옥첩 전수
於是(어시)에 虞司空(우사공)이 三六九拜而進曰(삼육구배이진왈)
勤行天帝子之命(근행천제자지명)이오
佐我虞舜開泰之政(좌아우순개태지정)하야
以報三神允悅之至焉(이보삼신윤열지지언)호리이다.
自太子扶婁(자태자부루)로 受金簡玉牒(수금간옥첩)하니
盖五行治水之要訣也(개오행치수지요결야)라
太子(태자)가 會九黎於塗山(회구려어도산)하시고
命虞舜(명우순)하사 卽報虞貢事例(즉보우공사례)하시니
今所謂禹貢(금소위우공)이 是也(시야)라. - 환단고기 완역본 본문 같은쪽

우사공이 삼육구배三六九拜를 하고 나아가 아뢰었다.
“삼가 천제자(단군왕검)의 어명을 잘 받들어 행할 것이요, 또 저희 우순(순임금)께서 태평스런 정사를 펴시도록 잘 보필하여 삼신상제님께서 진실로 기뻐하시도록 지극한 뜻에 보답하겠사옵니다.”
부루태자로부터 『금간옥첩金簡玉牒』을 받으니, 곧 오행치수의 요결이었다. 태자께서 구려九黎를 도산에 모아놓고, 우순에게 명하여 조공 바친[虞貢] 사례를 보고하게 하시니, 오늘날 이른바 「우공禹貢」이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말한다.


정리 역주자가 전해주는 말씀
춘추시대 이후 진시황, 한 무제 등도 태산에서 천제를 봉행하였다.

특히 한무제는 BCE 100년을 시작으로 5년마다 태산 봉선제를 거행하였는데 총 다섯 차례를 행하였다.

태산 꼭대기에는 지금도 옥황대제라는 위패를 써 붙인 황금빛 상제님 상을 모신 옥황전이 보존되어 있다.

 

산동성은 원래 배달시대 때 동이족의 주된 근거지 중 하나이다.

때문에 중국의 어느 지역보다 천제문화가 발달하여 중국 천자들도 먼 길을 마다 않고 이곳을 찾아온 것이다.

산동성의 태산은 중국 천제문화의 성지와 같은 곳이다. (환단고기 역주본 해제 4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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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황태일-태일문화⑤

진실의 역사

[환단고기] 태일太一문화

 

동황태일

동황태일東皇太一은 『초사楚辭』「구가 九歌」<동황태일東皇太一>에 나온다.

굴원屈原의 『초사』「구가」는 본래 신령에게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던 악곡인데, 특히 최고의 주신인‘ 동황태일’을 노래하였다.

 

동황태일이라 이름한 것은, 태일이 동쪽을 관장하는 신이고 그 사당이 동쪽에 있기 때문이다.

 

단군조선 시대 때 전 영토를 삼신의 우주관인 천지인 삼계의‘ 천일天一·지일地一·태일太一’정신에 따라 삼한三韓(진한·번한·마한)으로 나누어 다스렸다.

 

동황태일은 곧 삼한 중에 진한辰韓의 대왕[天王, 대단군]이 되어 천하를 다스리신 단군왕검을 말한다.

 

단재 신채호는“ 『초사楚辭』에 보면 동황태일 곧 단군왕검을 제사하는 풍속이 (중국 양자강 유역인) 호북湖北, 절강浙江 등지에서 많이 유행하였다”라고 하였다.(신채호,『조선상고사』상, 115쪽)

 

동황태일
吉日兮辰良(길일혜진량)
穆將愉兮上皇(목장유혜상황)
撫長劍兮玉珥(무장검혜옥이)
璆鏘鳴兮琳琅(구장명혜림랑)
瑤席兮玉瑱(요석혜옥전)
盍將把兮瓊芳(합장파혜경방)
蕙肴蒸兮蘭藉(혜효증혜란적)
奠桂酒兮椒漿(존계주혜초장)
揚포兮拊鼓(양포혜부고)
疏緩節兮安歌(소완절혜안가)
陳竽瑟兮浩倡(진우슬혜호창)
靈偃蹇兮姣服(영언건혜교복)
芳菲菲兮滿堂(방비비혜만당)
五音紛兮繁會(오음분혜번회)
君欣欣兮樂康(군흔흔혜락강)

 

길한 날 좋은 때에 경건하게
상황을 즐겁게 하리라.
손에는 장검의 옥 손잡이 거머쥐고,
몸에는 달강이며 우는 패옥 소리.
옥자리와 옥압진을 갖추고서,
옥방초를 곁들였네.
혜초로 싼 고기 난초에 받치어,
정결한 계수나무 술과 후초 술을 함께 올리자.
북채를 들고서 북을 치면서
느린 박자로 연주하며 가락 맞추어
생황과 가야금으로 성대히 어울리는도다!
신내린 여인의 화려한 옷이여,
향기가 그윽하여 사당에 가득 차네.
오음이 요란하게 소리가 조화를 이루니
신령께서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는도다.

동북아의 태일신太一神 숭배
동북아에서는 이 태일을 신격화하여 오랜 옛날부터 태일신으로 숭배하여 왔다.

 

한 무제가 태일신에게 제사 지낸 일을 기록한 『사기』「봉선서」에 따르면, 무제는 태일신을 국가적 제천행사의 주신으로 받들어, 수도 장안의 동남방에 태일단을 쌓고 봄가을로 제사를 올렸다.

 

이 제사를 청한 신하 유기謬忌는 ‘천신 중에 가장 존귀한 분은 태일신’이라고 무제에게 고하였다.

이 태일신 제사는 서한西漢 시대를 풍미하였고, 태일신은 중국사에서 지고신至高神으로 추앙되었다.

 

이 땅에서 태일신에게 제사를 드린 것은 고려 시대의 사료에서 비로소 확인된다.

『고려사』의 스물여덟 곳에서 태일의 용례를 찾아볼 수 있는데, 그 중 태일초례를 거행한 기록은 20회에 이른다.

최소한 고려시대까지 태일신 신앙은 국가적 의례로 전승되어 온 것이다.

 

조선 시대에는 궁궐의 소격전과 지방의 태일전太一殿에서 태일신을 모셨다.

 

고려 때는 궁궐 안에 태일전이 따로 있었으나, 조선 태조 때에 이르러 태일전을 파하여 소격전에 합하였다.

지방에는 태일성太一星이 움직이는 방위에 따라 통주(현 강원도 통천), 의성(현 경상북도 의성) 등에 태일전을 지었다.

 

하지만 조선 시대 소격전의 초제醮祭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 말하듯, 태일신에게 예를 바치는 제사라기 보다 계절의 조화를 빌고 왕실의 건강과 치병을 기원하는 예식에 그쳤다.

이마저도 중종 13년(1518)에 조광조의 상소로 소격전이 철폐되어 중지되었다.

 

8년 뒤 중종 21년에 모후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하여 소격전을 다시 설치하였지만 임진왜란 후에 완전히 폐지되면서 이 땅의 태일 신앙은 명맥이 거의 끊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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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일 문화④

진실의 역사

[환단고기] 태일太一문화

 

태일太一에 대한 환단고기 역주자 말씀

 

1
조물주 삼신의 신령한 손길에서 천지인 삼재가 나왔다.

다시 말해서 삼신이 현실계에 자신을 드러낸 것이 바로 천지인이다.

때문에 천지인 각각은 삼신의 생명과 신성을 고스란히 다 가지고 있고, 각각에 내재된 삼신의 생명과 신성神性은 서로 동일하다.

이러한 천지인을 『환단고기』는 천일天一·지일地一·태일太一이라 정의한다.

인간을 태일이라 부르는 것, 이것이 한민족 우주사상의 핵심이다.

인간을 ‘인일人一’이라 하지 않고 ‘태일’이라 한 것은 인간이 천지의 손발이 되어 천지의 뜻과 소망을 이루는, 하늘땅보다 더 큰 존재이기 때문이다. (환단고기 역주본 해제 84쪽)


2
수백 만 년 전의 인간이든, 십만 년 전의 인간이든 오늘의 인간이든 모두 우주 광명과 통해 있는 신령스런 존재인 것이다.

이렇게 신령한 인간을 삼신의 가르침으로 다스려 일깨워서 천지의 뜻과 대이상을 펼치는 존재가 되게 하는 것, 다시 말해서 인간을 진정한 태일이 되게 하는 것, 이것이 염표문이 전하는 홍익인간의 궁극이다.

이러한 홍익인간의 도를 실천하는 인간이 곧 우주의 광명 인간이자 태일이다. (환단고기 역주본 해제 400쪽)

3
이제 인류 시원시대에 환국 백성들이 누리던 천지광명이 온전히 부활하는 우주의 가을개벽 세상이 열린다.

그 세상에서는 태일문화의 주문 수행이 보편 생활문화가 되고, 모든 사람이 신성한 인간으로, 대자연과 신을 노래하는 위대한 철인으로, 삼신의 신성을 발현한 신적 존재로 거듭나 광명한 삶을 살아간다.

그때 인간은 누구나 대한이 되고, 태일이 되고, 홍익인간이 된다. (환단고기 역주본 해제 602쪽)

4
19세기 말엽에 한민족의 태일 문화를 복원시키는 중대한 사건이 있었다.

전남 함평의 도인道人 김경수가 태일 문화의 완성작으로 태을천太乙天의 소식을 전한 것이다.

50년 수행 끝에 그는 삼신상제님으로부터 태을주太乙呪를 받아 내려 세상에 전하였다.

태을주의 탄생은 인류 정신문화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건 중의 하나로 9천년 태일신 사상의 최종 결실이라 할 수 있다. (환단고기 역주본 해제 439쪽)

5
‘한’이 궁극적으로 뜻하는 바는 미래의 인간상이다.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한’은 인간에게 내재한 광명, 또는 광명이 깃든 신성한 존재로서의 인간 등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한’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한’은 장차 천지의 뜻과 이상을 역사 속에서 직접 실현할 천지의 아들딸로서 ‘태일太一의 인간’을 가리킨다.

미래 문명사회에서 보편적인 인간상이 될 태일 인간, 이것이 ‘한’의 궁극이다. (환단고기 역주본 해제 5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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