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만큼 보인다

명판관 여주 선생의 실제 저승 재판기록③

서프라이즈

'저승문답'(원저 : 유명문답록幽冥問答錄)1945년 전후 중국 제2의 포청천으로

명성을 드날렸던 명판관 여주(黎澍) 선생의 실제 저승 재판기록입니다.

 

공자(孔子) 『주역(周易)』 계사전에서

"역(易)은 위로는 천문을 관찰하고 아래로 지리를 살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승과 저승의 일을 알며, 죽고 사는 이치를 알 수 있으니,

 

정기(精氣)가 모여서 생물이 되고,

정기(精氣)가 변하여 영혼이 된다.

그러므로 귀신의 실체를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중용(中庸)』에 이르기를

"귀신의 덕성이 매우 왕성하도다.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지만,

만물의 본체가 되니 빠뜨릴 수가 없도다."

 

불교에서도 윤회(輪廻) 사상이 있어서 저승과 이승을 오고 가는 일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주(黎澍) 선생은 나이 많고 덕이 높고 또 명판관으로 법률계에 소문이 난 사람이었습니다.

 

★ 선생이 지난 날, 일찍이 저승의 재판관이 되었었다 하셨는데, 정말 그랬습니까?

→ 그렇습니다. 세간 사람들이 이런 말을 들으면 모두 괴이하게 여길 터이지만,

나로서 볼 것 같으면 그 일이 일상적인 일이이서 조금도 괴이하지 않습니다.

 

★ 그것이 어느 때의 일이었습니까?

→ 청나라 말기, 1900년 무렵의 일로써, 내 나이 19살 때의 일이었습니다.

 

소임은 어떤 직무에 관계했으며 어느 부 밑에 속했습니까? 그리고 직원은 몇 명이 있었는지요?

→ 동악부(東嶽府) 아래에 속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동악(東嶽)은 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사건을 집행한 뒤에 공사를 가지고 보고를 올렸을 뿐입니다.

나는 그때 분정(分庭)의 정장(庭長)을 책임 맡았었는데, 따로 배심원 네 사람을 두었었고,

봉사한 귀졸(鬼卒)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저승 재판관을 몇 년이나 맡았었습니까?

그리고 그 일은 매일 가서 처리했습니까? 또 어느 지방을 관할했었습니까?

→ 대략 4~5년간을 했었고, 날마다 가서 했습니다. 관할 구역은 화북(華北)의 다섯 성을 맡았었습니다.

 

저승에서는 왜 선생을 재판관으로 삼았었는지요?

→ 나 또한 일찍이 같은 사건을 맡아서 조사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또 수전세(數前世, 여러번의 전생)에서도 저승판관을 했었습니다.

그 전생의 인연의 끈으로 해서 다시 그 일을 맡았습니다.

 

선생이 맡아서 했던 일은 어떤 종류의 사건이었습니까?

→ 내가 맡았던 일은 사람이 죽은 지 10개월 이내의 것으로,

그 사람의 생전에 지은 선행과 악행의 사건을 맡아서 했습니다.

기한을 넘긴 일을 따로 맡아서 처리하는 주무자가 있었습니다.

 

선생은 그 때에 염라대왕을 보았습니까?

→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사람의 생전에 하였던 선악의 행위를 귀신이 어떻게 다 알고 다 볼 수 있단 말입니까?

빠뜨리지 않고 다 기록되어 있습니까?

→ 예. 귀신은 형체가 없는 것도 능히 다 볼 수 있고, 소리가 없는 것도 다 들을 수 있습니다.

인간 세계의 온갖 사상과 행위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귀신은 스스로 다 알고 다 알 수 있습니다.

그 기록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또 귀신은 사람의 머리 위에 나타나는 오라(aura)의 붉은색, 노란색, 녹색, 흰색, 검은 색의 빛을 보고서

그 사람의 행위와 생각의 선악을 다 알 수 있습니다.

 

죄 지은 귀신도 또한 교활한 변명을 합니까?

→ 예. 극히 많습니다. 죄 지은 귀신은 그가 지은 죄악에 대해서 역시 반드시 극력 교활한 변명을 늘어 놓습니다.

그러다가 그 죄의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면 그때서야 고개를 푹 떨어뜨리고 아무 말이 없습니다.

일찍이 한 귀신을 심판하는데, 악행을 저지른 것이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생전에 겉으로는 위선적인 행위를 하면서 남 모르게 못된 짓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악행 범죄의 사실에 대해서 극력 부인을 하는데, 내가 보니까 그 사람의 죄악이 산처럼 쌓여 있었어요.

 

저승에 들어갈 때는 매일 어느 때입니까? 그리고 그 안건을 심리하는 시간은 얼마나 걸립니까?

→ 최초에는 매일 해질 무렵이지만, 그 후로는 대낮에도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단 오후에 갑니다.

오고 갈 적에는 모두 간단한 상여를 타고 가는데, 달리는 발걸음이 매우 빠릅니다.

그리고 안건을 심리하는 시간은 언제나 짧은 시간 내에 합니다.

그러나 복잡한 안건을 만나면 역시 연장하여 여러 날이 걸리기도 합니다. 다만 이런 안건은 극히 적습니다.

 

저승에 들어갈 때에 그 사람의 신체는 현재 수면상태입니까?

→ 저승에 들어갈 때에는 몸은 평상 위에 누워 있고 모습은 깊이 잠이 든 것 같습니다.

마시지도 않고 먹지 않아도 또한 굶주리지 않고 목마르지도 않습니다.

어떤 때에는 친한 벗들이 갑자기 찾아와서 또 불편한 일을 가지고 이야기하면, 눈을 감은 채 건성건성 대답하는데,

모습이 마치 잠에서 깨어난 사람 같았습니다. 어떤 객이 와서 묻고 하면 또한 그 물음에 따라 대답하는데,

다만 말이 입에서 나오지도 않고, 또 객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저승 갔다가 되살아 나오면 정신도 또한 피곤한 줄을 깨닫습니까?

→ 정신은 조금 피곤하고 모습은 마치 막 잠에서 깨어난 사람 같습니다.

 

저승 재판관의 복장은 어떻습니까? 그리고 또 그 공문의 격식은 어떻습니까?

→ 내가 저승판관으로 있을 때는 아직 청나라가 있을 무렵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복장과 공문의 격식은 모두 만주국 청나라의 법식과 똑같았습니다.

다만 중화민국이 들어선 이후로는 고쳐져서 새 제도를 따랐습니다.

 

저승판관도 역시 봉급이 있습니까?

→ 예, 있습니다. 다만 인간세상에서 조금도 쓸 곳이 없었기 때문에 수령하지 않았습니다.

 

저승의 형벌의 종류는 얼마나 됩니까?

→ 저승의 형벌종류는 매우 많습니다. 인간세상의 형벌에 비교하면 참혹하기가 100배 정도나 됩니다.

만약 지금 사람들이 그걸 본다면 참혹한 형벌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경험으로 보면, 인류가 차라리 인간 세상의 형벌을 받을지언정,

절대로 저승 법정에서는 형벌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즉 이 세상에서는 형을 받고 형이 끝나면 그것으로 끝나지만

저승에서는 형이 끝난 뒤에도 또 다시 그 죄과에 따라 재형을 받습니다.  

비유하자면, 이 세상에서는 열 사람을 죽였다면 그 죄는 한번 사형으로 끝나지만,

저승에서는 반드시 열 번의 형을 받습니다.

형이 끝나면 다시 생을 바꿔 태어나 십대의 생까지 살인죄의 사형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형이 톱으로 자르고, 맷돌로 갈고, 칼끝을 뾰족뾰족 세운 산 위를 맨발로 걸어서 오르게 하고,

기름 가마솥에 넣고, 수레로 사지를 찢고 하는 등의 형이 실제로 있습니다.

죄의 응보는 참으로 두렵습니다. 이와 같으니까요.

 

저승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어떤 종류의 덕행입니까?

→ 저승에서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덕행은, 남자는 충과 효이고, 여자는 절개와 효도입니다.

이 두지를 행한 사람은 비록 죄업이 있다 하더라도 또한 반드시 경감하여 줍니다.

 

저승에서 최악의 죄로 여기는 것은 어떤 종류의 죄업입니까?

→ 최악으로 여기는 죄업은 음탕과 살인죄 두 가지입니다.

그리고 살인죄는 또 음탕에 비하여 더욱 무겁습니다.

만약에 음탕으로 인하여 인명까지 살해한 자는 두 가지 중죄를 함께 저질렀기 때문에 한층 죄를 덧씌운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만 가지 악 가운데 음탕이 첫째요,

백가지 선 가운데 효도가 먼저다"라고 한 말이 참으로 헛된 말이 아닙니다.

 

저승에는 이미 문장으로 이루어진 법률이 없는데, 그 죄의 가볍고 무거운 것을 어떻게 저울질 합니까?

→ 여기에서 그 범죄의 동기와 발생의 결과를 보고 그 정황을 살피고 사리를 참작하여서 그 경중을 결정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절도죄를 한 것을 가지고 비유한다면,

그 절도질을 한 사람이 본래 생계에 압박되어 한 것이고, 다른 나쁜 데에다가 쓰려고 한 것이 아니라면,

그리고 도둑 맞은 사람이 부자인 한 사람에만 관계되었고, 그 액수도 크지 않으며,

또 그 부자의 생계에 별 영향도 없고 그 부자가 그 도둑맞은 것에 대해 또한 크게 애석하게 여기지도 않는다던가,

또 그 도둑맞은 것이 장차 그걸 가지고 가서 음탕한 짓이나, 도박을 하거나, 담배, 술 등

정당하지 못한 부정한 용도로 쓰려고 한 것이라면, 그 죄는 되려 가볍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 도둑맞은 부자가 그것을 하인들에게 의심을 두고 심하게 꾸중을 하여,

그 책망을 받은 하인이 억울하고 분이 나서 자살을 하게 되었다면,

또 가난한 사람의 쌀 사고 약 살 돈이라면,

그리고 도둑맞은 것으로 인하여 굶어죽고 병들어 죽는 데까지 이르렀다면,

또는 압박을 받아 스스로 몸을 빼어 싸움에 뛰어들어 인명을 살상하는 데 이르렀다면

더구나 그 정황을 살필 때 매우 무겁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우에는 보통의 절도죄만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저승의 법정에서 죄를 심판할 때도 간혹 착오가 있습니까?

→ 절대로 없습니다. 저승법정에서는 범인의 죄상에 대해서 모두 일찍이 정밀히 조사해 두었고,

또 확실한 증거가 있기 때문에 그 심판은 지극히 공정합니다. 따라서 착오된 일이란 절대로 없습니다.

 

우리 범인(凡人)은 하루 사이 또는 일생동안에 한 생각 일어났다가 한 생각 없어지는 것이 얼마인지 모릅니다.

또 선행을 한 것, 악행을 저지른 것을 바로 자기도 다 기억을 못합니다.

저승 법정에서는 사람들의 공덕과 죄악를 어떻게 측정해 냅니까?

→ 사람의 생각이란 것이 마치 한 생각 일어났다가 금방 사라지고 갑자기 생각해 놓고선 금방 잊어버리곤 하여서

저 공중의 새 발자국 같아서 저승에서도 역시 다 기재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만일 한 생각을 오로지 쏟아서 그 생각하는 것이 떠나지 않으면 비록 나타나지 않은 행위일지라도

또한 기록될 수 있습니다. 만약 그 생각이 행위로 이뤄진다면 그 공과 죄는 더욱 현저하게 나타납니다.



명판관 여주 선생의 실제 저승 재판기록②

서프라이즈

'저승문답'(원저 : 유명문답록幽冥問答錄)1945년 전후 중국 제2의 포청천으로

명성을 드날렸던 명판관 여주(黎澍) 선생의 실제 저승 재판기록입니다.

 

그는 늘 평소에 자신이 저승의 재판관으로 다년간 있었고,

수면 중에 잠깐 저승의 명부(冥府)세계에 가서 일을 처리했노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때 중국군의 참모장 “임유양”은 그와 매우 절친한 사이로 그의 저승 이야기를 자주 듣곤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바쁜 와중에도 어느 날 하루 짬을 내어 본격적으로 임유양 참모장이 그간의 경위를 직접 묻고

그에 대한 여주선생의 구술을 기록하여 '저승문답'이란 한 권의 책이 나오게 되었고

다음은 그것의 요점을 간략해 놓은 것입니다.

 

<귀신의 생활모습 '의식주'>
⊙ 저승에도 시가지가 있고, 상점이 있습니까?

→ 예, 있지요. 그러나 규모가 매우 작아서 여기 인간 세상의 작은 점포와 다름이 없습니다.

거기서 파는 것은 음식과 잡용품들이 많고, 다만 웅장하고 화려하고 넓고 큰 인간세계의 큰 백화점 같은 것은 없습니다.


⊙ 저승에서도 매일 세끼 밥을 먹습니까? 
→ 거기에서는 매일 한끼만 먹어도 여러 날 배부를 수 있어서 날마다 꼭 세끼를 먹지 않습니다.


⊙ 이승에서 만든 음식을 귀신들도 먹습니까? 
→ 그렇습니다. 오직 그 기(氣)만을 흠향할 뿐이요, 진짜로 먹지는 않습니다.

 

만약 여름철에 식품이 두 그릇이 있어서 한 그릇은 귀신에게 제공을 했고,

다른 한 그릇은 제공하지 않았다면 귀신에게 제공한 음식이 반드시 먼저 부패합니다.


그것은 귀신이 이미 그 음식의 기를 섭취하였기 때문입니다.

(제사를 지낼 때 실제 조상님들이 제사음식을 흠향 함을 알 수 있음)


⊙ 저승의 음식을 이승의 것과 비교하여 어떤 게 더 좋습니까?
→ 아마 이승의 것에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 저승에서도 역시 해마다 그 명절과 휴가가 있습니까?
→ 예. 이승과 다름이 없습니다. 음력 설날과 청명, 한식, 단오, 추석, 동짓날 등을 만나면 역시 반드시 며칠을 쉽니다.

그러나 단 아직 일, 월, 화, 수, 목, 금, 토의 주일은 없었습니다.


⊙ 저승에서도 잠을 잡니까?
→ 예, 거기에도 역시 침상과 잠자리, 요, 이불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잠자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겨우 가다가 잠깐 벽에 기대든지, 눈을 감고 조금 쉬든지 하면 곧 수면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이승사람들처럼 매양 잠 잘 때 꼭 7~8시간씩 자는 것은 아닙니다.


⊙ 귀신도 그 분묘에 가서 살고 쉬고 하는 것으로 삼습니까?
→ 그렇습니다.

 

<귀신과 사람의 경계>

⊙ 저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에 해와 달이 밝게 비치고 있는데,

어찌 저 저승(幽界)에는 비치지 못하는 것입니까 ? 이것은 어떤 물건이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까?

그리고 만일 이승과 저승이 다른 지역이라면 어떻게 또 사람과 귀신이 함께 길을 갈 수가 있습니까?

→ 항상 구름과 안개가 막아 가리웠기 때문에, 저 푸른 하늘과 밝은 태양을 보지 못합니다.

다만 귀신들은 밝은 데서 어둡고 그늘진 곳으로만 갈 수 있고 더욱이 밤 사이에만 활동하기 때문에

사람과 귀신이 동행할 수 있습니다.


⊙ 귀신과 사람의 수효가 어느 것이 많고 어느 편이 더 적습니까?

그리고 사람들은 귀신을 무서워하는데, 귀신도 사람을 무서워합니까?
→ 귀신세계의 귀신의 수효는 인간세계의 사람들의 수효에 비해 그 숫자가 훨씬 많습니다.
오고 가고, 가고 오고 울타리에 맞대고 담벼락에 붙어 있어 가는 곳마다 모두 다 귀신들입니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도, 귀신들은 길 한 가운데 보다는 도로 양편 곁으로 많이 걸어 다닙니다.

사람들은 밝은 곳을 따라 다니는데, 귀신들은 어두컴컴한 곳을 따라 다닙니다.

그런데 사람도 귀신을 무서워 하지만 귀신도 또한 사람을 무서워 합니다.

그리하여 귀신도 사람이 오는 것을 보면 또한 반드시 피하여 달아나 버립니다. 
 

정직한 사람과 군자는 귀신들 조차도 반드시 공경하지만

귀신들이 없신 여기고 농락하는 사람은 모두 심성이 바르지 못하거나 시운이 쇠미해진 사람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들은 오후부터 해질 무렵 저녁 늦은 시간까지는 길을 걸어갈 때에

절대로 길 양편 가장자리나 어두컴컴한 그림자 진 곳은 걷지를 말아야 합니다. 
 

저녁 늦은 시간에 문밖을 나설 때에는 반드시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걷되

가끔씩 기침소리를 내어서 그들로 하여금 피해 달아나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뜻밖에 밖으로 나오면 귀신과 맞닥뜨려 그 충격으로 사람이 거꾸러지는 일이 발생합니다.

사람 몸도 역시 오싹 한기가 끼치고 겁내어 떨리게 되는데,

이것은 음과 양이 서로 상충되어 피차가 모두 불편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 귀신이 걸어 다니는 것과 산사람이 걷는 것과 구분이 있습니까?
→ 귀신의 발 부위는 분명치 못하여 마치 안개 속을 걸어 다니는 것 같고

걸음걸이가 매우 빨라서 사람의 느린 걸음과는 다릅니다.


⊙ 귀신이 닭울음소리를 무서워하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 햇빛이 밝아오면 영혼이 불안해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햇빛을 피하여 달아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불이 달궈진 큰 기계의 용광로 열기를 무서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몸가짐이 품행 있는 귀신은 역시 닭울음소리를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귀신의 생각과 감정>

⊙ 귀신은 어떻게 그 모습을 바꿀 수 있습니까?

→ 모든 귀신들은 모두 마음대로 변환(變幻)할 수가 있습니다.

다만 반드시 저승 법정의 허가를 얻어야 됩니다.


⊙ 귀신들도 역시 생각이 있어서 이승의 아내와 여자 아이들을 그리워합니까?

→ 예, 귀신들도 역시 매우 그리워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일이 오래가면 자연 담백해집니다.


⊙ 소의 머리를 하고 말 얼굴을 한 귀신이 정말 있습니까?
→ 모두 가면의 도구를 쓰고 흉폭한 혼령들을 공포케 하려고 한 것입니다.

만약 어질고 착한 혼령들에게는 이런 흉칙한 모습은 절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 새, 짐승의 혼령은 역시 새, 짐승의 형상을 하였습니까?

→ 이것은 따로 한 부에서 맡아서 관할한 바로써 나에게는 관계치 않았기 때문에 나는 모르는 일입니다. 
 
⊙ 귀신의 말소리와 우리 인간의 말소리와 어떻게 다릅니까?

→ 귀신의 말소리는 날카롭고 짧고도 급합니다.

 

⊙ 산 사람의 혼과 죽은 사람의 귀신이 그 형상과 그 얼굴 빛이 차별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 나는 그 때 거기에 대해서는 마음에 두지 않었었는데, 당연히 조금은 분별이 있지요?


⊙ 귀신도 역시 어떤 감상을 가지고 있습니까?

→ 예. 그들도 역시 감각이 있어 심히 괴로워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의 말은 몹시 슬픈 것이 많습니다.


⊙ 귀신들도 또한 서로 응수(應酬)하고, 애경사에 경축하고 조문하는 예절이 있습니까?

→ 예, 이승과 다름이 없습니다. 
 
⊙ 향촉(香燭)은 어디에 쓰입니까?

→ 촛불은 그 광명(光明)을 취하고, 향은 그들을 불러오게 하는 데 쓰입니다. 
 
⊙ 폭죽은 어디에 쓰입니까?

→ 귀신들은 폭죽을 무서워 합니다. 그러므로 적의하게 쓰일 데가 없는 것 같습니다.

명판관 여주 선생의 실제 저승 재판기록①

서프라이즈

'저승문답'(원저 : 유명문답록幽冥問答錄)1945년 전후 중국 제2의 포청천으로

명성을 드날렸던 명판관 여주(黎澍) 선생의 실제 저승 재판기록입니다.

 

저승에 대한 얘기를 명부에서 벌어지는 재판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전부 사실이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저승세계에 대해 조금 더 접근할 수 있는 글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다시 한번 되돌아 보게 하는 글이기도 합니다.

 

<죽음의 순간에 관하여>
⊙ 저승에서는 어떻게 이승 사람을 써서 저승으로 데려갑니까?

→ 부유하고 고귀한 사람들은 그 저택에는 항상 많은 신들이 수호하고 있고,

그 사람의 좌우에서 심부름하는 사람들은 오랫동안 날쌔고 힘이 장사이어서

양기(陽氣)가 왕성하기 때문에, 저승사자가 그 사람 병상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비유하면 장군이 병영 안에서 병들어 죽으면 그 4주 동안은 경위가 삼엄하고 창과 대포가 죽 늘어서 있으며,

영내의 병사들은 또 모두 소년들이어서 양기가 펄펄 끓고 있어서

저승사자 귀신이 그 앞에 가까이 갈 방법이 없기 때문에 반드시 산 사람의 혼을 써서 그를 끌어갑니다.

 
⊙ 칼로 목이 잘려 죽거나 기타 참혹하게 죽은 귀신들은 그 몸뚱이와 머리가 온전치 못한데,

    그 영혼들은 보통 병들어 죽은 귀신들과 구분이 있습니까?

→ 그 영혼만은 모두 온전하여 보통 귀신과 다름이 없습니다.

오직 그 얼굴 모습만이 조금 모호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그 상처에 핏자국이 남아 있고, 용모가 참척하여 고통이 있는 것 같습니다.

 

⊙ 사람이 처음 죽을 때 영혼이 육체를 떠날 적에 역시 고통이 있습니까?

→ 사람이 죽을 때는 모두 질병이 있고,

영혼이 육체를 떠날 때는 마치 방문을 열고 외출하는 것 같아서 처음에는 곤란이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아프고 괴로운 고통을 되돌아보면 도리어 편안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가 처자식들을 불쌍히 여기고 또는 두고 온 재산에 미련을 두어 마음속에 간직하고 숨이 떨어지지 못하면

영혼이 쉽게 육체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 때가 가장 고통스럽습니다.

 

만약 이 사람이 타고난 성품이 맑고 깨끗하여 욕심이 없고, 처자식과 재산에 대해서 또한 미련과 끌리는 욕심이 없다면,

영혼이 육체를 떠날 적에 곧바로 옷을 벗듯이 훌훌 떠나 가는데, 조금도 힘을 허비하지 않습니다.


⊙ 사람이 죽은 뒤에 그 귀신의 뜻은 얼이 빠져 꿈속 같은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으면 맑고 성성하여 평상시와 같습니까? 
→ 맑고 성성하여 살아 있을 때와 같습니다.

<저승의 생활환경 여건>
⊙ 저승에도 낮과 밤이 있고, 해와 달, 별들이 있습니까?

→ 저승에도 역시 낮과 밤이 있어 이승과 똑 같습니다. 그러나 오직 해와 달, 별들은 절대로 볼 수 없습니다.
그 정황의 모습은 마치 사천(四川)에 큰 안개가 낀 것 같고 회북(華北)에 뿌연 항사 덮인 날씨와 같아서

이승의 밝은 세계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귀신들은 따스한 8시 이후 부터 11시까지에 이르러서야 활동을 그칩니다.

그리하여 귀신들은 양기가 터지기 시작하면 모두 어둡고 그늘진 곳으로 피하여 숨습니다.

오후에 그늘이 점점 많아지면 외출합니다.

 

⊙ 저승에서는 어떤 책력을 씁니까? 음력입니까? 양력입니까?

    그리고 모든 공문서에 역시 년, 월, 일을 씁니까? 

→ 예, 만청(滿淸)시대에는 만청시대의 책력을 썼고, 공문서에서 쓰는 년, 월, 일도 이승과 똑같습니다.


⊙ 저승에도 또한 비, 바람, 눈, 서리가 있습니까?

→ 보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이승의 비, 바람, 눈, 서리를 만날 때 저승의 모든 귀신들 역시

그 추위에 덜덜 떨면서 괴로워하고 또 잔뜩 웅크리고 오그라 들어 편치 못한 상태를 보입니다.

 

⊙ 저승에도 춥고 덥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습니까?

→ 예, 그렇습니다. 다만 여름에는 이승 같은 무더위가 없고 겨울에도 이승 같은 매서운 추위에 비해 덜 춥숩니다.


⊙ 저승에도 음식점이 있습니까? 그리고 이승 사람이 만든 종이돈을 저승에서 사용할 수 있습니까?

→ 예, 음식점이 있지요. 거기에는 나물같은 음식 종류가 많습니다.

이승 사람이 만든 종이돈을 저들도 또한 사용해서 물건을 살 수가 있습니다.

나는 영계靈界를 보고 왔다②

서프라이즈

나는 영계靈界를 보고 왔다
- 광대무변한 신명계의 실상을 세상에 알린 스웨덴보그 -
 

 “나는 과거 20여년 간에 걸쳐서 육체를 이 세상에 두어둔 채

   영이 되어 인간이 죽은 후의 세계, 즉 영혼의 세계를 출입해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많은 영들과 어울려 수많은 일을 보고 들었다.
 내가 지금부터 여기에 기술하는 것은
 나 스스로 견문하고 체험한 것의 전부이다.”(스웨덴보그)
 

스웨덴보그가 고향 스웨덴을 떠나 이국땅 영국에 머물던 어느 밤,

그에게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인물(영적 존재)이 나타난다.
 
그로부터 “나는 너를 인간이 죽은 후에 가는 영의 세계로 데리고 가겠다.

그 세계에서 보고들은 바를 겪은 그대로 기록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라”는 말을 듣게 된다.

 

이로부터 ‘죽음의 기술’이 생겨 자신의 육체를 두고

자유로이 영계로의 출입이 가능하게 되었는데,

그가 영계를 다녀올 때는 다른 사람의 출입을 금하고

자기 방에 틀어박혀 며칠씩 밥도 먹지 않았다고 하며,

이를 이상하게 여긴 하숙집 주인의 증언에 의하면

그 기간은 2∼3일에서 10일 정도였다고 한다.

영계와 이 세상은 별개의 세계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이다.
이것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면,
이 세상은 영계라는 광대무변한 공간 속에 붕 떠있는 작은 고무공과 같다.
물론 고무공 속에도 영계는 스쳐 들어가 있다.
사실은 고무공 속도 영계인 것이다.
고무공 속 이외의 모든 공간은 영계이지만,
고무공 속만은 예외적으로 자연계와 공간을 초월해있는
영계의 두 세계가 같은 공간 안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태고적 인간들의 영혼을 만난 스웨덴보그
‘성운의 단체’라 불리는 단체를 방문하여
태고적 인간들의 영을 만나 나눈 대화도 기록하고 있는데
그들에 대해 이렇게 전한다.  

“그들은 이성이나 지성의 예리함 등은 어느 면에도 나타나 있지 않았고,
다른 영들과 다름없이 순진하고 순박하여
마치 동심(童心)이 그대로 얼굴이 된 듯한 온화함과 평화스러운 인상을 주었다.” 

 

“그들의 마음은 우주의 길[道]을 전부 순진한 마음으로
솔직하게 받아들여 생활하고 있었다.
태고적 사람들은 영적인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지남에 따라 세속적이거나 물질적인 것,
외면적인 지식이나 학문 등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고
그에 따라서 영적인 일에 대해서는 차차 멀어져 가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들은 영이나 영계가 있는 것조차도 알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인간계와 영계의 생명의 비밀문.
그렇다면 모든 인간과 영계의 생명의 원천은 무엇인가?
스웨덴보그가 최초로 영계에 들어갔을 때,
그는 가슴 정도의 높이에 떠있는 태양을 보고 놀라워했다.
다른 영이 영계의 태양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모든 생명은 생명의 원천과 이어짐으로써
비로소 생명이 있는 것이며, 그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영계의 모든 영은 태양과 연결되어 그 영원한 삶을 향유하게 된다.
영계의 태양은 그 빛이 영계를 비추어 영들에게 사물을 보게 하고,
또 사물을 생각하는 이성(理性)의 기초가 되고 있고,
그 열은 영들에게 생명을 부여하고 있다.” 

 

이러한 생명의 원천에 대해 스웨덴보그는
‘영계의 태양과 그 태양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영류’로 설명한다.
즉, 직접적으로 영류를 받아들여 사는 영 이외의 인간과 생명은,
그 속에 깃들어 있는 영을 통해 이 영류를 간접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생명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인간계는 영계의 종극점 이런 의문이 든다.
‘인간과 영은 어느 쪽이 본질적인가?’
인간에게 생명 그 자체를 부여하고 이것을 통제하고 있는 것은 영이다.
즉, 영이 육신을 가진 인간의 주인인 것이다. 이 말을 바꿔 생각하면,
만일 무신론자나 영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자신의 생명과 그 본질조차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으로서의 삶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이에 대해 스웨덴보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다고 하자.
단지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만으로는
의사(意思)가 완결되고 완성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것이 완성되려면 언어나 편지의 형태로 표현해야만 한다.” 

 

“인간계는 영계의 종극점(終極點)이다.”  

‘우주가 표현하고자 하는 소망과 꿈, 그 이상의 실현과 종결은 오직 인간에게 달려있다.’  

 

그가 전해주는 영계의 진실처럼, 우리는 드넓은 사막의 모래알처럼
작은 지구 안에서, 수천 수만년을 사는 영의 삶과 비교하면 찰나에 불과할 짧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프랭크 램지가 말한 것처럼,
광대무변한 우주 안에 티끌처럼 작은 존재로 보이는 인간도 원근법으로 우주를 보면 인간이 그 중심에 서있다. 

 

(참고) 스웨덴보그의 『나는 영계를 보고 왔다』(서음미디어, 2005년)
 
엠마누엘 스웨덴보그

스웨덴의 신비사상가이자 심령술의 선구자이다.

1688년 스웨덴 스톡홀름의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적부터 신비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었던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신이 이 소년의 입을 빌어서 말을 한다'는 소문이 퍼질 정도로 놀라운 언행을 보여줬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한 후 수학자, 과학자, 발명가로서의 큰 업적을 남겼고 한때 정계에서도 활약하였다.

그의 학문분야는 천문, 생리, 해부학 등 방대한 분야에 걸쳐 15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으며, 이러한 학문적 업적 이외에 그가 동시대에 끼친 영향은 온 유럽을 넘어 역사상 가장 불가사의한 인물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84세 삶 중, 후반 약 30년간은 모든 학문을 팽개치고 영의 세계와 교신하는 영매로서 그 자신이 직접 영계로 들어가서 보고 듣거나, 또는 영들과 직접 사귀어서 알게 된 지식을 바탕으로 영계의 진실을 알리는 영적 생애에 바쳐졌다.

 

나는 영계靈界를 보고 왔다①

서프라이즈

나는 영계靈界를 보고 왔다
- 광대무변한 신명계의 실상을 세상에 알린 스웨덴보그 -
 

 “나는 과거 20여년 간에 걸쳐서 육체를 이 세상에 두어둔 채

   영이 되어 인간이 죽은 후의 세계, 즉 영혼의 세계를 출입해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많은 영들과 어울려 수많은 일을 보고 들었다.
 내가 지금부터 여기에 기술하는 것은
 나 스스로 견문하고 체험한 것의 전부이다.”(스웨덴보그)
 

스웨덴보그가 고향 스웨덴을 떠나 이국땅 영국에 머물던 어느 밤,

그에게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인물(영적 존재)이 나타난다.
 
그로부터 “나는 너를 인간이 죽은 후에 가는 영의 세계로 데리고 가겠다.

그 세계에서 보고들은 바를 겪은 그대로 기록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라”는 말을 듣게 된다.

 

이로부터 ‘죽음의 기술’이 생겨 자신의 육체를 두고

자유로이 영계로의 출입이 가능하게 되었는데,

그가 영계를 다녀올 때는 다른 사람의 출입을 금하고

자기 방에 틀어박혀 며칠씩 밥도 먹지 않았다고 하며,

이를 이상하게 여긴 하숙집 주인의 증언에 의하면

그 기간은 2∼3일에서 10일 정도였다고 한다.

스웨덴보그가 말하는 영의 세계를 크게 나누면

‘정령계, 영계, 지하의 영계(지옥계)’로 나뉜다.

또 영계와 지옥계는 각각 상중하의 세 단계 영계로 나뉘어,

정령계를 포함, 총 7개의 영계가 존재하고,

각각의 영계는 또 수없이 많은 영적 그룹(단체)으로 나뉘어져 있다.
 
정령계는 사람이 죽은 후 제일 먼저 가는 곳으로,

인간계와 영계(영靈으로서 영원한 삶을 누리는 곳)의 중간에 있는 세계이다.
 
정령계는 거대한 바위산과 빙산들이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분지 모양을 띄고 있는데

인간계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며,

산맥과 산맥 사이의 여러 곳에서 영계로 갈 수 있는 통로가 나있다.

그러나 이 통로는 정령들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으며,

영계로 옮겨 갈 준비가 끝났을 때에야 비로소 눈에 보이게 된다.
 
정령은 인간과 영의 중간적인 존재로,

투시, 상념의 교류 등 신기한 영적 능력을 제외하면,

의식 속에서는 인간과 조금도 다른 데가 없을 정도이다.

심지어 어떤 정령은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조차도 모른다.

스웨덴보그가 만난 많은 정령들은

스웨덴보그가 살아있는 육체를 이승에 둔 채

정령계를 방문한 ‘불가사의한 나그네’임을 알게 되면

“나는 죽은 것이 아니라 정령으로서 살아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아직 살아있는 가족들에게 전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전한다.
 
지옥은 어떤 세계인가.

스웨덴보그에 의하면 인간으로서의 죽음 이후,

정령으로 새 삶을 시작하는 초기의 정령들은

크나 큰 놀라움과 충격에 어찌할 바를 모르며 번민에 빠지게 된다고 한다.

그것은 그들이 생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영으로서의 삶과 영계의 모습’ 때문이다.

즉, 세상의 학자나 교회의 목사들이

인간의 본질과 영이라든가 영계의 일에 대해서

아무 것도 가르쳐 주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잘못된 생각을 심어주어

‘사후의 세계’를 너무나 무지한 채로 맞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장 단적인 예는 ‘천국과 지옥’에 관한 그의 기록이다.

스웨덴보그는 지옥은 종교의 가르침처럼

현세의 악업에 대한 응보로써 신에 의해 던져지는 것이 아니라

현세에서 물질욕과 색욕, 명예욕, 지배욕 등 세속적인 욕망에만 빠져,

참다운 영적 성숙을 극단적으로 경멸했던 자들이 간다는 것이다.

물론 악업을 저지른 자들은 그들 스스로 영계의 눈이 뜨여지지 못해

결국 모두 지옥계로 빠져들게 되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그들이 원하는 바에 의해서 스스로 지옥에 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 세상과 영계는 하나의 세계, 영계는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수천 킬로미터 밖이나, 수천 수만년 전의 영과도

그 영을 생각하는 순간, 그리고 마음의 창을 여는 순간,

바로 앞에서 얼굴을 맞대고 있는 영을 보게 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자연계에서 공기를 통해 ‘말’이나 ‘소리’가 전해지듯이,

영계에서는 영류라고 불리는 시공간을 초월한

에너지의 흐름(이것은 아마도 천지에 가득한 우주의 율려라 생각된다)을 타고

영상과 소리, 상념의 교류와 영의 이동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영은 저마다의 한계가 있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상념과 언어를 영상으로 보여주기도 하고,

생전의 모든 기록과 우주의 정보들을 그대로 불러올 수도 있다.

만약 누군가 자신의 미래를 보고자 한다면,

영의 세계에 그려져 있는 자신의 일생에 관한 그림폭(또는 책과 같은 것)의 내용을

다른 영을 통해 듣거나, 그것을 본 다른 영의 눈에 보이는 표상을 통해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참고) 스웨덴보그의 『나는 영계를 보고 왔다』(서음미디어, 2005년)
 
엠마누엘 스웨덴보그

스웨덴의 신비사상가이자 심령술의 선구자이다.

1688년 스웨덴 스톡홀름의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적부터 신비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었던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신이 이 소년의 입을 빌어서 말을 한다'는 소문이 퍼질 정도로 놀라운 언행을 보여줬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한 후 수학자, 과학자, 발명가로서의 큰 업적을 남겼고 한때 정계에서도 활약하였다.

그의 학문분야는 천문, 생리, 해부학 등 방대한 분야에 걸쳐 15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으며, 이러한 학문적 업적 이외에 그가 동시대에 끼친 영향은 온 유럽을 넘어 역사상 가장 불가사의한 인물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84세 삶 중, 후반 약 30년간은 모든 학문을 팽개치고 영의 세계와 교신하는 영매로서 그 자신이 직접 영계로 들어가서 보고 듣거나, 또는 영들과 직접 사귀어서 알게 된 지식을 바탕으로 영계의 진실을 알리는 영적 생애에 바쳐졌다.

 

갑자기 나타난 수메르문명

진실의 역사

갑자기 나타난 수메르문명

환국(桓國)의 12개 나라 가운데, 수밀이국과 우루국은 그동안 서양에서 최초의 문명족으로

알려져 있던 나라 이름이고, B.C 3,500년 전의 고대 메소포타미아(수메르) 문명을 일으킨 나라이다.

 
최근 120여년 동안의 고고학 발굴 결과, 중동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B.C 3,500년 경에

오늘의 서양 문명의 뿌리인 수메르 문명이 있었고, 이 문명을 건설한 수메르 민족은

영국학자 '크래머' 등의 발굴에 의하여 '머리가 검은 (Black Headed People)' 동방의 동아시아인들이

문명을 다가지고 들어와 수메르문명 세웠다는 것이 밝혀졌다.

 
수메르(Sumer) 문명의 진면목을 밝혀 주는 무수한 점토판들영국 대영박물관과 프랑스 루불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수메르인들은 검은 머리의 용모에 한국어(한글)와 같은 교착어인 수메르어를 사용했었다.

또한 "지구라트"라는 제천단과 그들이 남긴 유적들에서 우리 문화와 같은 문화의 흔적들이 뚜렷이 남아있다.

초가잠빌의 지구라트, 에람, B.C.3000년경 - 후에 이집트 문명에 전파되어 피라미드로 다시 나타난다.

이는 우주를 다스리시는 삼신상제님께 제를 올리는 제천의식을 위한 제단인 것이다.  
                                                   

수메르 문명은 다시 이집트 문명에게 영향을 주었고,

또한 고대 희랍 문화에 영향을 미쳤으며 로마제국을 거쳐 오늘날 서양 문명이 나온 것이다.

인더스 문명 또한 북방문명에서 기원했다고 하니, 환국(桓國)의 문화가 유입되어 인더스강 유역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근동의 고대 언어와 역사를 연구하는 시친Zecharia Sitchin은 동서 신화의 12신이 유래한 근원을

메소포타미아에서 꽃피웠던 수메르문명으로 지적한다.

수메르 신들 가운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신은 남자 여섯, 여자 여섯으로 정확히 12명이다.

그렇다면 수메르의 12신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수메르문명에 대해 서양 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아주 갑작스럽고, 전혀 앞선 문명 없이 독자적으로 발생하였다'말한다.

그래서 '수메르인들은 어디에서 왔고, 그 문명은 어떻게 생겨났는가?'라는 것이 수메르에 대한 가장 큰 의문이라 지적한다.

 

근동(지금의 이라크) 일대에서 발굴되는 토기의 연대를 비교한 결과,

수메르인은 이란 북쪽에 있는 카프카스 산맥 인근 지역에 정착하였다가

나중에 남쪽으로 메소포타미아 평원에 이주하여 문명의 꽃을 피운 것으로 밝혀졌다.

 

수메르의 점토판 기록에 따르면, 수메르인은 '안샨Anshan으로부터 넘어왔다'고 말한다.

수메르 말로 안An은 하늘, 샨shan은 산을 의미한다.

안샨의 한자식 표기, '천산'이 환국 문명의 중심이었던 천산天山과 동일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수메르의 창세 신화를 보면 수메르인은 후두부가 평평하고 머리카락이 검은 인종이다.

그들은 한국 사람들처럼 결혼 전에 함을 지는 풍습이 있었고, 동북아의 60갑자처럼 60진법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수메르어는 현대 언어들 가운데 한국어와 유사성이 가장 크다.

우리말과 같이 토씨(은, 는, 이, 가)로써 단어와 단어 사이를 연결하고,

주어+목적어+서술어 순서로 문장을 구성할 뿐만 아니라, 엄마·아빠를 비롯한 많은 단어들이 한글과 똑같거나 아주 유사하다.

그들의 철학과 사상 또한 동방문화와 많은 유사점을 보인다. 그들은 우주를 '안키Anki(천지)'라 불렀다.

“우주는 둥근 하늘, 안An과 평평한 땅, 키Ki로 이뤄져 있다”고 믿은 그들의 사상은

동양의 천지인 삼재론에 근거한 천원지방 사상과 다를 바 없다.

 

수메르인의 천지론은 대자연에 대해 깨친 가장 위대한 사고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동양 제왕문화에서 나타나는 천명天命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수메르 역대 왕의 이름을 기록한 『왕명록王名錄』의 1단 1행은

“왕권이 하늘에서 내려왔을 때 왕권은 에리두에 있었다”라고 말한다. 하늘로부터 왕권을 부여받는다는 것이다.

 

수메르인들은 특이하게 학교 선생을 '학교 아버지(school father)', 학생을 '학교 아들(school son)'이라 불렀다.

동양에서만 볼 수 있는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를 동일시하는 군사부 사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수메르인들의 점토판을 해독하여 그들의 생김새, 사회 제도, 풍습, 언어 등을 총체적으로 파악한 크레이머Samuel Kramer 박사는

5,500년 전에 수메르문명을 연 사람들의 정체에 대해 '동방에서 왔다'라고 결론지었다.

 

그 동방문명의 정체는환단고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1만여년 전 지금과 같은 기후가 되어 환국 문명이 생겨난 후, 약 6천년 전 다시 한 번 기후에 큰 변동이 생겨

환국 백성들은 더 따뜻한 곳을 찾아 대대적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때 환국의 서남쪽에 위치한 우루국과 수밀이국 사람들이

이란의 산악지대를 거쳐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남하하여 개척한 문명이 바로 수메르인 것이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바벨탑은 수메르인들이 건립한 지구랏트이며,

유대민족의 아버지 아브라함은 바로 이 수메르 문명권의 중심지인 우르(Ur)에서 수메르문화를 가지고 가나안으로 이주한 것이다.

 

수메르에서 갈려 나간 서양 문명

수메르 신화가 서양 신화의 근원인 것처럼 수메르문명은 서양 문명의 모체로 일컬어진다.

BCE 1500년경 지금의 이란 북쪽 카프카스 산맥 지역에 살던 고대 종족,

즉 초기 수메르인의 일부가 남쪽의 인도로 이주하였고, 또 다른 일부는 소아시아(지금의 터키)를 거쳐 그리스로 이주하였다.

이집트문명은 수메르보다 500년 후에 이루어진 것으로 이집트의 건축, 기술, 문자 등은 모두 수메르문명에서 유래하였다.

 

유대문명은 수메르인들이 강을 건너 가 개척한 것이다.

갈데아 우르에서 태어난 아브라함이 하란을 거쳐 가나안 지역으로 이주하려면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야 했다.

때문에 유대인들이 '강을 건너온 자(hebrew)'라 불리는 것이다.

 

『구약전서』에는 이집트인, 가나안인, 히타이트인, 아시리아인, 바빌로니아인 등 고대 중동의 주요 문명집단이 다 거론되지만, 수메르인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것은 수메르인이 자기네 조상인 까닭에 이방인들의 이름 속에 포함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명의 창세기』

 

수메르문명은 유럽으로도 전파되었다.

수메르 사람들이 인도와 그리스로 이주 할 때, 그 중 일부는 흑해를 돌아 러시아 평야지역을 거쳐 유럽으로 이동하였다.

 

인도, 그리스, 이집트, 유대, 유럽 문명 등의 근원으로 밝혀진 수메르!

서양 학자들은 아주 갑작스럽게 나타난 수메르문명을 인류 최고最古의 문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환단고기』의 기록과 고고학의 발견을 종합하면, 수메르는 환국의 열 두 나라 중 수밀이국과 결코 무관한 문명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환국의 열 두 나라(12수 의미)

진실의 역사

환국의 열 두 나라

환국은 모두 아홉 족속[九桓]으로 나뉘었고, 이 9환족은 열 두 나라를 이루고 살았다.

12환국의 이름은 이러하다.

 

『단군세기』를 보면 양운국, 일군국, 수밀이국, 구다천국 등은 고조선의 21세, 27세 단군 때까지 나라 이름으로 계속 사용되었다.

고조선 시대의 제후국으로 기록되어 있는 이 네 나라의 이름은 12환국에서 유래한 것이다.

 

중국 문헌에서도 12환국의 이름을 볼 수 있다.

예컨대 진서晉書』「 사이전四夷傳」에 비리국, 양운국, 구막한국, 일군국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이들은 2만~5만 호戶정도를 가진 소국으로 시베리아 등지에 위치해 있었다고 한다.

당서唐書』「 북적전北狄傳」에는 우루국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삼국사기』에는 구다천국과 매구여국이 구다국句茶國과 매구곡賣溝谷이란 이름으로 남아 있다.

오늘날 전 세계 모든 나라의 시원이라 할 수 있는 환국이 열 두 나라로 이루어진 배경에는 심오한 우주론적 원리가 있다.

동양의 천지(음양)론에 의하면 하늘의 질서는 10수[十干]로 펼쳐지고 땅의 질서는 12수[十二支]로 펼쳐지므로,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는 12수를 한 주기로 하여 일어난다.

그래서 삼신상제님의 나라가 땅에 이식된 첫 나라인 환국도 열 두 나라로써 그 역사를 만들어 나간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12수는 동서양의 여러 고대신화에 나오는 신의 숫자와 일치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를 비롯한 올림포스 신전의 신은 언제나 열둘이었다.

새로운 한 명의 신이 추가되면 기존의 한 신이 빠지는 방법으로 항상 12수가 유지되었다.

인도의 고대 경전『 베다』에 나오는 중요한 신도 12명이다.

뿐만 아니라 인도 신들의 아내, 자식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의 복사판이나 다름없다.

 

그리스인과 인도인이 갈려 나간 근원으로 추정되는 소아시아 지역의 히타이트족도 12신을 모셨다.

고대 히타이트의 수도 외곽(현재 야질리카야Yazilikaya라 불리는 곳)에서 나온

반원형으로 된 석조 조각물에 12명씩 짝을 지어 행진하는 신이 새겨져 있다.

 

이집트에서도 위대한 신들은 120명으로 구성되어 있어 최고의 신, 라(Ra, 창조자)가 12명으로 된 신들의 회합을 주관한다.

그리스, 인도, 소아시아, 이집트와 같은 동서양 고대문명 발상지의 신화에 등장하는 신이

열 셋도 열 하나도 아닌 열 두 명이었다는 것은 인류 문명이 하나의 시원처에서 뻗어 나왔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다.

 

환국이 12분국으로 구성된 것은 땅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원리인 12지지(地支)의 이치에 따른다.

환국의 12분국 중 서양문명을 일으킨 12번째의 <수밀이국>을 살펴보면

이 분국이 바로 서양사람들이 인류문명의 뿌리로 여기는 수메르(Sumer)문명국이다.

 
서양문명의 시원으로 여겨지는 수메르 제국이 환국 12분국중의 하나인 '수밀이국'의 이주민에 의해 건설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면 천산(파미르고원)과 바이칼호 근처에 있던 수밀이국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메소포타미아 지방으로 이주하게 되었을까?

 
이것은 환국말기인 약 6천년 전에 인구가 증가하고 기상이변으로 시베리아 지역이 점점 추워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12환국의 한 갈래가 성지 태백산(백두산)으로 이동하여

환국의 정통을 지켜 내려온 것(환웅의 배달국)이 바로 오늘날의 한민족이다.

인류문명의 시원국가 환국

진실의 역사

인류문명의 시원국가 환국

사람은 누구나 어느 종교를 믿고 어떤 분야를 연구하고 일을 하든지 인류의 기원에 대한 호기심과 의문을 안고 살아간다.

 

「환단고기」<삼성기>하편에는 현인류의 조상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인류의 조상을 나반(那般)이라 한다.

처음 아만(阿曼)과 서로 만난 곳은 아이시타라고 하는데, 꿈에 천신의 가르침을 받아서

스스로 혼례를 이루었으니 구환(九桓)의 무리는 모두가 그의 후손이다."

 

현생 인류의 아버지 어머니, '나반'과 '아만'

광명족의 환국의 9환족은 바로 인류의 시조인 나반과 아만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그 인류의 시조인 한 남자(나반)와 한 여자(아만)가 바이칼호에서 서로 떨어져 살다가

꿈에 천신의 가르침(神敎)을 받고 바이칼호를 건너 바이칼호 부근 아이시타에서 만나 결혼했다는 것이다.

나반과 아만 이 두분이야말로 유대민족이 말하는 약6천년전의 아담과 이브보다도 수천년이나 앞선

현 인류의 진정한 시조인 것이다.


     알타이어 전문 연구가에 의하면,  “아빠”, “엄마” 의 어원이 
     바로 나반과 아만이라고 한다.    
     나반-> 나바이-> 아바이-> 아빠
     아만-> 아마이-> 어마이-> 엄마            - 중앙일보 기재-
 

최초의 인류는 '루시'라 이름 붙인 화석인류가 발견됨으로써 밝혀진 약 350만년 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이다.

그 후 약 20만년 전 불을 사용할 줄 알고, 사냥을 하며, 사회를 이루어 서로 보살피며 살았던

'직립인(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이 등장하였다.

 

이들은 우리가 인간다운 특징이라 생각하는 것을 처음으로 가진 존재였다.

그 다음으로 출현한 인류는 네안데르탈인이라고도 불리는 '슬기 인간(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언어를 사용하였고, 처음으로 배를 만들어 바다를 건널 줄도 알았다.

 

그러다가 지금으로부터 약 5만년 전에 오늘날의 인류인

'슬기 슬기 인간(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 나타나 지구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

프랑스 아키텐주州의 크로마뇽 동굴에서 맨 처음 발견되어 크로마뇽인이라고도 불리는 이들이 현생 인류의 직접적인 조상이다.

 

우주1년과 생멸을 같이하는 인류 문명사

동양의 '우주 1년 선후천 개벽론'에 의하면 인간은 우주 1년을 한 주기로 하여 출현하고 소멸한다.

다시 말해서 약 13만년을 주기로 순환하는 우주 1년에서 인간은 우주년의 봄에 태어나 여름, 가을 동안 번성하다가

우주년의 겨울, 즉 빙하기 멸절한다.

때문에 크로마뇽인 이전의 인간은 지나간 우주년의 인간이고,

크로마뇽인으로부터 시작된 현생 인류는 약 5만년 전 이번 우주년의 봄개벽 때 생겨난 것이다.

 

그렇다면환단고기』는 오늘날 인류의 탄생에 대해 어떻게 전하고 있는가?

현 인류의 역사는 나반那般과 아만阿曼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두 분은 북극수北極水의 조화로 생겨났다고 전한다.

북극수는 천도의 변화 운동이 시작되는 북극에서 생겨난 생명 창조의 물이다.

삼신의 조화 손길로 북극수가 인간을 낳는 생명의 씨가 되어 인류의 첫 조상을 낳은 것이다. 태백일사』

 

북극수는 '인류 탄생의 바다'라 불리는 바이칼호를 가리킨다.

바이칼호는 주위로부터 360여개의 물줄기가 흘러 들어와 생겼는데, 물의 성분이 어머니의 양수와 비슷하다고 한다.

바이칼호는 인간을 탄생시킨 지구의 자궁이다.

북극수의 조화로 생겨난 두 분은 꿈에 삼신상제님의 가르침을 받고 스스로 혼례를 올려 인류의 어버이가 되었다.

그런데 알타이 산맥과 바이칼호 주변에서 2만5천~4만5천년 전에 인간이 살았던 흔적이 발견되었다.

『환단고기』의 기록에 비추어, 그것은 나반과 아만의 후손이 살았던 흔적으로 볼 수 있다.

 

환단고기(桓檀古記)의 기록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9,200년 전에 한민족이 건국한 세계 최초의 국가인 환국은 바이칼호의 동쪽

천산(天山.파나류산)을 수도로 하는 대제국이었는데 남북이 5만리, 동서가 2만리의 광대한 국토를

다스렸으며 환국의 백성들은 천산에서 천해에 이르는 넓은 땅에 흩어져 살면서 문명을 개척하였다.

 

그들은 점차 분파하여 아홉 족속이 이루는 열두 개의 나라로 나뉘어졌는데,

이 12분국을 총칭하여 나라 이름을 환국(桓國)이라 하였다.

 

오환건국吾桓建國이 최고最古라

 

이번 우주년의 봄이 시작되고도 계속 남아 있던 얼음 층이 약 1만1천년 전에

북쪽으로 완전히 물러가면서 오늘날과 같이 따뜻한 기후가 되었다.

이를 기점으로 인류가 다시 번성하기 시작하여 약 9천년 전에 형성된 새로운 문명 집단이 바로 ‘환족桓族’이다.

환족은 나반과 아만의 후손으로, 모두 아홉 종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삼성기 하』

 

환족은 중앙아시아의 천산(일명 파내류산)을 중심으로 인류 최초의 국가인 환국을 세웠다.

현 인류가 처음 화생한 곳은 바이칼호이지만, 첫 문명을 일군 곳은 그 보다 아래쪽인 중앙아시아 동쪽 지역이었다.

환국은 천산에서 동쪽으로 뻗어나가 그 영토가 동서 2만여 리, 남북 5만 리에 달하였다.

 

중앙아시아에서 시베리아, 만주에 이르는 방대한 영역이었다.

BCE 7000년경 천산을 터전으로 한 '우리 환족의 나라 세움[吾桓建國]',

이것을 『삼성기 상』은 현 인류의 건국사에서 '가장 오래된[最古]'사건이라 선언한다.

그런데 인류의 첫 나라 이름이 왜 환국이었을까?

 

환국의 환은 '밝을 환桓'자로 광명을 상징한다.

특히 '하늘에서 내려오는 환하게 빛나는 광명', 천광명天光明을 상징한다.

환국 사람들은 태양을 광명이 모이고 삼신이 머무는 곳으로 여겼다.

광명은 곧 삼신상제님의 신성과 지혜를 상징한다.

이로 볼 때, 환국은 다름 아닌 천상 삼신상제님의 나라가 인간 세상에 이식된 첫 나라이다.

 

환은 단지 나라 이름으로 그치지 않았다.

당시 사람들은 모두 스스로를 '환'이라 불렀다.

당시의 인간은 삼신상제님의 신성을 그대로 발현하며 천지와 같이 환하게 빛나는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환을 다스리는 사람을 인仁이라 불렀다. 그래서 환국의 통치자를 환인桓仁이라 했다.

 

'어질 인仁'을 써서 환인이라 부른것은 사람을 구제하고 세상을 다스림에 있어 반드시 어진 마음으로 하였기 때문이었다.

당시 환인은 오가五加 부족장 중에서 백성들의 추대를 받아 선출되었다.

그것은 9환족이 모두 대동단결하여 한마음이 되게 하기 위함이었다.

환인은 정성과 믿음, 공경과 근면, 효도와 순종, 청렴과 의리, 겸손과 화평이라는 오훈五訓의 가르침으로 백성을 다스렸다.

환국의 초대 통치자는 안파견安巴堅 환인천제였다.

안파견은 '하늘을 계승하여 부권父權을 세운다『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는 뜻으로 '아버지'를 뜻한다.

안파견 환인 이후 환국은 7세 환인천제까지 계승되었으며 총 3,301년(BCE 7197~BCE 3897)동안 존속하였다.

 

 

의학의 아버지로 불린 그리스의 의사 히포크라테스

힐링이 필요해

'의학의 아버지로' 불린 그리스의 의사 히포크라테스

 

고대 그리스 페리클레스 시대의 의사로서, 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며 의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이다.

그는 미신이나 종교 같은 것을 철저히 배제하고 사실적인 경험이나 관찰을 토대로 의학의 체계를 쌓았다.

인체와 정신에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고 훌륭한 인격까지 겸비했다고 한다.

의술에 대한 그의 고결한 선언문은 오늘날까지도 전해져 수많은 의사들에게 훌륭한 귀감이 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키는 작지만 위대한 의사라고 언급했다.

 

"히포크라테스의 선서"

나는 전 생애를 인류를 위한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나는 은사에 대하여 존경과 감사를 드리겠습니다.

나는 양심과 품위를 지닌 채 의술을 베풀겠습니다.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습니다.

나는 환자로부터 알게 된 모든 비밀을 지키겠습니다.

나는 의업의 고귀한 전통과 명예를 유지하겠습니다.

나는 동업자를 형제처럼 여기겠습니다.

나는 인종, 종교, 정당, 지위를 초월하여 의무를 다하겠습니다.

나는 인간의 생명을 잉태된 때부터 더없이 존중하겠습니다.

나는 비록 위협을 당할지라도 지식을 잘못된 곳에 쓰지 않겠습니다.

이상의 서약을 나의 자유의사로, 나의 명예를 받들어 하노라.

 

- 히포크라테스의 명언 -

지나친 모든 것은 자연을 거스르는 행위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귀중한 것은 건강이다.

 

웃음이야말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최고의 명약이다. 최고의 운동은 걷기이고 최고의 양약은 웃음이다.

 

우리가 먹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이 된다.

 

음식이란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음식으로 고치지 못하는 병은 의사도 못 고친다.

 

적지도 많지도 않은 음식과 운동은 건강을 위한 가장 훌륭한 처방이다.

 

우리 안에 있는 자연적인 힘이야말로 모든 병을 고치는 진정한 치료제이다.

 

현명한 자는 건강을 인간의 가장 큰 축복으로 여기고 아플 땐 병으로부터 혜택을 얻어낼 방법을 스스로 생각하여 배워야 한다.

 

허송세월하며 할 일이 없는 사람은 악惡으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기울어진다.

 

지구자기장이 변하고 있다

세상이 궁금해

[과학] 지구자기장이 변하고 있다.

 

자기장은 영구자석 또는 전류가 흐르는 도선에 의해 만들어진다.

자석의 경우 N극과 S극은 같은 극끼리는 밀어내고 다른 극끼리는 잡아당긴다.

자기장은 N극에서 S극으로 향하는데, 자석 주위에 쇳가루를 뿌리면 그 방향을 볼 수 있다.


지구도 하나의 거대한 자석으로 간주되며, 나침반을 통해 N극 방향(북극부근)을 알 수 있다.

과학공상영화 '코어'에서는 지구자기장이 갑자기 사라져 비둘기가 이상행동을 하고,

심장박동기를 단 사람들이 쓰러지는 등 각종 재난이 발생한다.


과연 지구자기장이 왜 생성되며 어떻게 사라질 수 있을까.

사실 우리가 볼 수 없는 지구 땅 속은 우주의 은하계보다도 더 낯설고 이해되지 않고 있는 세상이다.

하지만 가장 유력한 후보인 '다이나모 이론'에 의하면,

지구 내부의 철의 바다로 이루어진 외핵이 액체상태이며,

그 유체운동이 전류를 만들고 전자기 유도에 의하여 지구자기장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사람들 대부분이 인지하지 못하지만 지구자기장은 지난 20억년 동안 존재해 왔다.

지구의 든든한 자기보호막은 태양풍과 우주방사선의 날씨 변화로부터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

보호막의 존재는 극지점에서만 볼 수 있는 장관인 오로라로 나타난다.

그런데 최근의 지질학적 연구는 이 지구자기장이 지난 몇백년간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지구자석의 방향이 약 78만년 전에 반대방향으로 역전되었고,

이 역전현상이 그 전에는 더 자주 일어났다는 것이다.

최근의 컴퓨터 실험 연구는 흥미롭게도 자기장 역전이 일어나기 전에 그 세기가 약해지며

자기장의 부분적 이상이 발생한다는 것을 보였다.

이 결과는 항해일지에 기록된 지난 300년간의 진북과 자북의 데이터에 기초한 지구자기장의 빠른 감소와

남대서양 근처의 자기장 이상 결과와도 일치하여, 지구자기장 역전의 시작에 대한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자기장 역전은 지구자기장의 소멸 등 급격한 변동을 수반하며,

우리나라에서도 밤하늘의 오로라를 감상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그러나 지구자기장 문제는 20세기 말 한 대중과학잡지가 소개한

소행성 충돌, 은하계의 감마선 폭발, 블랙홀의 접근과 함께 인류멸망의 4대 시나리오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지구자기장 변동으로

생명체의 우주 방사선 노출로 인한 사망률 증가, 통신 두절, 대규모 정전 사고, 정밀전자장치 이상, 인공위성과 항법장치의 무력화가 야기될 것이다.

또 지구자기장을 활용하는 비둘기, 철새, 바다거북, 연어, 이동성 동물의 삶에 큰 혼란을 줄 것이다.

많은 진전에도 불구하고 지구자기장은 아직 미스터리로 남아 있으며, 그 예측에 대한 해답은 지구의 핵에 있다.

액체 상태의 핵이 굳어가며 지구자기장이 감소한다고 추측하고 있지만, 아직 직접적 검증이 되지 않고 있다.

지구자기장의 예측과 그 변동에 대한 대응은 오랫동안 인류의 숙제로 남아 있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