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만큼 보인다

우주원리의 세계는 음양

세상이 궁금해

음양 陰陽

우주원리의 세계는 한마디로 음양陰陽이라고 합니다.

음(陰)과 양(陽)은 상대적인 두 개의 힘으로 이 세상의 삼라만상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습니다. 
 
언덕을 통해 이 상황을 상세하게 관찰해 봅시다.

음(陰)과 양(陽)이라는 말의 본뜻은 언덕에 생긴 응달과 양달이라는 말입니다. 응달과 양달이 어떻게 생기는지 살펴봅시다.

하루 해가 지고 밤이 되면 천지가 어둡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편의상, 별빛과 달빛도 없다고 가정합시다.

 

이런 상태에서는 존재함과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아무런 판단이 설 수 없습니다.

없는 것 같기도 한데 역시 없는 것도 아니며 적막무짐(寂寞無朕)한 상태로 어둠 속에 묻혀 있습니다.  

이런 상태를 무극(無極)이라 합니다.
 
영원한 변함이 없을 것 같던 어둠 속에서도 시간은 흘러 동쪽에서 해가 솟아오르는 순간,

텅 비어 있던 천지가 밝은 햇빛 아래 갑자기 드러나게 됩니다.

 
태초에 빛이 생겨 밝음과 어둠이 나뉘어지던 상황이 어렴풋이 그려지지 않습니까?

밝음과 어둠은 순간적으로 나뉘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의 깊게 볼 것은 태양이 떠올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언덕입니다.

빛이 비치자마자 언덕에는 양달과 응달이 동시에 생겨났습니다.

양달이 먼저다 응달이 먼저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음양은 순식간에 함께 태어난 것입니다.

 
음이 있는 곳은 항상 양이 따라가게 됩니다.

거꾸로 양이 있는 곳은 언제나 음이 따라가게 됩니다.

음과 양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행가 가사처럼 '빛과 그리고 그림자'입니다.

 

음(陰)과 양(陽)이라는 말뜻이 좁게는 응달과 양달이지만,

위와 같은 특성 때문에 동양의 자연주의 사유 방법의 기초 개념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음이 생길 때 동시에 양이 존재하게 되는 음양의 특성을 '음양(陰陽)의 상대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언덕이 빛에 의해 세상에 드러난 후 응달인 음과 양달인 양이 뚜렷하게 나뉘어진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의 시각을 바꾸어 언덕의 입장에서 생각해 봅시다.

비록 음양의 작용에 의해 밝은 쪽과 어두운 쪽으로 나뉘어졌지만 언덕은 둘입니까? 하나입니까?

 

양달과 응달의 나뉘어짐과 관계없이 음양이 실현되는 장(場)인 언덕은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가 바로 태극(太極)이며, 음양(陰陽)은 하나 속에 들어 있는 둘입니다.

이러한 음양(陰陽)의 특성을 '음양(陰陽)의 일원성'이라 합니다.

그런데, 위의 두 그림에서 차이가 있지 않나요?

언덕은 응달과 양달이 직선으로 나뉘었는데 태극은 응달과 양달이 곡선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 숨어 있습니다. 바로 시간입니다.

해는 동에서 떠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정하게 서쪽으로 넘어갑니다.

그 과정에서 언덕에 비치는 응달과 양달의 비율은 한쪽이 많아지면 다른 한쪽이 적어지고,

또한 반대편이 많아지면 다른 반대편이 적어지는 현상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 결과 음양은 (A)의 도형이 아니고 (B)의 도형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음과 양을 나누는 선이 곡선을 이루는 것은 시간이 직선이 아닌 곡선 운동을 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언덕에 시간의 개념이 들어서면서 드디어 음양은 생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응달과 양달이 균등하게 고정되어 있지 않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세력권의 판도가 달라지고 음양의 투쟁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시간은 태양을 동(東)에서 서(西)로 움직이게 하고 태양 빛은 언덕을 비추면서 시간에 따라 응달과 양달의 세력 변화를 일으킵니다.

변화가 일어나고 움직인다는 것은, 곧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시간에 의해 부여된 음양의 이러한 특성을 '음양의 역동성(力動性)'이라 합니다.

 

태극도 이면에 시간의 흐름을 뜻하는 곡선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음양은 항상 변화가 일어나고 또 살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