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만큼 보인다

동학에서 전한 상제님 강세 소식⑰

생존의 비밀

동학東學에서 전한 상제님 강세 소식

 

동아시아에 서구 문물이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동서 문명이 본격적으로 충돌하던 19세기, 동방에 위치한 조선왕조는 안으로 무능한 조정과 벼슬아치들의 횡포, 잦은 자연 재해, 그리고 밖으로는 기독교를 앞세운 서양 제국주의 세력의 위협 때문에 크나큰 위기를 맞고 있었다.

 

이렇듯 암울한 시대에 동방의 조선 경상도 땅 몰락한 선비 집안에서 한 인물이 태어났다.

이분이 바로 수운 최제우이다.

수운은 어려서부터 세상에 아무런 희망이 없음에 방황하다가, 이 시대 민중에게 빛을 열어 주는 ‘새로운 도를 일으키겠다’는 서원을 세웠다.

구도 생활에 매진하던 수운은 1859년 10월에 다시 발심을 하고 경주 용담정에 들어가면서 ‘천주를 친견하기 전에는 세상에 나서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생사를 걸고 기도에 정진하였다.

 

이듬해 37세 되던 1860년 음력 4월 5일, 날마다 세 번씩 청수를 올리며 일심으로 기도하던 수운은 마침내 지존하신 천주님으로부터 성령으로 도통과 천명天命을 받았다.

수운이 기도를 올린 천주님은 누구신가?

‘천주’는 ‘하늘의 주인’ 이란 뜻이다.

수운의 기도를 받으신 그 천주님이 성령으로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두려워 말고 겁내지 말라. 세상 사람들이 나를 상제上帝라 이르거늘 너는 어찌 상제를 모르느냐 .曰 勿懼勿恐하라. 世人이 上帝어늘 汝不知上帝耶아.(『동경대전』 「포덕문」)

 

천주님이 “나는 상제다”라고 하셨다.
‘나는 예로부터 세상에서 받들어 온 상제다.’


이것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주, 천지의 주인, 온 우주의 통치자가 상제다’, ‘내가 바로 그 상제다’라는 말씀이다.

서양 기독교에서 모시는 천주님과 예로부터 동방 문화에서 하나님으로 불러 온 상제님이 같은 분이라는 것이다.

하늘도 하나요, 땅도 하나다.

그렇듯이 ‘천지의 주인’ 은 한 분’ 이며, 그분이 상제님이라는 말씀이다.

 

동서양 성자들이 말하는 하나님이 만일 서로 다른 분이라면 인류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

각기 다른 교리로 다른 구원의 법방을 고집하고 있는데 어떻게 인류 보편의 구원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이때 상제님은 “너는 어찌 상제를 모르느냐?” 고 수운을 꾸짖으셨다.

이것은 비단 수운뿐만이 아니라, 진리의 까막눈이 되어 상제님이 천지의 원 주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지상의 모든 인간을 꾸짖으시는 말씀일 것이다.

 

수운이 전한 구원의 최종 결론은 다음의 '한 소식’에 들어 있다.

•유도 불도 누천년에 운이 역시 다했던가(『용담유사』 「교훈가」)
•무극대도 닦아내니 ‘오만 년지 운수’ 로다.(『용담유사』「용담가」)

 

본래 종교의 주요 기능 가운데 하나가 인간의 마음과 영혼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다.

지난날 기성 종교들도 나름대로 인류의 삶과 영적 구원에 헌신해 왔다.

그러나 그들의 가르침은 3년 괴질의 병란 개벽으로 인류 역사가 완전히 새롭게 된다는 것은 전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가르침으로는 앞으로 올 질병대란을 다스릴 수 없다는 것이다.

수운은 이 괴질과 함께 오는 ‘다시 개벽’ 이 오직 무극대도로써만 극복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무극대도란 조화가 무궁한 천주님, 즉 상제님의 도법을 말한다.

수운의 메시지에는 ‘상제님의 도법을 잘 닦으면 구원을 받아 5만 년 새 운수 속에서 살 수 있다’는 희망의 소식이 담겨있다.

 

그러면 상제님께서 수운에게 내려 주신 구원의 가르침은 무엇이었을까?

상제님은 수운에게 ‘주문呪文을 받으라! 천하창생을 이것으로 가르쳐라!, 하고 명하시며 시천주侍天主 주문을 내려 주셨다.

 

상제님의 구원의 가르침은 이 ‘시천주’에 핵심이 들어 있다.

‘시천주’의 시侍는 ‘모실 시’ 자로서 ‘시천주’ 란 ‘인간으로 오시는 천지의 주인, 곧 상제님을 모셔야 한다’ 는 뜻이다.

상제님이 인간으로 오신다!

바로 ‘성자들을 내려 보낸 우주의 원 주인[천주]이 오신다, 그분을 잘 모시면 질병대란에서 구원을 받는다’ 는 것이다.

 

동방 문화에서는 그 하늘의 주인, 우주의 통치자, 우주의 경영자, 우주의 주권자, 그분을 한자어로 상제上帝님이라고 했다.

불교에서 말한 도솔천의 천주, 기독교에서 말한 아버지 하나님, 도교와 유교에서 말한 상제님, 이분을 아울러 한마디로 상제님이라고 한 것이다.

 

앞으로 상제님께서 직접 인간으로 오시는, 온 인류가 천주를 모시는 새 문명 시대가 열린다는 것, 이것이 ‘시천주’의 핵심 메시지이다.
그리고 ‘시천주조화정’은 동학이 인류에게 전한 가장 위대한 희망과 구원의 소식이다.

이것은 ‘지극한 정성을 잠시라도 잃지 않고 인간으로 오시는 천주님을 잘 모시면 조화가 열린다(내린다)’는 뜻이다.


‘조화가 열린다’는 것은 첫째, 전 인류를 쓸어 내는 대병란이 세계를 덮치면서 동시에 새 세상이 열리는 개벽 상황에서 상제님의 조화권을 전수 받아 구원올 받는다는 것이다.

둘째, 이 세상진리에 대한 의혹이 완전히 풀린다, 곧 경험을 통해서 얻어지는 세상의 지식[상대지,relative knowledge]을 넘어서서 모든 것을 다 아는 만사지萬事知[절대지,absolute knowledge]의 은혜를 받는다는 것이다.

만사지는 나와 우주가 하나가 됨으로써 아는 하나님의 지식이다.

이것이 바로 동학이 선언한 본래 메시지이다.

 

그런데 3대 교주 손병희에 이르러 동학이 천도교天道敎로 바뀌면서 ‘시천주(인간으로 오시는 천주님을 모셔라!)’ 는 없어지고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는 인내천이 자리하게 되었다.

이렇게 동방 땅에 인간으로 오시는 천지의 참 주인, 상제님을 극진히 모셔야한다는 ‘시천주’의 주제가 사라져서 결국 그 주인공인 상제님을 잃어버리고 동학의 본래 사명도 왜곡되어 버렸다.

 

이러한 성인들의 본래 천주님에 대한 깨달음의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스승보다 깨달음이 약한 후세의 제자들과 성직자들에 의해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히 역사속에서 왜곡되어 전해졌다.

기독교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주의 날이 밤의 도적같이 임할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 2절)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계시록3:3)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베드로후서3장10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7:21-23)

 

마침내 동방의 조선에서 동학을 창도한 최제우에 의해 천주님의 조선 땅 강세가 선포되었다.

그리고 1871년 증산상제님의 강세로 그 성약이 이루어졌다.

2천여 년 전 예수와 사도 요한에 의해서도 같은 메시지가 선포되었다.

시대를 달리한 동서양의 이 두 사건은 상제님의 강세에 의해 결실을 보게 된다. 『생존의 비밀』<17>

동학에서 전하는 괴질⑨

생존의 비밀

동학에서 전하는 3년 괴질과 개벽

 

동학을 창시한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는 인류사의 향방을 바꾸어 놓을 미래의 괴질병, 즉 오늘의 인류가 안고 있는 크고 작은 병란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이름도 알 수 없는 천지에서 죽이는 괴질병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아동방 3년 괴질’ 죽을 염려 있을소냐. (『웅담유사』 「권학가」)
•십이제국 괴질 운수’ ‘다시 개벽’ 아닐런가. (『용담유사』「몽중노소문답가」)


여기서 수운이 전한 내용은 첫째, 우리 동방땅에서 3년 괴질이 일어난다.

둘째, 십이제국이 모두 괴질 운수에 들어섰다.

셋째, 이 괴질 운수가 바로‘ 다시 개벽’ 이라는 것이다.

 

십이제국은 이 지구상의 모든 나라, 전 세계를 가리킨다.

그리하여 ‘십이제국 괴질 운수’ 란 전 세계가 괴질 운수에 들었다는 말이므로, 자연 법칙에 따라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괴질이 지구촌 전역을 휩쓴다는 뜻이다.

 

불교에서 말한 우주의 별자리가 바뀌는 거대한 변화 속에서 오는 질병겁, 기독교에서 말한 전쟁과 함께 오는 역병, 도교에서 말한 ‘천도의 이법’으로 천생천살로 일어나는 병란, 이것이 전 인류가 피할 수 없는 질병대란 과정인 것이다.

 

3년 괴질이 자연의 법칙으로 동방 땅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를 휩쓸며 새 세상을 여는 개벽으로 몰고 간다!

괴질 대란을 통해서 새 세계가 열림과 동시에 인간과 문명이 다시 태어난다!

괴질병으로 지난날의 정치 경제 문화 역사 등, 모든 것이 마무리되고 다시 새롭게 시작된다!

그러면서 수운은 이 개벽을 다시 일어나는 것이라 했다.

 

즉 장구한 대자연의 역사에서 처음 있는 개벽이 아니라 이전에도 있었던 개벽이라는 말이다.

수운은 이를 또 ‘천운이 돌렸다’ 라고도 표현하였다.

 

•천운이 돌렸으니 근심 말고 돌아가서 윤회시輪廻時運 구경하소. (『용담유사』「몽중노소문답가」)

‘천운이 돌렸다’는 것은 ‘천지의 운행 궤도와 그 질서가 바뀐다’는 것이다.

 

이렇듯 수운은 모든 성자와 영능력자들이 전한, 앞으로 지금까지 인류사를 괴롭혀 온 질병과는 성격이 전혀 다른 3년 괴질이 일어나며, 그로 인해 인류가 처넘어갈때 다시 개벽이 온다는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수운의 메시지에도 한계가 있다.

개벽에 대해 구체적인 가르침을 전하지 못한 것이다.

즉, 개벽이 어떻게 오며, 왜 괴질 운수가 열리는 것인지를 정확하게 밝히지 못했다.

 

어찌 되었든 동서양 성자들과 영능력자들은 한결같이 다가올 대병란을 예고하였다.

그런데다가 최근 의학 전문가들은 머지않아 살인마와 같은 강력한 질병이 창궐하리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경고하고 있다.

바이러스는 휴게기에 들어서 있을 때 더욱 무서운 공격을 준비한다는 것이다.

 

병든 대자연과 인간 사회의 병폐, 인류가 처한 현실 등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볼 때, 괴질이 닥칠 것이라는 공습경보는 이미 당신과 우리 모두에게 내려져 있는 것이다.

“최후까지 살아남는 사람은 가장 힘 센 사람이나 영리한 사람이 아니라 변화에 가장 민감한 사람이다”라는 다윈의 말이 있다.

 

앞으로 ‘다시 개벽’으로 닥쳐올 인간과 괴질과의 전면전, 이것은 어쩌면 준비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생사의 갈림길이 될지도 모른다.

당신은, 그리고 우리는 그 전쟁에 얼마나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는가?

우리에게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 줄 ‘3년 괴질병’과 ‘다시 개벽’의 실체는 무엇이며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그 모든 비밀을 푸는 진리열쇠는 무엇인가.

 

그리고 시대를 초월한 동서의 영지자들의 병난 메시지를 들어보자.

◉시대를 초월한 영지자들의 병란 메시지

•노스트라다무스… 그들의 거대한 도시는 치명적인 질병으로 오염되리라 . (『백시선』 9:55)


•스칼리온 대재난이 절정에 달하는 시기가 되면 새로운 질병과 갑 작스런 전염병이 지구를 휩쓸 것이다. (『지구변화 –오스트레일리아』 1992.12.17.)


•몽고메리… 지축이동 전에는 … 화산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그 다음 에는 악성 전염병이 번지게 될 것이다. (『우리들 사이의 이방인』)


•미타르 타라빅… 전 세계에 이상한 병이 돌지만 아무도 치료약을 만들지 못할 것이다. (Nexus Magazine)


•『격암유록』… 이름 없는 하늘의 질병으로 아침에 살아있던 사람도 저녁 에는 죽어 있으니 열 가구에 한 집이나 살아날까.


•『시빌라탁선』… 그날에는 칼(전쟁)과 비참(괴질)이 온다.


•『정감록』… 나를 죽이는 자가 누구인가. 작은 머리에 다리가 없는 소두무족인데 이것이 천상 신도의 신명인 것을 모른다.


•『춘산채지가』… 혈기 믿는 저 사람아 허화난동虛火亂動 조심하고 척신 난동隻神亂動 되었으니 척신隻神 받아 넘어 간다.

 

마지막으로 병난이 오는 근원적 이유와 천지대세에 대한 증산상제님의 말씀을 살펴본다.
•“장차 병란(兵亂)과 병란(病亂)이 동시에 터지느니라.
전쟁이 일어나면서 바로 병이 온다. 전쟁은 병이라야 막아 내느니라.
그 때는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어 이기고 지는 쪽 없이 멸망하리라.(道典5:415)

 

“병란(兵亂)과 병란(病亂)이 함께 오느니라.
동서양 싸움을 붙여 기울어진 판을 바로잡으려 하였으나 워낙 짝이 틀려 겨루기 어려우므로 병(病)으로써 판을 고르게 되느니라.
전쟁이 나면 무명악질(無名惡疾)이 발생하리니 수화병침(水火竝侵)이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난은 병란(病亂)이 크니라."(道典7:34)

 

•“선천의 모든 악업(惡業)과 신명들의 원한과 보복이 천하의 병을 빚어내어 괴질이 되느니라. 봄과 여름에는 큰 병이 없다가 가을에 접어드는 환절기(換節期)가 되면 봄여름의 죄업에 대한 인과응보가 큰 병세(病勢)를 불러일으키느니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천지대운이 이제서야 큰 가을의 때를 맞이하였느니라. 천지의 만물 농사가 가을 운수를 맞이하여, 선천의 모든 악업이 추운(秋運) 아래에서 큰 병을 일으키고 천하의 큰 난리를 빚어내는 것이니,
큰 난리가 있은 뒤에 큰 병이 일어나서 전 세계를 휩쓸게 되면 피할 방도가 없고 어떤 약으로도 고칠 수가 없느니라.”(道典7:38) 『생존의 비밀』<9>

동학-신교문화⑦

진실의 역사

신교神敎 문화

 

다시 부활한 상제 문화, 동학

근대 역사는 서양의 제국주의가 총칼로서 동양의 약소국들을 집어삼키던 서세동점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동양의 인종, 역사, 문화가 철저히 짓밟혀 그 생존마저 불투명한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세계사의 큰 격동기에 한민족에게서 상제 문화의 새로운 부활이 선포되었습니다.

그 주인공이 바로 동학을 창도한 수운 최제우 대신사입니다.

 

1860년 4월 5일, 역사적인 그 날 수운은 상제님으로부터 “세인世人이 위아상제爲我上帝어늘 여부지상제야汝不知上帝耶아(세상 사람들이 나를 상제라 하거늘 너는 상제를 어찌 모르느냐)”라는 충격적인 성령의 말씀을 듣습니다.

 

이 말씀은 상제님을 못 알아보는 수운만을 경책하신 것이 아니라 신교 삼신문화를 망각하고 인류의 시원역사 또한 잃어버린 온 인류를 준엄하게 꾸짖은 것입니다.

 

이 때 수운선생은 상제님으로부터 시천주侍天主 주문呪文을 받아내렸습니다.

이것은 천주天主이자 하느님이신 삼신상제님이 인간 역사에 다시 개입하신다는 놀라운 선언입니다.

 

상제님의 인간강세, 그 우주사적 배경을 수운 선생은 ‘다시 개벽’의 논리로 이야기 하였습니다.

“십이제국 괴질운수 다시 개벽 아닐런가” (안심가)
“무극대도 닦아내니 오만년지 운수로다” (용담가)

정리 역주자가 전해주는 말씀
☞ 수운은 ‘시천주 신앙’을 외친 것이다.

시천주侍天主란 문자 그대로 ‘천지의 주인’이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느님, 천주님을 모신다는 뜻이다.

우리 한민족이 태고시대부터 신앙해 온 우주의 통치자, 하늘의 모든 신명과 인간과 문명을 주관하시는 상제님의 성령을 친견한 최수운이 신교의 정신을 되살려 내기 위해 전한 가르침이 바로 시천주이다.

이 시천주 신앙을 통해서 우리는 신교문화의 원형과 그 정신을 회복할 수 있다.(환단고기 역주본 해제 588쪽)

 

☞ 동학의 본래 정신과 사명이 이처럼 왜곡됨으로써 오늘날 우리는 수운을 통해 스스로 당신의 존재를 드러내려 하신 삼신상제님의 참모습을 또다시 알 수 없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삼신상제님이 삶의 중심에 계시던 태곳적 신교문화에서 더욱 멀어졌다.

그리하여 신교문화의 종주이던 한민족의 상고사를 복원하고 이해하는 일은 더욱 어렵게 된 것이다.

이처럼 삼신상제관이 총체적으로 왜곡되면서 한국사는 고대사와 근대사의 출발이 모두 왜곡된, 이중적 역사 왜곡의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환단고기 역주본 해제 5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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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시대 출발, 동학

진실의 역사

근대시대의 위대한 출발 – 동학(東學)
◉ 오늘은 근대사의 위대한 출발 《동학》에 대해 알아보기로 합니다.


8천만 한국인조차 모르고 있는 이 땅에서 실제 선언된 인류문명사의 새출발에 대한 위대한 선언, 동학의 가르침이 아직도 왜곡이 된 채 제대로 전해지지않고 있습니다.

동학의 위대한 새 소식이 제대로 해석이 되지 않았고 잘못된 문화의식으로 해석되고 왜곡된 무극대도 새 출발 선언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오늘의 인류가 격고 있는 모든 비극의 문제들, 죽음의 불덩어리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각종테러, 자연재앙, 대지진, 화산폭발, 말할 수 없는 홍수, 가뭄, 폭염, 혹한 생태계에 가공할 변화의 모습들, 자본주의 붕괴소식, 민주주의 몰락의 이야기.

그리고 최근 영국 브렉시트사태, 이런 예측할 수 없는 복잡한 변화를 다시 개벽이란 주제로 선언한 동학의 핵심 사상을 살펴봅니다.
  
인류 새 세상에 대한 진정한 새 출발 새로운 문명에 대한 깜짝 놀랄 소식이 무엇일까요.

근대사의 출발점인 동학의 이야기입니다.

東學(동학)의 참뜻은 무엇일까요.

155년전 동서인류가 태고로부터 믿어온 上帝강세에 대한 선언과 앞으로 온 인류가 이런 변화를 맞이한다. 이렇게 대비하야 한다.

그것이 1860년 옛 신라수도 경주에서 최수운 대신사가 도통을 받은 대사건이다. Eastern Learning.

단순 동서문명의 통합이 아니라 하늘과 땅, 진정한 합일의 세계, 神人合一을 의미한다. 신명과 인간이 하나 되는 세상이 온다.

천상조상이 자손을 찾아서 내려온다. 죽어서 천당 극락을 가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서 건설되는 선경낙원에 대한 소식.

지상천국이 우주의 궁극의 낙원이다. 이것이 동학의 무극대도 소식이다.

侍天主造化定(시천주조화정). 天主를 모시는 주문. 상제님을 모심으로서 인류는 어떤 세상을 맞이하는가.

다가오는 진정한 새 세상은 첨단과학문명의 이상으로만 건설되는 게 아니다. 대지진이 폭발할 때만 하더라더도 실제로는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인간으로 오시는 천주님에 의해서 조화선경이 이 땅에 건설된다는 강력한 구원의 메시지가 동학의 핵심선언이다.

용화낙원. 미륵님의 조화도권으로 열리는 조화세상에 대한 선언이다. 그것이 시천주에서 말하는 造花定 세상이다.

진정한 통일의 도. 최상의 도다. 더 이상이 없는 무극대도 출현에 대한 소식이다.

왜 동학이 왜곡이 되어 오늘날까지 인내천으로 인식이 되고 있는가.

최제우의 선언은 시천주다.

이는 후에 동학의 2대 교주 시형이 스승 최제우의 시천주 참뜻을 관념적인 養天主로 왜곡을 한다.

3대 교주 손병희는 인간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으로 왜곡을 하여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은 동학의 사상을 인내천으로 알고 있다.

 

『中庸(중용)』에 唯聖人(유성인)이라야 能知聖人(능지성인)이란 말이 있는데 오직 성인이라야 성인을 알아볼 수 있다는 뜻이다.

스승의 깨우침과 심법이 완전일체가 되지 않으면 그 뜻을 후세에 제대로 전하기 어려운 까닭이리라.

동학은 인류최초의 원형문화인 환단의 광명문화를 열어준 전 인류가 섬겨온 제천문화의 주인인 삼신 상제님 강세에 대한 강력한 선언이었다. 이런 제천행사는 환국,배달 조선을 이어 부여의 영고제천제로 이어진다. 

삼신상제(하느님)에 대한 제천문화 기록을 찾아보자.

『단군세기』를 보면 16세 위나단군이 ‘구환족의 모든 왕을 영고탑寧古塔에 모이게 하여 삼신상제님께 제사를 지냈다’고 하였고, 44세 구물단군이 재위 2년(BCE 424) 3월 16일에 삼신영고제三神迎鼓祭를 올렸다고 하였다. 부여는 고조선을 이은 나라이므로 부여 영고제는 곧 고조선의 제천행사인 것이다.

 

고대사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그 시대의 정신문화를 해석하지 못하면 유물을 발견하더라도 역사정신을 읽어낼 수가 없다.

영고탑은 바로 삼신상제님께 올리던 천제인 영고제를 지내던 ‘소도 제천단’이 있던 곳(영고제를 지내던 터)이다.

고려 때 국가 최고의 의례인 팔관회도 불교 행사가 아니라 사실은 제천행사였다.

『송사宋史』 「고려전」을 보면 “고려가 하늘에 제를 올리고 숭신崇神에 제하는 제전을 팔관회라 칭한다”라고 하였고,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는 “팔관회는 고구려의 동맹을 계승한 것”이라고 하여 팔관회가 한국인의 제천행사의 한 형태임을 더욱 분명하게 밝혔다. 이러한 천제문화는 조선 태종 때 중신 변계량이 올린 상소문에 나타나듯이([吾東方, 檀君始祖也. 蓋自天而降焉, 非天子分封之也. 祀天之禮, 不知始於何代, 然亦千有餘年, 未之或改也. 惟我太祖康獻大王亦因之而益致謹焉, 臣以爲, 祀天之禮, 不可廢也]『조선왕조실록』 태종 16년), 조선 초기까지 1천 년 동안 끊이지 않았으며, 세조 때까지 국가적 규모로 원구대제圓丘大祭를 봉행하였다.

한민족의 천제문화는 일찍이 중국 땅으로 전파되어, 중국의 역대 왕들도 천제를 봉행하였다.

『사기』 「봉선서封禪書」는 춘추 시대까지 72명의 중국 왕이 현 산동성의 태산에 올라 천제를 지냈다고 전한다.

그 72명 중에는 유가儒家에서 상제님을 대신하여 인간의 질서를 처음으로 확립한 인물로 받드는 요堯와 그의 제위를 물려받은 순舜이 거명된다. 즉 중국에서도 천자가 되고자 했던 인물들은 상제께 천제를 올리고 천자의 지위를 만천하에 선포하였던 것이다.

춘추 시대 이후 진시황, 한 무제 등도 태산에서 천제를 봉행하였다.

특히 한 무제는 BCE 100년을 시작으로 5년마다 태산 봉선제를 거행하였는데, 총 다섯 차례를 행하였다(『사기』「효무본기」).

국가 행사로 이어져 동북아의 천제문화는 북방 민족에게도 전해졌다.

대진국 이후 만주 땅에 세워진 요나라, 금나라는 한민족의 제천풍속을 받아들여 국가행사로 거행하였다.
  
또한 천제문화는 일본으로 전해져 신사神社 문화를 탄생시켰다.

삼신상제님과 천지신명을 함께 받든 동방 신교의 풍습 그대로, 일본 신사는 상제님(천신)을 비롯하여 자연신, 조상신 등 다양한 신을 모시고 있다.

오늘날 신교문화의 원형이 가장 많이 살아있는 나라는 바로 일본이다.

천제天祭는 한마디로 인류 문화의 원형이며 한민족의 하느님 신앙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의례이자 문화 행사이다.

천제문화의 본질이 바로 삼신상제 신앙이다. 최제우의 선언은 바로 동방문화의 주인인 이 상제강세에 대한 선포인 것이었다.

전 인류가 천주님을 직접 모시는 시대가 와서 앞으로 무극대운 태평성세가 열린다는 선언이었다.

이는 삼정문란과 외세격랑에 지친 조선민중에게 새롭고 커다란 희망으로 요원의 불길처럼 퍼져나갔다.

그럼에도 현 학계의 동학에 대한 인식은 한국에서 나온 신흥종교 모체로서 잘못 인식되고 있다.

학의 선언은 동방역사의 일관된 맥락에서 흐르는 삼신제천사상을 깨우친 최제우대성사의 깨달음의 선언이었다는 것을 전혀 읽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서양제국주의 그리고 동양에서 유일한 제국주의 반열에 든 일본제국주의 명치유신.

동아시아의 천자의 나라를 자처하던 중국은 아편정쟁으로 병들어서 마침 병들어 천자의 위상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린다.

여기서 벌떼처럼 반란 혁명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마침내 청조가 무너지게 된다.

북쪽에는 러시아 노마노프왕조가 무너지고 러시아 혁명으로 일어나게 된다.

열강의 식민지 쟁탈전에 최후의 보루 조선의 운명은 풍전등화였다.

이때 고종은 대한제국으로 천자국을 선포하고 국명을 바꾼다.

 

그러나 일본에게 국권을 뺏기고 35년 동안 800만 동포가 무참하게 죽고, 3년 뒤에 남북이 분단되어 각기 정부수립하게 된다.

그리고 불과 2년 뒤에 대전쟁이 폭풍이란 암호를 시작해서 대한민국이 적화통일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맥아더장군이 밀고 들어온다.

수백만이 죽고 천만 이상가족을 남긴 동족산잔. 그리고 휴전 60년이 넘어서고 있다.

 

주역으로 말하면 64괘 한주기가 거반 다 도는 시간대다.

해방 후 남북분단으로 보면 70년이 넘었다.

우주변화 원리적으로 본다면 상수 변화수의 종점의 시간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한국의 남북에 살고 있는 당사자인 국민들도, 통일은 도적같이 한순간에 올 수 있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무엇을 가지고 통일이 오냐다.

역사를 후퇴시키는 통일이, 전쟁의 파괴를 통한 통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지금 한반도 주변으로는 팽팽한 전운이 형성돼 가고 있다.

동방의 원주인으로 역사문화의 원근원에 있는 한국인의 창세역사 황금시절 문화정신이 중국 황하문명중심으로 왜곡 되었다.

 

한국인은 신명나는 민족이다. 춤 잘추고 노래도 잘한다.

한류열풍의 문화적 배경은 한민족은 신교문화의 본고장으로 천제를 올리고 전 국민이 왕과 더불어서 즐겁게 신명풀이 놀이를 했는데 그 정서가 폭발을 한 것이다.

그러나 한류문화는 문화의 정신이 없다. 역사정신이 전혀 없다.

역사를 만드는 힘, 영성 창조력.

역사 원동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현재의 한류문화를 가지고는 새로운 인류문화를 열수 없다.

역사문화근원을 되찾고 깨닫는 그 순간부터 진정한 한국인이 된다.

진정으로 고유문화를 근본으로 해서 세계문화와 대융합할 수 있는 정신문화를 가진 인재를 길러야 한다.
  
동학은 새시대에 대한 강력한 선언을 했지만 준비가 안 되었기 때문에 패망 당한다.

그러고 나라를 잃은 동학군 세력은 항일독립운동세력의 주체가 된다.

근대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한민족 고유사상에 기초한 동학의 이해 없이는 몸부림치는 독립자주세력의 계보를 이해할 수 없다.

 

동학의 메시지는 앞으로 오는 새 세상은 조화문명이다.

사람이 몸과 마음과 영 속에 있는 무궁한 신의 조화, 자기 생각대로 자유자재로 쓰는 그런 세상이 온다.

새로운 생명문화를 천주님이 직접오셔서 여신다. 모든 인간이 도를 통한다. 모든 인간이 성인 부처가 된다.

1860년에 최제우는 이미 종교시대는 끝났다라고 선언을 한 것이다. 무극대도의 출현을 선언한 것이다.

기존의 종교와 가르침을 가지고는 이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엄청난 선언인 것이다.

 

동학은 종교가 아니다. 무극대도다. 이것을 잊어선 안 된다.

그러나 이 위대한 선언을 한국의 신흥종교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실정이다.

초등학교, 대학교, 일반, 전세계 한국문화를 소개한 책자를 보면 동학을 신흥종교다.

서양기독교를 서학이라고 하고 서학에 대응하는 주체적인 새로운 가르침을 가진 종교 동학이다. 이런 잘못된 가르침이 지속되고 있다.

 

서학의 꿈이 수천 년 간 숨쉬어 온 동방문화의 정신을 되살린 동학에서 완성된다는 선언이었다.

동방문화의 부활, 동방 역사의 부활의 소식이다.

동학은 수천 년 간 이어진 삼신제천문화 정신의 완전한 부활을 선언한 것이었다.

동학 패망 후 동학교도들은 독립운동가로 대거 합류한다.

독립운동가들은 신흥무관학교에서 태고시절 역사원형정신이 깃든 환단고기를 공부하며 독립의지를 불태웠다.

동학의 정신이 근본적으로 왜곡된 근저에는 조선이 그렇지 뭐 하는 식의 외래 사대주의 일색으로 흘러오면서 우리 전통문화를 스스로 비하했던 원인이 크다. 

중국은 동산취 원형제단이 83년 전에 홍산에서 150미터 제단 원시피라밋인 총,묘,단이 발굴되면서 삼황오제는 신화가 아니고 실제역사로 바뀌었다.

유교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세상, 도덕으로 나라를 다스린 덕치의 이상모델이 되는 성왕 요임금과 같은 때, 단군조선시대가 있었다.

환웅시대, 단군시대. 이때를 동이라고 한다.

동이문화는 천단을 쌓아놓고 천신상제님께 제를 올리고 다신이면서 유일신 문화권이 있었다.

  
산해경을 보면 흰옷 입은 사람들 사는 곳에 백색광명의 雄常(웅상)이 있다. 근데 그 문화를 해석을 못한다.

그 웅은 환웅할 때 웅자다. 배달국 통치자 환웅의 웅으로 그 분의 정신은 없어지는 게 아니다.

그분의 가르침과 정신이 영원하다는 뜻이다. 동방의 진정한 최초의 왕이자, 대제사장 그 분의 은혜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 항상 임재해 있다.

중국에도 일본에도 몽골에도 항상 삼신의 가르침 홍익인간, 제세이화.

가장 큰 산, 가장 큰 나무를 성령이 감응을 하는 나무라고 해서 웅상이라고 한다.

이걸 중국도 한국 사람도 모른다. 내 몸과 마음이 신단수가 될 때 그 때 잃어버린 역사문화를 다 찾는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삼국유사에 일연 스님의 고조선기에는 단군조선이 있고 그 전에 뿌리가 되는 환국 배달 신시가 있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환인과 환웅이라고 하는 역사시대가 있었다.

조선왕조를 패망시키고 통치를 할 때 일본이 환국 배달 조선을 영원히 없는 신화로 만들어 버렸다.

특별 지시를 했는데 일왕 특명으로 3인이 발동을 했다.

환국을 없애면 배달환웅과 조선단군도 신화나 없던 인물도 만들 수 있었다.

 

일연이 환국은 제석신의 나라다. 인도신화 신의 나라다. 인드라의 나라다.

이렇게 주석을 붙이니까 일연 스님이 자기 생각으로 주석을 붙인 것이 역사왜곡의 근거를 제공 했다.

그런면에서 삼국유사는 고대사 복원 실마리와 왜곡의 근거를 동시에 제공하고 있다.

 

일연이 환국을 불교 제석신의 나라라 했으니까 조선인들 너희들도 따라라.

이 논리에 세뇌가 돼서 단군신화를 거침없이 얘기하고 있다.

한국은 제조상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다. 오늘의 한국의 정신이 이렇게 타락했다.

한마디로 제 뿌리를 부정하는 나라다.

 

『小學(소학)』에 建學立師 以培其根 以達其支라. 학교를 세워 스승을 두어 그 뿌리를 북돋아서 가지가지가 뻗도록 한다라고 했다.

한국은 고대사가 왜곡이 되면서 근대사의 위대한 출발 동학의 핵심사상을 동시에 보지 못하는 두 눈이 실명되는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따라서 한민족은 뿌리를 잃은 민족이면서 동시에 미래도 잃고 헤매이고 있는 모습이다.

어찌 보면 역사문화를 잃고 타이타닉호처럼 침몰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동학을 단순한 근대 새시대의 출발로 보려는 근시안적 안목은 동학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민족 정체성과 고유정신을 보지 못하는 무지한 소치다.

굳건하고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 것은 뿌리역사를 제대로 가르치는 것으로부터 국가와 민족의 융성이 일어남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일제의 민족종교 말살책과 독립운동

진실의 역사

일제의 민족종교 말살책과 독립운동

 

한민족은 지난 1세기 남짓 동안 엄청난 역사의 횡포에 시달려 왔다.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경쟁적 횡포에 농락당하고, 이어서 나라를 빼앗기고 일제의 식민지 통치하에 들어가는 역사적 치욕을 당했다.

식민통치에서 해방은 되었지만 곧 민족은 분단으로 귀착되는 비극을 맞이한다.

그리고 6.25라는 민족상쟁의 아픔을 겪게 된다.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통일을 맞이하게 되겠지만 불행하게도 그 통일은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를 포함한 국제 세력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일제의 강점기에 조작된 식민사학과 해방이후에 우리문화와 역사를 배타적 시각으로 바라본 외래종교의 사대적 시각을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통일이 진행되면 우리의 민족은 극도의 사회혼란과 분열만을 조장할 것이다.

 

열강들의 잇권노름으로 시작된 일제의 한반도 강점은 그만큼 우리민족의 현재와 미래를 돌이킬 수 없는 불행으로 몰아넣은 대사건이었다.

이러한 국권 상실의 운명 앞에 민족종교는 후천개벽사상을 주창하며 미래의 희망과 확신을 표출한다.

이는 역사의 횡포에 민족의 희망과 열망으로 분연히 일어난 민족종교의 핵심 사상이었다.

그 효시가 1860년 최제우가 일으킨 동학이었다.

보국안민의 기치아래 민족종교는 당연히 격렬한 항일운동의 정신적 주체가 되었다.

갑오동학혁명, 3.1운동, 그리고 만주에서의 항일독립운동 등과 같이 한국 근대사의 주요한 사건들은 모두 후천개벽사상과 보국안민의 사상적 기치아래 전개되었던 운동이었다. 이처럼 민족종교는 민족주체의식의 사회적 실체였다.

 

그러므로 조선 총독부는 민족종교를 민족정기의 온상이며 항일정신의 핵심으로 간주하고 탄압을 가했다.

오직 순수한 민족애와 민족 정체감만이 천도교, 불교, 기독교 같은 특정종교의 세계관에 구애되지 아니하고 한민족을 하나로 묶을 수가 있었다. 가령 유교,불교와 같이 오래된 외래종교라 해도 그 사상이 우리민족 정체성의 핵심을 반영하지 못하고, 우리나라에서 역사가 일천한 기독교는 아직 민족문화 전통의 정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였다.

민족종교는 망국의 한에 빠져있는 국민에게 커다란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였으며, 민족의 통합에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이러한 사실을 간파한 일제는 민족종교의 탄압을 가속화 했다.

 

민족종교가 일제치하에서 독립과 민족정신의 회복을 기도했다면 일제는 민족종교를 말살했다.

양자는 첨예한 대립관계에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의 정책적 의도에 의하여 설정된 개념의 범주 안에서 아직도 우리사회가 민족종교를 이해하고 있다면, 아직도 일제의 식민지배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충격적 사실을 입증하는 것일 뿐이다.

한국 민족종교를 신흥종교, 유사종교 또는 사이비종교, 심지어는 사교라는 용어로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이 오늘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관행이다.

이러한 개념들이 사용되기 시작한 역사적 시대가 바로 일제시기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서양으로부터 시작된 제국주의 정책은 타문화에 대해 일방적 통행을 강요했다.

우리의 전통가치는 근대화라는 명목하에 멸시되었고 파괴되었다.

역설적이지만 서양사상과 종교가 합리적이라는 근거는 더 더욱 없었다.

과학발전은 오히려 서양종교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가고 있었다.

그동안 역사적으로 본다면 깨어난 과학자들이 하나님의 신권에 도전한다는 명목하에 탄압을 받았던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서구를 깨운 것은 중세의 신권사회에서 부터의 이탈인 르네상스였다.

오히려 서구의 근대화란 탈신권주의의 각성으로부터 출발한 것이었다.

근대화란 서양화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동안 발전의 모델인 서양을 모방하다 보니까 서양의 종교는 합리적이고 다른 종교는 비합리적인 태도로 대응을 해왔다.

일제는 우리문화는 온통 미신으로 매도해 놓고 자신들은 아직도 수많은 신을 모시는 신도(신사)문화를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일제의 위장된 문화정책은 큰 효력을 발휘하였다.

민족종교에 대한 이런 냉소적 태도는 불과 반세기 전 일제하에서 우리민족이 겼었던 수난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데서 비롯되었다.

더군다나 일제하에서 민족종교가 어떤 역사적 사명을 감당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데서 기인한다.

 

그만큼 우리사회가 우리역사를 왜곡한 것만큼이나 민족의 정신의 산물인 민족종교 역시 철저히 곡해되어 왔던 것이다.

민족종교에 대한 잘못된 일차적 이해는 일제의 식민지 문화정책에서 비롯된다.

일본총독부는 처음부터, 천도교, 대종교, 증산교(보천교) 등 사회적으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한국민족종교들을 종교로 인정하지 않았다 .

다만 이들을 종교와 유사한 단체라는 뜻에서 유사종교, 또는 사이비종교로 규정했다.

이처럼 민족종교는 처음부터 존재를 거부당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일제는 정략적으로 민족종교를 거세시켰던 것이다.

일제시대에 공인된 종교는 일본의 신도, 불교, 기독교만이 공인되고 그 외의 종교는 종교로 인정을 하지 않았다.

이는 식민지정책을 수행하는데 매우 효과적이고 편리했다.

민족종교는 경계의 대상이었다.

따라서 한국의 민족종교는 사회에서 제거해야할 단체로 취급되었다.

슬픈일이지만, 해방이 된지 오래건만 노예적 사관에 사로잡혀 일제가 만들어 놓은 이 개념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는 서구 열강과의 외교관계를 고려해서 오히려 장려를 하였다.

식민지국가에서 민족종교가 기댈 수 있었던 세력은 오직 한국 민중이었다.

그러나 식민지의 민중역시 총독부의 수탈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민족종교는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무자비한 탄압정책에 희생되어 만신창의가 되었다.

그러나 해방이후에도 우리나라는 친일파들이 실권을 쥐면서 오히려 민족사학자와 독립운동가들을 빨갱이로 몰아서 숙청을 했다.

국권을 잃은 민족에겐 힘없는 국가의 민족정신을 철저히 짓밟히는 고통이 뒤따라야 했다.

식민지 조선의 사상과 가치 종교,역사 모두 철저히 멸시되었다. 국가와 민종종교는 외세 앞에 철저히 유린당했다.

 

일제의 식민정책에 의해서 철저히 유린당하고 희생된 한국 민족종교의 비극적인 역사를 우리는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하는가.

피해자가 무능하다고 봐야할 것인가.

아니면 약육강식의 논리대로 가해자는 신이 자신의 편을 들어주었다고 승리의 찬가를 불러야 하는가. 가

치관이 결여되고 도덕적으로 무감각한 지금의 일본의 아베정권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가.

건강한 가치관에 의해서 일관되고 통일된 도덕적 태도만이 과거의 잘못을 진심으로 사과할 줄 아는 용기를 갖게 한다.

과거 역사의 올바른 교정은 자기를 반성하는 용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 국민은 용기 없는 가해자를 만난 불행한 처지에 있다.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상대방을 의도적으로 위해하는 악의적인 가해자를 역사에서 다시 나타나지 않도록 공동으로 노력을 해야 한다.

인간지성은 인간사회에서 단순피해자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명령한다.

인간의 양심은 정의를 지향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신은 정의의 편이기 때문이다.

강자가 되는 것이 하늘의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모든 성자들의 가르침에서도 마찬가지로 지적하고 있다.

유대율법과 로마강권에 항거한 해방자로서의 예수의 삶, 부귀를 버리고 불성을 회복하라는 부처의 삶, 인의를 바탕으로 한 대인군자의 삶을 살으라고 했던 공자도 역시 패권놀음에서 벗어나 본질을 지향해라 했다.

그러나 그 사상을 믿는 사람들은 성자들의 가르침을 잃어버리고 패권놀음의 하수인이 되어 버린 안타까운 현실이다.

지나온 일류역사를 돌이켜 보건데 종교역사도 제국주의 패권역사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강대국의 종교패권을 약소국에 행사하여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지배하려 했던 것이다

올바른 인간, 참된 가치관 등 그동안 인류가 지향해온 숭고한 가치가 일반적 상식이 되는 사회가 되려면 사회 구성원들의 양심과 성숙된 인격이 필수 조건이다.

『일제의 한국 민족종교 말살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