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만큼 보인다

박물관에서 본 우리역사-국립중앙박물관의 역사왜곡③

진실의 역사

박물관에서 본 우리 역사 | 국립중앙박물관의 역사 왜곡 부분

 

국립중앙박물관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용산구에 있는 국립 박물관이다.

1946년에 개관했으며 2005년 현재의 위치인 용산으로 신축 이전 개관을 하였다.

한 해 350만 이상이 방문하는 곳이고 약 100만 명의 외국인이 다녀가는 곳이 바로 국립중앙박물관이다.

규모면에서는 세계 6대 박물관이라고까지 얘기하는데, 사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외국 박물관에 못지않은 외관과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박물관의 유물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역사를 인식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박물관은 대한민국의 바른 역사와 문화를 바르게 전해 주어야 하는 중대한 사명이 있는 곳이다.

그런데 박물관에 담겨진 역사는 왜곡된 사실을 그대로 반영할 여지가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보러 갔다가는 어느 것이 맞는지 헤맬 수 있다.

그렇기에 우선적으로 박물관에 진열된 왜곡된 역사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아직도 점제현 신사비秥蟬縣神祠碑가 있다?

낙랑군에는 25현이 있는데 그중에 점제현이라는 현이 있다.

만약 낙랑군의 속현이 적힌 비석이 발견된다면 그 땅은 낙랑군이라는 확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노린 이마니시류(금서룡今西龍)는 1913년에 <점제현신사비秥蟬縣神祠碑>를 발견하였다고 발표하고 평양에서 고대 유물을 발굴하고 그 증거로 삼았다.

그러나 이 비석은 후에 거짓으로 규명되었다.

 

1990년 고故 손보기 연세대 교수는 “일본인 금서룡이 중국 하북성 갈석산에 있었던 비석을 파내어 한반도 평남 온천군으로 배로 실어 가져와 한반도 내 한사군설을 조작하는데 이용하였다”고 확언했다.

이어 1995년 북한 학자들은 이 비가 일본인 이마니시 류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는 것을 밝혔다.

 

이렇게 조작된 비석임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점제현신사비가 문제없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이 비문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문자가 써진 비석으로 기록되어 있다.


낙랑군 재在평양설의 탄생배경
조선통감부 시절 세키노타다시關野貞를 필두로 한 일명 세키노조사단 일행은 유물 조작을 통해서 우리 역사를 만들어 갔다.

조선통감부가 조선총독부로 바뀌고, 일본이 본격적으로 한국의 식민지화 정책을 펼쳐 나가면서 어떻게든 한국인의 의식 속에 식민의식을 심어야겠다는 시도가 나타났다.

그 대표적인 것이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낙랑군 재在평양설이다.


낙랑군의 위치를 밝히는 중국사서들
● 『한서漢書』「설선 薛宣 열전」“ 사고왈 師古曰(사고가 말하기를) 낙랑속유주樂浪屬幽州(낙랑은 유주에 속해있다)”

 

● 『후한서後漢書』「최인 崔駰 열전」“장잠현 속낙랑군長岑縣 屬樂浪郡(장잠현은 낙랑군에 속해 있는데),기지재요동其地在遼東(그 땅은 요동에 속해있다)”

 

● 『후한서後漢書』「광무제본기 光武帝本紀」 “낙랑군樂浪郡 고조선국야故朝鮮國也(낙랑군은 옛 조선국이다),재요동在遼東(요동에 있다)”

 

● 『사기색은史記索隱』「하본기 夏本紀」“ 낙랑수성현유갈석산 樂浪遂城縣有碣石山(낙랑수성현에는 갈석산이 있으며),장성소기長城所起(만리장성의 기점이다)”

 

● 『진서晉書』「지리지 地理志」‘ 낙랑군조 樂浪郡條’ “수성遂城, 진축장성지소기秦築長城之所起(수성현은 진나라 만리장성이 일어난 곳이다)”

 

● 『명사明史』 「지리지地理志」 영평부조永平府條 “창려昌黎-서북유갈석산西北有碣石山(창려 서북에는 갈석산이 있고), 동남유명해東南有溟

海(동남에는 어두운 바다가 있다)”


점제현 신사비의 재질
신사비 내용이 옳고 그르고를 따지기 이전에 점제현신사비 재질부터 따져 보면 간단하다.

그 비석의 재질은 화강석이다.

 

그런데, 근방에서 구할 수 있는 재질의 화강석이 아니다.

주위 화강석(한반도 북부)은 1억 7백만 년 전에 형성되어 있으나, 점제현비의 화강석은 1억 2천9백만 년 전에 형성된 화강석이다.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화강석의 성분구성 자체가 다르다. - 이덕일,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p48 (근거 논문: 조선고고연구 / 북한)


한사군 문제의 심각성- 중국의 북한 복속
2012년 미 의회조사국에 중국은 중국의 입장을 보내게 되는데 이때 중국의 학자인 지앙(창춘 사범대학 동북아시아 연구소)은 고구려가 중국의 땅이었다는 사실을 개의치 않고 말한다.

그는 “주로 한나라 이주민에 의해 건설된 지방정권이었다.”라고 썼다.

 

왜냐하면 지정학적으로 고구려의 경제와 문화는 그들 내부에 의해서 발전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가 한사군이 한반도 북부에서 420년 동안 지속되었다고 인정할 경우, 중국은 북한 땅이 과거 자신들의 땅이었음을 주장할 수 있다.

박물관에서 본 우리역사-국립중앙박물관의 역사왜곡②

진실의 역사

박물관에서 본 우리 역사 | 국립중앙박물관의 역사 왜곡 부분

 

국립중앙박물관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용산구에 있는 국립 박물관이다.

1946년에 개관했으며 2005년 현재의 위치인 용산으로 신축 이전 개관을 하였다.

한 해 350만 이상이 방문하는 곳이고 약 100만 명의 외국인이 다녀가는 곳이 바로 국립중앙박물관이다.

규모면에서는 세계 6대 박물관이라고까지 얘기하는데, 사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외국 박물관에 못지않은 외관과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박물관의 유물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역사를 인식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박물관은 대한민국의 바른 역사와 문화를 바르게 전해 주어야 하는 중대한 사명이 있는 곳이다.

그런데 박물관에 담겨진 역사는 왜곡된 사실을 그대로 반영할 여지가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보러 갔다가는 어느 것이 맞는지 헤맬 수 있다.

그렇기에 우선적으로 박물관에 진열된 왜곡된 역사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2012년 낙랑 유물을 다시 꺼낸 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에서 낙랑 유물은 퇴출되었었다.

그런데 2012년 겨울에 다시 낙랑 유물을 슬그머니 공개했다.

그들이 전시한 유물은 기원전 108년, 중국 한 무제가 고조선을 무너뜨리고 설치한 4개 군 중 하나인 낙랑樂浪이 남긴 유물이라는 것이다.

 

꺼내어 전시했다가 많은 논란과 함께 시민들의 항의를 받고 지하수장고로 들어갔던 낙랑 유물.

지금도 낙랑군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둘러싸고 평양설과 한반도 바깥에 있었다는 요동설, 요서설이 민족사학 진영과 강단사학 진영 사이에서 팽팽히 맞서고 있는 대척점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립중앙박물관은 낙랑 유물을 다시 꺼내 지금까지도 전시해 놓고 있는 것이다.

 

낙랑樂浪이 420년간 존재했다는 한국사 연표

국립중앙박물관을 처음 들어서면 마주하는 것이 바로 연대표다.

연대표는 최초의 국가를 고조선으로 기록하고 있고 고조선이 BCE 108년에 한나라에 의해 멸망당하고 그 자리에 낙랑군을 설치했으며 이 낙랑군은 BCE 108년부터 CE 313년까지 420년간 존속되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알다시피 중국은 200년 이상 유지된 국가가 거의 없다.

중국 본토에 있는 국가는 생멸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식민지라는 낙랑은 400년 이상을 유지해 왔다는 것 자체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이는 문헌 기록이 뒷받침하고 있다.

『삼국사기』의 낙랑에 관한 기록을 보면 고구려본기, 백제본기, 신라본기에서 공통적으로 서기 1세기경까지 낙랑이라는 존재가 나타나다가 갑자기 사라진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백 년이 지나서야 다시 등장한다.

여기서 처음에 나온 낙랑은 최씨의 낙랑국國으로 봐야 할 것이며 뒤에 서기 3세기~4세기 경에 고구려, 백제와 충돌한 낙랑은 낙랑군郡으로 봐야 할 것이다.

 

낙랑군이 평양에 있다는 지도

고조선실을 지나서 부여삼한실로 들어서면 벽면에 지도가 그려져 있다.

이 지도에는 한나라 식민지라는 낙랑을 한반도 안으로 집어넣었다.

 

소위 한사군을 설치했을 당대의 기록인, 사기, 후한서 등의 일차사료에서 낙랑군이 요서에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런데 유물과 유적을 조작해서라도 한사군 한반도설, 낙랑군 평양설을 믿게 해야겠다는 것이 바로 일제 식민사관의 폐해다.

박물관에서 본 우리역사-국립중앙박물관의 역사왜곡①

진실의 역사

박물관에서 본 우리 역사 | 국립중앙박물관의 역사 왜곡 부분

 

국립중앙박물관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용산구에 있는 국립 박물관이다.

1946년에 개관했으며 2005년 현재의 위치인 용산으로 신축 이전 개관을 하였다.

한 해 350만 이상이 방문하는 곳이고 약 100만 명의 외국인이 다녀가는 곳이 바로 국립중앙박물관이다.

규모면에서는 세계 6대 박물관이라고까지 얘기하는데, 사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외국 박물관에 못지않은 외관과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박물관의 유물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역사를 인식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박물관은 대한민국의 바른 역사와 문화를 바르게 전해 주어야 하는 중대한 사명이 있는 곳이다.

그런데 박물관에 담겨진 역사는 왜곡된 사실을 그대로 반영할 여지가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보러 갔다가는 어느 것이 맞는지 헤맬 수 있다.

그렇기에 우선적으로 박물관에 진열된 왜곡된 역사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2009년에야 고조선古朝鮮실이 생기다.

1945년 해방 이후 2009년이 되어서야 국립중앙박물관에 고조선실이 신설돼 문을 열었다.

그 전에는 선사실이 있고 원삼국실은 있었으나 고조선실은 없었다.

해방 후 60여 년이 지난 후에야 고조선의 역사를 박물관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고조선실 개설도 그냥 된 것이 아니다.

2002년 이후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여론이 형성되고 2007년 국사교과서가 개편되었다.

 

고조선 부분에서는 “고조선이 건국되었다고 한다.”라고 하여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는 듯했던 문구가 “건국했다”로 한 문장이 바뀌었다.

이 한 문장이 바뀌는 데에도 60년이 넘게 걸렸다.

이러한 우리 상고사 복원에 대한 국민들의 바램과 요청이 있어서 2년 후인 2009년이 되어서 비로소 고조선실이 개설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고조선실을 개설함에 따라서 지방에 있는 국립박물관 중에서 고조선실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모든 박물관에현재 고조선실이 있는 것은 아니다.

국립전주박물관의 경우 2013년이 되어서 고조선에 대한 설명을 넣었다고 한다.

전국의 국립박물관에 일괄적으로 고조선이 들어간 것이 아니므로, 이런 점은 앞으로 전국 지역 국립박물관이 해야 할 과제 중의 하나다.


영국박물관에는 아직도 고조선이 없다.
영국박물관에도 고조선은 없다.

대영박물관으로 알려져 있는 영국박물관은 세계 3대 박물관으로 중국관과 일본관만 있었는데 2000년에 한 독지가의 투자에 의해서 한국관이 오픈하게 되었다.

 

그런데 한국관에 있는 한중일 역사연표가 한국과 중국과 일본의 역사를 비교하고 있는데 중앙에 있는 한국역사 연표에는 현재까지도 고조선이 빠져 있다.

또한 우리 역사를 CE 300년에 시작된 것처럼 기록하고 있다.

유럽에 알려지는 우리역사의 현주소가 바로 영국박물관 한국관이다.

박물관에서 본 우리역사-한국은 금관의 나라

진실의 역사

박물관에서 본 우리 역사 | 유물로 이해하는 한국의 바른 역사


세계적으로 한류열풍이 불고 있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의 숫자는 크게 늘었다.

2016년 한 해에 전 세계에서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숫자는 1500만 명이 넘는다.

그 중에는 한국적인 모습과 전통문화 그리고 한국의 역사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찾아가는 곳은 박물관이다.

박물관에 가면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한곳에서 보고 싶다면 서울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가 봐야 한다.

말 그대로 국립중앙박물관은 전국 12여 개의 국립박물관 중 중심이자 핵심이 되는 곳이다.

여기에는 우리나라의 고대사부터 현대사까지 대한민국의 총 역사가 집약되어 있다.

 

우리는 과거 36년 동안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식민 지배를 당했던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역사는 여러모로 심각하게 왜곡이 되었다.

이후 국권을 되찾아 광복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제에 의해 왜곡된 역사의 잔재는 청산되지 못한 채 방기되고 굳어지는 이해하지 못할 일이 계속되어 왔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서울시 용산구에 자리를 잡은 지는 10년이 지났지만, 이곳에서는 여전히 비틀어지고 훼손된 한국의 역사가 기정사실처럼 고스란히 소개되고 있다.

이는 대단히 잘못되고 통탄스러운 일로서, 그 진실을 바로잡고 올바로 이해하는 일은 현실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역사의식의 회복 운동이라 할 수 있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유물을 바로 아는 것, 이것은 또 다른 측면에서의 ‘역사 바로 세우기’인 것이다.

 

잘못 알려지거나 관련 정보가 부족한 우리 역사를 박물관 유물 등을 중심으로 바르게 이해하여 보자는 차원에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꼭 보아야 할 오래된 유물 유적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 한국은 금관金冠의 나라

한국의 의복 문화에서 금관金冠, 즉 금으로 만든 관모冠帽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한국은 금관의 왕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대 금관이 한국에서 집중 발굴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고대 금관은 모두 12점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7점은 신라 금관이고 2점은 가야 금관이며, 나머지 3점만 외국 금관이다.

신라와 가야 금관을 제외하면 세계 금관은 거의 없는 것이나 같다.

 

이처럼 세계 금관의 대부분이 경주를 중심으로 한반도에 분포되어 있으므로 한국을 금관 왕국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사실 금관이 얼마나 더 묻혀 있는지는 모른다.

아직 발굴하지 않은 신라 고분이 거의 100개나 되는데 이 고분들 속에 대부분 금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는 3층에 신라 금관이 하나 있고 1층 신라관에 금관이 하나 있다.

나머지는 경주 국립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을 관람할 때 백제관, 고구려관, 가야관, 신라관 등 각 전시실의 금관이나 금동관을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은 관람의 방법이 될 것이다.

박물관에서 본 우리역사-청동거울, 농경문청동기, 솟대

진실의 역사

박물관에서 본 우리 역사 | 유물로 이해하는 한국의 바른 역사


세계적으로 한류열풍이 불고 있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의 숫자는 크게 늘었다.

2016년 한 해에 전 세계에서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숫자는 1500만 명이 넘는다.

그 중에는 한국적인 모습과 전통문화 그리고 한국의 역사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찾아가는 곳은 박물관이다.

박물관에 가면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한곳에서 보고 싶다면 서울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가 봐야 한다.

말 그대로 국립중앙박물관은 전국 12여 개의 국립박물관 중 중심이자 핵심이 되는 곳이다.

여기에는 우리나라의 고대사부터 현대사까지 대한민국의 총 역사가 집약되어 있다.

 

우리는 과거 36년 동안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식민 지배를 당했던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역사는 여러모로 심각하게 왜곡이 되었다.

이후 국권을 되찾아 광복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제에 의해 왜곡된 역사의 잔재는 청산되지 못한 채 방기되고 굳어지는 이해하지 못할 일이 계속되어 왔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서울시 용산구에 자리를 잡은 지는 10년이 지났지만, 이곳에서는 여전히 비틀어지고 훼손된 한국의 역사가 기정사실처럼 고스란히 소개되고 있다.

이는 대단히 잘못되고 통탄스러운 일로서, 그 진실을 바로잡고 올바로 이해하는 일은 현실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역사의식의 회복 운동이라 할 수 있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유물을 바로 아는 것, 이것은 또 다른 측면에서의 ‘역사 바로 세우기’인 것이다.

 

잘못 알려지거나 관련 정보가 부족한 우리 역사를 박물관 유물 등을 중심으로 바르게 이해하여 보자는 차원에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꼭 보아야 할 오래된 유물 유적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 고조선의 청동거울

청동거울은 비파형 동검과 함께 전국의 박물관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전시되어 있다.

보통 청동거울은 고조선 시대와 삼국 시대에도 계속 만들어 썼다. 일본에 위치한 ‘거울박물관’에서는 거울의 역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을 한다.

 

“거울에 영상이 비치는(실제로는 반사하는) 현상은 지극히 신비적인 현상으로 파악되었다.

그 때문에 단순한 화장의 용구로서보다 먼저 제사의 도구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이로 살펴볼진대 거울을 단순히 사물만 비춰 보는 미러mirror 정도로만 받아들이기엔 석연치 않다.

 

신기하게도 러시아 바이칼호 지역에 거주하는 브리야트족의 샤먼shaman이나 몽골의 샤먼 등은 모두 가슴에 이 거울을 달고서 의식을 행한다.

신과 인간을 연결시켜주는 샤먼이 사용했다는 점에서 거울의 신성함이 느껴진다.

거울의 형태가 원형인 것은 하늘 또는 태양을 상징한 것은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게 한다.


■ 농경문 청동기農耕文靑銅器와 솟대

고조선실에 가면 중앙에 농경문청동기農耕文靑銅器라 하여 농사를 짓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는 청동기 유물이 하나 있다.

고조선 시대 농사를 짓는 모습을 확실하게 보여 주는 유물이다.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아야 그림을 이해할 수 있다.

 

앞면에는 기구를 가지고 밭을 갈고 수확한 곡식을 항아리에 담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뒷면에는 나뭇가지 끝에 새가 앉아 있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솟대다.

 

고조선에는 신성한 공간이 있었는데 이것을 ‘소도蘇塗’라 한다.

이 소도라는 공간을 알리는 것이 바로 솟대(입목立木)이다. 소도 앞에 세운 높다란 기둥이 솟대인데, 이 솟대는 ‘신을 모시는 기둥’이라고도 한다.

 

솟대 끝에는 대개 새가 조각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새를 신성시하여 토템으로 삼기도 하였다.

새는 하나님의 사자로서 하늘의 뜻을 전하는 신령한 존재로 숭배되었다.

솟대가 있는 곳은 신성한 공간이다.

이 솟대 문화는 동남아에서도 발견할 수 있고 저 멀리 바이칼, 러시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박물관에서 본 우리역사-고인돌, 5천년전 벼농사

진실의 역사

박물관에서 본 우리 역사 | 유물로 이해하는 한국의 바른 역사


세계적으로 한류열풍이 불고 있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의 숫자는 크게 늘었다.

2016년 한 해에 전 세계에서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숫자는 1500만 명이 넘는다.

그 중에는 한국적인 모습과 전통문화 그리고 한국의 역사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찾아가는 곳은 박물관이다.

박물관에 가면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한곳에서 보고 싶다면 서울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가 봐야 한다.

말 그대로 국립중앙박물관은 전국 12여 개의 국립박물관 중 중심이자 핵심이 되는 곳이다.

여기에는 우리나라의 고대사부터 현대사까지 대한민국의 총 역사가 집약되어 있다.

 

우리는 과거 36년 동안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식민 지배를 당했던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역사는 여러모로 심각하게 왜곡이 되었다.

이후 국권을 되찾아 광복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제에 의해 왜곡된 역사의 잔재는 청산되지 못한 채 방기되고 굳어지는 이해하지 못할 일이 계속되어 왔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서울시 용산구에 자리를 잡은 지는 10년이 지났지만, 이곳에서는 여전히 비틀어지고 훼손된 한국의 역사가 기정사실처럼 고스란히 소개되고 있다.

이는 대단히 잘못되고 통탄스러운 일로서, 그 진실을 바로잡고 올바로 이해하는 일은 현실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역사의식의 회복 운동이라 할 수 있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유물을 바로 아는 것, 이것은 또 다른 측면에서의 ‘역사 바로 세우기’인 것이다.

 

잘못 알려지거나 관련 정보가 부족한 우리 역사를 박물관 유물 등을 중심으로 바르게 이해하여 보자는 차원에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꼭 보아야 할 오래된 유물 유적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 고인돌의 나라 대한민국

고인돌은 인류가 농경문화를 시작한 이래 남긴 거석문화巨石文化 유산으로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 전 세계에서 확인된 고인돌 수는 약 5만 5000여 기基에 이른다.

 

그 중 대략 3만기 정도가 한반도에서 발견됐다고 하는데, 한반도에서 발견된 수가 늘어나 대략 4만 5000에서 5만 기 정도가 된다고 한다.

결국 전 세계에서 발견된 숫자보다 두 배 이상의 고인돌이 한반도에서 발견됐다는 결론이다.

 

■ 5천 년 전의 벼농사

경기도 고양高陽의 가와지 볍씨는 1991년 고양시 가와지 마을에서 발굴된 볍씨로 미국 베타연구소에서 5천 년 전의 것으로 확인되면서 그동안 일본으로부터 쌀이 전래되었다는 학설을 뒤집고, 한반도로부터 일본에 전래되었을 것임을 밝혀 주었다.

 

즉 한반도의 벼농사는 약 5천 년 전에도 있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이와 같이 한국인은 오래전부터 농사를 지어 왔다.

박물관에서 본 우리역사-비파형동검

진실의 역사

박물관에서 본 우리 역사 | 유물로 이해하는 한국의 바른 역사


세계적으로 한류열풍이 불고 있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의 숫자는 크게 늘었다.

2016년 한 해에 전 세계에서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숫자는 1500만 명이 넘는다.

그 중에는 한국적인 모습과 전통문화 그리고 한국의 역사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찾아가는 곳은 박물관이다.

박물관에 가면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한곳에서 보고 싶다면 서울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가 봐야 한다.

말 그대로 국립중앙박물관은 전국 12여 개의 국립박물관 중 중심이자 핵심이 되는 곳이다.

여기에는 우리나라의 고대사부터 현대사까지 대한민국의 총 역사가 집약되어 있다.

 

우리는 과거 36년 동안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식민 지배를 당했던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역사는 여러모로 심각하게 왜곡이 되었다.

이후 국권을 되찾아 광복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제에 의해 왜곡된 역사의 잔재는 청산되지 못한 채 방기되고 굳어지는 이해하지 못할 일이 계속되어 왔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서울시 용산구에 자리를 잡은 지는 10년이 지났지만, 이곳에서는 여전히 비틀어지고 훼손된 한국의 역사가 기정사실처럼 고스란히 소개되고 있다.

이는 대단히 잘못되고 통탄스러운 일로서, 그 진실을 바로잡고 올바로 이해하는 일은 현실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역사의식의 회복 운동이라 할 수 있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유물을 바로 아는 것, 이것은 또 다른 측면에서의 ‘역사 바로 세우기’인 것이다.

 

잘못 알려지거나 관련 정보가 부족한 우리 역사를 박물관 유물 등을 중심으로 바르게 이해하여 보자는 차원에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꼭 보아야 할 오래된 유물 유적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 비파형 동검琵琶形銅劍

선사시대를 지나면 이제 고조선실古朝鮮室로 들어서게 된다.

이곳은 4300여 년 전부터 약 2000년간의 한국 역사를 보여주는 곳이다.

이 전시실이 생긴 지는 아직 10년도 되지 않았다.

 

2007년 국사교과서의 고조선 부분이 개편되고 중국의 동북공정이 알려지고 나서야 2009년 여론에 밀려서 고조선실이 개설되었다.

이 고조선실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검劍이 있다.

몸체가 비파라는 악기를 닮았다고 해서 ‘비파형 동검’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고조선의 대표적인 유물이다.

그래서 이를 ‘고조선식 동검’ 또는 ‘조선검’이라고도 부른다.

비파형 동검은 고조선이 중국과 구별되는 선진 청동문화를 가진 정치세력 집단이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비파형 동검의 분포는 만주, 한반도, 중국대륙의 동편으로 거대한 강역을 형성하고 있다.

박물관에서 본 우리역사-8천년전 빗살무늬토기, 옥귀걸이

진실의 역사

박물관에서 본 우리 역사 | 유물로 이해하는 한국의 바른 역사


세계적으로 한류열풍이 불고 있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의 숫자는 크게 늘었다.

2016년 한 해에 전 세계에서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숫자는 1500만 명이 넘는다.

그 중에는 한국적인 모습과 전통문화 그리고 한국의 역사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찾아가는 곳은 박물관이다.

박물관에 가면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한곳에서 보고 싶다면 서울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가 봐야 한다.

말 그대로 국립중앙박물관은 전국 12여 개의 국립박물관 중 중심이자 핵심이 되는 곳이다.

여기에는 우리나라의 고대사부터 현대사까지 대한민국의 총 역사가 집약되어 있다.

 

우리는 과거 36년 동안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식민 지배를 당했던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역사는 여러모로 심각하게 왜곡이 되었다.

이후 국권을 되찾아 광복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제에 의해 왜곡된 역사의 잔재는 청산되지 못한 채 방기되고 굳어지는 이해하지 못할 일이 계속되어 왔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서울시 용산구에 자리를 잡은 지는 10년이 지났지만, 이곳에서는 여전히 비틀어지고 훼손된 한국의 역사가 기정사실처럼 고스란히 소개되고 있다.

이는 대단히 잘못되고 통탄스러운 일로서, 그 진실을 바로잡고 올바로 이해하는 일은 현실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역사의식의 회복 운동이라 할 수 있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유물을 바로 아는 것, 이것은 또 다른 측면에서의 ‘역사 바로 세우기’인 것이다.

 

잘못 알려지거나 관련 정보가 부족한 우리 역사를 박물관 유물 등을 중심으로 바르게 이해하여 보자는 차원에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꼭 보아야 할 오래된 유물 유적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 8천 년 전 빗살무늬토기

신석기 시대 유물로 꼭 봐야 할 것이 8천 년 전 빗살무늬토기이다.

빗살무늬 토기는 요서 일대(요서 문명)와 흑룡강 중·하류 지역, 한반도, 일본 등지에서 발굴되는데 이들은 모두 같은 문화권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빗살무늬 토기는 중국 중원의 황하 일대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 북방 계통의 문화이다.

즉 빗살무늬토기가 전파되는 길은 따로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BCE 6000년 당시부터 만주와 한반도 그리고 요서 지방과 발해만 연안은 중국의 중원과 다른 독자적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 8천 년 전 옥 귀걸이(옥결玉玦)

보통 세계사에서 4대 문명을 배운다.

그런데 이 4대 문명보다 오래된 문명이 요서지방에서 발굴되었다.

이를 요하문명遼河文明(홍산문화紅山文化)이라고 한다.

 

이 홍산문화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옥 귀걸이가 내몽골 자치구의 오한기敖漢旗에 위치한 흥륭와興隆窪 문화(BCE 6200~BCE 5200)에서 발굴되었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옥 귀걸이가 비슷한 시기에 한반도 동해안 고성高城 문암리文岩里 선사 유적지에서 발견되었다.

 

기원전 6천 년경으로 추정되는 흥륭와의 옥 귀걸이, 중국 랴오닝성遼寧省에 있는 사해문화査海文化(BCE 5600년경)의 옥 귀걸이, 그리고 한반도에 있는 강원도 고성 문암리의 옥 귀걸이가 모양이 모두 같다.

이것은 그 당시 이 세 지역이 서로 같은 문화권이라는 증거이다.

박물관에서 본 우리역사-8천년전 세계최초의 배

진실의 역사

박물관에서 본 우리 역사 | 유물로 이해하는 한국의 바른 역사


세계적으로 한류열풍이 불고 있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의 숫자는 크게 늘었다.

2016년 한 해에 전 세계에서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숫자는 1500만 명이 넘는다.

그 중에는 한국적인 모습과 전통문화 그리고 한국의 역사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찾아가는 곳은 박물관이다.

박물관에 가면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한곳에서 보고 싶다면 서울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가 봐야 한다.

말 그대로 국립중앙박물관은 전국 12여 개의 국립박물관 중 중심이자 핵심이 되는 곳이다.

여기에는 우리나라의 고대사부터 현대사까지 대한민국의 총 역사가 집약되어 있다.

 

우리는 과거 36년 동안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식민 지배를 당했던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역사는 여러모로 심각하게 왜곡이 되었다.

이후 국권을 되찾아 광복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제에 의해 왜곡된 역사의 잔재는 청산되지 못한 채 방기되고 굳어지는 이해하지 못할 일이 계속되어 왔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서울시 용산구에 자리를 잡은 지는 10년이 지났지만, 이곳에서는 여전히 비틀어지고 훼손된 한국의 역사가 기정사실처럼 고스란히 소개되고 있다.

이는 대단히 잘못되고 통탄스러운 일로서, 그 진실을 바로잡고 올바로 이해하는 일은 현실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역사의식의 회복 운동이라 할 수 있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유물을 바로 아는 것, 이것은 또 다른 측면에서의 ‘역사 바로 세우기’인 것이다.

 

잘못 알려지거나 관련 정보가 부족한 우리 역사를 박물관 유물 등을 중심으로 바르게 이해하여 보자는 차원에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꼭 보아야 할 오래된 유물 유적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 8천 년 전 세계 최초의 배

구석기 시대를 지나서 신석기실로 들어가면 세계 최초의 나무배를 볼 수 있다.

2005년 경남 창녕군 부곡면 비봉리 신석기 유적에서 통나무를 이용해 만든 작은 배를 발견했는데 과학적 연대 측정을 통해 8000년 전 배로 밝혀졌다.

 

이 배는 최대 길이 310㎝, 최대 폭 60㎝, 깊이 약 20㎝ 정도의 규모이며 소나무로 만들어졌다.

신석기인들의 어로 활동 등 생활상과, 목선을 만들 정도로 뛰어났던 당시 사람들의 기술력 등을 보여주는 매우 소중한 유물이다.

오래전 배를 만들었던 한국인은 현재도 배를 만드는 조선술에서 세계 1위를 다투고 있다.

박물관에서 본 우리역사-7천년전 고래잡이

진실의 역사

박물관에서 본 우리 역사 | 유물로 이해하는 한국의 바른 역사


세계적으로 한류열풍이 불고 있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의 숫자는 크게 늘었다.

2016년 한 해에 전 세계에서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숫자는 1500만 명이 넘는다.

그 중에는 한국적인 모습과 전통문화 그리고 한국의 역사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찾아가는 곳은 박물관이다.

박물관에 가면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한곳에서 보고 싶다면 서울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가 봐야 한다.

말 그대로 국립중앙박물관은 전국 12여 개의 국립박물관 중 중심이자 핵심이 되는 곳이다.

여기에는 우리나라의 고대사부터 현대사까지 대한민국의 총 역사가 집약되어 있다.

 

우리는 과거 36년 동안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식민 지배를 당했던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역사는 여러모로 심각하게 왜곡이 되었다.

이후 국권을 되찾아 광복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제에 의해 왜곡된 역사의 잔재는 청산되지 못한 채 방기되고 굳어지는 이해하지 못할 일이 계속되어 왔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서울시 용산구에 자리를 잡은 지는 10년이 지났지만, 이곳에서는 여전히 비틀어지고 훼손된 한국의 역사가 기정사실처럼 고스란히 소개되고 있다.

이는 대단히 잘못되고 통탄스러운 일로서, 그 진실을 바로잡고 올바로 이해하는 일은 현실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역사의식의 회복 운동이라 할 수 있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유물을 바로 아는 것, 이것은 또 다른 측면에서의 ‘역사 바로 세우기’인 것이다.

 

잘못 알려지거나 관련 정보가 부족한 우리 역사를 박물관 유물 등을 중심으로 바르게 이해하여 보자는 차원에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꼭 보아야 할 오래된 유물 유적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 7천 년 전의 고래잡이

처음 전시실을 들어서면 고래가 새겨진 벽을 마주하게 된다.

세계 최초의 고래잡이 암각화이다.

 

이는 경상남도 울산시 울주군 대곡리에 있는 선사시대의 암각화이다.

한국이 세계 최초로 고래잡이를 했음을 보여주는 암각화로서 공개되자마자 세계 학계가 주목한 우리의 유산이다.

이 암각화에는 향유고래, 참고래, 혹등고래 등 큰 고래가 46마리 이상이 그려져 있고 고래잡이를 위한 작살과 부구, 낚싯줄을 사용한 모습 등을 보여 준다.

 

그리고 십여 명이 한꺼번에 탈 수 있는 고래잡이 배의 그림도 그려져 있어 고래잡이 등 어업이 활발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고래잡이 등이 잘되게 하기 위한 제사를 맡은 샤먼shaman의 그림은 7천 년 전의 삶을 짐작케 한다.

놀라운 것은 이곳의 암각화가 6천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러시아 백해 카렐리아Karelia공화국의 잘라부르가 암각화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이동을 하여서 같은 그림을 그린 것일까? 의문점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