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만큼 보인다

박물관에서 본 우리역사-청동거울, 농경문청동기, 솟대

진실의 역사

박물관에서 본 우리 역사 | 유물로 이해하는 한국의 바른 역사


세계적으로 한류열풍이 불고 있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의 숫자는 크게 늘었다.

2016년 한 해에 전 세계에서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숫자는 1500만 명이 넘는다.

그 중에는 한국적인 모습과 전통문화 그리고 한국의 역사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찾아가는 곳은 박물관이다.

박물관에 가면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한곳에서 보고 싶다면 서울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가 봐야 한다.

말 그대로 국립중앙박물관은 전국 12여 개의 국립박물관 중 중심이자 핵심이 되는 곳이다.

여기에는 우리나라의 고대사부터 현대사까지 대한민국의 총 역사가 집약되어 있다.

 

우리는 과거 36년 동안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식민 지배를 당했던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역사는 여러모로 심각하게 왜곡이 되었다.

이후 국권을 되찾아 광복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제에 의해 왜곡된 역사의 잔재는 청산되지 못한 채 방기되고 굳어지는 이해하지 못할 일이 계속되어 왔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서울시 용산구에 자리를 잡은 지는 10년이 지났지만, 이곳에서는 여전히 비틀어지고 훼손된 한국의 역사가 기정사실처럼 고스란히 소개되고 있다.

이는 대단히 잘못되고 통탄스러운 일로서, 그 진실을 바로잡고 올바로 이해하는 일은 현실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역사의식의 회복 운동이라 할 수 있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유물을 바로 아는 것, 이것은 또 다른 측면에서의 ‘역사 바로 세우기’인 것이다.

 

잘못 알려지거나 관련 정보가 부족한 우리 역사를 박물관 유물 등을 중심으로 바르게 이해하여 보자는 차원에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꼭 보아야 할 오래된 유물 유적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 고조선의 청동거울

청동거울은 비파형 동검과 함께 전국의 박물관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전시되어 있다.

보통 청동거울은 고조선 시대와 삼국 시대에도 계속 만들어 썼다. 일본에 위치한 ‘거울박물관’에서는 거울의 역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을 한다.

 

“거울에 영상이 비치는(실제로는 반사하는) 현상은 지극히 신비적인 현상으로 파악되었다.

그 때문에 단순한 화장의 용구로서보다 먼저 제사의 도구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이로 살펴볼진대 거울을 단순히 사물만 비춰 보는 미러mirror 정도로만 받아들이기엔 석연치 않다.

 

신기하게도 러시아 바이칼호 지역에 거주하는 브리야트족의 샤먼shaman이나 몽골의 샤먼 등은 모두 가슴에 이 거울을 달고서 의식을 행한다.

신과 인간을 연결시켜주는 샤먼이 사용했다는 점에서 거울의 신성함이 느껴진다.

거울의 형태가 원형인 것은 하늘 또는 태양을 상징한 것은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게 한다.


■ 농경문 청동기農耕文靑銅器와 솟대

고조선실에 가면 중앙에 농경문청동기農耕文靑銅器라 하여 농사를 짓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는 청동기 유물이 하나 있다.

고조선 시대 농사를 짓는 모습을 확실하게 보여 주는 유물이다.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아야 그림을 이해할 수 있다.

 

앞면에는 기구를 가지고 밭을 갈고 수확한 곡식을 항아리에 담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뒷면에는 나뭇가지 끝에 새가 앉아 있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솟대다.

 

고조선에는 신성한 공간이 있었는데 이것을 ‘소도蘇塗’라 한다.

이 소도라는 공간을 알리는 것이 바로 솟대(입목立木)이다. 소도 앞에 세운 높다란 기둥이 솟대인데, 이 솟대는 ‘신을 모시는 기둥’이라고도 한다.

 

솟대 끝에는 대개 새가 조각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새를 신성시하여 토템으로 삼기도 하였다.

새는 하나님의 사자로서 하늘의 뜻을 전하는 신령한 존재로 숭배되었다.

솟대가 있는 곳은 신성한 공간이다.

이 솟대 문화는 동남아에서도 발견할 수 있고 저 멀리 바이칼, 러시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박물관에서 본 우리역사-고인돌, 5천년전 벼농사

진실의 역사

박물관에서 본 우리 역사 | 유물로 이해하는 한국의 바른 역사


세계적으로 한류열풍이 불고 있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의 숫자는 크게 늘었다.

2016년 한 해에 전 세계에서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숫자는 1500만 명이 넘는다.

그 중에는 한국적인 모습과 전통문화 그리고 한국의 역사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찾아가는 곳은 박물관이다.

박물관에 가면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한곳에서 보고 싶다면 서울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가 봐야 한다.

말 그대로 국립중앙박물관은 전국 12여 개의 국립박물관 중 중심이자 핵심이 되는 곳이다.

여기에는 우리나라의 고대사부터 현대사까지 대한민국의 총 역사가 집약되어 있다.

 

우리는 과거 36년 동안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식민 지배를 당했던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역사는 여러모로 심각하게 왜곡이 되었다.

이후 국권을 되찾아 광복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제에 의해 왜곡된 역사의 잔재는 청산되지 못한 채 방기되고 굳어지는 이해하지 못할 일이 계속되어 왔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서울시 용산구에 자리를 잡은 지는 10년이 지났지만, 이곳에서는 여전히 비틀어지고 훼손된 한국의 역사가 기정사실처럼 고스란히 소개되고 있다.

이는 대단히 잘못되고 통탄스러운 일로서, 그 진실을 바로잡고 올바로 이해하는 일은 현실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역사의식의 회복 운동이라 할 수 있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유물을 바로 아는 것, 이것은 또 다른 측면에서의 ‘역사 바로 세우기’인 것이다.

 

잘못 알려지거나 관련 정보가 부족한 우리 역사를 박물관 유물 등을 중심으로 바르게 이해하여 보자는 차원에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꼭 보아야 할 오래된 유물 유적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 고인돌의 나라 대한민국

고인돌은 인류가 농경문화를 시작한 이래 남긴 거석문화巨石文化 유산으로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 전 세계에서 확인된 고인돌 수는 약 5만 5000여 기基에 이른다.

 

그 중 대략 3만기 정도가 한반도에서 발견됐다고 하는데, 한반도에서 발견된 수가 늘어나 대략 4만 5000에서 5만 기 정도가 된다고 한다.

결국 전 세계에서 발견된 숫자보다 두 배 이상의 고인돌이 한반도에서 발견됐다는 결론이다.

 

■ 5천 년 전의 벼농사

경기도 고양高陽의 가와지 볍씨는 1991년 고양시 가와지 마을에서 발굴된 볍씨로 미국 베타연구소에서 5천 년 전의 것으로 확인되면서 그동안 일본으로부터 쌀이 전래되었다는 학설을 뒤집고, 한반도로부터 일본에 전래되었을 것임을 밝혀 주었다.

 

즉 한반도의 벼농사는 약 5천 년 전에도 있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이와 같이 한국인은 오래전부터 농사를 지어 왔다.

박물관에서 본 우리역사-비파형동검

진실의 역사

박물관에서 본 우리 역사 | 유물로 이해하는 한국의 바른 역사


세계적으로 한류열풍이 불고 있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의 숫자는 크게 늘었다.

2016년 한 해에 전 세계에서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숫자는 1500만 명이 넘는다.

그 중에는 한국적인 모습과 전통문화 그리고 한국의 역사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찾아가는 곳은 박물관이다.

박물관에 가면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한곳에서 보고 싶다면 서울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가 봐야 한다.

말 그대로 국립중앙박물관은 전국 12여 개의 국립박물관 중 중심이자 핵심이 되는 곳이다.

여기에는 우리나라의 고대사부터 현대사까지 대한민국의 총 역사가 집약되어 있다.

 

우리는 과거 36년 동안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식민 지배를 당했던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역사는 여러모로 심각하게 왜곡이 되었다.

이후 국권을 되찾아 광복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제에 의해 왜곡된 역사의 잔재는 청산되지 못한 채 방기되고 굳어지는 이해하지 못할 일이 계속되어 왔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서울시 용산구에 자리를 잡은 지는 10년이 지났지만, 이곳에서는 여전히 비틀어지고 훼손된 한국의 역사가 기정사실처럼 고스란히 소개되고 있다.

이는 대단히 잘못되고 통탄스러운 일로서, 그 진실을 바로잡고 올바로 이해하는 일은 현실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역사의식의 회복 운동이라 할 수 있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유물을 바로 아는 것, 이것은 또 다른 측면에서의 ‘역사 바로 세우기’인 것이다.

 

잘못 알려지거나 관련 정보가 부족한 우리 역사를 박물관 유물 등을 중심으로 바르게 이해하여 보자는 차원에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꼭 보아야 할 오래된 유물 유적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 비파형 동검琵琶形銅劍

선사시대를 지나면 이제 고조선실古朝鮮室로 들어서게 된다.

이곳은 4300여 년 전부터 약 2000년간의 한국 역사를 보여주는 곳이다.

이 전시실이 생긴 지는 아직 10년도 되지 않았다.

 

2007년 국사교과서의 고조선 부분이 개편되고 중국의 동북공정이 알려지고 나서야 2009년 여론에 밀려서 고조선실이 개설되었다.

이 고조선실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검劍이 있다.

몸체가 비파라는 악기를 닮았다고 해서 ‘비파형 동검’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고조선의 대표적인 유물이다.

그래서 이를 ‘고조선식 동검’ 또는 ‘조선검’이라고도 부른다.

비파형 동검은 고조선이 중국과 구별되는 선진 청동문화를 가진 정치세력 집단이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비파형 동검의 분포는 만주, 한반도, 중국대륙의 동편으로 거대한 강역을 형성하고 있다.

박물관에서 본 우리역사-8천년전 빗살무늬토기, 옥귀걸이

진실의 역사

박물관에서 본 우리 역사 | 유물로 이해하는 한국의 바른 역사


세계적으로 한류열풍이 불고 있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의 숫자는 크게 늘었다.

2016년 한 해에 전 세계에서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숫자는 1500만 명이 넘는다.

그 중에는 한국적인 모습과 전통문화 그리고 한국의 역사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찾아가는 곳은 박물관이다.

박물관에 가면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한곳에서 보고 싶다면 서울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가 봐야 한다.

말 그대로 국립중앙박물관은 전국 12여 개의 국립박물관 중 중심이자 핵심이 되는 곳이다.

여기에는 우리나라의 고대사부터 현대사까지 대한민국의 총 역사가 집약되어 있다.

 

우리는 과거 36년 동안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식민 지배를 당했던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역사는 여러모로 심각하게 왜곡이 되었다.

이후 국권을 되찾아 광복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제에 의해 왜곡된 역사의 잔재는 청산되지 못한 채 방기되고 굳어지는 이해하지 못할 일이 계속되어 왔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서울시 용산구에 자리를 잡은 지는 10년이 지났지만, 이곳에서는 여전히 비틀어지고 훼손된 한국의 역사가 기정사실처럼 고스란히 소개되고 있다.

이는 대단히 잘못되고 통탄스러운 일로서, 그 진실을 바로잡고 올바로 이해하는 일은 현실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역사의식의 회복 운동이라 할 수 있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유물을 바로 아는 것, 이것은 또 다른 측면에서의 ‘역사 바로 세우기’인 것이다.

 

잘못 알려지거나 관련 정보가 부족한 우리 역사를 박물관 유물 등을 중심으로 바르게 이해하여 보자는 차원에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꼭 보아야 할 오래된 유물 유적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 8천 년 전 빗살무늬토기

신석기 시대 유물로 꼭 봐야 할 것이 8천 년 전 빗살무늬토기이다.

빗살무늬 토기는 요서 일대(요서 문명)와 흑룡강 중·하류 지역, 한반도, 일본 등지에서 발굴되는데 이들은 모두 같은 문화권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빗살무늬 토기는 중국 중원의 황하 일대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 북방 계통의 문화이다.

즉 빗살무늬토기가 전파되는 길은 따로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BCE 6000년 당시부터 만주와 한반도 그리고 요서 지방과 발해만 연안은 중국의 중원과 다른 독자적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 8천 년 전 옥 귀걸이(옥결玉玦)

보통 세계사에서 4대 문명을 배운다.

그런데 이 4대 문명보다 오래된 문명이 요서지방에서 발굴되었다.

이를 요하문명遼河文明(홍산문화紅山文化)이라고 한다.

 

이 홍산문화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옥 귀걸이가 내몽골 자치구의 오한기敖漢旗에 위치한 흥륭와興隆窪 문화(BCE 6200~BCE 5200)에서 발굴되었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옥 귀걸이가 비슷한 시기에 한반도 동해안 고성高城 문암리文岩里 선사 유적지에서 발견되었다.

 

기원전 6천 년경으로 추정되는 흥륭와의 옥 귀걸이, 중국 랴오닝성遼寧省에 있는 사해문화査海文化(BCE 5600년경)의 옥 귀걸이, 그리고 한반도에 있는 강원도 고성 문암리의 옥 귀걸이가 모양이 모두 같다.

이것은 그 당시 이 세 지역이 서로 같은 문화권이라는 증거이다.

박물관에서 본 우리역사-8천년전 세계최초의 배

진실의 역사

박물관에서 본 우리 역사 | 유물로 이해하는 한국의 바른 역사


세계적으로 한류열풍이 불고 있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의 숫자는 크게 늘었다.

2016년 한 해에 전 세계에서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숫자는 1500만 명이 넘는다.

그 중에는 한국적인 모습과 전통문화 그리고 한국의 역사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찾아가는 곳은 박물관이다.

박물관에 가면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한곳에서 보고 싶다면 서울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가 봐야 한다.

말 그대로 국립중앙박물관은 전국 12여 개의 국립박물관 중 중심이자 핵심이 되는 곳이다.

여기에는 우리나라의 고대사부터 현대사까지 대한민국의 총 역사가 집약되어 있다.

 

우리는 과거 36년 동안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식민 지배를 당했던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역사는 여러모로 심각하게 왜곡이 되었다.

이후 국권을 되찾아 광복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제에 의해 왜곡된 역사의 잔재는 청산되지 못한 채 방기되고 굳어지는 이해하지 못할 일이 계속되어 왔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서울시 용산구에 자리를 잡은 지는 10년이 지났지만, 이곳에서는 여전히 비틀어지고 훼손된 한국의 역사가 기정사실처럼 고스란히 소개되고 있다.

이는 대단히 잘못되고 통탄스러운 일로서, 그 진실을 바로잡고 올바로 이해하는 일은 현실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역사의식의 회복 운동이라 할 수 있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유물을 바로 아는 것, 이것은 또 다른 측면에서의 ‘역사 바로 세우기’인 것이다.

 

잘못 알려지거나 관련 정보가 부족한 우리 역사를 박물관 유물 등을 중심으로 바르게 이해하여 보자는 차원에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꼭 보아야 할 오래된 유물 유적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 8천 년 전 세계 최초의 배

구석기 시대를 지나서 신석기실로 들어가면 세계 최초의 나무배를 볼 수 있다.

2005년 경남 창녕군 부곡면 비봉리 신석기 유적에서 통나무를 이용해 만든 작은 배를 발견했는데 과학적 연대 측정을 통해 8000년 전 배로 밝혀졌다.

 

이 배는 최대 길이 310㎝, 최대 폭 60㎝, 깊이 약 20㎝ 정도의 규모이며 소나무로 만들어졌다.

신석기인들의 어로 활동 등 생활상과, 목선을 만들 정도로 뛰어났던 당시 사람들의 기술력 등을 보여주는 매우 소중한 유물이다.

오래전 배를 만들었던 한국인은 현재도 배를 만드는 조선술에서 세계 1위를 다투고 있다.

박물관에서 본 우리역사-7천년전 고래잡이

진실의 역사

박물관에서 본 우리 역사 | 유물로 이해하는 한국의 바른 역사


세계적으로 한류열풍이 불고 있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의 숫자는 크게 늘었다.

2016년 한 해에 전 세계에서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숫자는 1500만 명이 넘는다.

그 중에는 한국적인 모습과 전통문화 그리고 한국의 역사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찾아가는 곳은 박물관이다.

박물관에 가면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한곳에서 보고 싶다면 서울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가 봐야 한다.

말 그대로 국립중앙박물관은 전국 12여 개의 국립박물관 중 중심이자 핵심이 되는 곳이다.

여기에는 우리나라의 고대사부터 현대사까지 대한민국의 총 역사가 집약되어 있다.

 

우리는 과거 36년 동안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식민 지배를 당했던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역사는 여러모로 심각하게 왜곡이 되었다.

이후 국권을 되찾아 광복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제에 의해 왜곡된 역사의 잔재는 청산되지 못한 채 방기되고 굳어지는 이해하지 못할 일이 계속되어 왔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서울시 용산구에 자리를 잡은 지는 10년이 지났지만, 이곳에서는 여전히 비틀어지고 훼손된 한국의 역사가 기정사실처럼 고스란히 소개되고 있다.

이는 대단히 잘못되고 통탄스러운 일로서, 그 진실을 바로잡고 올바로 이해하는 일은 현실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역사의식의 회복 운동이라 할 수 있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유물을 바로 아는 것, 이것은 또 다른 측면에서의 ‘역사 바로 세우기’인 것이다.

 

잘못 알려지거나 관련 정보가 부족한 우리 역사를 박물관 유물 등을 중심으로 바르게 이해하여 보자는 차원에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꼭 보아야 할 오래된 유물 유적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 7천 년 전의 고래잡이

처음 전시실을 들어서면 고래가 새겨진 벽을 마주하게 된다.

세계 최초의 고래잡이 암각화이다.

 

이는 경상남도 울산시 울주군 대곡리에 있는 선사시대의 암각화이다.

한국이 세계 최초로 고래잡이를 했음을 보여주는 암각화로서 공개되자마자 세계 학계가 주목한 우리의 유산이다.

이 암각화에는 향유고래, 참고래, 혹등고래 등 큰 고래가 46마리 이상이 그려져 있고 고래잡이를 위한 작살과 부구, 낚싯줄을 사용한 모습 등을 보여 준다.

 

그리고 십여 명이 한꺼번에 탈 수 있는 고래잡이 배의 그림도 그려져 있어 고래잡이 등 어업이 활발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고래잡이 등이 잘되게 하기 위한 제사를 맡은 샤먼shaman의 그림은 7천 년 전의 삶을 짐작케 한다.

놀라운 것은 이곳의 암각화가 6천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러시아 백해 카렐리아Karelia공화국의 잘라부르가 암각화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이동을 하여서 같은 그림을 그린 것일까? 의문점이 남는다.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을 읽고-이덕일

진실의 역사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을 읽고 - 이덕일

사마천 사기의 기자조선에 대한 기록을 보자.
封箕子於朝鮮 而不臣也 봉기자어조선 이불신야

 

《사마천 [송미자세가宋薇子世家]》 사기에는 기자를 조선에 봉했으나 신하로 삼지는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은나라도 동이족 나라이거니와  중화사대주의자들인 유학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사미천 사기에는 고조선은 중국의 은나라에서 봉한 제후국이 아니었음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중국 은나라의 제후인 기자가 평양에 조선을 건국했다는 기자조선설은 허구인 것이다.

더구나 지금의 북한 평양이 기자조선의 도읍도 아니다.

(사실은 기자를 봉한 사실이 없는 것이다. 제후국으로 봉하면 신하는 당연한 것인데 신하로 삼지못했다고 앞뒤가 안맞는 기록을 하고 있다.)

 

樂浪郡-武帝元封三年開.莽曰樂鮮 屬幽州(漢書 地理志)
낙랑군-무제원봉삼년개.망왈낙선, 속유주
☞낙랑군은 무제원봉 3년에 열었는데 낙선군이라 말하였고 유주에 속하였다.(유주는 현재 북경이다.)

 

高麗治平壤城,本漢樂浪郡王險城,卽古朝鮮也(括理志)
고려치평양성 본한낙랑군왕험성 즉고조선야
高麗治平壤城,本漢樂浪郡王險城,卽古朝鮮也,時朝鮮王滿據之也(사기정의)
고려치평양성,본한낙랑군왕험성, 즉고조선야,시조선왕만거지야
☞고려치소인 평양성은 본래 한나라 낙랑군 왕험성인데 곧 고조선의 땅이다.

 

樂浪郡故朝鮮國也 在療東(후한서 광무제본기)
☞낙랑군은 옛조선국인데 요동에 있다.

 

療東君 秦置 屬幽州요동군진치 속유주(한서지리지)
☞요동군은 진나라때 설치되었고 유주에 속한다.

 

王險城在樂浪郡 浿水之東,此自是險瀆也(한서 지리지)
☞왕험성은 낙랑군에 있는데 패수의 동쪽이다. 이것이 험독이다.

 

王險城在樂廊君浿水之東왕험성재낙랑군패수지동(사기조선열전)
☞왕험성은 요동군에 있는데 패수의 동쪽이다.

 

應召注 地理志療東險瀆縣 朝鮮王舊都응소주 지리지 요동험독현 조선왕구도(응소주 사기조선열전 주석)
☞후한말기에서 삼국시대 초기 때 인물인 응소는 험독현에 주석을 달면서.

지리지를 인용해서, “요동 험독현은 조선왕의 옛 도읍지다”라고 했다.

즉 위만조선의 수도인 왕험성은 창려현에 있었고 패수의 동쪽이며 왕험성의 서쪽에 패수가 흘렀다는 뜻이다.

낙랑군 수성현에 있던 창려현의 서쪽을 흐르는 험한 강은 지금의 난하다.

곧 지금의 난하가 패수가 되는 것이고 이 강이 고조선과 한나라의 국경이었다.

 

☞환단고기에서는 삼신일체의 원리에 의해 삼조선체제로 국가를 운영했는데 바로 번조선의 수도가 왕험성(험독)이다.

결코 지금의 평양이 아니다. 중국 사서에도 이를 명확하게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강단사학자들은 고조선을 마치 족장 시대로 기술하고 위만이 조선을 침탈하며 철기문명이 전해져서 조선이 크게 번창한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集解徐廣曰,昌黎有險瀆縣也(사기 조선열전)
집해서광왈 창려유험독현야(사기집해주석)
☞서광이 말하길, 창려에 혐독현이 있었다.

 

浿水療東塞外패수요동새외(사기 조선열전)
☞패수는 요동의 새외에서 나온다.

 

長岑縣屬樂浪君 其地在療東장잠현속낙랑군 기지재요동(후한서 최인열전)
☞장잠현은 낙랑군에 속했는데 그 땅은 요동에 있다.

 

長城所太康地理志云 樂浪遂城縣有碣石山 起태강지리지운 낙랑수성현유갈석산 장성소기(史記 夏本記)
☞태강지리지에는 낙랑군 수성현에는 갈석산이 있는데 만리장성의 기점이다.

 

遂城,秦築長城之所起也수성 진축장성지소기야(晉書 지리지 낙랑군)
☞수성현은 진나라에서 쌓은 장성이 시작되는 곳이다.

 

水經注,絫縣碣石山 枕海有大石如柱形 世名天橋 絫縣古城 在昌驪縣西南(大東地志 방여총지)

수경주 류현갈석산 침해유대석여주형 세명천교 류현고성 재창려현서남
☞수경주에는 류현 갈석산은 바다에 기둥처럼서있는데 세상에서는 천교라한다. 류현은 고성인데 지금은 창려현 서남쪽에 있다.

 

遂城舊曰武遂 後魏置南營州,准營州置五君十一縣:龍城,廣興,定荒,屬昌黎君(수서 지리지)

수성구왈무수 후위치남영주.준영주치오군십일현;용성,광흥,정황,속창려군
☞수성현은 옛날에는 무수로 불렸다. 후위에 와서 남영주로 행정개편 되고 영주는 5군11현을 두었다. 용성,광흥,정황현은 창려군에 속한다.

 

正義 括地志云 “易州遂城 戰國時武遂城也.方城故在幽州固安縣南十七里(史記 趙世家)

정의 괄지지운 역주수성 전국시무수성야. 방성고재유주고안현남십칠리
☞괄지지에는 이주 수성현은 전국시대의 무수성이다. 그 성의 위치는 옛 유주 고안현 남쪽 십칠리에 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명확하게 명증하고 있는 책이 『환단고기』이다.

일본은 일제치하에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의도적으로 남긴다.

그 이유는 삼국사기는 신라입장에서 기술되면서 오히려 고구려를 당에 대항한 교오불손한 나라로 기술하고 연개소문을 왕을 시해한 패륜영웅으로 그렸다.

사대주의에 입각해 쓰여진 이 책은 대진국에 대한 기록을 의도적 삭제했다.

김부식이 경주김씨로 우리의 북방사를 절단해 버린 것이다.

왜 신채호가 묘청의 난을 일천년 역사의 가장 큰 사건이라 했는지 알아야 한다.

강력한 국풍과 다물사상을 지녔던 묘청이 패하면서 우리의 역사는 수렁으로 빠져들어 스스로 사대주의의 종이 되는 것을 기쁘게 여겼다.

 

삼국사기는 말 그대로 고구려, 백제, 신라에 대한 기록이지 우리의 고대사 기록이 아니다.

삼국유사 또한 불교적 견해로 기술했고 신화적 요소로 처리된 부분이 많다.

이로 인해 일제는 우리역사 왜곡의 기반을 조성할 수 있었다.

오히려 삼국유사의 미진한 기록을 명확히 밝힌 책이 『환단고기』이다.

 

우리나라는 외래종교와 사상이 들어오면 그들의 시각으로 우리 역사를 기술했다.

지금은 기독교에 의해 우리의 고대사는 철저히 신화로 치부되고 있다.

이스라엘 역사보다 훨씬 더 오랜 우리 역사적 사실이 문헌고증과 유물을 통해 확연히 밝혀졌는데도 역사적 사실과는 관계없이 믿음이란 명목하에 독선과 고집으로 역사적 사실조차 부정하고 있다.

자신의 역사는 어두워도 이스라엘 역사는 줄줄 외우는 현실이다.

 

뿌리를 잃은 민족이 얼마나 번성할 것인가.

신채호는 그것을 심각하게 지적하고 있다.

"조선 사람은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무슨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한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 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하는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도덕과 주의는 없다.

아! 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냐. 특색이라면 특색이나 노예의 특색이다.
나는 조선의 도덕과 조선의 주의를 위하여 곡하려 한다."

일찍이 단재 신채호 선생은 외래종교,외 래사상에 물들어 우리 역사와 문화를 부정하는 사대주의를 이렇게 개탄했다.  
 
(신채호의 묘청에 대한 역사적 시각)
오랜 기간 반란의 수괴로 이미지가 각인되었던 묘청이 역사상 중요한 인물로 화려하게 부활하게 된 것은 민족주의 사학자 신채호에 의해서였다.

 

신채호는 망명지에서 쓴 [조선역사상 1천 년래 제1대 사건]에서 아래와 같이 평가했다.

“서경 전투에서 양편 병력이 서로 수만 명에 지나지 않고 전투의 기간이 2년도 안되지만, 그 결과가 조선사회에 끼친 영향은 고구려의 후예요, 북방의 대국인 발해 멸망보다도 몇 갑절이나 더한 사건이니 대개 고려에서 이조에 이르는 1천 년 사이에 이 사건보다 더 중요한 사건이 없을 것이다.

역대의 사가들이 다만 왕의 군대가 반란의 무리를 친 싸움 정도로 알았을 뿐이었으나 이는 근시안적 관찰이다.

그 실상은 낭불양가 대 유가의 싸움이며, 국풍파 대 한학파의 싸움이며, 독립당 대 사대당의 싸움이며, 진취사상 대 보수사상의 싸움이니, 묘청은 곧 전자의 대표요, 김부식은 곧 후자의 대표였던 것이다.

이 전투에서 묘청이 패하고 김부식이 승리하여 조선역사가 사대적 보수적 속박적 사상, 즉 유교사상에 정복되고 말았거니와 만일 이와 반대로 묘청이 승리했다면 독립적 진취적 방면으로 나아갔을 것이니, 이 사건을 어찌 1천 년래 조선사가 제1대 사건이라 하지 않으랴.”

예수는 없다를 읽고②

진실의 역사

『예수는 없다』를 읽고②


이 책은 도발적인 제목과는 달리 예수의 진정한 가르침에 접근 하고자 하는 책이다.

율법주의적 믿음이란 무엇인가? 모든 것을 순종, 불순종으로 따지는 것이다.

이런 식의 믿음을 가지면 내가 충실한 신앙인이냐 아니냐 하는 것을 순종, 불순종의 잣대로 잴 뿐 아니라 신앙마저 같은 잣대로 재게 된다.

 

조건부적, 이기적 신앙자세란 어떤 것인가?
하나님을 믿지 않은 사람보다 하나님을 믿는 자기들에게 복을 만 배나 더하셔서 하나님의 영광과 축복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와 능력에 찬송을 드린다. 과연 이런 생각은 온당한 것인가?

주님의 뜻이 강자가 되고 부자가 되는 것인가?

예수님의 기도를 보자. “내 뜻대로 마옵시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즉 예수님의 경우처럼 ‘내 뜻을 완전히 비움’이 가능 할 때 비로소 우리에게 성령이 사역한다.

그런데 대개 기도를 할 때 아뢸 것만 죽 나열하고 아멘하는 일방통행식 기도를 한다. 하나님의 뜻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

문제는 이런 신앙태도가 대인관계에서 나타날 때의 문제이다.
만사가 하나님의 뜻이라며 증오심과 공격과 싸움을 정당화하고 미화한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뜻을 등에 업고 나오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결국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내 뜻’을 하나님의 뜻, 주님의 뜻으로 여기며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이다. 내 뜻을 하나님의 뜻으로 여긴다는 것은 결국 나를 하나님 자리에 앉힌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곧 내가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뜻, 주님의 뜻을 업고 나오는 사람들끼리의 싸움은 스스로 하나님이 된 ‘신들의 전쟁’이 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돌이나 나무로 새겨진 우상에게 절하는 것을 두고 우상숭배라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모든 것에서 상대적인 나를 절대자의 위치로 끌어올리는 ‘자기 우상숭배’가 얼마나 더 엄청나고 무서운 것인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닌 내식대로 이해한 하나님의 뜻이란 사실을 분명히 깨달을 필요가 있다.

내가 내리는 결단은 불완전한 결단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절대적인 것으로 고집하지 말아야한다.

 

하나님의 뜻이란 진정으로 마음을 비우고 조용히 기다리는 일을 떠나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무엇이다.

이렇게 얻어진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겨지는 무엇이 있다면 그것을 남을 공격하기 위한 근거로 사용하지 말고 우선 나 자신에게 적용하여 스스로를 더욱 깊이 살피는 일에 써야할 것이다.

하나님의 뜻 대문에 싸우는 일보다는 하나님의 뜻 때문에 내가 죽고 우리사이에 평화가 깃들이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하나님의 뜻 아닌가?

무엇보다도 내 뜻을 함부로 하나님의 뜻이라 주장함으로 나도 모르게 나 스스로를 우상화 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성서무오설과 영자축감설은 영원한 진리임을 뒷받침하는 확고부동한 설인가.

 

미국에서 종교학을 가르치고 있는 마커스 보그란 신학자가 펴낸 『우리가 모르던 하나님』이란 저서에서 보그는 자신이 신관이 정립되는 과정을 말하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이 주신 계시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문화적 산물이라는 것을 고백한다.

즉 하나님이 직접 들려주신 말씀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나 초기 기독교인이 자 들대로 이해한 바를 적어놓은 것이란 말이다.

 

또한 신적 예수가 아닌 ‘역사적 예수“이다.

예수님은 처녀에게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

예수님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아들이라 했다는 것.

세상의 죄를 위해 죽는다는 생각도 하지 않고 죽었다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과 기독교만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기독교의 주장에 동의 할수 없음을 발견한다.

전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어느 한가지 종교만을 택해서 그 종교에서만 자기를 알게 하고 다른 종교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몇천년간 암흑속에 방치하셨다는 것은 비상식적인 논리이다.

그러면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 오기전 그러면 구원받은 자가 한사람도 없었다는 얘기다.

보그는 새롭게 신관에 눈을 뜬다. 즉 신의 초월적 존재와 내재적 존재이다.

 

현재는 성서 고고학과 문헌 비교종교학의 발전으로 예수도 결혼을 하였음이 분명해졌다.

예수님을 이야기 할 때 명심해야할 아주 중요한 사실이 있다.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와 구별하는 일이다.

최근 신학계의 동향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보다는 ‘예수님의 믿음’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한다.

4대 복음서는 역사적 기록이기 보다는 믿음의 기록이다. 객관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쓴 역사문헌이 아니라 ‘신앙고백서’이다.

상당수 신학자들은 기독교의 역사적 비극중 하나가 예수의 가르침 보다 예수님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이 더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게 된 것이라고 본다.
신학자가 역사적 예수를 중요시 하고 그 역사적 예수를 찾는데 심혈을 기울이는 일은 훌륭한 일이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셨는가 하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데 까지는 알아보고 그의 삶과 행동과 가르치심과 죽음에서 오늘 우릭 살아가는데 필요한 사표를 찾는 것이다.

 

예수탄생에 대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기록은 다르다.

대개 동정녀 탄생설은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동서양의 보편적 현상이다.

고대 영웅 신화에서도 영웅의 위대함을 묘사하기 위해서 보편적 사실을 신화적 묘사로 기록을 하였다.

예수님이 동정녀 탄생을 했기 때문에 위대한 분이 아니라 위대한 분이었기 때문에 동정녀 탄생이 정설이 된 것이다.

동정녀 탄생 사건이 신의 아들임을 입증하는 것이라 한다면, 바빌론 왕이나 이집트 희랍 신화에 나오는 영웅이나 로마의 신이 예수님과 동격으로 취급되어야 할 것이다.

부처님도 성관계 없이 옆꾸리에서 나오고 물위를 걷고 적은 음식으로 군중을 먹이는 기적을 행한다.

마태는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왕으로 구성된 족보를 열거한다.

누가는 고통 받는 이스라엘의 선지자임을 강조하기 위해 이스라엘 선지자로 구성된 족보를 만든다.

성령 잉태라면 족보가 무슨 의미를 가진단 말인가!

 

마태복음을 보면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마1:23)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히브리어 원문에는 처녀를 ‘알마’(almah)로 기록하고 있다.

almah는 ‘젊은 여자’란 뜻이다. 결혼을 안한 처녀란 뜻이 아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어인 히랍어 번역과정에서 파르테노스(parthenos)라고 오역을 하였다. parthenos는 처녀란 뜻이다.

 

희랍사상에 영향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히랍 고대 신화에 나오는 신처럼 신의 아들로 믿기 원했다.

그들의 소원에 따라 예수도 다른 신들처럼 처녀 탄생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실 기독교인은 하나님을 위하고 예수님을 위해서이지 교회의 교리를 위해 목숨을 거는 게 아니다.

 

예수님을 ‘만유의 주(pantocator,World Ruler)로 보는 것은 로마황제 콘스탄틴 시대에 생겨났다.

삼위일체설도 이때에 정립되었다. 예수는 신의 아들이 된다.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론이 정립된다.

아직도 삼위일체론은 완성된 이론이 아니다.

동방정교에서는 성령이 오직 성부에게서만 나온다고 한다.

카톨릭과 개신교에선 아들에게서도 성령이 나온다고 보고 있다.

 

이제 인류는 숱한 종교전과 문화충돌을 겪은 진통과정을 넘어 성숙된 신관과 종교관이 필요하다.

이제 신학적 변화를 요약하면 배타주의에서 포용주의를 넘어 다원주의에 귀착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교회의 성공을 교인의 머리수로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초등학교 학생 수가 대학원 학생 수보다 많다고 하여 초등학교가 대학원보다 성공적이고 훌륭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성숙된 신앙인으로서의 독립적 사고, 독립적 믿음을 갖도록 해주는 것이어야 한다.

 

절대적인 확신과 독단은 무지한 자의 특권이다. 우리만 진리를 알고 우리 교회만 진리 교회라는 그 착각과 오만은 무지하고 무식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누릴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특권이다.

인류는 어떤 분야에 종사하든 모두 진리를 찾아 떠나는 구도자이다.

다양한 종교와 문화를 제국주의적으로 생각하여 자신의 걸림돌이라 보아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는 ‘길벗’이라 생각하고 서로의 의견에 성실하게 귀 기울이는 성숙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

 

포스트 모던시대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다원주의적(多元主義的)시각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무엇이나 자기만, 자기 것만 옳고, 그것만 판을 쳐야 한다는 생각이 얼마나 치졸한 착각 이었던가 하는 것을 자각하고, 자기와 다른 여러 견해, 여러 주장의 상대적 타당성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이런 다원주의적 시각으로 특정 지어지는 세상에서는 어느 한 가지가 절대적으로 옳기 때문에 그것이 다른 모든 것 위에 군림하고 지배해야 한다고 하는 종래까지의 제국주의적 발상은 설자리가 없어진다.

어느 한나라 문화가 다른 나라나 문화를 지배해야한다는 정치적, 문화적 제국주의는 물론, 어느 한 종교가 다른 종교 위에 군림해야 한다는 ‘종교적 제국주의’도 용납될 수 없다.

 

이광수, 최남선, 김활란, 모윤숙 등이 일제 말기 조선의 젊은이들도 일본제국주의를 위한 성전(聖戰)에 참가할 것을 권했다고 한다.

이들마저도 ‘일본 제국주의의 앞잡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는 현실에 기독교만, 혹은 내 교회만, 유일한 참종교로 떠받들어야 한다는 제국주의적 이데올로기에 신명을 바치라고 ‘자발적’으로 선전하고 다니는 우리 주위의 많은 사람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마태목음에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나온다.

강도에 피흘리는 사람이 쓰러져 있었으나 제사장과  레위인은 다 지나간다.

유대인이 다 멸시하는 사마리아인이 지나가다, 그를 구해준다. 그러면 제사장과 레위인이 누구인가?

그 당시 사회에서 소위 가장 잘 믿노라고 자처하던 정통파 종교인이 아니던가?

오늘날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종교란 그제사장이나 레위인의 종교가 아니다.

모든 중생이 성불하기 전에는 극락을 가지 않겠다는 유마거사 같은 보살과 자비의 실천이다.

마지막으로 유명한 수피의 성녀 리비아의 기도를 느끼면서 올바른 구도자와 종교인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

“오 주님,
제가 주님을 섬김이 지옥의 두려움 때문이라면
저를 지옥에서 불살라 주옵시고,
낙원의 소망 때문이라면
저를 낙원에서 쫓아내 주옵소서.
그러나 그것이 주님만을 위한 것이라면
주님의 영원한 아름다움을 제게서 거두지 마옵소서.”

예수는 없다를 읽고①

진실의 역사

『예수는 없다』를 읽고


이 책은 도발적인 제목과는 달리 예수의 진정한 가르침에 접근 하고자 하는 책이다.
그리스도인 무엇이 문제인가?
첫째, 성경만이 하느님의 유일한 계시로 일점일획의 틀림도 없다는 것.
둘째, 예수만이 유일한 구세주로서 그를 구주로 믿고 받아들여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셋째, 기독교만이 유일한 참 종교로서 세상 사람을 모두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하기위해 선교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
넷째, 우리교회에서 가르치는 신학만 유일한 진리라는 것, 특히 역사 비평적으로 성경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다는 것이다.

 

기독교도 글로벌시대를 맞이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배타주의에서 다원주의로.”
기독교만 유일한 진리요, 오직 예수만이 인류를 구원한다는 생각을 벗어나 모든 종교들을 모든 종교와 구원의 길에 함께 동반자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상하구조에서 평등구조로.”
성경에서 당연시하는 노예제도라든지 남녀차별, 장애자차별 및 일체의 인종차별이나 빈부차별 같은 것이 없는 평등사회를 이루는데 노력해야한다.
셋째, “저 위에 계시는 하나님에서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으로.”
넷째, “교리중심에서 깨달음 중심으로.”
다섯째, “죄 강조에서 사랑 강조로.”
여섯째, “육체부정에서 육체 긍정으로.”
일곱째, “현실 야합에서 예언자적 자세로.”
여덟째, “종말론에서 환경론으로.”
아홉째, “분열에서 연합으로.”
열째, “예수님에 관한 종교에서 예수님의 종교로.”

그러나 아직도 기독교계에는 이웃종교를 종교로 인정하지 않음은 물론이거니와 이러한 옹고집과 독선 때문에 서로 정통파라 주장하는 이들일수록 더욱 사불오열 찢겨 나가고 있다.

성경은 월경을 부정한 것으로 보며 일부다처제를 용인하며 여자는 남자에게 종속되어야 하고 성차별을 인정하고 있다.

 

다음은 창세기를 살펴보자
창세기 1장과 2장은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모순을 가지고 있다.
첫째, 제사문서는 하나님은 엘로힘이고 야훼문서에 나오는 하나님은 야훼다.
엘로힘 하나님과 야훼하나님은 이름만 다른 것이 아니라 각각 천지를 창조하는 방식도 완전히 다르다.

엘로힘 하나님 창세기를 보면 첫째 날 혼돈에서 빛이 생긴다. 둘째 날 하늘이 생기고, 셋째 날 바다와 육지, 그리고 식물. 넷째 날에는 해와 당과 별들을, 제5일에는 물고기과 새들을, 제6일에는 모든 짐승들과 사람을 지으신다. 그리고 7일에는 안식일이다.

 

다음은 야훼 하나님의 창세기를 보자.
삭막하기 그지없는 사망에 야훼가 등장한다. 그러다 땅에서 물이 솟아 땅을 적시자 드디어 창조사업에 착수한다.

손수 흙을 빚어 사람의 모양을 만들고, 코에다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니 생명체로 바뀐다. 그는 아담이다.
그런 다음 사람을 위해 에덴동산을 만든다. 거기에는 선악과도 있었다.

그리고 홀로지내는 것을 좋지 않게 보고 아담의 갈빗대를 취해 이브를 만든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 두 창세기중 어느 것을 정말로 믿어야 하는가이다.

첫째 이야기에서는 5일에 새들을 6일에 짐승들을 만드시고 나서 사람을 만들었다고 했는데, 둘째 이야기는 사람을 먼저 창조하고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여겨 짐승을 지으시고 새를 지으셨다고 한다.

과연 우리는 어느 쪽 순서를 믿어야하는가? 아무리 상징이라 하더라도 식물이 먼저 생기고 해, 달, 별이 생긴다.

 

노아의 홍수는 진실일까.

도끼나 톱 같은 연장도 없던 철기 시대 이전의 그 시기에 그 큰 잣나무를 자르고 운반하고 판자로 제재를 하고 짜 맞추어 그 많은 동물들을 다 싣고도 끄떡없을 정도로 튼튼한 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노아가족 8명이서..

자연사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이미 지구에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종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것들이 다 한 쌍씩 방주에 들어와서 어떻게 여덟 가족과 동물들, 그리고 식성이 각기 다른 그들에게 날마다 먹이를 주었을까, 곰과 호랑이 염소 토끼가 한곳에 얌전하게 동숙을 했을까.

식성도 각각이다. 배안에 이런 식량 저장이 가능한가. 동물들의 배설문은 어떻게 해결했을까?

 

성경은 사실보단 신화로 봄이 마땅하다. 신화를 사실과 역사로 인식하는데서 모순이 일어난다.

한국 기독교인 중 상당수가 단군을 믿지 못하겠다고 한다.

단군이 역사적 인물이 아니고, 단군에 관한 모든 이야기가 한갓 신화에 불과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 누구도 가타부타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기독교인으로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하는 것만은 확실히 지적할 수 있다.

 

현재 기독교 신학자로서 고집불통의 몇몇을 제외하면 기독교인이 그들의 ‘믿음의 조상’이라고 믿고 있는 아브라함이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인물이라 간주하거나 그에 관한 이야기가 실제 사건의 기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브라함은 실제인물 여부를 떠나 그들에게 믿음의 조상이다.

잘못된 신관은 무신론만 못하다.

노자 도덕경에는 “계곡의 신은 죽지 않는다. 그것은 신비의 여인. 여인의 문은 하늘과 땅의 근원, 끊길듯하면서도 이어지고, 써도 써도 다할 줄을 모른다.” 하여 도를 ‘여인’으로 표현하고 있다.

여인의 신비성, 생산성, 개방성, 창조성 등이 남성의 공격성, 진취성, 지배성, 경쟁성보다 도의 본성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왜 남성이어야 하는가.

 

기독교의 하나님 이슬람교의 알라신, 힌두교의 시바신, 중국의 上帝, 한국전래의 하늘님, 등이 별도의 존재가 아니다.

각 종교 문화적 차이로 인해 동일인물이 다른 이름으로 불리워진 것이다.

기독교 하나님이 따로 있고 다른 종교의 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이런 기본적인 사실을 망각하고 기독교인이 섬기는 하나님과 이웃 종교에서 섬기는 절대 신이 생판 다른 신들이라 생각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의도와는 다르게 유일신론이 아닌 다신론 내지 단일신관을 받드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먼저 버려야 할 신관은 부족신관이다.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은 어느 특정 민족과 종교에만 역사하는 분이 아니란 것을 명백히 알아야 한다.

히브리 유대 부족의 민족신관을 글로벌시대에 적용하려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출애굽기를 보면 야훼가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모세를 통해 구출을 계획한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라는 명령을 내리신다. 모세는 이적의 지팡이를 들고 애굽의 왕를 만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 백성을 보내라.” 했으니 놓아 달라고 요구한다.

왕은 일거에 거절한다. 애굽왕은 여호와를 알리가 없다. 그러자 여호와는 열 가지 재앙을 하나씩 내리기 시작한다.

우선 애굽에 있는 모든 물이 피로 바뀌는 재앙이었다.

강의 모든 고기가 죽고 거기서 나오는 악취가 천지를 진동했다. 이어서 개구리, 이,파리,우박,메뚜기,우박, 등등 재앙이 계속 된다.

 

그래도 왕은 이스라엘 박성을 놓아주지 않는다. 드디어 열 번째 재앙이 내린다.

애굽 전역에서 처음난 것들, 처음난 자식, 가축,짐 승이 죽게 되는 재앙이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은 이 재앙에서 제외된다.

그들에게는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발라 놓으면 “개가 그 피를 볼 때 너희를 넘어가리라” 한다. 드

디어 밤이 되자 바로 왕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생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셨다.

성경에는 애굽천지에 사망치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왕은 그날 밤 모세를 불러 애굽사람들이 다 죽게 되었으니 어서 이 땅을 떠나라고 간청을 하는 지경에 이른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요구하면 무엇이나 다 주도록 한다.

그들은 떠나면서 애굽인의 은붙이, 금붙이와 의복을 모두 빼앗아가지고 나온다.

도합 2백만이 넘는 유대민족의 대 탈출기였다. 이들이 애굽에서 나와 홍해에 이른다.

애굽왕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그들을 추격한다. 여기서 그 유명한 홍해의 기적이 일어난다.

모세가 지팡이를 들어 손을 바다위로 내밀자 홍해가 양쪽으로 갈라지는 기적이 일어난다.

이 길로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한가운데를 육지처럼 건넌다.

그 뒤를 쫓던 애굽군대가 바다 가운데 이르렀을 때 물이 다시 합쳐져 그들을 모두 수장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기록은 주변국가 사료와 너무 어긋나서 유대족의 신화나 설화로 봄이 마땅하다.

즉 구약은 인류 보편적 세계사의 가치가 없는 것이다.

단지 유대민족의 여호와일 뿐이다.

그런데도 유대족과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 오히려 출애굽기를 역사로 고집하는 것은 참 아이러니컬하다.

 

현재 고고학의 발굴과 이집트의 사료를 철저히 검증결과 출애굽기에 대한 기록은 언급초차 없고 홍해에 수장되어야할 람세스 2세는 미이라가 발견되어 물에 빠져 죽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성서의 내용은 유대인의 종교적 믿음에 불과한 것이지 실제 역사가 아니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과연 사랑과 자비와 공의의 하나님의 모습이 보이는가?

그동안 이스라엘 백상이 죽도록 고생할 때 야훼는 뭘 하고 있었을까.

꼭 이렇게 무차별한 재앙을 내리며 무고한 사람들을 죽여야만 했는가.

이스라엘에 속했다는 이유 하나로 생명을 구하고 애굽인에 속했다는 이유 한가지만으로 무조건 죽임을 당하도록 하는 이런 극단의 인종차별정책이 도대체 사랑과 공평의 하나님일까?

가나안의 정복의 첫관문 여리고성에서의 대살육과 방화, 아이성에서의 성주민들의 전멸살육, 이스라엘만 좋아하신 하나님이 진정 인류의 하나님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인류의 하나님으로 짙은 가면을 쓰고 둔갑돼 있지는 않는가?

고대 부족사회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신관은 그 당시 교인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인식하였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이런 신관을 21세기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있는가?

 

그 당시 중동 사막을 떠돌던 유목민의 생활과 문화 역사적인 인식은 그들의 신을 그런 식으로 믿고 그 믿는 바를 기록한 것이다.

즉 이스라엘인의 신앙고백의 기록인 것이다.

이스라엘 부족이 가지고 있던 神觀, 그들의 눈에 비친 하나님일 뿐인 것이다.

몇 천 년 전 처절한 생존경쟁의 부족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들은 이런 신을 모시지 않을 수 없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런 신을 모신 것이 아니라 신을 이렇게 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전쟁에 능해야하는 전투 사령관인 것이다.

또한 자신들을 미워하는 부족에 증오의 신이어야 했던 것이다.

예수는 이 부족의 신관을 뛰어넘어 인류 보편적 신관과 사랑과 박애를 선언했기에 세계종교로 부상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제 예수님은 신약에서는 야훼를 거론한 적이 없다.

야훼는 분명히 말하면 이스라엘의 민족신인 것이다.

 

우리가 지금 몇 천 년 전 이스라엘 백성이 가지고 있던 부족신관에 목줄을 매고 살야야 할 필요가 있는가?

진정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을 모시려면 이런 부족 신관을 뛰어 넘지 않고서는 인류공존번영은 불가능하다.

예수님은 이런 부족신관을 거부하고 자비의 하나님을 가르치신 분이다.

이런 부족신인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다. 아니 죽여야만 한다.

만에 하나 기독교에 이런 부족신이 아직도 남아 있다면 그것은 부족신의 망령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인류전체의 역사로 오인해선 안 된다.

불교에서는 “부처를 보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보면 조사를 죽여라 한다.” 그 허상을 깰 때 진리와 하나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비교종교학계의 대가 오강남 교수의 명저들을 소개한다.

기독교 근본주의 무엇이 문제인가?

진실의 역사

기독교 근본주의 무엇이 문제인가?

 

기독교 근본주의는 성경의 무오류, 예수의 신성, 처녀탄생, 대속적 구원, 예수의 육체적 부활과 재림 등 다섯 가지를 핵심 교리로 삼고 있다.

여기에서 벗어난 개인이나 집단 종교에 대해 관용은 없다.

같은 기독교에 뿌리를 둔 카톨릭과 동방정교, 개신교 계통의 신흥 종파에도 적대적이다.

세계분쟁에는 꼭 근본주의가 관여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근본주의자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이들의 신념과는 다르다는 것이 종교학자들의 주장이다.

중동전쟁도 이슬람 근본주의자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충돌로 본다.

기독교 근본주의는 정통적 개신교의 신앙을 수정하거나 성경의 무오류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모든 자유주의적 시도에 저항을 한다.

한국개신교는 미국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근본주의 까지 받아 들였다.

자기 종파만이 참기독교이고 자기 종교만이 참종교라고 본다.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현상이다.

기독교는 생래적으로 ‘열린 종교’이다.

유대교는 율법과 종교의식에 집착하는 ‘닫힌 종교’였기에 세계종교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요즘 기독교는 어떤가. 자신을 처음 핍박했던 ‘닫힌 종교’들을 닮아가고 있고 자신을 핍박한 자들보다 더 철저하게 다른 종교나 신앙 체계를 거부하고 있다.

예수는 부패한 종교적 현실과 맞서 싸우며 가난하고 억눌린 자의 편에 섰다. 종교적 위선을 철저히 거부했다.

예수는 예루살렘에 입성한 후 예루살렘 성전의 정화에 나선다.(마가복음11장)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성전을 이용해 자기 이익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들을 보고 “너희들이 성전을 강도의 굴로 만들었다”, “이런 성전은 헐어 버려야한다”고 분노했다.

오늘날 한국기독교는 이 말씀을 깊이 계고해 봐야한다.

근본주의자는 남과 타협할 줄 모르고 자기 고집만 내세운다.

자기주장과 다른 사람을 적대시하고 자신들의 뜻을 펴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그만큼 근본주의가 가져오는 폐단은 크다.

예수가 전하고자 한 복음의 원형, 즉 예수의 삶과 정신으로 돌아가지 않고서는 기독교가 우리사회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회복하는 길은 요원하다. 왜 개독교라 하겠는가? 스스로 자처한 부분이 크다. 기독교가 가장 비판을 받는 것은 독선과 배타성이다.

한국기독교의 우리 전통문화와 종교에 대해 가졌던 배타주의, 정복주의, 우월주의를 얼마나 성숙하게 극복하느냐에 달려있다.

한신대 김경재 교수 말을 들어보자.

“한국 기독교의 전통문화 및 전통 종교에 대한 배타적 태도나 정복주의적 입장은 오늘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독선, 무지, 폭력, 반사회성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기독교가 한국 문화와 전통종교에 대하여 열린 개방성을 가지고 상호 대화와 협력을 하고 서로 배우며 성장하자는 것은 기독교의 정체성을 포기하거나 혼합주의 종교가 되라는 것이 아니다. 그와 정반대임을 한국 기독교는 모르고 있다. 다원화 되는 현대사회에선 예수의 열린 교회와 이웃사랑의 본래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머지않은 미래에 기독교도 유럽과 같은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실제로 서구의 교회는 성당이 텅텅 비어가고 있다. 종교도 흥망을 한다. 한국교회의 몰락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예수의 삶과 정신으로 돌아가도록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화, 세력화, 기득권화가 되어가고 있다.

성경을 믿으면서도 성경의 근본 뜻은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들은 세계 곳곳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보다는 전쟁을 일으키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잘못된 신앙관은 세계를 구원하는 종교가 아닌 세계의 종말을 몰고 오는 종교가 될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이 귓전을 때린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줄 아느냐.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왔노라.(마태10:34~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