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만큼 보인다

일본 군국주의 부활-일본, 다시 침략을 준비한다②

진실의 역사

일본 군국주의 부활-일본, 다시 침략을 준비한다

지금의 국제정세는 구한말 시절과 놀랍도록 비슷하다.

유일한 차이는 한국이 분단국가라는 사실이다.

이제 중국은 순식간에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며 팽창주의를 취하고 있다.

중국 견제에 나선 미국은 군사력을 증강하고 일본도 미국을 등에 업고 재무장에 본격 나서고 있다.

불행히도 지금의 모습은 구한말 상황과 너무나 유사하다.

그럼에도 한국사회는 온통 분열주의로 탈출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구한말 러시아가 득세하면 친러파, 청나라가 입김이 세지면 친청파로 돌아서고, 일본이 강해지자 친일파로 돌아서서 나라를 팔아먹었다.

다시 미국이 부상하자 친미파가 득세했다. 시세의 흐름에 빠른 이 기회주의자들이 엘리트층이었다.

도덕성이 함께 갖추어졌었다면 이들이 애국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엘리트 계층은 그렇질 못했다.

이들은 친일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친일역사가 한국을 근대화시켰다고 미화를 하고 있다.

우리는 ‘한국이 어리석다’고 했던 아베 총리의 말에 분노만 할 게 아니다.

냉정하게 우리를 되짚어 보고, 눈 똑바로 뜨고 역사를 곱씹어 봐야한다.

그리고 일본 우익은 한국이 강제징용 배상금을 청구하면 일본은 한국을 금융공격으로 무너뜨려야한다고 대놓고 말한다.

일본은 장기불황, 대지진, 등에 의한 사회경제적 불안과 불만을 풀어낼 출구가 절실해졌다.

이에 아베는 ‘강한 일본’을 내세우고 군국주의 부활을 실현해 가고 있다.

문제는 단순한 주장이 아니라 치밀한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준비해 간다는 사실이다.

강한 국가는 강한 군대를 가져야한다는 명확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야욕을 드러낼 때마다 ‘평화’를 전면에 내세웠다.

임진왜란 당시도 무장집단이 지배층이었고 메이지 유신의 지배 계층도 무장세력이었다.

강한 일본은 군사력에서 나왔고 그 달콤함에 다시 취하고 싶은 일본이다.

특히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실제 일본이 침몰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주었다. 

잃어버린 20년은 강한 보수정부 아베를 낳았다.

아베는 일본 경제부흥을 위해 아베노믹스를 선포하고 무제한적 양적완화 정책을 폈다.

돈을 마구 찍어서 경제를 살린다는 극단적 처방을 선택한 것이다.

양적완화는 경기부양을 위한 마지막 처방이다.

현재는 가시적으로 성공적인 정책처럼 보이고 있지만, 일본은 국가 채무가 GDP대비 300%를 육박하고 있다.

언제 이 버블이 폭발할지 모른다. 일본 경제의 몰락은 세계경제 공황의 도화선이 될 것이다.

아베노믹스가 실패를 한다면 일본뿐 아니라 세계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가게 된다.

결국 일본은 눈을 돌려 폭발 직전의 내부문제를 밖으로 쏟아내며 해결할 것이다.

본으로서는 최악의 타개상황을 준비해야한다.

그래서 왜곡된 군국주의 과거사를 국민에게 세뇌시키고, 독도 분쟁화에 가속도를 붙이는 이유이다.

 

중국 팽창에 대한 미일 동맹강화, 남북한의 긴장 고조는 한반도를 극도의 불안 속으로 몰고 있다.

일본은 외부 침략을 통해서 생존과 발전의 길을 찾아내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임진왜란이 그랬고 19세기 정한론이 그랬다.

내부 위기감이 쌓일 때마다 어김없이 외부 침략논리를 만들어 국민을 단결시키고 강력한 리더십을 동원해서 전쟁을 벌였던 것이다.

일본은 전쟁준비가 끝나면 침략전쟁의 속셈을 여과 없이 드러내 왔다.

 

일본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승리로 굉장한 배상금으로 군비를 확충하고 산업기반을 조성해 부국강병의 기초를 놓았다.

세계자본주의는 전쟁을 통한 약탈로 쌓아올린 부이다.

전쟁을 수반하기 위해 식민지배 국가와 약소국에서 엄청난 자원을 수탈해갔다.

일본은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엄청난 부를 축적한다.

유럽이 전운에 휩싸이자 엄청난 군수 보급국으로 변신을 했다.

1929년 덮친 세계공황을 일본은 만주사변을 일으키며 돌파해 나갔다.

일본은 근본적으로 무력을 이용한 착취와 수탈이 경제부흥의 발판이었다.

 

이제 일본은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로 부상을 했다.

한국전쟁은 전후 패망한 일본경제를 회복시켜주는 결정적 사건이었다.

한국에 대한 영토 도발, 역사 왜곡을 보면 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분쟁일상화 전력이 숨어있다’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한반도는 화약고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 식민사학의 노예가 돼서 친일을 찬양하는 지식인이 많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사실을 왜곡하고 자기식 억지로 포장된 과거사는 역사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일본인이 만든 한국사를 배우고 있다.

아베는 3차 정한론을 가지고 신일본제국, 아시아 중심을 자처할 것이다.
일본우익은 “일본의 식민통치가 한국에 유익했다”라고 말한다.

유럽제국주의가 중남미를 식민지 삼고 약탈, 살인, 강간, 강제 개종을 시키고 우리는 그들을 문명세계로 개화시켰다고 하는 주장과 비슷하다.

제국주의는 약육강식의 강자의 논리이지 정의의 논리가 아니다.
잘 사는 게 정의라고 말할 수 있는가?

 

다음은 1912년 《아사히 신문》에 실린 사설이다.

“1945년 8월15일 일본 진주 미군이 일본을 병합하고 미국의 주로 만들었다”라고 전제한 후 “미국이 일본에 좋은 일을 했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겠느냐”고 질문했다.

그러자 일본은 간섭하는 미국에 대해 “절대로 감사할 수가 없다”라는 한 사설이다.

 

그러면 우리나라 사정에 그대로 적용을 해본다.

‘미국은 민주주의를 가르치며 일본을 강제 병합한다.

영어로 교과서를 배우고, 미국의 역사를 공부한다. 일장기 대신 성조기에 충성을 맹세하고 미국의 국가를 부른다.

이름도 미국명으로 개명 한다. 일본사람이 미국 병사로 전쟁에 나가고 일본의 독립운동을 탄압하며 수천, 수만의 동포를 살해한다.

이렇게 해서 미국이 일본인의 고혈을 짜내고 “일본을 발전시켰으니 감사해라”고 하면 과연 일본 기분은 어떤 기분일까.

역지사지라는 말은 한국에만 있는 사자성어가 아니다.

 

한국은 식민사학을 청산해서 정의의 역사로 바로 잡을 때 한국사회의 심각한 지도층의 부패와 도덕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더 이상 한국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가기 어렵다.

국가를 발전시키는 힘은 역사문화의 저력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의 움직임을 눈여겨보면서 한민족의 미래를 열어 나가야한다.

일본의 재무장과 군국주의 부활, 독도 침탈과 역사 왜곡 그리고 한국의 뉴라이트 부활과 식민지 근대화론을 지지하는 식민사학,

그리고 민족사학을 무너뜨리기 위해 ‘유사역사학’, ‘사이비 역사학’이란 극단적이고 혐오스러운 언어를 써가며 민중으로부터 민족사학을 분리시키고 자신들의 이익을 옹호하려 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무엇이 보이는가?

일본 군국주의 부활-일본, 다시 침략을 준비한다①

진실의 역사

일본 군국주의 부활-일본, 다시 침략을 준비한다

2014년 4월 22일 일본 각료와 국회의원 168명이 제국주의 침략전쟁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를 집단적으로 참배했다.

“전쟁에 목숨 바친 영령을 높이 받들어 숭배하는 것은 종교의 자유다. 내정간섭을 말라.”

극우세력은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보는 앞에서 당당하게 신사참배를 강행했다. 

‘강한일본’을 외치는 극우파에게 박수가 쏟아진다. 언론도 우경화를 부추긴다.

일본이 마음만 먹으면 한나절 안에 한국을 접수할 수 있다는 극언도 쏟아져 나왔다.

이를 보고 일본정세에 밝은 일부 지식인은 “이미 침략이 시작 됐다고 말한다.

 

임진왜란과 한일병탄 때처럼 무력을 앞세운 침략이 아니라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소리 없는 전쟁,

즉 ‘경제침략으로 한국을 삼킬 것이다’고 본다.

지금은 역사 속 일본 침략기와 오늘이 너무나 닮아 있다.

1592년 임진왜란과 1910년 한일병탄시기 모두 오늘의 한국 및 국제 정세와 너무 비슷하다.

 

임진왜란 직전 조선은 동인과 서인으로 당파가 나뉘어 사사건건 분열했다.

한일병합 이전 조선은 분열이 더 심했다.

개화파와 쇄국파의 정변은 나라를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그러면 오늘의 한국은 어떠한가. 먹고사는 문제 말고 분열상은 과거와 다르지 않다.

진보와 보수, 남북분단, 동서지역감정, 이념갈등 등 자기 단체의 이익만 있고 공동의 선은 없다.

 

이런 국내 흐름을 보고, 일본 우익은 “한국은 원래 홀로 설 수 없는 나라”라고 비아냥거린다.

식민사관이 판을 치고 자주독립사관이 무너진 한국은 침략하기 딱 좋은 사회 환경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20여년의 장기 침체와 리더쉽 부재 속에서 아베 총리는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며 강한 일본을 만들겠다고 일본 일체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아베의 얼굴에는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모습이 깃들여져 있는 것이다.

아베는 “나를 군국주의자로 불러도 좋다”라고 선언했다.

일본의 복잡한 내부 사정을 외부로 표출시킨 과거 군국주의는 우리에게 엄청난 민족적 상처를 남겼다.

군국주의 무장이후 첫 실천대상은 늘 가장 가까운 한국이었다.

최근 일본의 비정상적 움직임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중요한 점은 일본이 군국주의로 무장할 때마다 우리나라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는 사실이다.

 

임진왜란 당시 10만양병설은 묵살됐고, 19세기 조선은 쇄국을 고집하다 나라를 잃었다.

임진왜란, 한일병탄에 이어 한국을 정벌하겠다는 3차 경제 정한론은 이미 시작됐다.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를 보자.
일본은 독도를 놓고 끊임없이 도발에 나선다. 시비를 넘어 자기 영토라고 선언했다.

독도를 분쟁의 씨앗, 침략의 촉매로 삼고자 함이다.
일본이 분쟁 희생양을 잡는다면 당연히 중국보다는 한국이다. 그리고 그 대상은 독도이다.

 

임진왜란 때 “일본은 명나라를 치러 가니 길을 비켜달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한일병탄 때도 중국을 먹기 위해 조선을 밟고 갔다.

우리나라를 둘러싼 미.일.중.러의 신경전도 한일병탄 때와 유사하다.

 

미국은 이제 일본을 내세워 중국 팽창을 저지하고 있다.

친일파는 영원히 영속을 하며 부귀를 누리리라는 희망으로 가슴이 벅차오를 것이다.

미국은 일본의 집단 자위권 행사를 인정하고 방위력 증강에 찬성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미국도 도덕과 정의보다는 철저히 미국 국익을 선택한다는 사실을 주지해야 한다.

전범국가를 파트너로 삼고 있는 미국, 그리고 피해국가를 오히려 정복하도록 방조하고 있는 미국을 보라.

 

일본은 북한과의 밀월관계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일본은 정말 외교 하나는 제대로 하고 있는데 한국은 사교에 머무르고 있다.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 대가로 일본은 피해액 3억 달러를 지불했다.

북한에는 300억 달러를 지불하겠다고 한다. 일명 원산 프로젝트다.

임진왜란과 한일병탄시절, 때를 놓쳐 나라가 만신창이가 된 것처럼 21세기 한국이 돌이킬 수 없는 위험에 노출되지 않았는지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다음은 아베 총리의 말이다.

“한국은 그냥 어리석은 국가이다.”
“중국은 어처구니없는 나라지만 아직 이성적인 외교게임이 가능한 반면 한국은 그냥 어리석은 국가”라고 말했다.

16세기말 토요토미 히데요시도, 19세기말 정한론을 주장했던 후쿠자와 유키치도 그렇게 말했다.

 

문제는 21세기 일본지도자가 여전히 한국을 어리석은 국가라고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베총리는 어리석은 한국을 교화하기 위해 반드시 침략한다는 정한론 유전자의 소유자이다.

 

다음은 조선의 마지막 총독이었던 아베 노부유키가 조선을 떠나면서 남긴 마지막 말이다.
“우리는 실패했지만 한국이 승리한 것은 아니다.

장담하건데 한국이 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한국인에게 대포보다 더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놓았다.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조선은 실로 위대했고 찬란했으며 찬연했지만 한국은 결코,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아베 노부유키의 말대로 지금 한국에서 벌어진 역사전쟁을 보면서 이미 식민사학이 사회 깊숙이 뿌리내렸음을 보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일본의 아베총리에서 아베 노부유키의 부활이 보이지 않는가?

 

지금 한국에서는 도종환 의원 문체부 장관 지명을 둘러싸고 역사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독립운동가들이 지향하던 민족사학과 사대주의자들이 지향하던 식민사학과의 대전쟁이다. 

강단사학에서는 도종환 의원의 역사관을 가지고 “유사역사학”, “사이비역사학”에 경도되었다며 강대한 역사를 주장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국수주의, 민족주의 사관이라고 파상공세를 가하고 있다.

그러면 있는 역사와 영토를 줄이는 것이 세계주의사관이란 말인가.

 

이들은 민족을 이야기하면 이상하리만큼 경도된 반응을 일으킨다.

그러면서 ‘국뽕’, ‘국수주의’로 몰아가면서 민족사학을 매도한다.

이러한 이유는 그들의 뿌리가 민족을 배반한 친일식민사관의 후예들이기 때문이다.

동경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1973년 미 펜실베니아대에서 국제 정치학과 역사학으로 박사를 받았으며 하버드대에서 동아시아 국제 관계를 전공한 이홍범 박사는 강대국의 흥망성쇠의 원인을 역사학적으로 분석하면서 한국의 역사학의 현주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따끔한 지적을 했다.

 

역사가 망하면 민족은 멸망합니다. 우리 민족이 망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외래 종교 역사관이 ‘단군은 신화다’ 해서 한민족 민족사관을 파괴해서 자주 민족통일을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걸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민족의 귀중한 역사관을 가지고 민족 자주와 통일 번영을 이루기 위해서 홍익역사관으로 조국의 통일을 이룩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 사사건건 반대하면서 민족사관을 패배시키는 세력들이 이 땅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 세력이 소위 강단사학입니다.

외래 식민사관이 방해하고 파괴하고 그러면 결국 약한 민족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역사투쟁, 역사전쟁 중에 있습니다.

군사경제는 쉽게 알아보지만 보이지 않은 역사관은 역사 통찰력이 없으면 보기가 어렵습니다.

외래사관이 구원이든 사랑이든 평화든 경제번영을 사용하고 실증적인 용어를 들고 나오기 때문에 일반적인 사람들은 밑에 흐르는 진리정신을 통찰하기 쉽지 않습니다.

위대한 민족만이 역사정신권력을 만들어 세계사에 군림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8천만 민족을 통합하는데 실패한다면 우리는 머지않아 멸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공을 한다면 영광스런 조국통일을 이루고 세계 선진대국이 될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대통령과 종교'를 읽고

진실의 역사

'대통령과 종교'를 읽고
뉴라이트, 한기총, 대형교회는 이명박 장로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총력전을 펼쳤다.

이들은 이명박 당선을 기원하는 ‘대선을 위한 특별 기도회’를 개최하고, 이명박의 각종 비리 의혹이 터질 때마다 노골적으로 변론을 하고 나섰다. 그들은 대선에서 이명박을 찍지 않는 사람은 생명책에서 지워버린다는 극언까지 했었다.

이명박 당선의 일등공신은 단연 뉴라이트와 한기총이다. 한기총의 수뇌 대다수가 뉴라이트 중심세력이다.

 

한기총은 보수기독교와 대형교회의 대변자 역할을 해왔다. 개신교인은 대체적으로 보수경향이 강하다.

이명박의 분명한 종교적 성향은 취임초부터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이명박 정부의 장관 16명 가운데 10명이 개신교 신자였고 불교신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청와대 수석비사관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으로서 폭넓은 인사수용이 아닌 종교 편향적 색채가 분명했던 것이다.

 

이명박은 소망교회 출신이고 대다수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도 개신교 인사들이 대거 참여했다.

대통령은 기독교계만의 대통령이 아니다.

그가 장로 출신이라 해도 다를 바 없다. 정권 창출과 정권 수호과정에서 발휘한 막강한 종교권력을 바탕으로 개신교는 입법과정과 정치현안에도 적극 개입을 했다. 특히 기독교의 이권과 의견에 따르지 않으면 그들의 권력을 만들어준 자신감과 오만함을 바탕으로 도를 넘어 정권퇴진운동을 주도했다.

개신교의 영향력이 급속히 확대되면서 공개적으로 개신교에 SOS를 요청하는 정치인도 등장을 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김진홍 목사가 주도하는 ‘뉴라이트연합’이 있었다.

개신교의 공격적이고 배타적인 선교방식은 대중들로부터 ‘안하무인 종교’, ‘무례한 종교’, ‘속 좁은 종교’라는 생각을 갖도록 했다.

공공장소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식의 일방적 선교를 하면서 이미지는 더욱 나빠졌다.

부산집회에서는 ‘범어사’가 무너지게 해주십시오, “할렐루야” 하는 기도까지 나왔다. 이게 예수님의 뜻은 아니었다. 예수님을 이용한 자신들의 잘못된 믿음을 절대적 진리로 착각한 오만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소위 소망교회 인맥들이 대표적 인사라인이었다. 박근혜 정부 역시 이명박 정부와 마찬가지로 개신교인을 중용하면서 이른바 ‘교회인맥’이 또다시 부상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사랑의 교회 인맥’이 주목을 받았다. 이 때문에 항간에서는 소망교회는 ‘지고’, 사랑의 교회는 ‘뜨고’라는 말이 회자되기도 했다.

사랑의 교회 신자가 정부 요직을 차지하는 현상이 발생하면서 교회인맥의 정부 참여는 대형교회의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시킨 계기가 되었다.

 

국정농단을 한 최순실도 2000년 이후로 기독교로 개종하여 여러 강남의 대형교회를 다니며 인맥을 확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남 순복음 교회, 소망교회, 광림교회를 다녔다고 최순실 지인들이 증언하고 있다.

강남의 대형교회를 다니면서 몇천 단위 헌금도 하고 교회를 리모델링 해주었다고 떠벌리고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세상에 알려진 바와 같이 사이비 무당, 영세교 등으로 언론화한 이면에는 한국사회 대형교회의 권력과 종교간의 유착된 의혹의 눈길을 돌리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박근혜는 특별한 종교를 갖지 않고 있지만 ‘종교편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개신교인이 대거 중용되는 현상이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수석비서관 12명 중에서 개신교인은 8명에 달했지만, 불교와 천주교는 1명도 없었다. 청와대의 3실장, 정무수석, 홍보수석, 교육문화수석, 고용복지수석, 외교안보수석 등이 전부 개신교인이다. 내각인선도 개신교 인사가 압도적이다.

어떤 사람을 임명하든 개신교인이 다수 선정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았다.

기독교 단체의 정교유착이 깊이 개입되어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 종교편향적 인사를 보여 왔던 것처럼 박근혜 정부도 지나치게 특정종교로 기울어졌다는 분석과 함께 신중한 인사가 필요하다는 불교계의 우려 섞인 지적도 있었다.

무종교인 박근혜 대통령이 인위적으로 기독교계 인사를 중용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기독교계의 정계진출과 이들이 인맥을 총동원해서 정교유착과 국정개입의 의도적 전략이 배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수석비서관 중에 불교신자가 1명도 없어서 무교인 유민봉 국정기획수석이 청불회 회장을 맡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 개신교는 국회 입법과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차별금지법은 지난 2007년, 2010년 두 차례 입법이 추진되었지만 무산되었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제동을 걸고 나선 곳은 다름 아닌 보수 개신교였다.

보수개신교가 문제 삼은 조항은 종교, 사상, 성적 지향의 차별금지 조항이다. 개신교는 이법이 통과하면 타종교나 이단을 비판하거나, 종북세력을 비판할 수 없고, 교회에서 동생애를 죄라고 가르칠 수 없다며 반대했다.

이미 기득권화되고 보수화된 교회권력을 완전히 뿌리내리고 타 종교나 자신들의 이념과 다른 단체의 행동을 억압하겠다는 의도가 농후한 것이다. 

 

이 법이 보수개신교의 반발이 워낙 거센 상황이라 제정 여부는 미지수다.

그러나 이러한 교회의 막강한 권력과 기득권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경제전문가의 지적이 많다.

2010년대에 들어서 교회의 파산을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교인감소와 대형교회화되면서 대출로 지은 교회건물에 대한 연체율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교회의 도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교회 세습에 대한 논란도 개신교 이미지와 신뢰도들 추락시키는 요인이다.

권력화된 교회, 종교단체의 국정개입. 희한한 것은 ‘개신교의 중용현상’은 박근혜 정부 들어서 오히려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오히려 청와대 수석의 개신교 비율은 이명박 정부 때보다도 더 높아졌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뉴라이트적 사관을 반영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제작을 주도했던 권희영 교수가 '한국학 중앙연구원 원장'을 역임했고, 김구는 건국의 공로자가 아니라고 공식 석상에서 주장한 이인호 교수 역시 'KBS 이사장'직을 역임했고, 이승만은 독재자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라 주창했던 박효종 교수 역시 '방송통신 위원회 위원장'직을 역임하였다.

또한 이승만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대제나 야곱과 꼭 같다고 주장한 류영익 교수 역시 '국사편찬 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개신교 대세현상의 지속이었던 것이다.

이미 개신교 자체가 권력화 돼있고 이런 측근들이 포진된 상태에서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이 지속되었다.

이런 환경에서 발생한 최순실 사건이 과연 사이비 종교, 영세교 최태민 목사의 후계자인 최순실의 무당짓으로만 보이는가.

그리고 박근혜 탄핵과 더불어 대형교회가 태극기 집회를 주도하며 부패정권을 지지한 이유는 무엇일까.

뉴라이트는 자신의 종교세력을 기반으로 대통령을 만들어주고 그 대가로 정부 요직을 선물 받은 것이다.

종교와 권력의 정교유착은 정경유착 이상으로 끈질긴 관계다. 《'대통령과 종교' 책 참고

올바른 역사관이란?② - 이홍범박사

진실의 역사

올바른 역사관이란? - 이홍범박사

역사 연구의 목적은 진실을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질적 목적은 민족국가의 자주와 번영에 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자주와 독립, 안보와 번영을 하지 못할 경우 개개인도 불행한 운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한국은 국가 번영을 위해서 역사 연구를 하는 게 아니라 민족사학을 파괴하고 ‘위서다’,신화다’라고 매도를 합니다.

무엇 때문에 역사 연구를 하느냐, 역사 연구의 목적이 뭔지를 모르고 있지 않는가.

그들은 일본, 중국의 제국주의 식민지 팽창을 옹호하지 않냐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2차 대전 후 일본에 대한 영상이미지를 호전적이고 사람 잘 죽이는 이미지로 각인시켰습니다.

그래서 미일관계를 개선시키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평화를 사랑하는 의회민주주의 국가였다고 미국 아비리그 대학중심으로 홍보를 해서 미일관계가 오늘 같이 발전을 했습니다.

역사 연구가 그 나라 민족 국익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미국, 일본, 러시아 등 선진국가는 그 나라 국가 이익을 위해서 역사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선진 강대국들은 전부 민족주의가 기반이 돼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민족주의 역사관이 없습니다. 전부 자아투쟁과 관련돼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는 한국인으로 한국 피가 흐르는 강단사학자들이 식민사학을 신봉하는 우매한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걸 어찌 극복을 할 것인가. 우리가 받는 손실은 말할 수 없습니다.

정치인, 종교인, 체육인, 문화인, 경제인 모든 분야에서 받는 수고가 있습니다. 식민사학이 거의 모든 분야에 침투해 있습니다.

 

대표적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서울대학 이기백 교수가 東夷를 Eastern Barbarian 동양의 야만인으로 번역을 했습니다.

한국의 저명한 학자가 그걸 인용하고 다시 그런 영향을 받아서 전 세계 학계에 퍼져서 한국 사람은 ‘동양의 야만인’이라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저열한 민족으로 소개된 한국 사람이 외국 가서 기가 죽어 있습니다. 심지어 한국 사람임을 속이고 있습니다.

위대한 역사가 있음에도 식민사학에 왜곡당해 있습니다.

 

동이는 큰 활을 쏘고 불사의 나라, 군자의 나라라고 중국문헌에 나오고 있습니다.

한문도 한국인이 만든거 알 사람은 알고 있습니다.

출입出入하면 입과 발음이 중국은 발음과 모양이 글자와 다릅니다.

중국은 발음이 出入하면 추우루(chūrù )하고 다 빠집니다.

한국은 정확히 「출 입」 합니다.

역사가 망하면 민족은 멸망합니다. 우리 민족이 망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찌 해야 하는가.

우리 고유의 홍익 역사관으로 무장을 해서 민족의 자주와 독립 번영을 파괴하는 보이지 않는 최고의 적인 강단 식민사학을 과감히 타파해야 합니다.

우리는 독립됐다 하지만 독립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보이지 않는 역사정신권력은 일본 야마토 역사관과 중화사관과 외래종교사관의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완전히 왜곡하고 민족을 멸망의 길로 가도록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굳건히 뭉쳐서 역사혁명의 위대한 과업을 이루어 내야 하겠습니다.

 

역사 진실에 기초한 역사혁명은 아시아 민족을 일본과 중국의 팽창주의 제국주의로부터 해방하고 미국 하버드대학, 아비리그 등 전세계 학계를 중국, 일본 식민사관으로 해방시키는 위대한 과업을 여러분들이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이건 누구도 하기 힘든 8천만 한민족에게 하늘이 준 위대한 사명입니다.

이건 내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사랑하는 8천만 민족과 전인류 역사의 진실을 맑히고, 전세계 인류에게 역사진실을 밝히고 평화를 실현하는 위대한 사업이 여러분 어깨에 달려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역사의 주동세력으로 위대한 사명을 완수해야 합니다. 역사의 주동세력이 필요합니다.

위대한 역사를 만들기 위해선 주동세력이 합류해야 하는데 개개인 정신혁명이 선행해야 합니다.

학 이래 역사정신 운동이 일어나지 않고 개인의 돈과 명에만 추구하는 타락된 행위만 연출되고 있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역사정신권력이 무너지면 그 민족은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로마. 유대인은 역사정신권력을 가지고 위대한 유대역사를 만들지 않았습니까.

그러기 위해서 대학에서 우리 민족 역사를 가르치는 역사권력 독립을 가르치는 길을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려면 선거를 통해서 역사관이 바로잡힌 지도자를 선출해야 합니다.

국회의원도 역사관이 바로잡힌 의원들을 뽑아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경제인, 언론인, 연예인, 학계, 사회전반을 혁신해 나가야 합니다.

 

강단사학은 친선 한일교류 등으로 간접 직접적으로 한국의 역사계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재야사학이 진실인걸 알면서도 외래의 경제적 상당한 도움, 명리, 이해관계가 있어서 제대로 역사진실을 밝히지 못하는 것도 있지 않느냐 의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학계에 연구비 지원을 하고 자국의 역사관을 주입하지 않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화적 방법으로 역사진실을 밝히고 우리 홍익 역사관에 기초해서 역사관을 강화하면서 경제, 정치, 사회, 다양한 분야에서 전진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얼이 빠져서 역사도 모르고 개인 이익이나 추구하고 여기저기 붙고 배신한다면 그 사람과 친구를 삼겠습니까.

외교관계에서 민족혁명을 완수하지 못한 나라하고 누가 관계를 맺고 싶어 합니까.

우리가 무리를 타파해야 합니다. 이것도 간파를 못한 강단사학자들입니다.

자국의 발전과 이익을 위해서 역사를 연구합니다.

일본이 한국에 진출한 것은 ‘평화와 문명을 전달하는 것이지, 침략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을 합니다.

미국이 필리핀에 간 것은 야만을 줄이고 평화를 주기위한 것이다.

일본의 한국진출은 미국을 닮은 것이다. 이걸 보고 뭘 느낍니까. 푸름은 초록과 동색이다.

역사 연구를 보면 인종, 민족 다 연결돼 있습니다.

우리 한국 강단사학은 얼이 빠져서 나라를 망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본, 미국과 동맹국이 되려면 역사가 독립이 돼야 합니다.

국과 중국이 한반도를 지배하지 못하고 힘의 균형을 유지하도록 해야 합니다.

강단식민사학이 그동안 뭐를 했냐 이겁니다. 역사는 학자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국가 민족의 번영의 문제이기 때문에 용기 있는 역사혁명의 횃불이 필요합니다.

미국 학자들이 거의 한국 고대사 모릅니다. 그러나 중국, 일본사는 좀 알고 있습니다.

그쪽에서 제공하고 그들 나라 명예 위상을 높이는 자료들을 인용해서 합니다.

일본자료를 찾아보면 일본을 좋게 씁니다. 중국자료는 중국을 좋게 씁니다.

외국학자들은 그런 중국과 일본자료를 인용해서 논문을 씁니다.

그런데 한국은 스스로 외국에다가 역사와 영토를 축소하고 자학사관을 퍼트립니다.

큰 영토와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진게 자랑만은 아니다라고 비꼽니다. 강단사학은 민족주의가 웃기다는 겁니다.

 

외래 사대 식민사학계는 민족이야기 하면 국수주의로 매도를 합니다.

선진 강대국들은 민족과 국가의 이익을 위해 역사를 연구합니다.

그런데 외국학자들이 한국 역사자료를 찾아서 연구하려하면 한국의 역사자료가 거의 없습니다.

결국 일본과 중국이 쓴 사료를 인용하게 돼 있습니다.

한국 사람을 자학, 자멸하게 만드는 강단사학은 막대한 피해를 만들고 있습니다.

제가 하버드, 유펜(펜실베니아 대학)에서 경험한 실제적 일이 있습니다.

유펜 역사자료 보니까, 한국에 대해서... 고인돌 나오고 무당 굿하고 그런 사진이나 나오고 한국 고대사가 거의 전무합니다.

미국 대다수 대학이 그렇습니다.

한국의 역사학계는 선진국이 왜 역사연구에 심혈을 기울이는지 대오각성해야 합니다.

역사정신권력을 잃게되면 그 나라는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올바른 역사관이란?① - 이홍범박사

진실의 역사

올바른 역사관이란?① - 이홍범박사

 

강력한 선진민족의 공통점은 자기에 맞는 가치관을 추구하는 목적 이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강력한 힘을 미치는 것은 민족국가라고 봅니다.

선진국가의 공통점은 민족국가를 완성한 나라입니다.

미국은 민족국가를 완성했습니다. 일본, 독일, 영국, 러시아도 마찬가집니다.

반대로 식민지 독립하지 못한 국가는 민족혁명을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민족혁명 성공국가는 자주 민족 통일을 완성한 국가들입니다.

그 나라 고유한 민족국가 목적을 이루기 위해 통합 국제관계에서 경쟁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개인 자유의 실현입니다. 일본은 천황을 중심으로 야마토의 이상을 건설하는 국가를 건설했습니다.

그렇게 민족이 통합돼서 국가를 만들어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반고, 삼황오제 그들의 고유한 역사정신에 기초해, 소위 중화의 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뭉쳐진 국가입니다.

한족의 중화역사관에 기초해서 타민족을 중화로 동화시키면서 중국을 통일시키면서 국제관계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독일, 영국, 러시아도 민족 통일 혁명을 완수했습니다.

이들의 통합을 저해하는 방해하는 요소는 식민사관이었습니다. 역사는 자아투쟁 중심으로 세웠습니다.

 

언제나 강력한 민족은 역사의 진실에 기초하던지 아니면 신화적으로 허위적인 역사를 만들다던지 그래서 강력한 자신들의 역사정신에 기초하여 민족을 통합해서 타민족과 경쟁해서 세계를 팽창 정복해갔습니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볼 때 기독교가 로마에 의해서 국가 종교로 선포된지 게르만에 의해 로마가 붕괴됐습니다.

그때 오거스틴의 신학적 역사관을 가지고 게르만 카톨릭을 살렸습니다.

독일적 기독교가 식민사관과 투쟁을 해서 영광스런 독일의 고유한 역사에 기초하여 통합기능을 발휘했습니다.

그렇지 못한 민족들은 서양 제국주의 세력이 그들의 역사관으로 남의 민족 역사관을 파괴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민족은 멸망하고 피부색만 남아서 피지배 민족으로 하락했습니다.

오늘날 조국의 현실을 볼 때 어떠한 현실에 처해 있다고 보십니까.

하나의 민족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공통의 가치관을 중심으로 8천만이 뭉쳐야 하는데 남북이 외국의 적과 싸우는 적대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건 근대적 민족이 형성이 되지 않았고 우리역사에 기초한 공통의 역사관 정립이 안됐다는 것입니다.

아직 민족자아가 미완성된 상태입니다. 분열 대립 투쟁하는 상태입니다.

식민사학이 일신과 일파의 권익을 의해서 민족 권익을 해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은 아직 근대 민족국가 정립이 안 되고 대립을 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종교역사관이 들어와서 한민족의 정신을 분열투쟁 시키고 있습니다.

공통의 가치관과 이상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이것이 극적으로 나타난게 남북문제, 종교가치관의 대립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걸 통합하는 최선의 방법은 민족자아를 확립해서 통일 길로 들어가야 하는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우리 조상들의 역사와 정신문화를 바탕으로 뭉치는 게 최선의 방법이란 게 역사적으로 입증되고 있습니다.

우리 선조, 우리 역사 정신을 가지고 뭉쳐야 합니다. 그 역사정신의 핵심이 홍익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외세는 민족이 철저히 분열할수록 한민족을 간섭하고 다스리기 쉽습니다.

대표적인게 일제 식민사관, 중화 식민사관 그리고 다양한 외세 종교역사관이 ‘단군은 신화다’해서 한민족 민족사관을 파괴해서 자주 민족통일을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걸 못하게 하는 이걸 극복하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귀중한 역사관을 가지고 민족 자주와 통일 번영을 이루기 위해서 홍익 역사관으로 조국의 통일을 이룩하고 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사사건건 반대하면서 민족사관을 패배시키는 세력들이 이 땅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 세력이 소위 식민 강단사학입니다.

외래 식민사관이 방해하고 파괴하고 그러면 결국 약한 민족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역사투쟁, 역사전쟁에 있습니다.

군사경제는 쉽게 알아보지만 보이지 않은 역사관은 역사 통찰력이 없으면 보기가 어렵습니다.

외래사관이 구원이든 사랑이든 평화든 경제번영을 사용하고 실증적인 용어를 들고 나오기 때문에 일반적인 사람들은 밑에 흐르는 진리정신을 통찰하기 쉽지 않습니다.

 

위대한 민족만이 역사정신권력을 만들어 세계사에 군림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8천만 민족을 통합하는데 실패한다면 우리는 머지않아 멸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공을 한다면 영광스런 조국통일을 이루고 세계 선진대국이 될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민족의 역량을 강화하는 주동세력이 미약했기에 민족혁명을 지금까지 성공시키지 못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동학이 민족을 통합시키고 외세를 타파하려 노력했지만 몇 가지 이유로 실패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국제 정세에 대한 통찰력 부재, 국제사회 흐름 간파하고 지혜롭게 활용하는 국제적 협력을 함께하면서 결국 자주 독립 통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게 동학정신을 계승한 참동학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지 않은 훌륭한 분들이 역사 중요성에 강조를 하고 많은 고귀한 분들이 역사 연구를 발표하고 있지만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이런 역사 연구에 기초해서 실질적 역사권력의 힘을 가지고 현실차원의 경제발전 자주독립 통일을 할 수 있는 막강한 민족역량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지금 상당수 강단사학자들은 학술대회를 통해서 계속 민족사학을 파괴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중요한 이론은 실증주의입니다.

중국이나 일본 외래에서 들어온 실증사관이기 때문에 비과학적인 역사관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진리고 재야사학은 실증주의에 기초를 하지 않고 비과학적인 사이비다'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사료, 일본의 사료에 기초해서 '단군은 신화다, 환단고기는 위서다.' 이게 실증주의의 결정적 문제라 볼 수 있습니다.

일본, 중국이 귀중한 역사사료를 없앴기 때문에 중국, 일본이 제공한 역사사료를 찾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전래되는 전설, 신화, 고고학적인 자료 최대한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환단고기』라 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서가 파괴돼서 전승된 수많은 전설의 기록이 『환단고기』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아시아 역사, 한자 역사, 주역을 모르고는 역사를 제대로 해석하고 이해하기 쉽지가 않습니다.

강단사학자들은 한자 해독 역량이 약하고 주역周易과 역학易學이 약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자 실력과 역학 실력이 선행돼야 하는데 한국의 강단사학계, 하버드를 포함한 국립대학은 역사연구에 선행된 역학, 주역을 가르치는 것은 전무합니다.

그래서 실증주의 역사관은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흑이다, 백이다. 청이다, 홍이다. 창조다, 신화다는 둘이 아니다, 하나다.

이런 걸 이해하지 않고 한국인의 역사정신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게 강단사학의 결정적 연구 문제점은 외래에서 온 이원적 3차적 연구를 벗어나지 못했고 일본, 중국이 만든 식민사학에 기초해서 이게 진실이다 그러고, 재야사학의 진실된 역사사실은 거짓이고 위서라고 매도하고 있습니다.

이제 촛불 정치혁명이 일어났듯이 식민사학 청산혁명이 일어나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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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없다'를 읽고③

진실의 역사

'종교는 없다'를 읽고


예수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14:16)라고 했다.

이는 진리가 깨어진 나(법신)를 이야기 하는 것이지, 예수란 색신(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진리가 깨어진 자아인 것이다. 진리가 깨어진 모든 성인은 같은 선언을 하였다.

 

우리자신이 기존관념의 노예가 되어 있지는 않은가 살펴봐야 할 것이다.

이제 예수 정신, 석가 정신에 따라 돌아가야 할 때다.

우리는 모든 종교, 모든 교리를 떠나 진정한 자유를 성취할 수 있으며 예수와 석가가 추구했던 참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주체적 인간, 참사람은 종교나 교리, 사상, 제도 등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어버리고 진정한 자유를 누리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근본으로 돌아가는데는 많은 고통과 시련이 따른다.

인간의 관념이 거듭나는 과정은 천지개벽보다도 더 어렵다.

중세의 카톨릭은 지상의 모든 권한을 쥔 강력한 집단이었다.

중세의 어둠을 벗긴 것은 종교적 신본주의가 아니라 인본주의에 눈 뜬 르네상스였다.

중세 카톨릭 중심의 체제가 무너지면서 종교개혁이 일어난다.

그후 역사상 가장 잔인한 종교전쟁이 구교와 신교사이에 벌어진다.

아마도 21세기를 맞이하면서도 고착적인 인간 관념은 전쟁을 통해서만 부서질지도 모를 일이다.

토인비는 21세기를 역사가가 서술할 때 동서 종교의 만남과 이해라고 기록할 것이라고 하였다.

인간과 우주의 궁극적 실재를 신이라 한다.

그 신에 대한 경외심은 기독교인들에게만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다.

 

예수는 가진 자나 ‘잘 믿는다’고 자랑하는 사람, 각종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예수의 파격적 발언은 결국 기존 체제로부터 미움을 샀고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예수는 유대교 지도자인 대제사장들에게도 경고를 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오히려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마태21:31)

 

교권을 절대시하던 중세 카톨릭에 반대하여 일어난 프로테스탄트가 어처구니없게도 교권대신에 성경의 문자주의에 매달리고 자기와 다른 해석을 하는 이들을 ‘이단’으로 몰면서 수천 교파로 갈라진 것은 아이러니다.

예수가 그토록 원했던 하나님의 나라는 기독교인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제 기독교는 우월주의와 배타주의에서 벗어나야한다.

하나님 나라는 종교간의 장벽, 인종간의 장벽, 국가 혹은 문화적 장벽을 초월하여 실현될 수 있는 열린 세계이다.

종교는 이 시대가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알아야한다.

종교의 목표가 인류구원과 세계평화와 사랑에 있다면 그것을 이루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들을 제거하는 근본적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교파 이기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종교인들은 철저히 자기를 비우고 교단과 교리의 벽을 넘어서야 한다.

그럴 때만이 하나님을 자기 안에 모실 수 있고, 예수가 소망했던 행복과 평화의 세계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종교는 없다' 책에서》

'종교는 없다'를 읽고②

진실의 역사

'종교는 없다'를 읽고
요즘 대형교회의 재정 불투명과 세습, 목회자들의 부도덕성 등은 종교 지도자들이 세상 사람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아집과 독선을 버리고 자신을 비울 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나를 버리고 십자가를 질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이 참다운 종교의 길이다.

종교는 나를 비울 것을 가르친다. 오로지 자기 자신이나 자기 교파,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해 예수의 이름을 파는 사람에 대해 예수는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나라 초대 선교사들은 한국인과 한국 문화 속에 무엇이 있었다 해도 일고의 가치도 없는 악의 소산이라 하며 일망타진을 기도했다.

그러면 왜 지구촌에 이 많은 종교가 생겨나도록 하나님은 방치하셨는가.

타종교는 악의 소산이라고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깨어진 진보신학자들은 기독교가 개종 중심 선교신학을 견지하는 것은 제국주의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하며 기독교 토착화와 다원주의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한국 기독교는 다원주의 사회가 도래하고 있음에도 종교 다원주의에 대해서는 여전히 냉소적이다.

 

그러나 21세기는 정복주의적, 배타주의적 선교신학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종교 다원주의의 중요한 특징은 그리스도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신학을 전개함으로써 타 종교와의 대화를 통한 다원성을 인정하는데 있다.

대체로 한국 기독교 신자들은 “불교의 신, 알라신, 한울님이 따로 있다”고 믿지만 그런 종류의 여호와 신이라면 결국 유일신관에 위배된다.

한 종교에 귀의한 사람들만 보호해주면 천국에서 건사해주는 신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결국 진정한 유일신관은 종교 다원론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

기독교밖에 구원이 없다는 교리는 신학적인 천동설에 지나지 않는다. 기독교가 여러 종교 중심이고 다른 종교는 그 둘레를 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코페루니쿠스가 지구가 아니라 태양이 중심이고 지구도 그 주위를 돌고 있다고 말한 것처럼, 우리는 기독교든 불교든 타종교든 자신의 종교 중심으로 우주가 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신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기독교만의 하나님이 아니다.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 등 지구촌 모든 종교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이루어지며, 모든 종교의 길은 하나로 귀일돼 하나님의 구원섭리가 매듭짓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머무르고 있느냐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예수도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갈수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특히, 예수는 고난의 연속이라고 할 만큼 기존의 종교와 제도, 권력과 투쟁을 벌였다.

예수는 사즉생(死則生)의 진리를 가르치고 몸소 실천하신 분이다.

닫힌 종교는 교리적 종교, 율법적 종교, 의례 중심 종교, 교권주의 종교, 배타와 우월의식에 사로잡힌 종교, 지극히 독선적이고 광신적 종교 행태를 구가하는 종교라 할 수 있다.

반대로 열린 종교는 자기 종교의 절대적 신념을 약화시키지 않으면서도 타종교의 상대성을 충분히 이해하는 성숙한 자세를 지닌 종교다.

그동안 기독교는 사랑과 평화의 윤리를 내세우면서도 배타주의적이고 공격적이며 편협한 차별 정책을 펴왔고, 구원과 은총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인간의 죄의식을 병적으로 과장하였다. 결국 예수를 배타적 인물로 왜곡시켜온 것이다.

상대적인 것이 절대적인 진리임을 알아야 한다.

음양으로 순환하는 것. 그 상대적 운동을 하는 원리가 절대적인 진리인 것이다.

변하는 것이 그자체가 절대적인 진리인 것이다. 제행무상이다. 모든 것은 변한다.

석가도 금강경에서 “나의 설법은 물을 건널 때만 필요로 하는 뗏목으로 알라.”, “강을 건너면 배를 놓아라”고 했다.

절대적이라 주장하고 자신이 믿는 것만이 진리라고 주장한 자들에 의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단으로 몰려서 희생당했는가.

과연 그 확신이 절대적 진리였던가! 결국 자신만의 착각이었던 것이다. 한국의 종교인들은 자기 주장을 절대시 하는 경향이 있다.

각 종교에서 주장하는 진리도 문화, 정치, 사회, 언어, 역사의 제약을 받는 상대적 측면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는 버림으로써 강해짐을 가르쳤다.

그러나 소중한 가치인 청빈, 비움, 겸손, 버림, 절제, 헌신의 덕목은 설자리를 얻지 못하고 도리어 남보다 강해지는 법, 남보다 앞서나가는 법, 남을 이기고 성공하는 법을 가르치는 교회가 인기를 얻고 있다.

성공과 부귀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가르치니 말이다. 저 가난한 나라는 하나님의 저주란 말인가?

예수의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어렵다는 말씀,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는 말씀은 뭘까. 과연 예수가 재림한다면 뭐라 할 것인가. 대형교회와 교권, 교파주의, 세속에 매몰돼 있는 개별교회는 물론 종단의 분열과 분쟁이 늪 속으로 빠지는데도 교세 확장만 부축이고 내 종교가 최고라는 독선과 자만만 심어 준다. 자기 자신을 깊이 성찰할 수는 없는 것인가?

자기를 비울 때 하나님이 찾아온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린도전서3:16)

 

다음은 예수의 일성이다.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요한복음2:16)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따르는 것이요, 예수와 같은 믿음을 갖는 것이다. 곧 예수와 같이 되는 것이요. 예수를 닮는 것이다. 예수가 하나님에 대한 굳건한 믿음으로 현실적 한계를 초월하여 자유를 얻은 것처럼 우리도 그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마음이 핵심인 것이다.

유대교의 낡은 안목으로 새 시대 지도자인 예수의 행동을 이해하기란 어렵다. 율법의 노예가 된 유대교 지도자들은 새 시대가 도래 했지만 새 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의 한국교회의 지도자는 유대교 지도자들과 다를 바가 없다. 그 당시 예수의 파격적 행동을 받아들일 지도자는 거의 없었다.

만일 예수가 오늘날 한국사회에 온다면 기독교인들 중에 몇 명이나 예수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교회와 신자는 많건만 하나님의 참뜻을 깨달은 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교회가 새롭게 되고 온전하게 거듭나기 위해서는 깨달은 자들이 있어야 한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간파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하나님의 진리가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부패는 진리를 자기식으로 해석하고 자파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해 왔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눈에는 잘 살고 못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성숙한 신앙은 기복신앙을 극복하고 고난과 시련을 하나님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복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은 나의 성공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가 궁극적 도달해야 할 숭고한 삶의 가치며 실재이다.

 

구약성경은 여성차별을 당연시하며 여성을 재산의 일부로 간주하고 매매하기도 했다.

이런 고대사회의 가치관이 현대사회에 적용돼서는 안 된다. 기독교 근본주의는 성경의 무오류, 예수의 신성, 처녀탄생, 대속적 구원, 예수의 부활과 재림 등을 핵심교리로 삼고 있다.

여기에서 벗어난 개인이나 집단, 종교에 대해 관용은 없다. 세계 분쟁에는 꼭 근본주의가 관여하고 있다.

과연 근본주의자들의 행동은 하나님의 뜻인가?

기독교는 원래 열린 종교이다. 유대교는 율법과 종교 의식에 집착하는 닫힌 종교였다.

요즘 기독교는 어떤가. 자신을 처음 핍박했던 ‘닫힌 종교’를 닮아가고 있고, 자신을 핍박한 자들보다 더 철저하게 다른 종교나 신앙체제를 거부하고 있다. 지금은 한 종교의 독점이 불가능한, 공존의 다종교 사회이다.

예수는 부패한 종교적 현실과 맞서 싸우며 가난하고 억눌린 자의 편에 섰다. 종교적 위선을 철저히 거부했다.

예수는 예루살렘 입성 후 당시 종교 지도자들에게 “너희들이 성전을 강도의 굴로 만들었다”고, “이런 성전은 헐어 버려야한다”고 분노했다.(마가11:15~) 그러나 지금의 교회에 이러한 예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부패권력을 옹호하고 기득권 유지에 급급한 모습에 씁쓸할 뿐이다. 이제 예수의 본래 모습을 되찾지 않으면 민중은 교회를 떠날 것이다.

십자군 전쟁은 이슬람과 기독교가 공존할 기회를 상실하는 엄청난 역사적 과오를 남겼다.

십자군 원정 실패이후 카톨릭은 종교적 위기 극복을 위해 이단적 신앙에 대해 격렬한 마녀사냥을 한다.

이로써 수많은 무고한 여성이 죽고 학살 당한다. 결국 중세 사회처럼 종교가 부패할 때 새로운 종교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물론 처음에는 이단과 사이비로 매도되지만 결국 그 시대의 대안 종교로 등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초기 기독교도 예수는 사회의 이단자요, 그를 따르는 이들도 400년간 사이비 종교인으로 몰려 핍박당했다.

당대에 비윤리적이라고 지탄받던 초기 기독교가 지금 세계적 종교로 성장한 것을 보더라도 일부에서 단죄하는 이단과 사이비 종교에 대한 접근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지금은 기독교인들이 신종교를 무조건 이단이라고 매도한다.

일제가 천도교 보천교 대종교 같은 민족종교를 유사종교로 매도한 후 민족종교는 아직도 이상한 종교라는 낙인을 벗어 버리지 못하고 있다. 자신 종교의 우월성의 감정으로 상대방을 매도하지 말아야한다.

구약성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 야훼와의 계약을 중심으로 엮어진 신앙의 역사이다.

구약성서가 고난 받는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이다 보니 중동지방의 작은 부족적 신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을 택한 백성’으로 삼고 그와 반대되는 족속은 무자비하게 쳐부수는 신으로 부각되고 있다.

하나님은 인류 보편의 하나님이다. 수많은 민족과 부족이 세계 곳곳에서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에도 하나님의 실재를 체험하고 믿어 왔다.

 

구약을 살펴보면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민족신이지 결코 인류 보편의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은 어떤 이론이나 신관에 갇혀있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초월적이고 만유에 편재하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수많은 선지자와 종교와 지도자를 보내 구원섭리를 펴고 있다.

하나님은 특정교단의 교리로서는 알 수 없는 분이요, 접근할 수 없는 분이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비워야 한다.

백두산 정상에 오르는 길이 여러 길이 있듯이 종교는 궁극적 실재에 도달하는 여러 길을 각기 체험한 지역문화를 통해서 제시한 것이다.

정상에서 보면 결국 여러 길은 정상에 오르는 방편이었음을 깨닫는다. 사방이 환히 보이듯 모든 종교의 가르침이 하나임을 알게 된다.

 

다른 종교를 거짓된 것으로 배척하는 독선적 태도는 다른 종교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것일 뿐만 아니라, 자기 종교의 진리도 편협하게 이해하는 것으로 성숙한 종교인의 자세라 할 수 없다.

남을 억누르고 자신만이 승자로 군림하겠다는 패권주의적 상극논리는 구시대적 사고방식일 뿐이다.

정보화 시대를 맞아 인간을 갈라놓고 구속했던 모든 경계선이 무너지고 있다.

그동안 높게만 생각됐던 종교의 담도 언젠가는 무너지게 될 것이다. 결국 닫힌 종교는 도태된다.

‘진리는 하나다’라는 뜻이 남을 배척하고 제거하고 살아남은 그 종교의 교리만 절대적이란 뜻이 아니지 않는가.

‘지구는 하나다’라는 말은 다민족 다 국가를 수용하는 표현이듯이 모든 종교를 수용하는 진리, 상대성을 인정하는 진리가 절대적인 진리인 것이다.

 

오늘날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종교가 온갖 갈등과 분쟁과 부패의 온상이 되고 있다.

더구나 디지털 정보화 시대는 모든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교회가 예수의 열린 종교로서의 귀한이 되지 않고는 결국 시대의 칼날을 받아 개혁을 당하고 말 것이다.

종교개혁은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다. 본질을 회복하기 위한 몸부림이요.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회복은 진리에 대한 진정한 깨달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한국 교회가 개혁되어야 하는 이유는 유대교나 중세 교회와 같이 형식화 됐다는 것이다.

교회의 몸집을 키우는데 혈안이 된 나머지 초대 교회와 같은 진정한 은혜는 찾아보기 어렵다. 자기 교회, 자기 교파만이 최고라는 우월의식에서 벗어나야한다. 참신앙, 참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자세, 겸허한 마음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너희들은 항상 깨어 있으라. 주께서는 도적과 같이 임하리라.” 셨다. 믿는다고 해서 알아보는 것이 아니란 말씀이다.

오직 깨어진 마음, 열린 마음, 참을 지향할 때만 알아 볼 수 있으리라.

21세기는 종교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디지털 문화는 종교간의 벽, 교파 이기주의를 타파할 것이다. 종교 역시 시대적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자연 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로마서에 보면 “올바른 사람이 없다. 단 한사람도 없다. 깨닫는 사람도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 모두가 비뚤어져 쓸모없게 되었다...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며 그들의 혀는 거짓을 말하고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흐르니 그들의 입은 저주와 독설로 가득하다...그들은 평화의 길을 알지 못하고 그들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다”라고 하고 있다.

예수와 석가는 자기중심적 삶에서 초월과 실재 중심의 삶으로 전환함으로써 자기로부처 완전히 해방되었다.

자기 부정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고 사랑과 자비의 삶을 살았다.

예수와 석가는 철저히 자기를 비움으로써 하나님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하나님처럼 보였고, 철저히 하나님에게 자기를 맡겼기 때문에 하나님의 권능이 고스란히 나타났던 것이다.

인간 본연의 모습(하나님의 신성)을 회복한 예수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산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에 대한 예수의 믿음을 그대로 본받아야 한다.

예수가 개혁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시대적 상황에 얽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인습적이고 상식적인, 그리고 통념적이고 통속적인 가치관과 세계관을 완전히 뒤집어 버렸다.

자기의 이해관계에 얽혀서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았다. 실재와 진리를 그대로 본 것이다.

궁극적 실재와 하나가 되고 진리와 하나된 상태에서 예수는 “내가 곧 진리”라고 선포 했다.

석가의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란 고백도 이러한 상황에서 나올 수 있었다.

 

곧 모든 인간의 궁극적 목적은 예수의 선포처럼 내가 곧 진리가 되는 것이다. 진리와 하나된 인간을 동양에서는 태일太一이라고 한다.

예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마태12:34)라고 저주했다. 그리고 “화 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 하도다“(마태23:27)라고 질타한다.

예수의 눈에는 잘 믿는다고 하는 이들이 모두 ‘외식하는’ 이들로 보였다. 근본정신을 외면한 채 외식하는 유대교 신자들을 예수가 책망한 사정을 우리는 반면 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종교는 없다' 책에서》

'종교는 없다'를 읽고①

진실의 역사

'종교는 없다'읽고①
종교의 역할은 무엇인가?
예수나 석가는 종교를 세우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종교를 만들어 자신을 신봉하라고 가르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가르침을 실천하라고 했다.

불가에서는 살불살조殺佛殺祖라는 말이 있다.

한마디로 수행자가 부처라는 상, 조사라는 상에 갇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부처란 진리를 깨닫고 진리대로 산 사람이다.

진리란 어누 누구에게 특정한 사람에게만 통하는 것이 아닌 모든 사람, 모든 존재를 두루 관통하고 있는 보편적인 사실이다.

부처가 진리를 깨달았다고 해서 진리가 부처의 것이 되는 것이 아니다.

본래의 이치를 깨달은 자를 성인이라 한다.

진리는 우주 전체를 관통하고 있고 진리대로 산 사람이 부처이며 그리스도인 것이다.

그들은 진리를 온 몸으로 체득하여 진리와 한 몸이 되는 길을 제시한 것이다.

기독교의 핵심은 억압 당하고, 병들고 고통 당하는 모든 사람을 해방시키는 데 있다.

그러나 교회가 제도화, 율법화되면서 종교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자기주장이 옳다고만 하며 남을 배척한다.

예수와 석가의 정신으로 돌아가고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 이것이 가장 핵심 가르침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자신의 틀 안에 개념화해 왔다.

고정관념의 틀에서 하나님을 해방시켜야 한다.

예수는 유대 율법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아닌 인류보편의 하나님으로 해방을 시켰다.

그 당시 가장 하나님을 잘 믿던 유대교 율법자들인 바리새인, 랍비들이 자신의 종교 안에 갇혀 있던 하나님을 예수는 종교를 초월한 보편적 하나님으로 가르쳤다. 그러자 그들은 예수를 모함했다.

지금의 교회도 그 당시 랍비같이 예수가 다시 온다 하더라도 알아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자신의 종교에만 구원이 있다는 주장은 예수의 사상에 전면 배치되는 주장이다.

후에 예수만을 통해 구원받는다는 바울의 고백은 그의 고백일 뿐 예수의 가르침은 아니다.

수많은 성직자들은 기독교와 교회에만 구원이 있다고 한다.

 

성경에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같이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린도전서3:16)라고 했다.

21세기에는 종교는 하나라는 말이 더욱 설득력을 얻을 것이다.

종교가 가장 보수적 집단으로 지목받는 이유는 자기 울타리를 치고 이웃 종교에 경계의 눈초리를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종교는 사랑이나 자비를 강조하며 상대와의 조화를 가르쳐 왔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의 본질과는 달리 상대방을 배척하거나 ‘이단’으로 정죄해 온 것이 종교의 모습이었다.

사랑과 자비를 부르짖는 종교인들이 가장 미움이 많고 이기주의에 빠져 있다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폐쇄적이고 분쟁 지향적인 종교는 조기에 도태되는 운명을 맞이할 것임이 분명하다.

예수님은 우리를 새로운 종교로 부르신 것이 아니다. 새로운 삶으로 부르셨다.

종교는 공존의 원리를 지향해야 한다.

종교가 상대를 인정하는 최소한의 인간적 예우와 존중을 잃어버리고 증오심과 적개심에 사로잡히면 종교로서의 생명을 잃어버리게 된다.

우리나라 선교 초기 서양선교사들이 “한국인은 철학할 때는 불교인이 되고, 예를 갖출 때는 유교인이 되고, 생의 위기에 직면해서는 무속인이 된다”라고 말한 기록이 있다.

이는 한국인의 정서가 모든 종교에 포용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으며, 이는 결코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이같이 사고의 다양성과 복합적인 의미 체계는 종교 다원주의에 비추어 볼 때 상호 종교간의 소통과 상생을 가능케 할 수 있는 미래 지향적 문화의 선봉장이 될 것이다.

 

초기 기독교는 동양의 영향을 받는다. 예수 탄생시 동방박사 내방, 경배설화도 동양의 영향이다.

그리고 페르시아 문명권과 교류를 하고 유대이즘과 헬레니즘의 여려 철학과 종교의 갈래들이 혼합되어 기독교 교리체계가 세워졌음을 부정하지 못한다. 기독교도 혼합 종교인 셈이다.

 

성경 창세기는 수메르 창세기의 모방이라는 것은 이미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유대인들은 400년 동안 이집트 종교의 영향권에 있었고, 바빌로니아 유수시에도 그들의 종교와 사상에 영향을 받았으며 페르시아에서 풀려날 때까지는 페르시아 종교의 영향권에 놓여 있었다.

이집트 종교가 유대교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는 천지창조, 부활, 심판, 동정녀 탄생, 유일신 교리 등을 들 수 있다.

이집트의 아토나톤 십계명은 모세의 10계명으로, 유일신 아톤신앙은 여호와 신앙으로 대체된다.

또한 조로아스터교의 유일신 관념과 선악, 그리고 천사와 악마 등의 이분법적 세계관은 당대 유대교 뿐만 아니라 기독교와 이슬람교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최후의 심판이나 극락, 지옥 같은 말들도 페르시아인들로부터 나온 것이다.

바빌로니아 신화에는 최초의 인간을 진흙으로 빚어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리고 천지를 창조한 뒤 “심히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구절이 반복돼 나오고 있다.

노아의 홍수 설화도 연대기적으로 먼저인 바빌로니아 홍수설화의 차용이며 뱀에 대한 적대감도 이미 바빌로니아 전설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기독교는 전통적으로 기독교만이 참 종교요, 절대 종교라는 믿음을 견지해 왔다.

그러나 모든 종교는 상대적이라는 종교 다원주의가 인류 미래의 대세임을 알아야한다.

누군가 진리를 독점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자기 파멸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지구촌 종교분쟁이 끊임없는 이유도 자기 중심적인 자세를 고수하며 살아온 탓이다.

결국 종교간 대화 없이 평화는 없다.

기독교인 가운데 사찰에 들어가 불상을 자르고 불교를 우상숭배라 하는 이들이 많다. 타종교에는 구원이 없다고 생각한다.

진리는 특정 종교의 독점물이 아니다.

석가나 예수는 세상의 모든 진리를 말한 것이 아니다. 석가 예수 이전에도 진리는 존재했다.

따라서 상대방이 믿는 진리에 대해 비판하거나 거짓 가르침으로 난도질하는 것은 신앙인의 자세가 아니다.

자기를 철저히 비워야 상대방을 받아들이게 된다.

독선과 배타성이 강한 것은 깨달음을 통해 자신의 신앙을 높은 경지에 올려놓기보다는 무조건 믿으면 된다는 소극적 생각이 강하기 때문이다.

종교학의 창시자인 ‘막스 뮐러’는 한 종교만 아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알지 못한다고 했다.

남의 종교 상징물을 훼손하고 타 종교인을 벌레 보듯이 하는 한국 종교인들에게는 예수가 칭찬한 백부장의 믿음도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예수의 정신과는 동떨어져 자신이 해석한 교리를 절대화하는 또 다른 우상숭배를 보게 된다.

예수와 석가는 무아적 삶, 자기로부터의 해방을 이룩한 분들이다.

무엇보다 자기중심적 삶에서 벗어나 초월적, 실재 중심의 삶으로 전환함으로써 온 세상을 얻고 영원한 생명을 얻은 것이다.

예수와 석가가 새로운 사상과 세계관을 보여 줄 수 있었던 것은 철저히 자기를 부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는 자신의 눈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았고, 자신의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으로 인간을 이해했다.

석가도 깊은 깨달음을 통해 진리의 눈으로 인간을 이해했다.

고정관념에 얽히거나 어느 한 가지 관점에서 얻어진 결론을 절대시 하지 않을 때 진리는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무지와 미망과 허상을 깨버리고 일실우일신 하는데 목적이 있다. 그것이 열린종교의 모습이다.

정치의 적폐청산은 이 시대를 지배하는 종교사관의 혁신없이는 불가능하다.

자신의 종교만이 절대 진리라는 벽을 허물고 이제 우리 사고 안에 갇힌 신을 해방시켜야 한다.

그래야 사회 곳곳의 갈등을 해소하고 좌우갈등과 남북통일의 번영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종교는 없다' 책에서》

대통령의 가야사 복원 지원을 비난하는 고대사학자들 - 이덕일②

진실의 역사

대통령의 가야사 복원 지원을 비난하는 고대사학자들 - 이덕일②


이병도가 최태영의 권유대로 과거를 반성하고, 이를 그의 제자들이 받아들였다면 지금 어떤 일이 발생했을까?

지금 한국의 사학자들 대부분은 매국사학자라는 비난 대신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역사학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제자들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니뽄사(일본사)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고, 한국사는 니뽄사의 지방사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버릴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이 가야사 연구를 제안하자 고대사 연구자들이 대거 비난하고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간 가야사를 빙자해 임나사를 연구했던 것이다.
『삼국유사』는 가야가 서기 42년에 건국했다고 나오고,

『삼국사기』는 서기 77년(탈해 이사금 21년)에 신라의 아찬 길문이 가야와 싸워 이겼다고 기록하고 있다.

『삼국사기』·『삼국유사』는 모두 서기 1세기에 가야가 존재했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한국사를 빙자했지만 실제로는 니뽄사를 했던 고대사학자들은 4세기에도 가야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설혹 존재했어도 아주 조그만 동네국가들에 불과했다고 주장한다.

 

2005년만 해도 한일역사연구공동위원회처럼 국민세금으로 ‘쓰다 선생님 만세! 이마니시 선생님 만세!’를 외쳐도 모두가 한 통속이었기에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동북아역사왜곡특위의 국회의원들과 나를 비롯한 역사학자들, 그리고 이종찬 전 국정원장 같은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이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한겨레 21」 편집장 길윤형이 이런 매국사업을 비판한 국회의원들과 역사학자들,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국뽕 3각연대’라고 거품 물고 비난한 것이다.

정확히 조선총독부 경무국 고등계 형사의 인식과 일치한다.

정치가(독립운동가), 역사학자, 독립운동가 후손들이야 말로 일제 고등계 형사들이 기를 쓰고 죽이려던 존재들이 아니었나?

매국사학자들은 이병도가 매국사학을 추종할 때만 태두로 모신다.

감히 '쓰다 소키치' 선생님, '이마니시 류' 선생님을 넘어서려 하면 용서하지 않는다.

이것을 이문영은 역사학계가 스승에게도 대든 사례로 든다. 희한한 머리구조다.

 

유사역사학이라는 용어의 출처와 『환단고기』
학부 출신의 이문영이 교수 출신의 매국사학자들보다 나은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유사역사학’이라는 용어를 따온 것이다.

그가 고안했다고 하지 않고 따왔다고 하는 이유는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용어를 빌려온 것이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조선총독부 만세가 가득 차다 보니 조선총독부식으로 사고하게 된 듯하다.

조선총독부는 1925년 『조선의 유사종교(朝鮮の類似宗敎)』라는 책을 발간했는데, 여기에 천도교, 동학교, 단군교, 대종교, 보천교, 증산교 등의 민족종교를 ‘유사종교’로 꼽아 탄압했다.

또한 미륵불교, 불법연구회 등의 불교단체도 ‘유사종교’로 꼽았다.

지금 매국사학에서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비판하면 학위가 있어도, 없어도 ‘유사사학자’로 모는 방식과 완전히 같다.

“조선총독부는 우리 곁에 영원히 살아계시다. 천황폐하와 조선총독 각하들은 영원히 우리의 앞길을 지도하신다!”는 충성선언의 무한반복이다.

 

이문영이가 나섰는데 『환단고기』에 대한 비난이 빠질 수 없다.

이문영은 「한겨레 21」에서 “이덕일은 초창기에는 약하게 <환단고기>의 사실성을 주장했지만 최근 세계환단학회(2016년)에 나가서 <환단고기>의 역사성을 주장하기까지 했다.”라고 글의 끝을 맺었다.

무슨 수를 쓰든지 나를 『환단고기』 추종자로 몰기 위해서 광분한다.

그러나 계연수가 편찬한 『환단고기』 범례에 따르면 ‘홍범도, 오동진’ 두 독립운동가가 출간자금을 댔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진위 논쟁은 앞으로 역사학적 방법론에 따라 오랜 시간을 두고 검토할 문제지만 매국사학자들처럼 『환단고기』를 보는 자는 다 죽여야 한다’고 거품을 물 책은 아니다.

 

『환단고기』에 대한 내 생각은 추후 자세히 밝힐 것이지만 한두가지만 미리 말하겠다.

매국사학자들은 《환단고기》가 지 애미를 잡아먹었는지, 지 애비를 잡아먹었는지 모르겠지만 극도로 저주한다.

박노자도 「한겨레 21」과 인터뷰에서 『환단고기』에 대한 저주를 늘어놓았다.

나는 어떤 책이든 자유롭게 보고, 자유롭게 연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진위판정은 다양한 역사학적 방법론을 사용해 『환단고기』를 교차검증한 후에 내려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1911년에 편찬되었다는 『환단고기』에 수천년 전의 내용이 적혀 있으면 역사학적 방법론에 따라서 검증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매국사학자들은 『환단고기』에 대한 검증 자체를 거부한다.

학문의 다양성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일제가 한 세기 전 박은식 선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대하는 자세와 같고, 유신, 5공정권이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대하는 자세와 같다.

2016년에 세계 환단학회에서 기조강연을 부탁하기에 나는 기조강연보다 논문을 써서 발표하겠다고 제안했다.

이 논문은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문영은 역사학계에서는 “『환단고기』는 위서”라는 학문적 분석을 내놓았다’고 주장했다.

역사학계의 학문적 분석을 하나만 살펴보자.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에 ‘잠청배(潛淸輩)’라는 용어가 나온다.

『단군세기』는 고려말 공민왕 때 이암이 썼다고 전해지는 책이다. 물론 실제 그런지는 더 검증해야 한다.

그런데 『환단고기』 위서론자인 박광용 교수는 ‘무서운 아이들’의 본거지인 <역사비평(1992)>에 실은 「대종교 관련문헌에 위작 많다」는 논문에서 ‘잠청배’라는 용어를 위서의 근거로 들었다.

박광용은 이를 “‘청에 내통한 무리(潛淸輩)’로 표현한 부분이 있는데…이 서술은 1894년 이후에야 가장 적절하게 맞는 개념이다”라고 비판했다.

잠청배를 ‘청에 내통한 무리’라고 해석해 놓고 위서의 근거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민족사학자였던 임승국은 한단고기(1986)의 번역·주해에서 이를 “잠(潛)이나 청(淸)과 같은 무리”라고 해석했다.

잠청배는 고려 중후기 때의 간신인 오잠(吳潛)과 류청신(柳淸臣)을 뜻한다는 것이다.

1986년에 잠청배의 뜻을 풀이한 주해서가 나왔고, 꽤 많이 팔렸건만 읽어 보지도 않고 1992년에 덮어놓고 비판하다가 큰 망신을 당한 것이 이문영이 말하는 ‘『환단고기』는 위서’라는 역사학계의 학문적 결론이란 것이다.

지금 『환단고기』를 보는 자는 무조건 죽여야 한다고 주창하는 학자들 가운데 『환단고기』를 정독해 본 사람은 1%도 되지 않을 것이다.

매국사학자들이 공부 안 한다는 것은 이제 비밀도 아니다.

우리들 사이에서는 조롱거리가 된 지 오래다.

“왜 저 사람들은 공부 안 할까요?”

“공부하면 할수록 자신들이 배운 것이 틀렸다는 내용이 나오니까 그렇지요.”

“그러면 자신들의 생각을 바꿔야 하지 않나요?”

“평생 안 하던 공부 지금 와서 하겠어요?”

 

이처럼 공부 안 하는 학자들, 한국사를 빙자해 니뽄사(일본사)를 한 학자들이 자신들의 밥 그릇 지키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것에 언론카르텔이 가세한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그러니 언론의 영향력이 계속 추락하는 것이다.

매국사학자들은 자신들의 밥줄이니 끝까지 버티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겨레, 조선, 경향, 매일경제, 한국일보도 매국사학이 자신들의 밥줄인가?

수많은 독자들, 수많은 광고주들 가운데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정면으로 부인하고, 아직도 조선총독부 만세를 외치는 저들의 역사관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지금 살을 베고 뼈를 깎는 심정으로 대오각성하지 않으면 독자들은 카르텔 언론들의 역사관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보도 내용도 무조건 부인하게 될지 모른다. [한가람 연구소 이덕일 박사님 글 펌]


세계 강대국 치고 자국의 민족사를 바탕으로 해서 국가를 통합하지 않은 나라는 없습니다.

미국도 다민족 국가지만 미국의 건국정신인 청교도 정신에 입각한 자유민주주의 이념으로 다민족을 하나로 묶었습니다.

중국, 일본 등 유럽의 강대국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사학계는 자국사를 깍아내리는데 혈안이 되어 식민사학의 노예로 전락해 자국의 역사에 테러를 가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민족사를 빗대어 ‘국수주의’와 '국뽕’, '환빠’라고 맹비난하는 것은 자신들의 식민사학이 무너질 것을 방어하기 위한 매국행위에 불과한 것입니다.

마치 평생 어미 말을 안 듣던 청개구리가 강가에 제 어미 무덤을 만들어 놓고 비 오는 날 떠내려갈까 봐 미리 요란하게 우는 것과 유사합니다.

 

민족을 배반하고 국익을 해하는 식민사학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유사역사학’, ‘사이비 역사학’은 본인들 스스로이면서도 적반하장(賊反荷杖)으로 독립운동하며 나라를 지킨 민족사학을 유사역사학이라는 여론몰이를 하는 이들을 이제는 역사의 정의로 준엄하게 심판해야 하는 때입니다.

그런 자들이 민족사학자인 이덕일 박사를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시켰다며 법정에 고발하고 이에 대해 정부에서는 유죄판결을 내렸다가 항소심 2차공판에서 위와 같은 노력에 힘입어 무죄선고를 받았는데 바로 이들이 새 정부 적폐청산 대상 제1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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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영과 유사역사학 - 이덕일①

진실의 역사

이문영과 유사역사학 - 이덕일

 

무슨 소설을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칭 소설가였던 이문영이 「한겨레 21(2017. 6. 26)」에는 자신을 ‘역사작가’라고 소개했다.

「한겨레 21」의 청탁을 받고 너무 기뻐서 인터넷에 글을 남겼는데, 유사역사학에 대한 글을 써달라고 청탁하면서

“이런 기사를 내보내면 역풍 엄청납니다. 괜찮겠습니까?”라고 물었다는 것이다.

「한겨레 21」이 처음부터 마음먹고 독자들과 싸우려고 기획했다는 뜻이다.

단군 죽이기를 마음먹고 특집으로 꾸밀 정도면 순간의 일탈이 아니라 조선총독부 역사관 수호가 신념이라는 뜻이다.

이문영은 “그런 건 무섭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단다.

 

내 주위는 대부분 책 깨나 보는 사람들인데 아직 이문영 소설을 읽어본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

그러니 이문영이 소설가로서는 밥 먹고 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조선총독부 역사관 수호의 전위대로 나서니 『매일경제』에서 연재지면을 주고 「한겨레 21」에서도 청탁을 한다.

역시 대단한 카르텔이다.

당초 「한겨레 21」에서는 학사출신의 이문영이 아니라 그럴듯한 대학의 교수를 필자로 섭외했을텐데 모두 내뺐을 것이다.

도종환 후보자를 맹비난하던 ‘한국고대사학회장 하일식, 윤내현 교수가 자신의 뒷자리를 준 단국대 심재훈, 『조선일보』에서 “국사학계의 무서운 아이들”이란 닉네임을 붙여준 기경량’을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청문회에 불러 멍석을 깔아주었다.

그러자 모두 학회 핑계를 대며 도망갔다.

이문영이 그간 소설 인세로 몇 푼을 벌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소설을 본 사람을 만나지 못한 것으로 봐서 소설가로 먹고 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매국사학 전위대로 나서니 인생에 반전이 일어났다.

이 신문, 저 신문에서 지면을 주고 고대사학회는 한성 백제박물관에 초청해 강연 자리까지 마련해 주었다.

이리 계산하나 저리 계산하나 남는 장사다. 그러니 그는 전위대의 역할에 충실하다.

그래서 적반하장은 이문영의 특징이다.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비판하는 학자들을 ‘유사역사학자’라고 비판하는 것으로 ‘조선총독부는 우리 곁에 영원히 살아계시다’를 되뇌이면서도 『매일경제』에 때로는 ‘심산 김창숙이 그립다’ 운운의 글도 쓴다.

물론 김창숙이 실제로 살아 있다면 이승만이 그랬던 것처럼 죽이자고 달려들었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 이병도는 침묵하고 문정창, 박창암은 비판하고.
총독부 역사관을 비판했던 인사들을 극우파나 쿠데타 동조세력으로 모는 것은 이문영의 특기다.

이문영은 광복 후 민족사학에 전념했던 문정창에 대해 “황해도 내무부 사회과장(이사관)을 지낸 일제 부역자”라고 비판했다.

문정창이 일제 때 관료를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광복 후 자신의 행위가 잘못되었다는 점을 반성하고, 남은 평생을 사재를 털어 일제가 왜곡한 한국사 바로잡기에 바쳤다.

이문영은 이 사실은 절대 말하지 않는다.

 

『자유』지를 창건한 박창암 장군에 대해서는 간도특설대 출신이자 5·16쿠데타에 가담했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박창암 장군이 박정희에게 민정이양을 계속 촉구하다가 박임항·김동하 장군 등과 반혁명사건으로 체포되어 숱한 고문을 당한 끝에 13년형을 선고받고 투옥되었다는 사실도 절대 말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질이 안 좋다.

 

반면 자신이 추앙하는 국사학계의 태두 이병도의 행적에 대해서는 모른 체한다.

이병도가 조선총독부 직속의 조선사편수회에서 일본인 스승들과 함께 한국사를 난도질한 장본인이란 사실은 일단 제외하자.

이병도는 이승만 정권 때 인간백정으로 불렸던 관동군 헌병 출신 김창룡 방첩대장(중장)의 묘갈명을 썼다.

이 묘갈명에서 이병도는 “간첩오렬 부역자 기타를 검거 처단함이 근 2만5천 명”이라고 칭송했다.

김창룡이 반 이승만 세력을 용공으로 몰아 하도 많이 죽이자 군부 내 양심세력인 허태영 대령이 1956년 처단하고 사형 당했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아버님이 허태영 대령을 참군인이라고 칭찬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이병도는 거꾸로 김창룡을 칭송한다. 이병도가 김창룡을 칭찬한 이유가 있다.

이병도는 광복 직후 진단학회에서 쫓겨났다가 1950년의 6·25사변으로 화려하게 재기했다.

 

김창룡의 반 이승만 세력 숙청은 곧 자신의 재기의 발판이었다.

그래서 1954년 진단학회 이사장으로 복귀한다.

이병도는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나자 국가재건최고회의 기관지 『최고회의보』 창간호에 「5·16군사혁명의 역사적 의의」라는 글을 써서 쿠데타를 칭송하고, 학술원 원장 등 각종 요직을 꿰찬다.

1980년 전두환 정권에서 국정자문위원에 이르기까지 이병도는 친일, 독재 미화의 삶으로 일관했다.

이런 이병도의 행적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이문영은 반성의 삶을 살았던 문정창, 박창암의 전력만 극력 비난한다.

 

* 매국사학의 진정한 스승은 여전히 일본인 식민사학자들.
지금 매국사관을 비판하는 학자들 대다수는 문정창, 박창암 등과 아무런 상관없다는 사실도 모른 체 하고 덮어 씌운다.

일제 고등계 순사 앞잡이 수법과 유신, 5공 때 용공조작 수법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니 정체성이 같은 「한겨레 21」에서 원고 청탁을 했을 것이다.

지금 매국사관을 비판하는 학자들과 시민들 대다수는 80년대 이후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로서 문정창, 박창암이란 이름도 몰랐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공부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사학계 대다수가 조선총독부 사관을 추종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비판적 인식을 갖게 된 사람들이다. 이들의 특징은 고대사부터 근현대사까지 일이관지하는 역사관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고대사도 비판하고, 이승만·박정희 정권도 비판한다.

‘조선총독부는 영원히 우리 곁에 살아계시다!’는 고대사학계는 말할 것도 없고, 근현대사는 비판적으로 보면서도 고대사는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추종하는 이른바 짝퉁 진보 근현대사학자들의 분절적, 쪼가리 역사인식도 웃기는 짓거리로 본다. 

이문영의 웃기는 자화자찬은 한 둘이 아닌데 그 중 하나가 이병도의 제자들이 이병도에게 반기를 들었다는 사건이 있다.

이문영은 한국 역사학계는 스승에게도 반기를 들 수 있다는 사례로 설명한다.

 

서울법대 학장이었던 최태영 선생이 이병도를 만나서 1차사료를 가지고 설득하자 이병도가 단군을 인정했다고 알려진 사건이다.

그러자 그 제자들이 최태영이 협박했다는 등 이병도가 노망났다는 등 비판하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일화이다.

이것이 이문영의 머리속에는 한국 역사학계는 스승에게도 대들 수 있는 사례로 둔갑한다.

이병도의 제자들이 이병도를 비판한 것은 이병도가 조선총독부 역사관에서 벗어나려 했기 때문이다.

이병도가 광복 후에도 한국사를 빙자해 니뽄사(Nippon History:일본사)를 하는 매국사학자들의 태두로 추앙받은 것은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추종한다는 전제 내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이병도가 총독부 품을 벗어나서 단군을 인정하려고 하자 그 제자들이 이병도를 짓밟고 직접 진짜 스승인 쓰다 소키치와 이마니시 류 선생님의 품안으로 안긴 사건이다.

이병도는 ‘니뽄사’의 큰 틀 내에서 고대부터 근대까지 니뽄의 식민지였다는 ‘한국지방사’를 관리하는 중간관리자지 최고 책임자는 아니라는 뜻이다.

이는 과장이 아니다. 한 예를 들어보자.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주창한 쓰다 소키치는 백제는 13대 근초고왕(재위 346~375) 때 건국됐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병도는 8대 고이왕(재위 236~286) 때 건국되었다고 100년 정도 끌어올렸다.

그래서 국정 국사교과서나 검인정 교과서는 모두 백제는 3세기 후반 건국했다고 적고 있다.(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임나는 가야의 별칭’이라는 희한한 주장을 한 홍익대학교 김태식은 대한민국 국민세금으로 운영했던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의 한국측 위원이 되어 고이왕 건국설을 부인했다.

물론 『삼국사기』의 기록대로 서기전 18년 온조대왕이 건국했다고 볼리는 만무하다는 사실은 이제 이 문제에 관심 있는 국민들은 다 눈치 챘다.

김태식은 고이왕이 백제를 건국했다는 것은 “후세 백제인들의 고이왕 중시 관념에 의하여 조작된 것이다.

이 시기 백제의 발전 정도는 좀 더 낮추어 보아야 할 것(김태식, 『한일역사공동연구보고서』, 2005년)”이라고 주장했다.

서기전 18년 건국이라는 『삼국사기』는 말할 것도 없고, 서기 3세기라는 이병도도 틀렸고, 서기 4세기 중반에 건국했다는 쓰다 소키치 선생님이 맞다는 것이다.

서울교대 임기환은 「동북아역사지도」 문제로 국회 동북아특위 진술회가 열렸을 때 이에 대한 견해를 묻자 ‘학계의 견해와 배치되지 않는다’고 답변해서 여야의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백제는 4세기 중반에야 건국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세금 47억으로 만든 『동북아역사지도』는 4세기에도 한반도 남부에는 신라도, 백제도, 가야도 그려놓지 않은 것이다.

반복하지만 5개월의 수정기한을 주었는데도 독도는 끝내 그려오지 않았다.

이런 지도사업을 중단시켰다고 「한겨레 21」에서 조선, 경향, 한국과 함께 입에 거품을 물고 맹비난하는 것이다.

[한가람 연구소 이덕일 박사님 글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