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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의 신비-내 안의? 뇌안의? 뇌를 디자인해보자

힐링이 필요해

인체의 신비 - 내 안의? 뇌안의? 적절한 균형 뇌를 디자인해보자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태어난 순간부터 계속해서 뇌세포는 줄어든다던지, 꿀밤을 맞으면 뇌세포가 죽는다던지, 유년기에 측정한 IQ가 성년까지 변함이 없다는 웃지 못할 속설이 의외로 상식처럼 알려져 있다. 나이가 들면 지레 건망증을 걱정하고, 기억력이 떨어진다고 배우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시는지? 식생활과 육체의 웰빙well-being을 이야기하는데, 혹시 뇌도 웰빙하게 가꿀 순 없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머릿속에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 글을 읽는 순간에도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고, 신경회로가 생겨나거나 더욱 강화된다. 나의 뇌를 내가 디자인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뇌의 가소성可塑性을 주제로 그간의 뇌에 대한 오해를 벗겨보자.

 

뇌가 지닌 유연한 적응능력, 가소성

이야기 하나, 정열적으로 일하다 퇴직한 한 남성이 이후 10년 사이에 급작스럽게 늙은 자신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문득 자신 앞에 지난날 인생만큼이나 남은 인생이 많다는 사실을 깨우친 그는 다시 ‘배우기’를 시작했다. 나이를 잊은 그는 이제 스페인어를 배우고 있다.

 

둘, ‘習(익힐 습)’이란 글자는 새가 날개 짓을 수없이 반복한다는 의미이다. 많은 반복과 연관되는 개념 중 습관과 중독의 구조적인 차이가 있을까? 새해가 되면 많은 흡연자들이 금연을 계획한다. 올해는 정부가 담뱃값까지 인상했는데, 어느덧 5개월의 시간이 흐른 현재에도 흡연율은 여전하다고 한다. 좋은 습관이 인생을 바꾼다는 말이 있지만 그 습관이란 길들이기가 참 힘들다. 더욱이 중독을 끊고 좋은 습관을 들여야 하는 금주, 금연은 오죽할까?

 

셋, 아내가 한 남자와 호텔에 들어가는 모습을 본 두 남자가 있다. 한 사람은 고객과 중요한 미팅으로 호텔식당으로 갔다고 생각한다. 또 한 남자는 외도를 의심하고 자꾸만 떠오르는 부적절한 생각으로 괴로워한다. 도대체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걸까?

 

예를 든다면 끝이 없을 것 같다. 서로 상관없을 법한 이 이야기가 사실 모두 ‘뇌의 가소성’과 관련이 깊다. 본래 ‘가소성可塑性’이라는 말은 외부의 힘에 의해 고체에 변형이 일어났는데 그 외부 힘을 제거한 후에도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고 변형된 그대로 남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 개념이 뇌 신경계 연구에 쓰이면서 뇌의 가소성(Brain Plasticity)이란 말이 생겨났는데, 이는 뇌세포나 뇌 부위가 학습이나 환경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즉 학습이나 기억에 있어 비교적 짧은 기간의 사이에 가해진 자극에 의해 뇌에 장기적 변화가 일어나서 그 자극이 없어진 후에도 변화가 지속되는 ‘뇌기능의 유연한 적응능력(adaptive capacity)’을 표현하는 용어이다. 이는 뇌손상을 입은 환자에게 재활의 가능성을 열어 주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또한 뇌의 가소성은 무뎌져가는 기억력으로 고민하는 어르신들께,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학생들과 초심자에게도, 그리고 이제 중년으로 접어든 필자에게도 무척 고마운 소식이다. 이번 주제가 각성과 희망의 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실 뇌의 가소성이 이 분야의 일반론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뇌손상 환자의 언어재활이 전공분야였던 필자는 신경심리학에도 소양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 분야 최고 석학이었던 모 교수님께 간곡히 청강을 요청했었다. 허락은 겨우 받았지만 교수님은 한 가지 견해 차이를 분명히 밝히셨다. “자네는 뇌의 가소성을 믿겠지만, 난 그렇지 않아. 재활을 통해 생긴 능력은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본래 가지고 있었던 능력이 자연스럽게 회복한 것이라고 봐.” 지금도 일부에선 회의적인 시각이 있을 수 있지만, 뇌과학 분야가 발전한 만큼 뇌의 가소성을 증명하는 연구는 이제 너무도 많다.


뇌는 늙지 않는다

『브레인 룰스Brain Rules』의 저자 존 메디나John Medina는 “신생아의 뇌는 ‘조립요망’이란 스티커를 붙이고 나와야 한다.”고 표현했다. 사람의 뇌는 태어날 때 일부만 조립되어 있고, 몇 년이 지나야 온전히 조립이 된다. 아이가 세 살 정도가 되면 뇌의 특정부위에 있는 연결고리가 두세 배 늘어난다. 그리고는 뇌는 가지치기를 하듯 연결고리를 잘라버린다. 이 과정이 사춘기를 겪으며 또 일어난다. 미친 듯이 자란 신경가지들을 잘라내고 다시 어른과 비슷하게 정렬된다. 요약하자면 미운 세 살이 되면 뇌 속에서 엄청난 활동이 일어나고, 무서운 십대가 되면 그보다 더 격렬한 활동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아! 매일 혈압을 올리는 우리 집 꼬맹이들이 왜 그러는지, 사춘기 시절 나는 왜 그랬는지 조금 이해가 된다. 미친 듯이 뻗어나간 신경가지처럼 어느 것 하나 정렬되지 못하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는 아이들에게 어른은 조금 더 인내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성장과정에서 뇌회로는 계속해서 재편성되고, 평생 동안 뇌 안에서는 변화가 지속된다.

 

얼마 전 서점에서 『뇌는 늙지 않는다』(다니엘 G. 에이멘 저)는 책이 눈에 띄었다. 이 글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선택적 주의집중이 된 것이긴 하지만, 제목이 정말 기막히지 않는가! 뇌는 늙지 않는단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지갑이든 핸드폰이든 열쇠든 꼭 한 가지를 잊고 나가는 건망증 때문에 아내에게 “정말 한결같은 남자”라는 핀잔을 듣는다. 필자만 그런가? 혹시 무언가 배워도 금방 잊어버리고, 설명을 들어도 모르겠고, 배움의 때를 놓쳐버렸다는 상실감에 빠져 본 적은 없으신지? 자! 여기 뒤통수를 번쩍 때리는 연구가 있다.


매너리즘을 극복하라

일본 도쿄대 이케가야 유지池谷裕二 박사는 “뉴런Neuron(신경세포)의 수는 질병에 걸리지 않는 한 평생 동안 변함이 없다. 신경세포 자체는 변함이 없지만 미세한 구조는 계속해서 변화한다.”고 했다. 미국 마이애미 대학에서 어린 토끼와 늙은 토끼에게 각각 새로운 자극을 훈련시켰는데, 역시 어린 토끼가 더 빨리 학습을 했다. 그런데 뇌의 신경세포 수가 변함없다면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걸까?

 

그 차이는 뇌파의 일종인 세타파(Theta wave)에 있었다. 세타파는 새로운 장소를 탐색하거나 사물에 주의와 흥미를 가질 때 즉 ‘무엇을 하고자 하는 기분’일 때 나온다. 늙은 토끼는 이 세타파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타파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실험을 했더니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어린 토끼는 변함이 없지만, 늙은 토끼는 시행 횟수 절반 만에 80%의 달성률을 보였다.

 

즉 나이를 먹어도 뇌 자체의 능력은 약해지지 않는다. 뇌의 실체는 젊을 때 그대로이다. 세타파는 주의력, 흥미, 탐구심에 관련되어 있다. 나이를 먹으면 바로 그것이 없어지는 것이다. 이쯤이면 눈치채셨을 것 같다. 맞다, 항상 틀에 박힌 일정한 방식이나 태도를 취함으로써 신선미와 독창성을 잃어버리는 ‘매너리즘mannerism’이 학습의 최대 적이다.

 

이케가야 박사는 나이를 먹으면 기억력이 떨어진다던지, 뇌세포가 준다던지 하는 협박을 이제 멈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굳어진 뇌 회로를 유연하게(가소성이 높게) 하는 좋은 방법이 있다. 익숙했던 것을 달리 생각해보는 것, 나와 다른 생각, 입장에 서보는 것 등이다.

 

뇌의 가소성은 뇌가 손상된 환자의 경우엔 뇌의 다른 영역이 잃어버린 기능을 대신하는 것을 의미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습관을 고치려는 사람에겐 학습과 훈련을 통해 신경회로(시냅스)를 재배열, 강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의지와 반복이라는 도구를 통해 얼마든지 스스로 자신의 뇌를 디자인할 수 있다는 말이다.


뇌를 건강하게 만드는 자기성찰

브로드만Brodmann 뇌지도를 통해 대뇌피질의 각 부위가 특정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브로드만의 뇌지도는 대략적인 위치일 뿐이고 사람마다 정확한 뇌지도는 개별적이다. 얼굴이 똑같이 생긴 쌍둥이조차도 차이가 있다. 마찬가지로 뇌의 회로도 사람마다 다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것은 저마다 경험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왜 똑같은 상황을 보더라도 사람마다 해석이 다를까? 습관이란 참 무섭다. 경험과 반복을 통해 강화된 신경회로는 새로운 자극에도 무의식간에 처리한다. 만약 아내의 외도를 의심한 남편과,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는 남편의 머릿속을 들여다 볼 수 있다면 그들의 경험과 환경이 똑같은 상황을 어떻게 다르게 처리하는지 차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이기적 유전자』(1976년)에서 문화의 진화를 설명할 때 등장한 ‘밈meme’이란 용어가 있다. 유전자가 자기복제를 통해 생물학적 정보를 전달하듯, 밈은 모방을 거쳐 뇌에서 뇌로 개인의 생각과 신념을 전달한다. 반면 뇌에는 거울뉴런이라는 ‘모방을 하게 하는 뉴런’이 있는데, 다른 사람의 특정행동을 볼 때 마치 자기가 직접 하는 것처럼 같은 뇌 부위가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이런 ‘거울뉴런’이 인간사회에서 보이는 다양한 모방들에 영향을 끼친다고 하는데, ‘밈’을 설명하는 데 거울뉴런이 중요한 단서가 된다. 끔찍스러운 장면이나 불쾌한 행동을 볼 때 어른들은 본능적으로 아이들의 눈을 가린다. 모방이 일어날까 두렵기 때문이다.

 

사람의 행위와 의식을 뇌 안에서 벌어지는 현상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편적이고 현상론적이라고 비판받을 수 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반복과 학습으로 강화된 뇌 회로는 새로운 해석을 방해하고, 생각과 행동을 지배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자기개발 도서들을 들여다보면 ‘나쁜 행동을 줄이고, 좋은 행동을 반복하라’는 지침이 결코 빠지지 않는다. 몸에 습관을 들이라는 말은 뇌에 각인하란 뜻이기도 하다.

 

긴 사설의 요점을 정리하면, 건강하고 젊은 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너리즘’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 또 하나 ‘지속적으로 스스로를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가장 뛰어난 중년의 뇌』의 저자 바버라 스트로치Babara Strauch는 어휘, 언어기억, 귀납적 추리, 직관력, 통찰력이 절정에 달하는 뇌는 ‘중년의 뇌’라고 했다. 이제 ‘뇌의 절정기’에 도달한 중년들이여! 배워도 금방 잊어버린다고 주눅 들지 말고 뇌를 유연하게 해보자. 굳어진 뇌 회로를 유연하게 하는 좋은 방법들이 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기, 익숙한 것과 달리 생각하기, 너무 빨리 판단하지 말기 등등이다. 시간을 내어 잠깐이라도 나를 돌아보는 여유를 가져보는 것이 뇌를 활력있고 유연하게 만드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됨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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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한 먹거리 슈퍼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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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한 먹거리, 슈퍼푸드

 
슈퍼푸드의 역사

슈퍼푸드라는 말은 마이클 반 스트라텐과 바바라 그릭스의 소설 『슈퍼푸드Superfood』에서 비롯되었다. 활성산소를 제거하고 체내에 필요한 영양소를 많이 함유하고 있는 웰빙 식품에 ‘슈퍼푸드’라는 이름을 붙였고, 이내 사람들은 열광했다. 누구에게나 필수적으로 발생하고 나이를 먹음에 따라 양이 많아지는 유해산소를 없앨 수 있다고 소개된 것이 슈퍼푸드다. 토마토와 블루베리, 브로콜리, 치아씨, 고지베리, 헴프, 위트 그라스, 아사이, 카뭇, 클로렐라, 아가베 등 슈퍼푸드의 종류는 다양하다.


10대 슈퍼푸드

“여러분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도구가 바로 자신의 손에, 늘 먹는 그릇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때이다.”- 스티븐프랫Steven G. Pratt

미국의 영양학 권위자인 프랫 박사는 세계적인 장수지역인 그리스와 오키나와의 식단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먹을거리 14가지를 선정하였다. 영양이 풍부하고 해독작용, 면역력 증진, 노화방지 등의 효과가 있는 음식으로 대부분 저칼로리이다. 이 저서에서 언급된 슈퍼푸드는 블루베리, 브로콜리, 콩, 대두, 귀리, 오렌지, 연어, 요구르트, 호박, 시금치, 토마토, 칠면조, 호두, 차 등 총 14개이다.

(2013년 기능의학회에서 정한 12개의 슈퍼푸드로는 아보카도, 시금치, 해조류, 석류, 블루베리, 브로콜리, 풀을 먹여 키운 소고기, 알래스카산 생 연어, 아몬드, 코코넛 오일, 올리브 오일, 녹차가 있음)


슈퍼푸드의 구성 특징

프랫박사는 슈퍼푸드에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징이 있다고 하였다.
① 각종 영양소가 풍부하고 콜레스테롤이 적을 것
② 인체에 쌓인 독소를 해독하고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항산화 작용을 하는 식품일 것
③ 면역력을 증가시키고 노화를 억제시키는 식품일 것 등이다.
그리고 슈퍼푸드의 기준은 맛있어야 하고, 언제 어디서든 구할 수 있어야 하며 지난 수 세기에 걸쳐 영양가가 입증된 것이어야 한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영국 의학저널에 의하면 50세 이상 성인들에게 하루에 사과 한 개를 섭취하게 하면 매년 심장마비, 뇌출혈 등 혈관계 질환으로 인한 사망을 8천 건 정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콜레스테롤 저하제인 스타틴을 투여했을 때와 유사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그러나 사과를 과다 복용할 경우 다량의 유기산으로 인해 위의 산도가 높아져 속쓰림이나 설사를 유발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당뇨환자의 경우 체내 포도당이 혈액에 축적되어 건강이 위험해질 수 있다. 몸에 좋은 과일이라 할지라도 적정량을 지켜야 건강에 이롭게 되는 것이다.


올바른 슈퍼푸드 섭취법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슈퍼푸드로 렌틸콩과 퀴노아가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자기 몸의 상태를 잘 모르고 먹거나 너무 많이 먹으면 건강에 해롭다는 지적을 한다. 퀴노아나 렌틸콩의 경우 주식처럼 먹게 되면 단백질이 과도하게 높고 또 칼륨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에 혈압약을 먹는 경우는 위험할 수 있고, 신장에 부담을 줄 수도 있다. 자기 몸에 맞는 식품을 고르고 적당량을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종 푸드들
■로컬푸드 Local food
장거리 운송을 거치지 않은 지역 농산물을 말한다. 흔히 반경 5㎞ 내에서 생산된 식재료로서 비교적 운송업자와 판매자 등 많은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제공되는 식품이다. 생산자와 소비자간 배송거리를 줄이고 중간도매상, 소매상 등 유통 단계를 줄여 식품의 신선도가 높아지고 가격은 낮아진다.

 

■패스트푸드 Fast food
식당에서 주문하면 즉석으로 나오는 식품을 말한다. 비만과 같은 성인병 위험 등의 문제로 경계하는 목소리가 크다. 칼로리는 높으나 몸에는 해롭다는 이유로 쓰레기 음식이라는 뜻의 ‘정크푸드junk food’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슬로푸드 Slow food
패스트푸드에 대립하는 개념으로 지역의 전통적인 식생활문화나 식재료를 다시 검토하자는 의미이다. 1986년에 패스트푸드의 대명사인 맥도날드가 이탈리아 로마에 진출하자 이에 대항하여 전통음식 미각의 즐거움, 전통음식 보존 등을 위해 슬로푸드 운동이 나오게 되었다.

 

■블랙푸드 Black food
검은콩, 검은깨, 검은쌀, 메밀, 오징어먹물, 블루베리, 가지, 목이버섯, 오골계, 김, 미역, 다시마, 건포도, 수박씨 등 검은 빛을 띠는 대부분 식품을 가리킨다. 안토시아닌이라는 성분 때문에 검은 빛깔을 띠는 것인데, 이것과 함께 블랙푸드에는 베타카로틴 등이 많이 들어 있다. 심장질환과 뇌졸중의 위험을 줄이고 성인병을 예방하는 효과가 탁월하다. 그리고 신장 기능을 좋게 하고 노화 방지와 눈에도 매우 이롭다.

 

■로푸드 Raw food
섭씨 46도 이상의 열로 조리하지 않으면서, 버터 우유 치즈 등 유제품을 넣지 않고 만드는 채식을 말한다. 가열하지 않기 때문에 몸속 노폐물을 배출시키는 효소를 섭취할 수 있고, 몸 안에 독소가 쌓이는 것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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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과 몸에 맞는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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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 원리와 몸에 맞는 음식

내 몸에 맞는 음식을 먹으면 소화가 잘되고 기분이 좋아진다.

병이 있어도 병세가 한결 누그러지는 느낌을 받는다.

질병은 내부적인 요인이든 외부적인 원인이든 장부의 균형이 깨지면서 생겨난다.

음식이 깨진 균형을 조화시켜 주면 병은 호전된다.

그래서 ‘식약동원食藥同源’이라 하여 음식을 곧 약이라여겼다.

상제님께서는 불사약은 밥이고 불로초는 채소라고 하셨다.

「중용 33장」에는 “중야자中也者는 천하지대본야天下之大本也요, 화야자和也者는 천하지달도야天下之達道也”라는 말이 있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뿐 아니라 음식과 인간의 조화도 도에 통달하여야 이루어지는 것이다.

 

공자는 「주역 계사전」에서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라고 하여 우주는 음양의 법칙으로 돌아간다고 하였다.

인간은 소우주다.

사람 역시 정신과 육체, 남자와 여자, 이목구비, 심장과 신장, 간과 폐, 상하좌우 등 모두 음양의 이치에 따라 구성되고 생리 현상이 일어난다.

 

음양은 인간과 자연의 절대적 원리이다.

그러므로 내 몸에 맞는 음식이란 음양의 조화를 이루는 음식이어야 한다.

양陽의 기운이 부족하거나 양의 장부에 문제가 생기면 양의 기운을 회복시키는 양의 음식을 먹으면 된다.

음양의 원리를 이해하여 균형을 이루는 음식을 먹는다면 건강을 지켜갈 수 있다.

반면 조화와 균형을 깨는 음식은 독이 되고 질병을 악화시킨다.

 
음양과 식물

우주 만유는 수數로 표현된다.

음양은 수를 통해서 알 수 있다.
홀수 1 3 5 7 9는 양수이고 짝수 2 4 6 8 10은 음수이다.

양기가 강한 식물은 잎이 홀수(인삼. 토란, 마늘, 율무, 대파, 둥글레...)로 뻗어나고 음기가 강한 식물(소나무. 감나무, 포도나무, 배추,..)은 짝수로 뻗어난다.

호박, 고구마 등은 쌍떡잎 식물이지만 잎이 넓고 밖으로 나가는 기운이 강해서 양의 기운이 강하다.

옥수수 등은 외떡잎 식물이지만 감싸고 수렴하는 음의 기운이 강하다.

음양과 음식

강유를 통해서도 음양이 드러난다.

「주역 계사상 1장」에는 “동정상유動靜有常 강유단의剛柔斷矣”라 하여 음양의 동정은 강유로 판단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2장」에서는 “강유상추剛柔相推 이생변화以生變化”하여 강유가 서로 밀어서 변화를 생한다고 말한다. 강하고 단단한 것은 양에 해당되고 부드러운 것은 음에 해당된다.

사물은 열을 받으면 제 본성을 드러낸다.

양기가 많은 음식(소고기, 견과류...)은 열을 가하면 단단해진다.

음기가 많은 것(돼지고기, 생선류, 감, 바나나, 복숭아...)은 익을수록 부드러워진다.

그래서 소고기는 금방 익혀서 먹어야 부드럽고, 돼지고기는 충분히 익혀야 먹기에 편하다.

양인은 부드러운 음의 음식을 먹어야 좋고 음인은 강한 양의 음식을 먹어야 소화가 잘되고 기분이 좋아진다.

음양과 동정

음양 발음 그대로 양은 밖으로 나가고, 음은 안으로 들어온다.

양은 위로 상승하고, 음은 아래로 내려온다.

음기가 강한 음식(보리, 녹두, 메밀, 팥...)은 기운이 하강한다.

양기가 강한 음식(콩, 수수, 율무, 참깨...)은 기운이 상승한다.
우리 몸에서 양의 작용을 하는 비위와 폐가 강한 양인은 기운이 위로 올라가기 쉽다.

그래서 음기가 강한 음식을 먹어야 편하고 기분이 좋다.

간과 신장이 강한 음인은 기운이 아래로 내려오기 쉽다.

그래서 양기가 강한 음식을 먹어야 소화가 잘된다.


음양과 한열

“욕지음양지리欲知陰陽之理면 관호일월觀乎日月하고”(도전 2:49:3) 상제님께서는 음양의 이치를 알고자 하면 일월을 살펴보라고 하셨다.

태양은 빛을 뿜어내어 더운 기운(양)이고 달은 빛을 흡수하여 찬 기운(음)이다.

양은 안에서 밖으로 나가며 온도가 높고, 음은 밖에서 안으로 들어와 수렴하고 온도가 낮다.

생강, 양파, 고추, 부추 등은 따뜻한 기운을 가진 양의 음식이다.

선인장, 오이, 참외 등은 찬 기운을 가진 음의 음식이다.

 
식물의 사상

벼는 봄에 볍씨를 뿌리고 여름에 논에 모내기하고 가을에 수확하여 여러 가지 기운을 받지만 최종적으로 쌀은 태음지기를 받아 부드럽게 고개를 숙인다.

보리는 자라는 모양이 예쁘고 부드러우며 수확한 보리 한 톨을 보면 2개로 나누어져 있어 소음지기를 받은 식물이다.

보리는 열을 내리고 수렴하기에 중동에서 사막의 열기를 받고 온 사람들이 보리밥을 먹어서 열을 식히고 건강을 회복한 경우가 많다.

풀은 찹쌀이나 밀가루로 죽을 써서 만든다.

보리는 죽을 쓰면 너무 풀어져서 풀로 사용할 수 없다.

쌀은 붙기는 하지만 약해서 풀로 사용하지 않는다.

찹쌀과 밀은 양의 기운을 받아서 열을 가하면 단단해져서 접착력이 강해 풀로 사용한다.

밀은 겉보기는 보리와 비슷하여 소음지기와 태양지기를 동시에 받은 식물임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콩은 잎이 넓은 편이고 태양지기를 받아 열매는 강하고 딱딱하다.

푸른 색깔인 완두콩과 녹두는 소음지기를 받은 식물이다.

수수, 율무는 태양지기를 받아 곧게 자라며 열매는 강하고 딱딱하다.
그래서 양인陽人은 쌀 보리밥을 제 몸에 맞게 비율을 조절하여 먹으면 장부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

음인陰人은 찹쌀 콩 수수밥을 제 몸에 맞게 섞어 먹으면 장부의 조화를 이루어 더욱 건강해진다.

몸, 음식, 그리고 수행

우리 생명은 음양의 부조화를 극복하고 조화를 지향하면서 살아간다.

진리공부와 수행을 통해 지극한 조화 기운을 얻어서 몸과 마음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영원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주와 인간의 음양 동정은 수화운동으로 드러난다.

생명은 물속에서 태어나고 불 속에서 열매를 맺고 성숙하게 된다.

생명이 생장하는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불기운이 강하게 작용하게 된다.

 

그래서 음양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근원적으로 수행을 해야만 한다.

수행을 통하여 수기를 올려서 에너지를 충전하고 화기는 내려서 에너지를 보전하게 해야 우리 몸의 조화를 지속적으로 가능하게 한다.

수행을 하면 내가 먹는 음식이 내 몸에 조화되는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수행을 하지 않으면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음식의 조화를 인식하지 못하고 그저 음식의 맛으로만 판단을 내리기 쉽다.

그러기에 음식으로 장부의 조화를 이룰 수 있게 하려면 수행은 필수적이다.


강유로 보는 인체의 음양
사람의 머리는 하늘을 닮아 둥글고, 몸통은 땅을 본떠서 반듯하다.

사람의 얼굴이 둥글고 원만하면 성격이 부드러워 보이고, 얼굴이 각이 지고 방정하면 성격이 강해 보인다.

얼굴은 양인데 양이 강하면 음으로 드러난다.(양극사음陽極似陰)

「동의보감」은 황제내경 영추의 내용을 인용하여 “면위제양지회面爲諸陽之會”라 하여 얼굴은 인체의 모든 양맥이 만나는 곳이라 하였다.

양기가 강한 양인은 얼굴에 양기가 과하게 모인다. 그래서 얼굴이 방정하고 성격이 강하고 급하다.

반대로 음기가 강한 음인은 음기가 모이는 곳인 배나 엉덩이가 커지고 둥글게 된다.(음극사양陰極似陽)

음인은 얼굴은 둥글고 성격은 부드러운 편이지만 배나 엉덩이가 나오기 쉽다.

 

주) 제양지회諸陽之會
뇌는 몸무게의 2.5%에 불과하지만 뇌에 흐르는 혈액양은 전체의 20%에 이른다.

이렇게 막대한 혈액이 흐르는 이유는 충분한 에너지와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서다.

대개 사람은 음식을 먹지 않고 며칠을 지낼 수 있지만, 뇌는 혈액공급이 4~5분만 중단되어도 영구적으로 손상될 수 있다.

뇌는 우리 몸의 에너지와 산소를 가장 많이 소모하는 곳이다.

사상四象에 대한 보충설명
음양은 항상 중을 전제로 한다.

음과 양은 다시 음양으로 나누어진다.

상제님께서는 “궐유사상포일극厥有四象抱一極하고 구주운조낙서중九州運祖洛書中이라. 대자연에는 사상이 있어 중앙의 한 지극한 조화기운을 품고 있고 온 세상 운수의 근원은 낙서 속에 들어 있네”(道典 2:145:2)라 하시어 낙서에 나타나는 사상을 말씀하셨고 약은 오행기운에 응한다고 하셨다.

 

대자연은 사상의 모습으로 드러나는데 태양, 소음, 소양, 태음의 4가지이다.

태양지위와 소양지위는 4정방에 위치하여 강하고 뻗어나가는 기운이 강하다.

태음지위와 소음지위는 4유위와 4상위에 위치하여 뻗어 나가는 陽의 기운을 얽어매어 형形을 만드는 자리여서 부드러운 기운이 있는 위치다.

인간과 생명은 태소음양의 기운을 타고 태어난다.

양인은 양의 장부인 비장과 폐의 기운이 좋고, 음인은 음의 장부인 간장과 신장의 기운이 강하게 태어난다.

(음陰의 장부는 물질적인 혈血과 정精을 저장하며, 양陽의 장부는 눈에 안보이는 기氣를 저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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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관리 정기관리

힐링이 필요해

건강관리

- 성性의식의 개혁과 정기精氣관리

 

성품[성性]은 삼신의 조화로 저마다 타고나는 것이다.
인간의 몸은 성품을 담고 있는 신령한 그릇과 같다.
우리 몸속의 생명력의 핵심은 정기精氣로서 축장된다.

그래서 정기가 충만하면 인간의 생명력이 충만한 것이다.

정기가 충만한 사람은 밝아진다.

다시 말해 인간의 성은 정기를 보전함으로써 빛을 발하는 것이다.

 

상제님께서는 “죽고 살기는 쉬우니 몸에 있는 정기精氣를 흩으면 죽고 모으면 사느니라.”(道典 10:45:9)고 하셨다.

생사의 도는 몸의 정기관리에 있다는 것이다.

정精의 개념

일반적으로 정이란 신장의 정수精水, 수기를 이르는 말로, 우리 몸의 진액, 생명의 가장 근원이 되는 물질로서 의학적으로는 정자, 난자, 골수, 호르몬 등과 같은 인체의 기본 에너지를 말한다.

정이 충만하면 소화도 잘 되고, 잠도 푹 자며, 몸이 유연하고 건강하여 병에도 안 걸린다.

하지만 정이 파괴되면 모든 것이 어렵다.

이 정이 뇌와 오장육부, 근육과 뼈, 골수 등 인간의 생명을 주관하고 있으며, 모든 병마를 물리치는 저항력(면역력)의 근원적인 동력원이기도 하다.


동양의학에서의 정精

인간은 결국, 정수가 말라가면서 노화현상이 일어나고 모든 병이 생긴다.

그래서 동양의학에서는 정이 천지에서 가장 소중하다고 한다.

정을 잘 간직하고 축적해서, 내 몸 안의 정이 충만해야 모든 병을 이기고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


① 精은 내 몸의 근본이다.
夫精者(부정자)는 身之本也(신진본야)라
(『황제내경黃帝內經』 「소문素問」 ‘금궤진언론金匱眞言論’)


② 精은 米(쌀 미)+靑(푸를 청)으로 쌀과 채소의 뜻이다.
오곡과 채식 등 담박한 음식을 먹어야 정精이 생겨나는 것이지 생선과 육식등 후미厚味에서 정精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③ 精은 오장에서 생겨 신장에 저장된다.
腎者(신자)는 主水(주수)하니 受五臟六腑之精而藏之(수오장육부지정이장지)라
故로 五臟盛이라야 乃能瀉라 (「소문素門」 ‘상고천진론上古天眞論’)
신장은 물을 주장하니 오장육부의 정을 받아 저장한다. 그러므로 오장의 기능이 왕성해야 능히 정을 신장으로 보낼 수 있다. 또는 신장에서 외부로 내보낼 수 있다.


④ 精은 인간에게 있어 생장生長, 발육發育, 생식生殖을 주관한다.
여자가 7수로, 남자가 8수로 변화하는 바탕은 신장 속에 있는 정精에 뿌리를 두고 있다. 치아, 머리털, 뼈, 힘줄, 근육, 형체의 성쇠는 모두 정精의 성쇠와 직접 관련이 있다.


⑤ 精에 생사生死가 매여 있으니 정精이 왕성하면 기氣와 신神도 왕성하며 나의 생명이 견고해진다.
夫精者(부정자)는 乃先天之元精(내선천지원정)이니 爲萬物之母(위만물지모)라
得之則生하고(득지즉생) 失之則死故(실지즉사고)로 精住則氣住(정주즉기주)하고
氣住則神住(기주즉신주)하니
三者旣住(삼자기주)면 我命在我(아명재아)오 不在于天(부재우천)이라
(왕유일王惟一 『도법심전道法心傳』)

 

정은 선천의 원정이니 만물의 어머니가 된다.

이를 얻으면 살고 잃으면 죽기 때문에 정이 머무르면 기가 머무르고 기가 머무르면 신이 머무르니 정기신이 이미 머무르면 나의 목숨이 나에게 있는 것이 되고 하늘에 있지 않게 된다


면역의 근간인 정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미생물과 함께 살고 있다. 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나 세균이 몸에 들어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병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몸이 스스로를 보호하는 다양한 방어방법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스템을 ‘면역’이라고 한다.


①림프구
외부의 병원체가 몸 안으로 들어오면 먼저 식세포, 자연살생세포(natural killer cell), 항미생물 단백질, 염증 등으로 이루어지는 면역반응이 신속하게 일어난다. 여기에 더하여 림프구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면역방어가 있다. 림프구는 외부의 병원체에 특이한 항원을 인지하여 보다 강력한 면역 기능을 나타낸다.

림프구가 항원을 인지하여 일부는 직접 감염된 세포를 죽이고, 일부에서는 항체를 형성하며, 일부의 세포는 기억세포가 되어 장기간 생존한다. 같은 병원체가 다시 몸 안에 들어오면 기억세포의 활성화를 통해 단시간 내에 강력한 면역 반응을 보인다.


②백혈구
백혈구는 면역체계를 구성하는 세포로 감염성 질환 및 외부물질에 대한 방어기능을 수행한다. 백혈구는 호중구, 호산구, 호염기구, 단핵구, 대식세포, 수지상세포, B림프구, T림프구, 자연살상세포로 나눌 수 있다. 백혈구는 골수에 있는 조혈모세포로부터 분화되어 만들어진다. 조혈모세포는 백혈구뿐만 아니라 적혈구, 혈소판으로 분화되기도 한다.


③골수
골수는 혈액의 각종 혈구세포들이 만들어지는 곳으로 생명의 근원이라 할 수 있다. 골수는 ‘뼈 속’인데, 겉질뼈로 둘러싸인 해면뼈 조직들 사이의 조혈공간을 말한다. 유아기에는 대부분의 골수에서 조혈작용이 일어난다. 그러나 소아기부터 긴뼈(장골)의 조혈 부위가 점차 지방으로 채워지고 성인에서는 중심 골격계, 넙다리뼈(대퇴골)과 위팔뼈(상완골)의 전단부(몸쪽에 가까운 부분)에만 조혈골수가 있다.


정기관리와 성욕

양생은 정을 보호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정은 생명활동을 유지하는 기본적인 물질이다.

정을 보호하는 문제와 성욕의 문제는 떼려야 뗄 수 없이 결합되어 있다.

동의보감東醫寶鑑』 「내경內景편」 ‘정문精門’에 “절제하여야 하는데 절제할 줄 모르고 끊어야 하는데 끊지 못하면 생명을 잃게 되니 이는 스스로 화를 불러들이는 격이다.(중략) 성욕이 갑자기 생기더라도 삼가고 억제해야지, 마음을 풀어 놓고 뜻대로 하면 스스로 해를 입게 된다. 한 번 참으면 욕망의 불길이 한 번 꺼지게 되고 기름을 한 번 아낀 셈이 된다. 만약 참지 못하고 욕망에 몸을 맡겨 정을 내보낸다면, 등잔의 불이 꺼지려고 하는데 기름을 없애는 격이니 스스로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중략) 고요히 앉아 있으면 신수腎水가 저절로 올라가고 혼자 살면 색욕이 저절로 끊어진다.”고 하였다.


정의 소모

생각만으로도 감정이 진액을 누설시켜 정이 소모된다고 하였다.

“심心은 군화君火인데 대상에 자극을 받으면 쉽게 움직인다. 심이 움직이면 상화相火도 움직이고 상화가 움직이면 정이 흔들린다. 상화가 일어나면 성교를 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흘러나온다.”고 한 것이다.

 

「내경內景편」 ‘신형문身形門’에 “나를 태어나게 한 행위가 도리어 나의 적이 될 수도 있다.”고 하여 자식을 낳는 부부관계도 경계하였다.

 

그리고 “사람이 몸으로 일을 해서 병이 생기지 않는다. 술을 취하게 마시지 않으면 질병이 생기지 않는다. 생각을 많이 하면 신神이 상하고 희로애락이 심하면 기氣가 많이 상한다.(중략) 봄여름에는 정기를 덜 내보내고 가을겨울에는 성생활을 줄여야 한다.”고 하여 병의 원인은 마음과 정기精氣 누설이라고 하였다.

 

또한 “어리석은 사람들은 입맛대로 맛있는 음식을 지나치게 먹으니 질병이 벌떼처럼 일어나 병에 걸리는 것이다. 그 기미는 아주 미약하지만 입맛이 당기는 대로 지나치게 먹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갑자기 병이 생기게 된다. 입은 병을 불러오고 또한 그대의 덕을 해친다. 술병의 주둥이처럼 입을 막아 놓고 가려 먹어라.”고 하였다.

 

식탐이 재앙이 되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는 기름진 음식을 배불리 먹고 술에 취해서 성생활을 하는 것이다.

손진인은 “술도 불이요, 기름도 불이요, 성교도 불이니 몸이 불구덩이 속에 들어가는 꼴이다.”고 하였다.


정기관리의 양생법

동의보감에서 소개한 손진인의 양생술은 다음과 같다.

“늘 땅에 침을 뱉지 않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왜냐하면 입안의 진액은 금장(金漿 황금처럼 소중한 미음)과 옥례(玉醴 옥처럼 귀한 단술)이다. 하루 종일 침을 뱉지 않고 늘 머금고 있다가 삼키면 사람의 정기가 늘 머물러 얼굴과 눈에서 빛이 난다. 사람의 몸은 진액이 근본이다. 피부에서는 땀이 되고, 살에서는 피가 되며, 신장에서는 정이 되고, 입에서는 침이 되고, 비장에 잠복하면 담이 되고, 눈에는 눈물이 된다. 땀, 피, 눈물, 정액은 나온 뒤에는 돌이킬 수 없지만 오직 침은 돌이킬 수 있다. 돌이키게 되면 낳고 낳는 뜻을 계속 이어갈 수 있다.”(「내경內景편」 ‘진액문津液門’)

 

침이 이렇게 중요할진대 하물며 정이 얼마나 고귀할지 생각해 보아야겠다.

 

“인간의 정精은 대우주 생명의 핵이다!”
‘내가 이 한 말씀을 깨닫기 위해 이제까지 살아왔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것이야말로 후천 5만년 선매숭자 문화, 조화선경 문화를 여는 인간 생명개벽의 제1강령이라 확신했다.

인간 생명을 지속시키는 동력원은 신장의 수기인 ‘정’이다.

우주가 진화해 온 역사의 전 과정이 내 몸의 정에 맺혀 있다.

따라서 정에 대한 순수 생명의식이 올바르고 강렬해야 한다.

‘천지생명의 열매이자 핵인 내 몸을 어떻게 잘 관리해서 대자연과 하나가 되느냐’하는 것이 수행공부와 인생 공부의 핵심과제이다. (『개벽실제상황』 491쪽)

 

모든 생명은 물 속에서 태어난다.

물 속에서 생명의 정수精髓에 신도神道가 감응하여 삼신 조화로 생명이 탄생한다.

인간 생명 탄생의 정수는 수정란이다. 결국 정이 생명의 정수다.

하지만 방송매체와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홍수 속에는 정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정을 발산하는 음란문화가 넘쳐나고 있다.

영성문화가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건강의 핵심은 정을 보호하는 것이다.

태을주는 수기水氣, 즉 정을 저장하는 주문이니 자신감을 생하게 하고 만병을 물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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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증과 숙면

힐링이 필요해


불면증과 숙면

숙면의 부족은 노화를 가속화한다.

숙면은 신체의 자기치유력을 강화시키고, 육체가 쇠약해지지 않도록 도우며, 당신의 몸을 날마다 새롭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

- 디팍 초프라(1947~ )

 

옛말에 ‘잠이 보약이다’는 말이 있다.
이는 잠만 잘 자도 건강의 반은 이룬 셈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요즈음 잠 못 들고 뒤척이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수면질환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불면증 때문에 몸이 쉽게 피로해지고, 맑은 정신을 유지하기가 어려워 육체적, 정신적인 건강이 매우 약해지고 있다고 호소한다.

수면의 중요성과 건강과 숙면의 관계, 올바른 수면 방법 등을 살펴봄으로써 나의 소중한 건강을 지키고 활기찬 생활을 하는 첫걸음인 숙면법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한다.


수면의 중요성

사람이 인생의 3분의 1을 잠자는 데 시간을 소비하는 것에서 말해주듯이 편안하게 수면을 취해야만이 피로가 풀리고 근육과 관절, 척추 뼈 조직이 정상적으로 회복이 되어 이튿날 건강한 정신과 건강한 육체 상태로 활동을 할 수가 있다.

실제로 숙면을 취한 다음 날을 생각해 보면, 그런 날은 일어나자마자 기운이 솟고 정신이 맑으며 활기참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숙면을 취하지 못한 채 하루를 시작한 날은 아침에 일어날 때 피로하고 짜증스러우며, 의욕 또한 없을 것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새벽 3시에 일어나서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의 경우, 면역세포가 24시간 동안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렇듯 편안한 수면은 정신적, 육체적인 건강을 위한 토대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면 중에 일어나는 일들

심리적 안정
꿈을 꾸는 동안 정신건강을 침해하는 정신적 갈등이나 무의식적 원망을 푸는 작용을 한다.

 

기억 저장
수면 중에 여러 가지 실험 결과들을 보면 렘REM(rapid eye movement) 수면은 기억을 장기기억, 단기기억으로 구분해 저장하는 시간이라고 한다. 렘 수면은 ‘꿈을 꾸는 수면 단계’이고, 논렘NREM(non REM) 수면은 ‘꿈을 꾸기 전前 단계’의 수면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꿈을 꾸는 동안 우리의 뇌는 장시간의 기억을 저장하는 중이고 꿈을 꾸지 않고 자는 동안에 단기간의 기억이 저장되는 중이다.

 

신체의 자연 치유력, 면역력 향상
수면은 각 기관의 세포의 회복과 생성을 돕는다.

잘 먹는 것들이 체내에 흡수되게 하고 소화와 흐름을 원활하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잘 자야 한다.

 

성장호르몬 분비
성장 호르몬은 수면에 들어간 지 약 90분 후 렘 수면일 때, 일반적으로 밤 10시~ 오전 2시 사이에 분비된다.

성장호르몬은 뼈와 근육 등의 발육에 관계되므로 아이들의 성장 발육에 영향을 미치지만 어른들에게는 신진대사나 피부의 회복 기능, 피로회복에 꼭 필요한 요소이다.

 

대뇌 회복
눕는 것만으로도 몸을 회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자는 것으로 대뇌를 회복시킬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는 것만이 인간의 전신을 쉬게 할 수 있는 자세인 것이다.

잠은 피로를 회복하고 다음 활동을 위한 에너지를 축적하는 매우 중요한 생명 활동이다.

 

몸의 휴식
수면은 신체의 피로를 풀어준다.

유산乳酸이라는 피로를 느끼게 하는 물질이 근육에 쌓여 처리가 되지 못하면 우리는 피로를 느끼게 된다.

수면 중에는 근육의 긴장도가 크게 떨어져 더 이상 유산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하고 쌓여 있는 유산을 분해한다.


건강과 수면의 관계

미국 UCSD(캘리포니아 대학교 샌디에이고 캠퍼스)의 수면 전문가인 크립키Daniel Kripke 박사가 6년간 무려 11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하루에 6~7시간 수면을 취하는 사람이 가장 오래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8시간 잠을 자는 사람들은 이들보다 수명이 12% 더 짧았고, 9시간 이상 자는 사람들의 수명은 최고 40%나 더 짧았다.

그리고 미국 뉴욕대학의 조사 결과에서도, 학생 중 가장 성적이 좋았던 그룹은 수면시간이 5~6시간으로 짧았다.

이보다 더 잠을 자면 머리나 몸에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 밝혀진 셈이다.

 

수면은 몇 시간 잠자리에 있었느냐보다 얼마나 숙면을 취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수면시간이 아무리 길더라도 피로가 풀려야 신진대사가 왕성해져 두뇌활동도 활발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잠을 지나치게 많이 자면 도리어 능률이 저하된다.

과도한 수면으로 신체 전반의 세포를 지나치게 쉬게 하는 것은 결국 노화로 연결된다.

낮 동안 충분히 소비하지 못한 채 다시 잠을 자면 에너지 과잉에 빠지는 악순환이 거듭된다.

그리고 수면 시간이 짧아지면 교감신경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호르몬의 분비가 좋아져 신진대사가 도리어 촉진되는 효과가 있다.

 


올바른 수면 방법

편안한 수면이란 일단 불을 끄고 쉽게 잠이 들고, 밤새 숙면을 취하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편안한 의식과 함께 매일 밤 적어도 6~8시간 정도의 편안한 수면을 취해야 스트레스 반응을 줄일 수 있다.

 
올바른 숙면을 위한 준비
①몸과 마음을 릴렉스Relax하게 한다
잠을 잘 자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릴렉스한 몸과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출에서 돌아온 후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또는 족욕이나 반신욕을 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몸을 따뜻하게 해주어 혈액순환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숙면을 이루는 데 효과적이라고 한다.

 

그리고 가벼운 스트레칭을 통해 하루 종일 긴장되어 있던 몸의 신경과 관절, 근육 등을 이완시켜 주는 것이 좋다.

그렇지만 스트레칭 정도가 좋지 잠이 오지 않는다고 과격하게 운동을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운동을 격하게 하게 되면 몸에서 엔돌핀이 나와 바로 잠을 이루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부드럽게 스트레칭하고 마음을 다스려 안정감을 주는 게 중요하다.

 

②따뜻한 차나 유유를 마신다
잠이 오지 않을 때 가장 많이 하는 행동은 어떤 것이 있을까?

보통은 따뜻한 차를 마신다. 차를 마시는 것도 사실 몸의 긴장을 풀어주는 한 가지 방법이기 때문이다.

따뜻한 차 중에서는 허브티가 가장 효과적이라 할 수 있다.

 

허브herb에는 신경 안정 효과와 불면증을 해소시키는 물질이 들어 있어서 숙면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경을 안정시키고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세로토닌serotonin을 생성하기 위해 섭취해야 하는 물질이 바로 필수 아미노산의 하나인 트립토판tryptophan이다.

트핍토판은 ‘천연의 수면제’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체내에서 합성되지 않기 때문에 꼭 음식으로 섭취해야 한다.

대표적인 식품이 바로 우유다.

 

③숙면을 방해하는 술과 스마트폰은 삼가야 한다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할 수 있는 최악의 방법은 바로 술이다.

술을 먹고 취하면 잠을 푹 잘 수 있다는 이유로 술을 드시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술은 깊은 잠을 자는데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잠이 들고 난 뒤 알코올이 몸에 흡수되면서 심박동이 빨라지고 혈액은 더욱 빨리 돌게 되므로 숙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잠자리에서는 불필요한 스마트폰 사용을 삼가야 한다.

스마트폰을 보고 있으면 신체 리듬이 바뀐다고 한다.

또한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빛 때문에 뇌가 낮으로 인식해 잠을 쫓아 숙면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숙면을 위해서는 취침 한 시간 전에는 TV, 컴퓨터, 스마트폰 등을 멀리하고 향초를 켜놓고 책을 읽는 것이 숙면에 좋다.

 

④잠을 잘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무엇보다 잠을 잘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방의 빛을 차단하는 것으로 암막커튼이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다.

 

그리고 자면서 많이 움직이는 사람은 왕겨나 메밀이 들어있는 베개를 사용하고, 만약 잘 움직이는 편이 아니라면 목을 고정해줄 수 있도록 라텍스latex나 메모리폼memory foam으로 만든 베개가 좋다.

또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은 땀 흡수가 잘 되고 통풍이 잘 되는 소재의 침구류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잠옷 역시 편하고 부드러운 것이 좋지만, 입고 자는 것 자체가 불편한 사람은 간편한 복장으로 입고 자도 무방하다.

 

수면 베개의 중요성
고침단명高枕短命이라는 말이 있듯이 높은 베개는 건강에 좋지 않다.

왜 그럴까?

베개가 높으면 경추의 정상적인 곡선인 C자형을 이루지 못하고 목 부위가 앞으로 구부정하게 되고 기도 부위가 좁아져 코골이 호흡곤란이 생기고, 목 부위 근육이 굳어져 긴장 상태를 유지하게 돼 숙면을 취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혈액순환에도 좋지 못하며, 심한 경우 목 디스크나 목 관절염을 초래하기도 한다.

 

특히 솜을 넣은 따뜻한 베개는 건강의 기본 원리인 두한족열頭寒足熱이나 수승화강水昇火降의 원리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베개의 가장 이상적인 높이는 의학적으로 6~8cm 정도라고 한다.

요즈음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좋은 수면 베개가 많이 있다. 자신의 체형과 체질에 맞는 맞춤형 베개를 적절히 선택하여 활용한다면, 숙면을 취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불면증, 우울증 방지를 위한 평소의 습관
- 이무석 전남대 정신과 명예교수

●잠잘 때 침실을 완전히 어둡게 한다. (불가피할 경우 안대 착용)
●잠자리는 가급적 바꾸지 아니한다.
●수면 중의 몸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하여 잠옷 등을 입는다.
●잠잘 때의 베개는 낮게 한다. (약 6~8센티)
●필요하면 잠자기 전 가벼운 샤워나 목욕을 한다.
●몸에 무리를 주는 과도한 운동은 삼간다.
●경우에 따라 잠자기 전 우유나 치즈를 먹을 수 있다.
●잠을 자려고 노력하지 마라.
- 누워서 15분 정도 잠들지 아니하면 일어나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다. 그러다가 잠이 오면 침대에 누워 잠든다.
- 이를 3회 반복하여도 잠들지 못하면 평소 하려고 한 일이나 독서를 한다.
●일정한 시각을 기상 시간으로 정하여 이를 지키며 하루 일과 중 낮잠을 10분 이상 자지 아니한다.
●가급적 오후 시간을 이용해 한 시간 정도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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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과 건강

힐링이 필요해

호흡과 건강, 주문 공부
동양의학에서는 생명의 3요소를 정기신精氣神이라 한다.

양생은 생명을 길러 잘사는 것이기에 동양의학적인 측면에서는 정기신을 닦는 것이 양생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정기신을 조절하는 능력이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도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다.

정精을 보호하고, 기氣를 조절하며, 내 마음을 비우고 신神과 하나 되는 것이 양생이라 할 수 있다.

병을 고친다는 것은 정기신을 닦아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치병은 도를 닦는 행위로 보아야 한다.

유교의 수양, 불교의 수행, 도교의 수련이 양생이다.

양생의 도는 수행으로 이어진다.

호흡

호흡은 인간 생명에서 가장 신비롭고 경이로운 현상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인간은 엄마 배 속에서 나와서부터 숨을 고르게 쉬지 못하고 있다.

욕망이 차면 숨결이 가빠진다. 여기서 모든 병이 일어나는 것이다.

 

호흡을 잘 조절해서 호흡의 길이가 길어지고 고르게 되면 즉각 마음에 영향을 준다.

마음이 평안해지고 자신감이 생기고 사물을 바르게 보고 주변에 있는 환경에 쉽게 하나가 된다.

반대로 호흡이 짧아지면 의식이 어지러워지고 자신감이 결여되고 환경에 기운을 빼앗겨 버린다.

주인 노릇을 못하고 노예 신세로 전락한다.

 

황제내경에 “모든 병은 기에서 생긴다. 성내면 기가 거슬러 오르고, 기뻐하면 기가 느슨해지고, 슬퍼하면 기가 사그러지고, 두려워하면 기가 내려가고, 추우면 기가 수렴되고, 열이 나면 기가 빠져나가며, 놀라면 기가 어지러워지고, 피로하면 기가 소모되고, 생각을 하면 기가 맺힌다”고 하였다.

 

기를 움직이는 것은 감정의 오르내림과 몸의 에너지를 돌리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모두 호흡작용과 연결된다.

숨을 내쉬어 기를 내보내는 것은 양陽이 열리는 것이고, 숨을 들이마셔 기를 들여보내는 것은 음陰이 닫히는 것이다.

숨을 내쉬는 것은 양의 장부인 심장과 폐가 주관하고, 숨을 들이마시는 것은 음의 장부인 간장과 신장이 주관한다.

 

양생의 도는 장부의 균형을 이루는 데 있다.

우리는 호흡을 통해 생명을 영위한다.

당연히 좋은 공기를 마셔야 하고 아울러 호흡을 주관하는 장부인 폐의 기능이 좋아야 한다.

 

하지만 호흡의 작용에는 외부의 기 못지않게 감정의 흐름도 크게 관여한다.

감정이 격해진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호흡이 가빠진다는 것이고, 그때 기가 소모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기가 막힌다, 기도 안 찬다, 기분이 묘하다와 같은 일상적인 표현이 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래서 감정이 조절되지 않으면 기의 손실을 피할 수 없다. 특히 숨을 들이마시는 데 작용하는 간이 열을 받으면 기가 빠져나가 손실이 막강하여 절로 한숨이 나온다.

살다 보면 수양, 수련, 수행은 당연히 필요해진다.

스스로 기를 조절하는 주체가 되어 양생을 해야 한다.

 

「동의보감」 ‘내경’
“질병을 치료하려면 먼저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먼저 마음을 바르게 해야만 도에 의지할 수 있다.

병자로 하여금 마음속에 있는 의심과 생각들, 모든 망념과 불평, 차별심을 없애고 평소 자신이 저질렀던 잘못을 깨닫게 하면, 몸과 마음을 비우고 자기의 세계와 사물의 세계를 일치시킬 수 있다.

이 상태가 지속되어 마침내 신神이 모이게 되면 저절로 마음이 편안해지고 성정이 화평하게 된다... 확실히 알아 한순간에 모든 것이 풀리게 되면 마음이 저절로 깨끗해지고 질병은 저절로 낫게 된다.

이와 같으면 약을 먹기도 전에 질병은 사라진다. 이것이 도를 가지고 마음을 다스려 질병을 치료하는 진인의 큰 법이다... 형形을 단련하는 묘미는 신神을 모으는데 있다.

신이 모이면 기가 모이고 기가 모이면 단丹이 만들어지고 단이 만들어지면 형이 단단해지고 형이 단단해지면 신이 보전된다.”

호흡법

먼저 숨을 들이쉴 때는 혀를 입천장에 가볍게 갖다 대고, 코로 서서히 들이마시며 배꼽 부위가 불룩해지도록 해야 한다.

단전의 반대쪽, 꼬리뼈 위에 있는 명문에서 숨이 들어온다고 생각하고 아랫배가 불룩 나오게 숨을 들이쉬면서 숨결이 들어오는 순간을 계속 마음의 눈, 즉 의식으로 지켜보며 느끼도록 한다.

생명이 넘치고 당당하게 호흡을 하되, 배꼽 부위가 힘이 들어가고 긴장이 생기면 자칫 상기되어서 어지럽거나 두통이 생기는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으니 이 점만 유의하면 된다.

 

숨을 내쉴 때는 단전에서 명문으로 숨이 나간다고 생각하고, 마찬가지로 숨이 빠져나가는 찰나의 순간도 놓치지 말고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

내쉴 때에는 힘을 주어 아랫배가 들어가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마치 자신이 죽어서 시체가 되었다고 생각하거나 숨이 넘어간 듯한 느낌으로 이완이 될수록, 깊고 자연스러운 호흡이 나온다.


[종도사님 말씀명상] 마음을 다스리는 법
현실적으로 내 마음은 호흡작용에서 즉각 영향을 받는다.

마음이 산란하고 생각이 번잡스러울 때, 하단전에서 고르게 호흡해 보라.

원래 내 생명의 근원인 하단전, 내 생명의 진액인 정의 뿌리인 양쪽 신장, 여기서 기가 발동한다.

이를 신간동기腎間動氣라고 한다.

내 생명의 근원이 발동하는 단전에다 대고 호흡을 하면 본래의 성性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모든 만물과 여여如如하고, 밝고, 하나가 되고, 일심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마음을 통제하는 것이다.

호흡은 생명 현상의 비밀을 풀어내는 중요한 열쇠다.

의식이 가는 곳에 호흡이 가고 호흡이 가는 곳에 기혈이 몰린다.

특히 배꼽에서 세치 아래에 있는 단전은 생명의 중심이며 정기의 근원처로 호흡을 일정하게만 유지해도 단전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주문 공부

주문 공부란 무엇인가
수행은 우주의 근원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 우주 본래의 소리를 듣고 보는 것이다.

우주 근원의 소리를 듣고 본 사람들이 그 소리를 언어로 옮겨 놓은 것이 주문이다.

상제님께서 내려준 주문은 상제님의 도권과 신권이 그대로 형상화되어 있다.

특히 태을주는 신의 소리로서 상제님의 노래이자 천지 성령의 음악이다.

주문 공부는 믿음을 가지고 소리를 내어 주문을 읽는 것이다.

 

「동의보감」에서는 소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심장은 소리의 주인이고, 폐는 소리의 문이며, 신장은 소리의 뿌리이다. 노래를 주관하는 장부는 비장이다”

오장이 모두 소리와 연관되어 있다.

소리는 내 몸의 상태를 알려주는 중요한 지표이다. 신

장에 정이 충만하지 않으면 목소리가 위로 올라오지 못하고 기어들어가게 된다.

소리는 마음과 장부의 상태를 알 수 있게 한다.

 

“금의 소리는 울리고, 토의 소리는 탁하며, 목의 소리는 길고, 수의 소리는 맑으며, 화의 소리는 메마르다.

토의 소리는 깊은 독 속에서 말하는 소리와 같다. 또 습이 성하면 목소리가 독 속에서 나오는 것과 같고, 물속에 있는 것처럼 습하다.

간병에는 목소리가 슬프고, 폐병에는 급하며, 심병에는 굳세고, 비병에는 느리며, 신병에는 목소리가 가라앉는다.

대장병에는 목소리가 길고, 소장병에는 짧다. 위병에는 빠르고, 담병에는 맑으며, 방광병에는 목소리가 약하다.”

 

소리는 장부의 신을 반영한다.
상제님께서는 주문 소리에 신이 감응한다고 하셨다.

성도들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들의 속마음이 곧 성聲이니 주문을 읽을 때는 그 소리를 중히 여기라.” 하시니라. 성도들에게 주문을 읽게 하실 때는 항상 “음절과 고저장단을 맞추어 읽으라.” 하시고 여러 성도들의 주문 소리를 일치하게 하시며 이르시기를 “주문을 읽을 때 소리가 맞지 않으면 신명神明들이 불쾌하게 여기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8:64)

 

종도사님께서는 “소리는 생명의 근원, 우주의 창조의 근원이다. 모든 만물의 창조의 근원이 소리다.

인간이 가장 즉각적으로 강력하게 감동받는 것이 바로 소리의 세계다.

시각적인 것보다 청각적인 것이 우리 몸의 건강과 생명에 더 강한 영향을 준다.”고 하셨다.

 

양생의 결론은 神을 모으는 것인데 그 답은 소리의 정수인 주문 공부에 있다.

양생은 생명의 근원인 정기신을 닦는 것이다.

오늘은 기를 조절하는 호흡과 신과 하나되는 주문 공부의 대강을 살펴보았다.


주문 읽는 법
1. 오직 주문에만 집중하여 단순하게 읽으라
주문 자체만 읽으면 된다.

피곤하면 묵송으로 입술만 들먹들먹하면서 머릿속에 있는 의식이 태을주 자체가 되게 읽으면 된다.

그리고 의식은 하단전으로 가져가서 읽는다.

 

2. 속눈을 뜨고 겉눈을 감아라
눈을 감으면 잡념이 생기고 혼몽에 빠지기 쉽다.

눈을 감지 말고, 상제님께서 호연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속눈을 뜨고 겉눈을 감아야 한다.

눈을 지그시 감는 것이며, 아주 살포시 뜨는 것이다.

깨어 있는 것(awakening mind)이 중요하다.


[종도사님 말씀명상] 바른 주문수행
주문을 깨어서 읽으면 기운이 맑아오는 것을 그대로 보고, 또 뭐가 보여도 자연스럽게 보게 된다.

그걸 보려고 빠지지도 않고 안 보려고도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라. 눈을 완전히 꽉 감고 읽지 말아야 한다.

겉눈은 이렇게 감되 속눈을 살짝 뜨는 거다.

그리고 어떤 구체적인 생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천지의 큰 뜻(意)을 품고 있어야 한다.

우주 만유의 모든 생명계를 품고 있어야 한다. 그게 일심의 한 생각이다.

순수의 생각. 어떤 생각이 그려지지 않는 바로 그런 마음으로 주문을 읽고 잡념이 생길수록 주문을 깨어서 읽으면 된다.

각성해서 또박또박 읽는다.

주문 읽으며 수도할 때는 의식을 머리에 두지 말고 하단전에 두고 호흡하라.

내 생명의 근원처인 하단전의 호흡과 의식이 하나로 어우러져야 한다.

배가 오르고 내리는 호흡의 리듬을 지속적으로 느껴라. 그러면, 순간 저 파도치는 것 같은 생각의 일어남이 없어진다.

순간적으로 그 현상이 멎으면서 평안함이 오는 것이다. 가을하늘처럼 정신이 맑아진다.

그래서 자꾸 수도를 하고 싶어 한다. 기분이 좋다.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걸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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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을 읽고-이덕일

진실의 역사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을 읽고 - 이덕일

사마천 사기의 기자조선에 대한 기록을 보자.
封箕子於朝鮮 而不臣也 봉기자어조선 이불신야

 

《사마천 [송미자세가宋薇子世家]》 사기에는 기자를 조선에 봉했으나 신하로 삼지는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은나라도 동이족 나라이거니와  중화사대주의자들인 유학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사미천 사기에는 고조선은 중국의 은나라에서 봉한 제후국이 아니었음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중국 은나라의 제후인 기자가 평양에 조선을 건국했다는 기자조선설은 허구인 것이다.

더구나 지금의 북한 평양이 기자조선의 도읍도 아니다.

(사실은 기자를 봉한 사실이 없는 것이다. 제후국으로 봉하면 신하는 당연한 것인데 신하로 삼지못했다고 앞뒤가 안맞는 기록을 하고 있다.)

 

樂浪郡-武帝元封三年開.莽曰樂鮮 屬幽州(漢書 地理志)
낙랑군-무제원봉삼년개.망왈낙선, 속유주
☞낙랑군은 무제원봉 3년에 열었는데 낙선군이라 말하였고 유주에 속하였다.(유주는 현재 북경이다.)

 

高麗治平壤城,本漢樂浪郡王險城,卽古朝鮮也(括理志)
고려치평양성 본한낙랑군왕험성 즉고조선야
高麗治平壤城,本漢樂浪郡王險城,卽古朝鮮也,時朝鮮王滿據之也(사기정의)
고려치평양성,본한낙랑군왕험성, 즉고조선야,시조선왕만거지야
☞고려치소인 평양성은 본래 한나라 낙랑군 왕험성인데 곧 고조선의 땅이다.

 

樂浪郡故朝鮮國也 在療東(후한서 광무제본기)
☞낙랑군은 옛조선국인데 요동에 있다.

 

療東君 秦置 屬幽州요동군진치 속유주(한서지리지)
☞요동군은 진나라때 설치되었고 유주에 속한다.

 

王險城在樂浪郡 浿水之東,此自是險瀆也(한서 지리지)
☞왕험성은 낙랑군에 있는데 패수의 동쪽이다. 이것이 험독이다.

 

王險城在樂廊君浿水之東왕험성재낙랑군패수지동(사기조선열전)
☞왕험성은 요동군에 있는데 패수의 동쪽이다.

 

應召注 地理志療東險瀆縣 朝鮮王舊都응소주 지리지 요동험독현 조선왕구도(응소주 사기조선열전 주석)
☞후한말기에서 삼국시대 초기 때 인물인 응소는 험독현에 주석을 달면서.

지리지를 인용해서, “요동 험독현은 조선왕의 옛 도읍지다”라고 했다.

즉 위만조선의 수도인 왕험성은 창려현에 있었고 패수의 동쪽이며 왕험성의 서쪽에 패수가 흘렀다는 뜻이다.

낙랑군 수성현에 있던 창려현의 서쪽을 흐르는 험한 강은 지금의 난하다.

곧 지금의 난하가 패수가 되는 것이고 이 강이 고조선과 한나라의 국경이었다.

 

☞환단고기에서는 삼신일체의 원리에 의해 삼조선체제로 국가를 운영했는데 바로 번조선의 수도가 왕험성(험독)이다.

결코 지금의 평양이 아니다. 중국 사서에도 이를 명확하게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강단사학자들은 고조선을 마치 족장 시대로 기술하고 위만이 조선을 침탈하며 철기문명이 전해져서 조선이 크게 번창한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集解徐廣曰,昌黎有險瀆縣也(사기 조선열전)
집해서광왈 창려유험독현야(사기집해주석)
☞서광이 말하길, 창려에 혐독현이 있었다.

 

浿水療東塞外패수요동새외(사기 조선열전)
☞패수는 요동의 새외에서 나온다.

 

長岑縣屬樂浪君 其地在療東장잠현속낙랑군 기지재요동(후한서 최인열전)
☞장잠현은 낙랑군에 속했는데 그 땅은 요동에 있다.

 

長城所太康地理志云 樂浪遂城縣有碣石山 起태강지리지운 낙랑수성현유갈석산 장성소기(史記 夏本記)
☞태강지리지에는 낙랑군 수성현에는 갈석산이 있는데 만리장성의 기점이다.

 

遂城,秦築長城之所起也수성 진축장성지소기야(晉書 지리지 낙랑군)
☞수성현은 진나라에서 쌓은 장성이 시작되는 곳이다.

 

水經注,絫縣碣石山 枕海有大石如柱形 世名天橋 絫縣古城 在昌驪縣西南(大東地志 방여총지)

수경주 류현갈석산 침해유대석여주형 세명천교 류현고성 재창려현서남
☞수경주에는 류현 갈석산은 바다에 기둥처럼서있는데 세상에서는 천교라한다. 류현은 고성인데 지금은 창려현 서남쪽에 있다.

 

遂城舊曰武遂 後魏置南營州,准營州置五君十一縣:龍城,廣興,定荒,屬昌黎君(수서 지리지)

수성구왈무수 후위치남영주.준영주치오군십일현;용성,광흥,정황,속창려군
☞수성현은 옛날에는 무수로 불렸다. 후위에 와서 남영주로 행정개편 되고 영주는 5군11현을 두었다. 용성,광흥,정황현은 창려군에 속한다.

 

正義 括地志云 “易州遂城 戰國時武遂城也.方城故在幽州固安縣南十七里(史記 趙世家)

정의 괄지지운 역주수성 전국시무수성야. 방성고재유주고안현남십칠리
☞괄지지에는 이주 수성현은 전국시대의 무수성이다. 그 성의 위치는 옛 유주 고안현 남쪽 십칠리에 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명확하게 명증하고 있는 책이 『환단고기』이다.

일본은 일제치하에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의도적으로 남긴다.

그 이유는 삼국사기는 신라입장에서 기술되면서 오히려 고구려를 당에 대항한 교오불손한 나라로 기술하고 연개소문을 왕을 시해한 패륜영웅으로 그렸다.

사대주의에 입각해 쓰여진 이 책은 대진국에 대한 기록을 의도적 삭제했다.

김부식이 경주김씨로 우리의 북방사를 절단해 버린 것이다.

왜 신채호가 묘청의 난을 일천년 역사의 가장 큰 사건이라 했는지 알아야 한다.

강력한 국풍과 다물사상을 지녔던 묘청이 패하면서 우리의 역사는 수렁으로 빠져들어 스스로 사대주의의 종이 되는 것을 기쁘게 여겼다.

 

삼국사기는 말 그대로 고구려, 백제, 신라에 대한 기록이지 우리의 고대사 기록이 아니다.

삼국유사 또한 불교적 견해로 기술했고 신화적 요소로 처리된 부분이 많다.

이로 인해 일제는 우리역사 왜곡의 기반을 조성할 수 있었다.

오히려 삼국유사의 미진한 기록을 명확히 밝힌 책이 『환단고기』이다.

 

우리나라는 외래종교와 사상이 들어오면 그들의 시각으로 우리 역사를 기술했다.

지금은 기독교에 의해 우리의 고대사는 철저히 신화로 치부되고 있다.

이스라엘 역사보다 훨씬 더 오랜 우리 역사적 사실이 문헌고증과 유물을 통해 확연히 밝혀졌는데도 역사적 사실과는 관계없이 믿음이란 명목하에 독선과 고집으로 역사적 사실조차 부정하고 있다.

자신의 역사는 어두워도 이스라엘 역사는 줄줄 외우는 현실이다.

 

뿌리를 잃은 민족이 얼마나 번성할 것인가.

신채호는 그것을 심각하게 지적하고 있다.

"조선 사람은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무슨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한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 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하는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도덕과 주의는 없다.

아! 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냐. 특색이라면 특색이나 노예의 특색이다.
나는 조선의 도덕과 조선의 주의를 위하여 곡하려 한다."

일찍이 단재 신채호 선생은 외래종교,외 래사상에 물들어 우리 역사와 문화를 부정하는 사대주의를 이렇게 개탄했다.  
 
(신채호의 묘청에 대한 역사적 시각)
오랜 기간 반란의 수괴로 이미지가 각인되었던 묘청이 역사상 중요한 인물로 화려하게 부활하게 된 것은 민족주의 사학자 신채호에 의해서였다.

 

신채호는 망명지에서 쓴 [조선역사상 1천 년래 제1대 사건]에서 아래와 같이 평가했다.

“서경 전투에서 양편 병력이 서로 수만 명에 지나지 않고 전투의 기간이 2년도 안되지만, 그 결과가 조선사회에 끼친 영향은 고구려의 후예요, 북방의 대국인 발해 멸망보다도 몇 갑절이나 더한 사건이니 대개 고려에서 이조에 이르는 1천 년 사이에 이 사건보다 더 중요한 사건이 없을 것이다.

역대의 사가들이 다만 왕의 군대가 반란의 무리를 친 싸움 정도로 알았을 뿐이었으나 이는 근시안적 관찰이다.

그 실상은 낭불양가 대 유가의 싸움이며, 국풍파 대 한학파의 싸움이며, 독립당 대 사대당의 싸움이며, 진취사상 대 보수사상의 싸움이니, 묘청은 곧 전자의 대표요, 김부식은 곧 후자의 대표였던 것이다.

이 전투에서 묘청이 패하고 김부식이 승리하여 조선역사가 사대적 보수적 속박적 사상, 즉 유교사상에 정복되고 말았거니와 만일 이와 반대로 묘청이 승리했다면 독립적 진취적 방면으로 나아갔을 것이니, 이 사건을 어찌 1천 년래 조선사가 제1대 사건이라 하지 않으랴.”

예수는 없다를 읽고②

진실의 역사

『예수는 없다』를 읽고②


이 책은 도발적인 제목과는 달리 예수의 진정한 가르침에 접근 하고자 하는 책이다.

율법주의적 믿음이란 무엇인가? 모든 것을 순종, 불순종으로 따지는 것이다.

이런 식의 믿음을 가지면 내가 충실한 신앙인이냐 아니냐 하는 것을 순종, 불순종의 잣대로 잴 뿐 아니라 신앙마저 같은 잣대로 재게 된다.

 

조건부적, 이기적 신앙자세란 어떤 것인가?
하나님을 믿지 않은 사람보다 하나님을 믿는 자기들에게 복을 만 배나 더하셔서 하나님의 영광과 축복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와 능력에 찬송을 드린다. 과연 이런 생각은 온당한 것인가?

주님의 뜻이 강자가 되고 부자가 되는 것인가?

예수님의 기도를 보자. “내 뜻대로 마옵시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즉 예수님의 경우처럼 ‘내 뜻을 완전히 비움’이 가능 할 때 비로소 우리에게 성령이 사역한다.

그런데 대개 기도를 할 때 아뢸 것만 죽 나열하고 아멘하는 일방통행식 기도를 한다. 하나님의 뜻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

문제는 이런 신앙태도가 대인관계에서 나타날 때의 문제이다.
만사가 하나님의 뜻이라며 증오심과 공격과 싸움을 정당화하고 미화한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뜻을 등에 업고 나오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결국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내 뜻’을 하나님의 뜻, 주님의 뜻으로 여기며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이다. 내 뜻을 하나님의 뜻으로 여긴다는 것은 결국 나를 하나님 자리에 앉힌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곧 내가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뜻, 주님의 뜻을 업고 나오는 사람들끼리의 싸움은 스스로 하나님이 된 ‘신들의 전쟁’이 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돌이나 나무로 새겨진 우상에게 절하는 것을 두고 우상숭배라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모든 것에서 상대적인 나를 절대자의 위치로 끌어올리는 ‘자기 우상숭배’가 얼마나 더 엄청나고 무서운 것인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닌 내식대로 이해한 하나님의 뜻이란 사실을 분명히 깨달을 필요가 있다.

내가 내리는 결단은 불완전한 결단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절대적인 것으로 고집하지 말아야한다.

 

하나님의 뜻이란 진정으로 마음을 비우고 조용히 기다리는 일을 떠나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무엇이다.

이렇게 얻어진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겨지는 무엇이 있다면 그것을 남을 공격하기 위한 근거로 사용하지 말고 우선 나 자신에게 적용하여 스스로를 더욱 깊이 살피는 일에 써야할 것이다.

하나님의 뜻 대문에 싸우는 일보다는 하나님의 뜻 때문에 내가 죽고 우리사이에 평화가 깃들이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하나님의 뜻 아닌가?

무엇보다도 내 뜻을 함부로 하나님의 뜻이라 주장함으로 나도 모르게 나 스스로를 우상화 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성서무오설과 영자축감설은 영원한 진리임을 뒷받침하는 확고부동한 설인가.

 

미국에서 종교학을 가르치고 있는 마커스 보그란 신학자가 펴낸 『우리가 모르던 하나님』이란 저서에서 보그는 자신이 신관이 정립되는 과정을 말하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이 주신 계시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문화적 산물이라는 것을 고백한다.

즉 하나님이 직접 들려주신 말씀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나 초기 기독교인이 자 들대로 이해한 바를 적어놓은 것이란 말이다.

 

또한 신적 예수가 아닌 ‘역사적 예수“이다.

예수님은 처녀에게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

예수님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아들이라 했다는 것.

세상의 죄를 위해 죽는다는 생각도 하지 않고 죽었다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과 기독교만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기독교의 주장에 동의 할수 없음을 발견한다.

전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어느 한가지 종교만을 택해서 그 종교에서만 자기를 알게 하고 다른 종교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몇천년간 암흑속에 방치하셨다는 것은 비상식적인 논리이다.

그러면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 오기전 그러면 구원받은 자가 한사람도 없었다는 얘기다.

보그는 새롭게 신관에 눈을 뜬다. 즉 신의 초월적 존재와 내재적 존재이다.

 

현재는 성서 고고학과 문헌 비교종교학의 발전으로 예수도 결혼을 하였음이 분명해졌다.

예수님을 이야기 할 때 명심해야할 아주 중요한 사실이 있다.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와 구별하는 일이다.

최근 신학계의 동향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보다는 ‘예수님의 믿음’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한다.

4대 복음서는 역사적 기록이기 보다는 믿음의 기록이다. 객관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쓴 역사문헌이 아니라 ‘신앙고백서’이다.

상당수 신학자들은 기독교의 역사적 비극중 하나가 예수의 가르침 보다 예수님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이 더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게 된 것이라고 본다.
신학자가 역사적 예수를 중요시 하고 그 역사적 예수를 찾는데 심혈을 기울이는 일은 훌륭한 일이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셨는가 하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데 까지는 알아보고 그의 삶과 행동과 가르치심과 죽음에서 오늘 우릭 살아가는데 필요한 사표를 찾는 것이다.

 

예수탄생에 대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기록은 다르다.

대개 동정녀 탄생설은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동서양의 보편적 현상이다.

고대 영웅 신화에서도 영웅의 위대함을 묘사하기 위해서 보편적 사실을 신화적 묘사로 기록을 하였다.

예수님이 동정녀 탄생을 했기 때문에 위대한 분이 아니라 위대한 분이었기 때문에 동정녀 탄생이 정설이 된 것이다.

동정녀 탄생 사건이 신의 아들임을 입증하는 것이라 한다면, 바빌론 왕이나 이집트 희랍 신화에 나오는 영웅이나 로마의 신이 예수님과 동격으로 취급되어야 할 것이다.

부처님도 성관계 없이 옆꾸리에서 나오고 물위를 걷고 적은 음식으로 군중을 먹이는 기적을 행한다.

마태는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왕으로 구성된 족보를 열거한다.

누가는 고통 받는 이스라엘의 선지자임을 강조하기 위해 이스라엘 선지자로 구성된 족보를 만든다.

성령 잉태라면 족보가 무슨 의미를 가진단 말인가!

 

마태복음을 보면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마1:23)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히브리어 원문에는 처녀를 ‘알마’(almah)로 기록하고 있다.

almah는 ‘젊은 여자’란 뜻이다. 결혼을 안한 처녀란 뜻이 아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어인 히랍어 번역과정에서 파르테노스(parthenos)라고 오역을 하였다. parthenos는 처녀란 뜻이다.

 

희랍사상에 영향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히랍 고대 신화에 나오는 신처럼 신의 아들로 믿기 원했다.

그들의 소원에 따라 예수도 다른 신들처럼 처녀 탄생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실 기독교인은 하나님을 위하고 예수님을 위해서이지 교회의 교리를 위해 목숨을 거는 게 아니다.

 

예수님을 ‘만유의 주(pantocator,World Ruler)로 보는 것은 로마황제 콘스탄틴 시대에 생겨났다.

삼위일체설도 이때에 정립되었다. 예수는 신의 아들이 된다.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론이 정립된다.

아직도 삼위일체론은 완성된 이론이 아니다.

동방정교에서는 성령이 오직 성부에게서만 나온다고 한다.

카톨릭과 개신교에선 아들에게서도 성령이 나온다고 보고 있다.

 

이제 인류는 숱한 종교전과 문화충돌을 겪은 진통과정을 넘어 성숙된 신관과 종교관이 필요하다.

이제 신학적 변화를 요약하면 배타주의에서 포용주의를 넘어 다원주의에 귀착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교회의 성공을 교인의 머리수로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초등학교 학생 수가 대학원 학생 수보다 많다고 하여 초등학교가 대학원보다 성공적이고 훌륭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성숙된 신앙인으로서의 독립적 사고, 독립적 믿음을 갖도록 해주는 것이어야 한다.

 

절대적인 확신과 독단은 무지한 자의 특권이다. 우리만 진리를 알고 우리 교회만 진리 교회라는 그 착각과 오만은 무지하고 무식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누릴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특권이다.

인류는 어떤 분야에 종사하든 모두 진리를 찾아 떠나는 구도자이다.

다양한 종교와 문화를 제국주의적으로 생각하여 자신의 걸림돌이라 보아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는 ‘길벗’이라 생각하고 서로의 의견에 성실하게 귀 기울이는 성숙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

 

포스트 모던시대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다원주의적(多元主義的)시각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무엇이나 자기만, 자기 것만 옳고, 그것만 판을 쳐야 한다는 생각이 얼마나 치졸한 착각 이었던가 하는 것을 자각하고, 자기와 다른 여러 견해, 여러 주장의 상대적 타당성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이런 다원주의적 시각으로 특정 지어지는 세상에서는 어느 한 가지가 절대적으로 옳기 때문에 그것이 다른 모든 것 위에 군림하고 지배해야 한다고 하는 종래까지의 제국주의적 발상은 설자리가 없어진다.

어느 한나라 문화가 다른 나라나 문화를 지배해야한다는 정치적, 문화적 제국주의는 물론, 어느 한 종교가 다른 종교 위에 군림해야 한다는 ‘종교적 제국주의’도 용납될 수 없다.

 

이광수, 최남선, 김활란, 모윤숙 등이 일제 말기 조선의 젊은이들도 일본제국주의를 위한 성전(聖戰)에 참가할 것을 권했다고 한다.

이들마저도 ‘일본 제국주의의 앞잡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는 현실에 기독교만, 혹은 내 교회만, 유일한 참종교로 떠받들어야 한다는 제국주의적 이데올로기에 신명을 바치라고 ‘자발적’으로 선전하고 다니는 우리 주위의 많은 사람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마태목음에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나온다.

강도에 피흘리는 사람이 쓰러져 있었으나 제사장과  레위인은 다 지나간다.

유대인이 다 멸시하는 사마리아인이 지나가다, 그를 구해준다. 그러면 제사장과 레위인이 누구인가?

그 당시 사회에서 소위 가장 잘 믿노라고 자처하던 정통파 종교인이 아니던가?

오늘날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종교란 그제사장이나 레위인의 종교가 아니다.

모든 중생이 성불하기 전에는 극락을 가지 않겠다는 유마거사 같은 보살과 자비의 실천이다.

마지막으로 유명한 수피의 성녀 리비아의 기도를 느끼면서 올바른 구도자와 종교인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

“오 주님,
제가 주님을 섬김이 지옥의 두려움 때문이라면
저를 지옥에서 불살라 주옵시고,
낙원의 소망 때문이라면
저를 낙원에서 쫓아내 주옵소서.
그러나 그것이 주님만을 위한 것이라면
주님의 영원한 아름다움을 제게서 거두지 마옵소서.”

예수는 없다를 읽고①

진실의 역사

『예수는 없다』를 읽고


이 책은 도발적인 제목과는 달리 예수의 진정한 가르침에 접근 하고자 하는 책이다.
그리스도인 무엇이 문제인가?
첫째, 성경만이 하느님의 유일한 계시로 일점일획의 틀림도 없다는 것.
둘째, 예수만이 유일한 구세주로서 그를 구주로 믿고 받아들여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셋째, 기독교만이 유일한 참 종교로서 세상 사람을 모두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하기위해 선교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
넷째, 우리교회에서 가르치는 신학만 유일한 진리라는 것, 특히 역사 비평적으로 성경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다는 것이다.

 

기독교도 글로벌시대를 맞이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배타주의에서 다원주의로.”
기독교만 유일한 진리요, 오직 예수만이 인류를 구원한다는 생각을 벗어나 모든 종교들을 모든 종교와 구원의 길에 함께 동반자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상하구조에서 평등구조로.”
성경에서 당연시하는 노예제도라든지 남녀차별, 장애자차별 및 일체의 인종차별이나 빈부차별 같은 것이 없는 평등사회를 이루는데 노력해야한다.
셋째, “저 위에 계시는 하나님에서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으로.”
넷째, “교리중심에서 깨달음 중심으로.”
다섯째, “죄 강조에서 사랑 강조로.”
여섯째, “육체부정에서 육체 긍정으로.”
일곱째, “현실 야합에서 예언자적 자세로.”
여덟째, “종말론에서 환경론으로.”
아홉째, “분열에서 연합으로.”
열째, “예수님에 관한 종교에서 예수님의 종교로.”

그러나 아직도 기독교계에는 이웃종교를 종교로 인정하지 않음은 물론이거니와 이러한 옹고집과 독선 때문에 서로 정통파라 주장하는 이들일수록 더욱 사불오열 찢겨 나가고 있다.

성경은 월경을 부정한 것으로 보며 일부다처제를 용인하며 여자는 남자에게 종속되어야 하고 성차별을 인정하고 있다.

 

다음은 창세기를 살펴보자
창세기 1장과 2장은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모순을 가지고 있다.
첫째, 제사문서는 하나님은 엘로힘이고 야훼문서에 나오는 하나님은 야훼다.
엘로힘 하나님과 야훼하나님은 이름만 다른 것이 아니라 각각 천지를 창조하는 방식도 완전히 다르다.

엘로힘 하나님 창세기를 보면 첫째 날 혼돈에서 빛이 생긴다. 둘째 날 하늘이 생기고, 셋째 날 바다와 육지, 그리고 식물. 넷째 날에는 해와 당과 별들을, 제5일에는 물고기과 새들을, 제6일에는 모든 짐승들과 사람을 지으신다. 그리고 7일에는 안식일이다.

 

다음은 야훼 하나님의 창세기를 보자.
삭막하기 그지없는 사망에 야훼가 등장한다. 그러다 땅에서 물이 솟아 땅을 적시자 드디어 창조사업에 착수한다.

손수 흙을 빚어 사람의 모양을 만들고, 코에다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니 생명체로 바뀐다. 그는 아담이다.
그런 다음 사람을 위해 에덴동산을 만든다. 거기에는 선악과도 있었다.

그리고 홀로지내는 것을 좋지 않게 보고 아담의 갈빗대를 취해 이브를 만든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 두 창세기중 어느 것을 정말로 믿어야 하는가이다.

첫째 이야기에서는 5일에 새들을 6일에 짐승들을 만드시고 나서 사람을 만들었다고 했는데, 둘째 이야기는 사람을 먼저 창조하고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여겨 짐승을 지으시고 새를 지으셨다고 한다.

과연 우리는 어느 쪽 순서를 믿어야하는가? 아무리 상징이라 하더라도 식물이 먼저 생기고 해, 달, 별이 생긴다.

 

노아의 홍수는 진실일까.

도끼나 톱 같은 연장도 없던 철기 시대 이전의 그 시기에 그 큰 잣나무를 자르고 운반하고 판자로 제재를 하고 짜 맞추어 그 많은 동물들을 다 싣고도 끄떡없을 정도로 튼튼한 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노아가족 8명이서..

자연사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이미 지구에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종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것들이 다 한 쌍씩 방주에 들어와서 어떻게 여덟 가족과 동물들, 그리고 식성이 각기 다른 그들에게 날마다 먹이를 주었을까, 곰과 호랑이 염소 토끼가 한곳에 얌전하게 동숙을 했을까.

식성도 각각이다. 배안에 이런 식량 저장이 가능한가. 동물들의 배설문은 어떻게 해결했을까?

 

성경은 사실보단 신화로 봄이 마땅하다. 신화를 사실과 역사로 인식하는데서 모순이 일어난다.

한국 기독교인 중 상당수가 단군을 믿지 못하겠다고 한다.

단군이 역사적 인물이 아니고, 단군에 관한 모든 이야기가 한갓 신화에 불과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 누구도 가타부타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기독교인으로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하는 것만은 확실히 지적할 수 있다.

 

현재 기독교 신학자로서 고집불통의 몇몇을 제외하면 기독교인이 그들의 ‘믿음의 조상’이라고 믿고 있는 아브라함이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인물이라 간주하거나 그에 관한 이야기가 실제 사건의 기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브라함은 실제인물 여부를 떠나 그들에게 믿음의 조상이다.

잘못된 신관은 무신론만 못하다.

노자 도덕경에는 “계곡의 신은 죽지 않는다. 그것은 신비의 여인. 여인의 문은 하늘과 땅의 근원, 끊길듯하면서도 이어지고, 써도 써도 다할 줄을 모른다.” 하여 도를 ‘여인’으로 표현하고 있다.

여인의 신비성, 생산성, 개방성, 창조성 등이 남성의 공격성, 진취성, 지배성, 경쟁성보다 도의 본성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왜 남성이어야 하는가.

 

기독교의 하나님 이슬람교의 알라신, 힌두교의 시바신, 중국의 上帝, 한국전래의 하늘님, 등이 별도의 존재가 아니다.

각 종교 문화적 차이로 인해 동일인물이 다른 이름으로 불리워진 것이다.

기독교 하나님이 따로 있고 다른 종교의 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이런 기본적인 사실을 망각하고 기독교인이 섬기는 하나님과 이웃 종교에서 섬기는 절대 신이 생판 다른 신들이라 생각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의도와는 다르게 유일신론이 아닌 다신론 내지 단일신관을 받드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먼저 버려야 할 신관은 부족신관이다.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은 어느 특정 민족과 종교에만 역사하는 분이 아니란 것을 명백히 알아야 한다.

히브리 유대 부족의 민족신관을 글로벌시대에 적용하려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출애굽기를 보면 야훼가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모세를 통해 구출을 계획한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라는 명령을 내리신다. 모세는 이적의 지팡이를 들고 애굽의 왕를 만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 백성을 보내라.” 했으니 놓아 달라고 요구한다.

왕은 일거에 거절한다. 애굽왕은 여호와를 알리가 없다. 그러자 여호와는 열 가지 재앙을 하나씩 내리기 시작한다.

우선 애굽에 있는 모든 물이 피로 바뀌는 재앙이었다.

강의 모든 고기가 죽고 거기서 나오는 악취가 천지를 진동했다. 이어서 개구리, 이,파리,우박,메뚜기,우박, 등등 재앙이 계속 된다.

 

그래도 왕은 이스라엘 박성을 놓아주지 않는다. 드디어 열 번째 재앙이 내린다.

애굽 전역에서 처음난 것들, 처음난 자식, 가축,짐 승이 죽게 되는 재앙이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은 이 재앙에서 제외된다.

그들에게는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발라 놓으면 “개가 그 피를 볼 때 너희를 넘어가리라” 한다. 드

디어 밤이 되자 바로 왕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생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셨다.

성경에는 애굽천지에 사망치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왕은 그날 밤 모세를 불러 애굽사람들이 다 죽게 되었으니 어서 이 땅을 떠나라고 간청을 하는 지경에 이른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요구하면 무엇이나 다 주도록 한다.

그들은 떠나면서 애굽인의 은붙이, 금붙이와 의복을 모두 빼앗아가지고 나온다.

도합 2백만이 넘는 유대민족의 대 탈출기였다. 이들이 애굽에서 나와 홍해에 이른다.

애굽왕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그들을 추격한다. 여기서 그 유명한 홍해의 기적이 일어난다.

모세가 지팡이를 들어 손을 바다위로 내밀자 홍해가 양쪽으로 갈라지는 기적이 일어난다.

이 길로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한가운데를 육지처럼 건넌다.

그 뒤를 쫓던 애굽군대가 바다 가운데 이르렀을 때 물이 다시 합쳐져 그들을 모두 수장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기록은 주변국가 사료와 너무 어긋나서 유대족의 신화나 설화로 봄이 마땅하다.

즉 구약은 인류 보편적 세계사의 가치가 없는 것이다.

단지 유대민족의 여호와일 뿐이다.

그런데도 유대족과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 오히려 출애굽기를 역사로 고집하는 것은 참 아이러니컬하다.

 

현재 고고학의 발굴과 이집트의 사료를 철저히 검증결과 출애굽기에 대한 기록은 언급초차 없고 홍해에 수장되어야할 람세스 2세는 미이라가 발견되어 물에 빠져 죽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성서의 내용은 유대인의 종교적 믿음에 불과한 것이지 실제 역사가 아니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과연 사랑과 자비와 공의의 하나님의 모습이 보이는가?

그동안 이스라엘 백상이 죽도록 고생할 때 야훼는 뭘 하고 있었을까.

꼭 이렇게 무차별한 재앙을 내리며 무고한 사람들을 죽여야만 했는가.

이스라엘에 속했다는 이유 하나로 생명을 구하고 애굽인에 속했다는 이유 한가지만으로 무조건 죽임을 당하도록 하는 이런 극단의 인종차별정책이 도대체 사랑과 공평의 하나님일까?

가나안의 정복의 첫관문 여리고성에서의 대살육과 방화, 아이성에서의 성주민들의 전멸살육, 이스라엘만 좋아하신 하나님이 진정 인류의 하나님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인류의 하나님으로 짙은 가면을 쓰고 둔갑돼 있지는 않는가?

고대 부족사회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신관은 그 당시 교인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인식하였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이런 신관을 21세기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있는가?

 

그 당시 중동 사막을 떠돌던 유목민의 생활과 문화 역사적인 인식은 그들의 신을 그런 식으로 믿고 그 믿는 바를 기록한 것이다.

즉 이스라엘인의 신앙고백의 기록인 것이다.

이스라엘 부족이 가지고 있던 神觀, 그들의 눈에 비친 하나님일 뿐인 것이다.

몇 천 년 전 처절한 생존경쟁의 부족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들은 이런 신을 모시지 않을 수 없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런 신을 모신 것이 아니라 신을 이렇게 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전쟁에 능해야하는 전투 사령관인 것이다.

또한 자신들을 미워하는 부족에 증오의 신이어야 했던 것이다.

예수는 이 부족의 신관을 뛰어넘어 인류 보편적 신관과 사랑과 박애를 선언했기에 세계종교로 부상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제 예수님은 신약에서는 야훼를 거론한 적이 없다.

야훼는 분명히 말하면 이스라엘의 민족신인 것이다.

 

우리가 지금 몇 천 년 전 이스라엘 백성이 가지고 있던 부족신관에 목줄을 매고 살야야 할 필요가 있는가?

진정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을 모시려면 이런 부족 신관을 뛰어 넘지 않고서는 인류공존번영은 불가능하다.

예수님은 이런 부족신관을 거부하고 자비의 하나님을 가르치신 분이다.

이런 부족신인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다. 아니 죽여야만 한다.

만에 하나 기독교에 이런 부족신이 아직도 남아 있다면 그것은 부족신의 망령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인류전체의 역사로 오인해선 안 된다.

불교에서는 “부처를 보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보면 조사를 죽여라 한다.” 그 허상을 깰 때 진리와 하나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비교종교학계의 대가 오강남 교수의 명저들을 소개한다.

기독교 근본주의 무엇이 문제인가?

진실의 역사

기독교 근본주의 무엇이 문제인가?

 

기독교 근본주의는 성경의 무오류, 예수의 신성, 처녀탄생, 대속적 구원, 예수의 육체적 부활과 재림 등 다섯 가지를 핵심 교리로 삼고 있다.

여기에서 벗어난 개인이나 집단 종교에 대해 관용은 없다.

같은 기독교에 뿌리를 둔 카톨릭과 동방정교, 개신교 계통의 신흥 종파에도 적대적이다.

세계분쟁에는 꼭 근본주의가 관여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근본주의자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이들의 신념과는 다르다는 것이 종교학자들의 주장이다.

중동전쟁도 이슬람 근본주의자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충돌로 본다.

기독교 근본주의는 정통적 개신교의 신앙을 수정하거나 성경의 무오류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모든 자유주의적 시도에 저항을 한다.

한국개신교는 미국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근본주의 까지 받아 들였다.

자기 종파만이 참기독교이고 자기 종교만이 참종교라고 본다.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현상이다.

기독교는 생래적으로 ‘열린 종교’이다.

유대교는 율법과 종교의식에 집착하는 ‘닫힌 종교’였기에 세계종교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요즘 기독교는 어떤가. 자신을 처음 핍박했던 ‘닫힌 종교’들을 닮아가고 있고 자신을 핍박한 자들보다 더 철저하게 다른 종교나 신앙 체계를 거부하고 있다.

예수는 부패한 종교적 현실과 맞서 싸우며 가난하고 억눌린 자의 편에 섰다. 종교적 위선을 철저히 거부했다.

예수는 예루살렘에 입성한 후 예루살렘 성전의 정화에 나선다.(마가복음11장)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성전을 이용해 자기 이익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들을 보고 “너희들이 성전을 강도의 굴로 만들었다”, “이런 성전은 헐어 버려야한다”고 분노했다.

오늘날 한국기독교는 이 말씀을 깊이 계고해 봐야한다.

근본주의자는 남과 타협할 줄 모르고 자기 고집만 내세운다.

자기주장과 다른 사람을 적대시하고 자신들의 뜻을 펴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그만큼 근본주의가 가져오는 폐단은 크다.

예수가 전하고자 한 복음의 원형, 즉 예수의 삶과 정신으로 돌아가지 않고서는 기독교가 우리사회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회복하는 길은 요원하다. 왜 개독교라 하겠는가? 스스로 자처한 부분이 크다. 기독교가 가장 비판을 받는 것은 독선과 배타성이다.

한국기독교의 우리 전통문화와 종교에 대해 가졌던 배타주의, 정복주의, 우월주의를 얼마나 성숙하게 극복하느냐에 달려있다.

한신대 김경재 교수 말을 들어보자.

“한국 기독교의 전통문화 및 전통 종교에 대한 배타적 태도나 정복주의적 입장은 오늘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독선, 무지, 폭력, 반사회성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기독교가 한국 문화와 전통종교에 대하여 열린 개방성을 가지고 상호 대화와 협력을 하고 서로 배우며 성장하자는 것은 기독교의 정체성을 포기하거나 혼합주의 종교가 되라는 것이 아니다. 그와 정반대임을 한국 기독교는 모르고 있다. 다원화 되는 현대사회에선 예수의 열린 교회와 이웃사랑의 본래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머지않은 미래에 기독교도 유럽과 같은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실제로 서구의 교회는 성당이 텅텅 비어가고 있다. 종교도 흥망을 한다. 한국교회의 몰락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예수의 삶과 정신으로 돌아가도록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화, 세력화, 기득권화가 되어가고 있다.

성경을 믿으면서도 성경의 근본 뜻은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들은 세계 곳곳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보다는 전쟁을 일으키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잘못된 신앙관은 세계를 구원하는 종교가 아닌 세계의 종말을 몰고 오는 종교가 될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이 귓전을 때린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줄 아느냐.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왔노라.(마태10:34~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