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만큼 보인다

동북아 역사조작 한사군①

진실의 역사

[동북아 역사조작극] 한사군漢四郡 - 중국과 일본의 합작 역사조작

 

실패로 끝난 한무제의 동방원정

 

한나라는 BCE 109년, 누선장군樓船將軍(수군) 양복楊僕과 좌장군左將軍(육군) 순체荀?를 보내 위만의 손자 우거정권을 수륙 양군으로 협공하였다.

1년 이상끌던 전쟁은 우거정권 내부의 번조선계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켜 우거를 살해하고 한나라에 투항하면서 끝이 났다.

 

한마디로 우거정권은 한漢나라 군이 아닌 내부 쿠데타에 의해 멸망한 것이다.

BCE 108년 전한前漢 무제武帝는 그 여세를 몰아 고조선의 옛 강역을 모두 차지하기 위해 동쪽으로 북부여를 침공하였으나 대패하여 물러갔다.

 

전쟁이 끝난 후 한나라 측 장군들은 모두 사형을 당했고 누선장군 양복만이 막대한 몸값을 치르고 서인(평민)으로 강등되었다.

반대로 쿠데타를 일으켜 실질적으로 우거정권을 무너뜨린 번조선 귀족들은 전부 한나라의 제후諸侯로 봉해졌다.

이것이 사마천이 기록한 한사군 전쟁의 실상이다.

 

이와 관련하여 현행 국사교과서에는 “고조선(위만정권)이 멸망하자, 한漢은 고조선의 일부 지역에 군현을 설치하여 지배하고자 하였으나, 토착민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다.

그리하여 그 세력은 점차 약화되었고, 결국 고구려의 공격을 받아 소멸되었다(313).”고 간략히 적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한사군 전쟁이 시작된 BCE 109년부터 고구려가 등장한 BCE 58년까지 약 50년 동안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