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만큼 보인다

고려②

진실의 역사

태백일사로 본 천자의 나라, 고려

 

태백일사는 여덟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민족의 역사철학을 전하는 삼신오제본기, 우리 상고사를 정리한 환국본기, 신시본기, 삼한관경본기

그리고 우리 민족의 정신문화를 담고 있는 소도경전본훈,

주체적 시각에서 국통맥을 정리한 고구려국본기, 대진국본기, 고려국본기로 이루어져 있다.

 

고려국본기와 그 외 관련 사서의 핵심을 정리해 본다.

 

[6세 성종] 거란의 침략을 물리치다

916년 통일국가를 세우고 946년 국호를 요로 정한 거란은 993년에 소손녕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로 쳐들어왔다.

침략의 명분은 고구려의 옛땅을 고려가 침식했으니 내놓으라는 것과 고려가 송과 교류를 끊고 거란을 섬기라는 요구를 수용하라는 것이다.

 

당시 고려 조정에서는 항복하자는 의견과 서경(평양) 이북의 땅을 요에 떼어주고 화친하자는 의견으로 갈렸다.

 

이때 나선 인물이 서희徐熙(942∼998) 장군이다.

단신으로 거란 진영에 가서 소손녕과 담판을 벌이게 된다.

서희는 옛 고구려 땅은 거란 소유라는 적장의 주장에 대해 고려가 고구려의 맥을 이었다는 점과 고려의 도읍이 평양이라는 점을 논리적으로 설득하였다.

 

그리고 거란이 여진을 쫓아내고 우리의 옛 땅을 돌려준다면 친교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조리있게 설명하여, 결국 거란군을 철수시켰다.

적진에서 거란과의 기싸움에서 눌리지 않고 당당하게 주장을 편 강직한 인품에 소손녕이 굴복하여 연회를 베풀고 위로한 뒤에 서희를 전송한 것이다.

 

고려는 거란의 도움으로 압록강 동쪽의 여진족을 몰아내고 흥화진, 용주, 통주, 철주, 귀주, 곽주를 포함하는 강동 6주를 되찾게 되었다.

거란의 입장을 정확히 파악하고 세 치 혀로 싸우지 않고 승리를 거둔 서희는 이후 대한민국 최고의 외교관으로서 모범이 되고 있다.

거란은 이후에도 계속 침략해왔는데 이때 물리친 대표적 인물이 강감찬姜邯贊(948∼1031) 장군이다.

그는 진주 강씨의 시조이자 고구려 26세 영양제 때 수나라군을 격파한 고구려의 명장인 강이식 장군의 후손이다.

 

1018년 거란은 고려 현종이 친히 입조하지 않은 것과 강동 6주를 돌려주지 않은 것을 구실로 삼아 소배압에게 1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공하게 했다.

이때 강감찬은 상원수가 되어 곳곳에서 거란군을 물리쳤고 1019년에는 귀주에서 살아 도망간 적의 군사가 겨우 수천에 이를 정도로 거란군을 섬멸시켰다.

 

이것이 바로 귀주대첩이다.

이후 고려는 천리장성을 쌓고 요나라의 침입에 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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