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만큼 보인다

인류 조직문화④-고조선

진실의 역사

[환단고기] 인류 조직문화의 원형, 삼한오가三韓五加

 

STEP2. 삼신오제로부터 출발한 조직 문화

 

3. 삼한으로 다스린 단군조선


고조선의 삼한관경제
단군조선 시대에도 신교의 ‘삼신오제사상’을 현실의 인사제도에 그대로 적용하여 삼한오가三韓五加라는 국가통치제도를 발전시켰습니다.

특히 단군왕검께서는 천지인의 삼신 문화에 입각하여 나라를 삼한으로 나누어 다스렸습니다.

 

이 삼한관경제는 고조선 역사와 문화의 핵심을 헤아리는 결정적이고 중대한 열쇠입니다.

상제님의 아들인 대단군이 태일太一의 천자로서 중앙의 진한을 다스리고 두 명의 부단군이 각각 천일天一과 지일地一이 되어 천자를 보필하여 마한과 번한을 다스렸습니다.

 

번한, 마한도 역시 진한처럼 수도가 있었고 삼한오가의 중앙 행정조직을 운영하였습니다.

수도를 아사달 또는 왕검성이라 불렀는데 고대에 아사달과 왕검성이 한 곳이 아니라 여러 군데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先是(선시)에 區劃天下之地(구획천하지지)하사 分統三韓(분통삼한)하시니 三韓(삼한)에 皆有五家六十四族(개유오가육십사족)이러라.

역주 이에 앞서 왕검께서 천하의 땅을 일정한 지역으로 경계를 정해 삼한三韓 으로 나누어 다스리셨다. 삼한에는 모두 5가五家 64족六十四族이 있었다. (「단군세기」)

 

地有三韓(지유삼한)하야 爲辰弁馬三京之韓(위진변마삼경지한)하니 韓(한)은 卽皇也(즉황야)오
皇(황)은 卽大也(즉대야)오 大(대)는 卽一也(즉일야)라.

역주 그러므로 땅에 삼한이 있으니, 삼한은 삼경三京이 있는 진한辰韓·변한弁韓·마한馬韓을 말한다. 한韓은 역사의 통치자인 황皇(임금)이라는 뜻이 있다. 이 황은 크다[大]는 뜻이며, 크다[大]는 것은 (시작과 뿌리와 통일을 의미하는) 하나[一]라는 뜻이다[한韓 = 황皇 = 대大= 일一]. (「단군세기」)

 

遂與三韓(수여삼한)으로 分土而治(분토이치)하실새 辰韓(진한)은 天王自爲也(천왕자위야)시라 立都阿斯達(입도아사달)하시고 開國(개국)하사 號朝鮮(호조선)하시니 是爲一世檀君(시위일세단군)이시오 阿斯達(아사달)은 三神所祭之地(삼신소제지지)로 後人(후인)이 稱王儉城(칭왕검성)하니 以王儉舊宅(이왕검구택)이 尙存故也(상존고야)니라.

역주 마침내 삼한으로 영토를 나누어 다스릴 때 진한辰韓은 천왕께서 친히 맡아서 통치하셨다. 도읍을 아사달에 세우고 나라를 열어 조선이라 하니, 이분이 바로 1세 단군이시다. 아사달은 ‘삼신께 제사 지내는 곳’으로 후세 사람들이 왕검성王儉城이라 불렀는데, 그 까닭은 왕검의 옛 집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단군세기」)

 

삼한오가의 조직문화와 지방자치조직
‘복신시구규復神市久規’(「삼성기 상」)라는 기록대로 옛 조선은 배달국의 통치제제를 그대로 계승하였습니다.

배달국보다 더 분화되고 체계화되었지만 삼백오가 조직의 큰 틀은 고조선이 멸망할 때까지 그대로 유지됩니다.

 

47세 고열가 단군께서 보위를 내려놓고 입산하시고, 해모수가 옥새를 양위받기까지 6년 동안 오가에 의해 공화정이 실시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환단고기』에서는 고조선에서 운영되었던 지방 자치제도에 대해서 언급한 기록이 나옵니다.

각 읍락에서 자체적으로 삼사三師와 육정六正을 운영했다는 기록이 그것입니다. 중앙의 삼한오가와 유사한 조직을 각 읍락에서 그대로 운영한 것입니다.

 

彭虞(팽우)하사 闢土地(벽토지)하시며 成造(성조)로 起宮室(기궁실)하시며 高矢(고시)로 主種稼(주종가)하시며 臣智(신지)로 造書契(조서계)하시며 奇省(기성)으로 設醫藥(설의약)하시며 那乙(나을)로 管版籍(관판적)하시며 羲(희)로 典卦筮(전괘서)하시며 尤(우)로 作兵馬(작병마)하시니라

역주 팽우彭虞에게 명하여 토지를 개척하게 하시고, 성조成造에게 궁실을 짓게 하시고, 고시高矢에게 농사일을 맡게 하시고, 신지臣智에게 글자를 만들게 하시고, 기성奇省에게 의약을 베풀게 하시고, 나을那乙에게 호적을 관장하게 하시고, 희羲에게 괘서卦筮를 주관하게 하시고, 우尤에게 병마兵馬를 담당하게 하셨다. (「삼성기 상」)

 

諸邑落(제읍락)이 皆自設三老(개자설삼로)하니 三老(삼로)는 亦曰三師(역왈삼사)라 有賢德者(유현덕자)와 有財施者(유재시자)와 有識事者(유식사자)를 皆師事之(개사사지)가 是也(시야)오. 又有六正(우유육정)하니 乃賢佐忠臣(내현좌충신)과 良將勇卒(양장용졸)과 明師德友(명사덕우)가 是也(시야)라.

역주 모든 읍락이 자체적으로 삼로三老를 두었는데, 삼로를 삼사三師라고도 하였다. 어진 덕이 있는 자[賢德者]와 재물을 베푸는 자[財施者], 사리를 잘 아는 자[識事者]를 모든 사람이 스승처럼 섬기는 것이 그것이다. 또 육정六正이 있었는데, 어진 보필자[賢佐]와 충신[忠臣]과 뛰어난 장수[良將]와 용감한 병사[勇卒]와 훌륭한 스승[明師]과 덕 있는 친구[德友]가 그것이다.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


삼한에서 삼조선 체제로 변경
6세 단군 때 신지 발리의 예언대로 고조선의 국운은 삼한관경제와 그 성쇠를 같이합니다.

22세 색불루 단군 때 잠시 위기를 겪고 ‘삼조선 체제’로 변경하였으나 ‘삼한관경제’의 틀은 유지되었습니다.

 

결국 43세 물리 단군 때 삼한관경제를 완전히 붕괴시키는 사건이 일어났으니 바로 사냥꾼 우화충의 반란입니다.

백민성白民城 욕살 구물丘勿이 장당경에서 군사를 일으켜 반란을 진압하고 피란 중 붕어하신 물리 단군을 대신하여 44세 단군으로 즉위하였습니다.

 

정권을 잡은 구물 단군은 나라 이름을 대부여大夫餘로 바꾸고 두 조선에도 병권兵權을 나눠주게 됩니다.

이전의 분조관경제分朝管境制에서 분권관경제分權管境制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중앙의 진조선이 통제력을 잃었고 막조선, 번조선이 진조선과 대등한 위치에 서게 된 것입니다.

이로써 저울에 비유되었던 삼한관경제는 완전 붕괴되었고 이후 고조선은 급속히 쇠망의 길로 떨어집니다.

 

三韓(삼한)은 有分朝管境之意(유분조관경지의)오 三朝鮮(삼조선)은 有分權管境之制也(유분권관경지제야)라

역주 삼한이라는 말에는 ‘조정을 나누어 통치한다[分朝管境]’는 뜻이 있고, 삼조선은 ‘권력을 나누어 통치[分權管境]하는 제도를 둔다’는 말이다.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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