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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노스트라다무스 예언①

노스트라다무스 예언①

이것이 개벽이다 책

노스트라다무스 대예언


●서양에서 무서운 전쟁이 준비되면 다음해에는 돌림병이 찾아오리라. 너무도 두려워하리라, 젊은이도 늙은이도 동물도(『백시선』)

 

미셸 노스트라다무스는 프랑스의 프로방스 지방 생레미에서서 태어났다.

이 위대한 예지자는 어린 시절부터 여러 학문 (의학•철학 •점성학)에 정통했던 조부와 외조부에게서 다방면의 고급 지식을 전수 받았다.

이미 12세 때 라틴어 , 히브리어, 그리스어 공부를 끝냈으며 점차 고전문학, 수학, 의학, 점성술, 연금술 등의 전문지식을 풍부 하게 습득했다.

 

성장하여 아비뇽에서 철학과 법학을, 몽펠리에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으며, 졸업 후 그곳에서 3년 동안 교수로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결혼한 지 3년째 되던 해(1537년)에 당시 프랑스를 휩쓸던 흑사병으로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모두 잃고 말았다.

수 많은 생명을 죽음에서 건져 냈던 그였지만 정작 자신의 가족을 구하는 데는 무기력했던 것이다.

 

아내와 자식을 죽음 저편으로 먼저 떠나보내는 참담한 불운을 겪은 노스트라다무스는 그후 10여 년 동안 방랑 생활을 하게 된다.

이후 44세가 되던 1547년에 남프랑스의 살롱이라는 마을에서 한 부유한 미망인과 재혼하여 아들 세자르를 낳았다.

한 번 자식을 잃은 뼈아픈 상처 때문인지 그는 세자르를 몹시도 사랑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의사의 업을 그만두고, 자신이 ‘비밀의 방’ 이라 부르는 컴컴한 서재에서 스스로 ‘미래로 가는 통로’ 라고 이름 붙인 검은 거울을 통해 하늘의 소리를 들으며 예언서『백시선百詩選』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당시 그의 예언시를 읽고 누구보다도 열광한 사람들은 프랑스의 상류층이었다.

특히 프랑스 국왕 앙리 2세는 자신의 사망과 가문의 운명에 대한 예언에 충격 받고, 1556년에 노스트라다무스를 궁중으로 불러 왕가의 운세 판단을 맡겼다.

 

그러나 노스트라다무스는 위선과 음모로 가득 찬 궁중 생활에 혐오를 느끼고, 살롱으로 돌아와 1558년 초부터 『백시선』의 마지막 부분을 집필했다.

12권으로 된 이 결정판은 그가 죽은 지 2년 후(1568년)에 출판되었다.

 

그는 1566년 7월 2일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예언은『백시선』 속에 남아 지금까지도 온 세상을 전율케 하고 있다.

오랜 작업 끝에 완성된 『백시선』에는 “이 책 속에 세계의 미래가 모두 담겨 있다”고 친구들에게 말한 그대로, 문명의 발전 모습과 전 인류를 파멸로 몰고 가는 무시무시한 전쟁, 그리고 그 끝에 찾아올 혹독한 기아와 전염병으로 인한 지구 종말의 영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20세기 후반,400년간 로마에 숨겨져 있던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서가 발견되면서 새로운 예언이 쏟아져 나왔고, 현대 인류의 운명을 암시 하는 내용들이 많아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 예언서는 로마 국립도서관에서 이탈리아 저널리스트 엔자 마싸와 로베르토 피노티가 16세기 고서 필사본과 함께 발견한 것으로, 당시 책의 표제는『바티시니아 노스트라다미Vaticinia Nostradami』였다고 한다.

 

이탈리아 역사학자들은 정밀 검사를 통해 이 고문서가 실제 노스트라다무스가 살았던 16세기에 제작되었음을 규명했다.

그 책에는 노스트라다무스가 직접 그린 많은 수채화가 수록 돼 있고 이미 알려진 예언은 물론 새로운 예언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도 언급돼 있다.

 

그림 중에서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은 큰 타워가 불타고 있는 것을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은 2001년에 미국에서 일어난 9.11 테러를 예언한 것으로 해석 되고 있다.

 

『백시선』에도 9.11 테러를 예언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가 있다고 한다.

●몸은 둘, 머리는 하나, 그리고 둘로 갈라진 벌판, 전대미문의 네 개에 응답하리라, 거대한 것에 비해 너무도 작은 것, 거대한 것에 피해를 안기리라. 뾰족한 탑이 무너지리라, 그리고 외수아에 더 큰 피해를 입히리라.(12:52)

 

‘몸은 둘인 뾰족한 탑’ 은 흡사 무너진 세계 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을 떠 올리게 한다.

그리고 ‘Eussouis’는 프랑스어 식으로 읽으면 ‘외수아’ 가 되는데, USA를 프랑스어 식으로 읽으면 ‘위스아’ 이므로 발음이 아주 비슷하다.(강주헌 엮음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한 21세기 대충돌』)

 

그리고 ‘성직자에게 등 돌린 시민의 모습’ 도 그려져 있는데 『더 노스트라다무스 코드』의 저자 오타비오씨는 이것을 가톨릭 교회가 처한 비극에 관한 것이라 해석 하고 있다.

이 시는 그의 예언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져 있으며 가장 논란이 되는 내용이기도 하다.

 

•1999 일곱 번째 달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오리라 : 앙골무아의 대왕이 부활하리라. 화성을 전후로 행복하게 지배하리라.
 L’an mil neuf cent nonante neuf sept mois
 Du ciel viendra un grand Roy d’effrayeur:
 Ressusciter le grand Roy d’Angolmois,
 Avant apres, Mars regner par bonheur. (09:72)

 

많은 사람들이, 노스트라다무스가 '1999년 7월' 을 세계 종말의 시기 로 예언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는 고도벤을 비롯한 노스트라다무스 연구가들 대부분이 자의적으로 해석한 결과일 따름이다.

새 천 년이 시작 되었는데도 이 예언이 실현되지 않자, 노스트라다무스는 세기말을 사는 인류에게 허무맹랑한 예언으로 큰 공포를 안겨 준 인물로 여겨지게 되었다.

 

섬뜩하리만치 정확하게 인류의 미래를 내다본 그가 왜 가장 중요한 종말시기에 대해서는 빗나간 예언을 남기고 말았을까?

그는 진정 1999년을 종말의 때로 보았는가?

이제 그 진실을 밝혀 보기로 한다.

 

이 예언시의 불어 원문의 첫줄에 나오는 ‘L’an mil neuf cent nonante neuf를 많은 학자들은 글자 그대로 1999년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런데 현대 불어에서는 이 99라는 숫자를 '4×20+ 19(quatre-vingt-dix-neuf)’라고 표기한다.

16세기 불어인 'nonante neuf' 라는 말은, 현대 불어처럼 ‘4×20+19’가 아니라 99로 해석되며 엄밀하게 따지면 '90의 9’ 로 해석할 수 있다.

 

또 뇌프neuf라는 단어 에는 아흡이라는 뜻 외에 ‘새로운, 신참인’ 이라는 뜻도 들어 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을 단순히 1999년으로만 이해하면 안 된다.

본문의 뜻을 손상 시키지 않으면서 문제의 시구를 우리말로 옮긴다면 1900, 9 0,9,7의 달로 해석할 수 있다(7월은 'juillet'란 단어를 쓴다).

 

9라는 수는 새질서의 개벽으로 들어서는 대변화의 시간 과정을 뜻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노스트라다무스는 자신의 모든 예언시를 보통 사람이 쉽게 알 수 없도록 고의적으로 난해하게 구성한 이유를 밝히면서, 비록 미래의 소식을 비밀스럽게 전할지라도 그것은 영원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에 마침내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 세상의 불의함 때문에 입을 다물고 나의 저작을 포기하려고도 했었다.…내가 앞으로 닥쳐올 일을 분명하게 밝혀서 쓴다면 현재 권력 자리에 있는 사람들, 종파나 각 종교의 지도자들은 그들이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과 이 사건들이 대단히 다르다고 생각하고 이를 비난할 것이다. … 이러한 이유 때문에 나는 미래에 일어날 사건들을 그대로 기록하지 못하고 비밀스럽게, 수수께끼처럼 묘사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장차 일어날 일들이 놀라기 잘하는 사람들을 분노케 하는 일이 없도록 모든 것은 모호하게 쓰여졌다. 그래서 학자나 현인, 권력자나 왕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보잘 것 없고 겸손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영원한 하나님으로부터 예언적인 직감의 능력을 부여받은 예언자들도 이를 이해할 것이며, 이러한 예언의 직감에 의해서 사람들은 먼 앞날의 일들을 알게 될 것이다.(「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그러므로 하나님이 생명을 창조하고 만물을 주재하시는 근본원리를 알기만 한다면 그가 남긴 예언의 수수께끼도 수 있는 것이다.

우주 생명의 창조섭리를 규명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인 동양의 상수象數철학에서 9와 7은 둘 다 분열 작용의 마지막 단계를 가리키는 수[象數]이다.

 

9 는 작용의 끝수[終數]이며, 7은 분열의 최후 단계에서 작용하는 천지기운[火氣]을 표상하는 수다.

그러므로 9와 7을 연속적으로 기록한 숫자 배열, 즉 ‘1900, 90, 9, 7의 달’은 1999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성장과정 [先天]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계속되는 문명과 대자연의 ‘분열의 최후 단계 시점’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노스트라다무스는 결코 1999년을 종말의 때로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그가 상징적으로 표현한‘1900, 90, 9’의 시간대에 살고 있다. 『이것이 개벽이다 上』-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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