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만큼 보인다

일본 군국주의 부활-일본, 다시 침략을 준비한다③

진실의 역사

일본군국주의 부활-일본, 다시 침략을 준비한다③

아베정권은 ‘강한 일본’을 내세우며 일본인의 역사인식 자체를 수정하려고 한다.

일본의 우익은 역사 수정 신봉자이이다.

“한국 경제를 뒤흔들어 혼란에 빠뜨리고 생존의 손짓에 정치적 암거래를 할 것이다.”
“일본 금융기관이 한국 경제에 지원과 협력을 중단하면 삼성도 하루 만에 무너질 것이다.” 〈일본 주간 문춘〉
“원화를 최대한 사들여 한국 통화가치를 높이자. 그러면 일본이 한국경제를 통제할 수 있다.” 〈하기우다 자민당 총재 보좌관〉

만약 경제 대혼란의 상황에서 한국이 천문학적 자금지원을 받고 경제복속이 현실화되면 일본은 끊임없이 내정간섭에 나설 것이다.
미국은 일본편이란 사실도 공식적으로 확증을 받았다.

미국의 한미일 동맹 중 최우선 순위는 당연히 미일 동맹이다.

한국이 섭섭해 할지 몰라도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엄연한 역사적 현실이다.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점점 동북아시아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어느 때보다도 전쟁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에 전쟁이 발생하면 당연히 미군이 개입할 것이다. 

한미일 합동작전이 펼쳐진다면 일본자위대는 동북아 안정을 위해 한반도에 주둔할 수 있다.

전시작전 통제권이 미국에 있는 한국은 방위권을 미일군사 동맹체제에 넘겨야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최근 일본은 핵무기 보유방법을 우회적으로 바꾸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핵잠수함과 핵항공모함을 운영하려는 것이다.

일본은 천문학적 금액의 미국 국채보유국으로 국채와 핵무기를 맞바꾸고 형식상 핵잠수함 관리 권한을 가지면 자연스럽게 핵보유국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된다.

이 밖에도 일본의 경제 지원을 받았거나 국제기구 장악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본다면 한,일관계를 두고 한국 편을 들 수 있는 나라는 전세계에 한 나라도 없다는 일본주장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약소국이 강대국의 몰염치를 아무리 비판해도 강대국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냉혹함이 국제 질서의 현실이다.

외교의 힘이 국력에서 나온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중국, 러시아, 북한은 ‘핵’의 힘으로 큰소리를 내고, 일본은 ‘자본력’으로도 모자라 핵보유국을 꿈꾸고 있다.

국제 사회에서는 명분보다 실리가 당연히 우선시 된다.

힘이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시대를 피할 수 없음이다.

 

세계를 압도하는 경제력, 남이 결코 넘볼 수 없는 국방력을 갖추지 않으면 한국의 외교는 외교가 아니라 사교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일본은 군국주의 부활을 국가차원에서 기획하고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아베의 행보는 ‘강한 일본’을 그리는 일본우익의 강력한 지지를 끌어냈다.

장기적인 경기불황에 국민 피로도가 어느 때 보다도 높은 일본에 희망을 주는 것이다.

일본은 철저히 국제 관계가 약육강식의 논리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기에 망상을 꿈꾸지 않는다. 철저한 실리외교다.

 

오늘의 한반도는 구한말과 마찬가지로 미, 중, 러, 일 등의 열강의 각축장으로 바뀌었다.

이 기회를 놓칠리 없는 일본이다. 무서운 나라이다.

일본은 먼저 중국에 센카쿠 영토 분쟁을 선언했다. 쿠릴열도 싸움도 시작했다. 동시에 미국과의 군사동맹은 더욱 강화시켰다.

아시아, 아프리카, 심지어 유럽과도 튼튼한 동맹관계를 구축한다.

그러면서 3차 정한론 한국 침략을 준비한다.

역사를 왜곡하고 독도 도발을 일상화 한다. 그런데도 한국은 식민사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일본이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들려는 최종목적은 뭘까.

일본의 검은 속셈을 읽어내지 못한다면 한국은 또다시 일본에 당하고 말 것이다.

우리가 힘을 잃고 사회적 혼란과 갈등으로 표류하면 일본은 흉악한 민낯을 서서히 드러낼 것이다.

일본 야욕이 현실로 드러나면 100여년 전 조선을 팔아먹었던 지배계급이 21세기 대한민국에 다시 환생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이러한 국제 정세를 뉴라이트 세력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나라를 넘길 때 지배계급은 늘 살아남아 부귀영화를 이어 갔다.

반대로 민중은 가장 큰 고통의 시련을 견뎌야 했다.

 

다음은 조선총독부가 조사한 조선인의 사상과 성격에 대한 논고이다.

『조선인은 방종, 사치, 낭비, 사행의 성격을 가졌다. 남에게 빌붙어 생활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또한 조선인은 모방성이 풍부해 구미사상 같은 것을 아무런 심사숙고도 없이 통째로 삼키듯 받아들인다.

조선 3000년 역사를 보면 어느 시대나 대국만을 따르는 사대주의 역사였다. 조선인은 사대事大에 익숙하다.』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각축전이 불을 뿜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주적(主敵)을 북한만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가.

한국의 번영과 생존을 위해 국가가 최우선해야 할 과제가 궁극적으로 ‘북한정권 붕괴’라면 그것은 정세에 무지한 ‘자기 도취상태’이다.

남북이 이념대립을 하고, 남한에서는 좌우대립과 내분이 심할수록 일본은 웃을 것이다.

일본은 자기 고유의 역사 문화 정신 위에 외래 사상을 받아들여 근대국가의 초석을 다졌다.

 

그러나 한국은 식민지시대를 겪으면서 외래 사대사상이 주과 되어 우리 역사문화를 파괴해 버렸다.

분열된 한민족을 통합하려면 한민족 고유 정신에 기초하여 시원역사를 회복할 때 통일 민족국가로 나가는 초석을 다질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을 사분오열로 갈라놓았던 제국주의가 만들어 놓았던 좌우 이념대립을 넘어서야 한다.

남한도 북한도 각자 자유와 공산이라는 이념에 갇힌 틀을 깨고 한민족 고유의 역사문화 동질성을 회복해야 한다.

그것은 잃어버린 역사를 회복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과거의 제국주의의 유산인 자유와 공산이라는 이념이 더 이상 한국의 통일역사를 열어나가는데 장애가 돼서는 안 된다.

이제 식민사관을 청산하고 한민족 고유의 역사문화에 기초한 통일역사관을 정립해야 할 때이다.

일본은 한국이 자신들의 역사문화를 잃고 남북이 심각하게 대립하고, 남남갈등, 내부의 극단적 갈등이 회복 불능 상태로 빠지길 기다릴 것이다.

리는 일본, 중국, 북한 문제가 늘 한 몸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냉전체제 붕괴 이후 한반도 주변의 열강들은 민족주의 국가주의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중국의 팽창주의, 일본의 극우주의, 러시아 연방의 세력 확대가 가시화되고 있다.

정반대로 남과 북은 민족갈등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이러다가 민족 소멸이란 운명을 맞이할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한반도에 급변 사태가 오면 임진왜란, 구한말과 같이 한국은 내부가 먼저 붕괴될 것이다.

또 다시 열강이 우리민족의 운명을 결정지을지도 모르는 암운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구한말 한반도를 둘러싼 피비린내 나던 역사가 2017년 대한민국에 다시 먹구름이 되어 몰려오고 있다.

강대국이 결코 넘볼 수 없는 힘을 갖추지 않으면 침략의 먹구름은 천둥과 번개, 폭우를 동반하며 한반도를 재앙으로 몰고 갈 것이다.

역사를 잃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지금 일본은 ‘강한 일본’을 내세우며 그들의 전통 역사문화인 신사문화를 기반하여 국민 총화단결을 이끌어 내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한민족 통합의 구심점인 단군 조선사를 도려내기 위해 안달이다.

심지어 한국의 식민사학계에서는 단군조선 해체론까지 대두되고 ‘민족’이란 단어 자체를 부정적으로 몰고 가는 실정이다.

일본은 장기적인 경제침체, 후쿠시마 원전사고 등으로 움직이지 않던 여론이 흔들리고 있다.

영토분쟁, 과거사 왜곡,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을 노골화 하며 외부 분출 에너지를 내부에 축적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생존은 일본의 본색을 정확하고 분명하게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

일본은 실리와 실용으로 움직이는 국가이다.

일본의 우경화 행보가 단순히 일본 국내 정치용이라는 예측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일본의 아베총리의 행동을 조목조목 살펴보면 결국, ‘일본은 다시 한국을 침략한다’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철저히 준비해 가고 있다는 냉혹한 현실에 눈떠야 한다.

한국이 망언시리즈라며 비판을 하는 사이에 일본 극우 세력은 목표를 향해 내용과 강도를 높여 가고 있다.

더구나 일본 국민이 이런 움직임에 점점 동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집단적 광기, 한반도에 전운이 드리워져 가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한국정치와 국민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니 한국의 운명이 걱정스럽다.

이제 정신을 차리고 냉철한 판단을 하여 국제 정세의 흐름에 눈을 떠야 한다. 그리고 철저히 국가의 미래에 대비를 해야 한다.

일본 군국주의 부활-일본, 다시 침략을 준비한다②

진실의 역사

일본 군국주의 부활-일본, 다시 침략을 준비한다

지금의 국제정세는 구한말 시절과 놀랍도록 비슷하다.

유일한 차이는 한국이 분단국가라는 사실이다.

이제 중국은 순식간에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며 팽창주의를 취하고 있다.

중국 견제에 나선 미국은 군사력을 증강하고 일본도 미국을 등에 업고 재무장에 본격 나서고 있다.

불행히도 지금의 모습은 구한말 상황과 너무나 유사하다.

그럼에도 한국사회는 온통 분열주의로 탈출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구한말 러시아가 득세하면 친러파, 청나라가 입김이 세지면 친청파로 돌아서고, 일본이 강해지자 친일파로 돌아서서 나라를 팔아먹었다.

다시 미국이 부상하자 친미파가 득세했다. 시세의 흐름에 빠른 이 기회주의자들이 엘리트층이었다.

도덕성이 함께 갖추어졌었다면 이들이 애국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엘리트 계층은 그렇질 못했다.

이들은 친일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친일역사가 한국을 근대화시켰다고 미화를 하고 있다.

우리는 ‘한국이 어리석다’고 했던 아베 총리의 말에 분노만 할 게 아니다.

냉정하게 우리를 되짚어 보고, 눈 똑바로 뜨고 역사를 곱씹어 봐야한다.

그리고 일본 우익은 한국이 강제징용 배상금을 청구하면 일본은 한국을 금융공격으로 무너뜨려야한다고 대놓고 말한다.

일본은 장기불황, 대지진, 등에 의한 사회경제적 불안과 불만을 풀어낼 출구가 절실해졌다.

이에 아베는 ‘강한 일본’을 내세우고 군국주의 부활을 실현해 가고 있다.

문제는 단순한 주장이 아니라 치밀한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준비해 간다는 사실이다.

강한 국가는 강한 군대를 가져야한다는 명확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야욕을 드러낼 때마다 ‘평화’를 전면에 내세웠다.

임진왜란 당시도 무장집단이 지배층이었고 메이지 유신의 지배 계층도 무장세력이었다.

강한 일본은 군사력에서 나왔고 그 달콤함에 다시 취하고 싶은 일본이다.

특히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실제 일본이 침몰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주었다. 

잃어버린 20년은 강한 보수정부 아베를 낳았다.

아베는 일본 경제부흥을 위해 아베노믹스를 선포하고 무제한적 양적완화 정책을 폈다.

돈을 마구 찍어서 경제를 살린다는 극단적 처방을 선택한 것이다.

양적완화는 경기부양을 위한 마지막 처방이다.

현재는 가시적으로 성공적인 정책처럼 보이고 있지만, 일본은 국가 채무가 GDP대비 300%를 육박하고 있다.

언제 이 버블이 폭발할지 모른다. 일본 경제의 몰락은 세계경제 공황의 도화선이 될 것이다.

아베노믹스가 실패를 한다면 일본뿐 아니라 세계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가게 된다.

결국 일본은 눈을 돌려 폭발 직전의 내부문제를 밖으로 쏟아내며 해결할 것이다.

본으로서는 최악의 타개상황을 준비해야한다.

그래서 왜곡된 군국주의 과거사를 국민에게 세뇌시키고, 독도 분쟁화에 가속도를 붙이는 이유이다.

 

중국 팽창에 대한 미일 동맹강화, 남북한의 긴장 고조는 한반도를 극도의 불안 속으로 몰고 있다.

일본은 외부 침략을 통해서 생존과 발전의 길을 찾아내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임진왜란이 그랬고 19세기 정한론이 그랬다.

내부 위기감이 쌓일 때마다 어김없이 외부 침략논리를 만들어 국민을 단결시키고 강력한 리더십을 동원해서 전쟁을 벌였던 것이다.

일본은 전쟁준비가 끝나면 침략전쟁의 속셈을 여과 없이 드러내 왔다.

 

일본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승리로 굉장한 배상금으로 군비를 확충하고 산업기반을 조성해 부국강병의 기초를 놓았다.

세계자본주의는 전쟁을 통한 약탈로 쌓아올린 부이다.

전쟁을 수반하기 위해 식민지배 국가와 약소국에서 엄청난 자원을 수탈해갔다.

일본은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엄청난 부를 축적한다.

유럽이 전운에 휩싸이자 엄청난 군수 보급국으로 변신을 했다.

1929년 덮친 세계공황을 일본은 만주사변을 일으키며 돌파해 나갔다.

일본은 근본적으로 무력을 이용한 착취와 수탈이 경제부흥의 발판이었다.

 

이제 일본은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로 부상을 했다.

한국전쟁은 전후 패망한 일본경제를 회복시켜주는 결정적 사건이었다.

한국에 대한 영토 도발, 역사 왜곡을 보면 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분쟁일상화 전력이 숨어있다’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한반도는 화약고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 식민사학의 노예가 돼서 친일을 찬양하는 지식인이 많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사실을 왜곡하고 자기식 억지로 포장된 과거사는 역사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일본인이 만든 한국사를 배우고 있다.

아베는 3차 정한론을 가지고 신일본제국, 아시아 중심을 자처할 것이다.
일본우익은 “일본의 식민통치가 한국에 유익했다”라고 말한다.

유럽제국주의가 중남미를 식민지 삼고 약탈, 살인, 강간, 강제 개종을 시키고 우리는 그들을 문명세계로 개화시켰다고 하는 주장과 비슷하다.

제국주의는 약육강식의 강자의 논리이지 정의의 논리가 아니다.
잘 사는 게 정의라고 말할 수 있는가?

 

다음은 1912년 《아사히 신문》에 실린 사설이다.

“1945년 8월15일 일본 진주 미군이 일본을 병합하고 미국의 주로 만들었다”라고 전제한 후 “미국이 일본에 좋은 일을 했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겠느냐”고 질문했다.

그러자 일본은 간섭하는 미국에 대해 “절대로 감사할 수가 없다”라는 한 사설이다.

 

그러면 우리나라 사정에 그대로 적용을 해본다.

‘미국은 민주주의를 가르치며 일본을 강제 병합한다.

영어로 교과서를 배우고, 미국의 역사를 공부한다. 일장기 대신 성조기에 충성을 맹세하고 미국의 국가를 부른다.

이름도 미국명으로 개명 한다. 일본사람이 미국 병사로 전쟁에 나가고 일본의 독립운동을 탄압하며 수천, 수만의 동포를 살해한다.

이렇게 해서 미국이 일본인의 고혈을 짜내고 “일본을 발전시켰으니 감사해라”고 하면 과연 일본 기분은 어떤 기분일까.

역지사지라는 말은 한국에만 있는 사자성어가 아니다.

 

한국은 식민사학을 청산해서 정의의 역사로 바로 잡을 때 한국사회의 심각한 지도층의 부패와 도덕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더 이상 한국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가기 어렵다.

국가를 발전시키는 힘은 역사문화의 저력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의 움직임을 눈여겨보면서 한민족의 미래를 열어 나가야한다.

일본의 재무장과 군국주의 부활, 독도 침탈과 역사 왜곡 그리고 한국의 뉴라이트 부활과 식민지 근대화론을 지지하는 식민사학,

그리고 민족사학을 무너뜨리기 위해 ‘유사역사학’, ‘사이비 역사학’이란 극단적이고 혐오스러운 언어를 써가며 민중으로부터 민족사학을 분리시키고 자신들의 이익을 옹호하려 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무엇이 보이는가?

남북 분단과 6.25로 인해 부흥을 맞이하다

진실의 역사

남북 분단과 6.25로 인해 부흥을 맞이하다.
일제는 패망했지만 우리 민족의 온전한 독립은 아니었다.

일본을 몰아내고 한반도를 지배한 미국과 소련은 삼팔선을 그어 한반도의 북쪽과 남쪽에 각각 공산정권과 자유정권(반공)을 세워서 분할 지배했다.

소련의 영향하에 세워진 북쪽의 공산정권은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을 인정하지 않는 무신론을 부르짖었다.

그리고 북한 정권은 기독교 교회가 가진 토지와 재산 등을 몰수했다.

수많은 이북의 기독교인이 이러한 북한의 박해를 피해 남한으로 밀려 내려왔다. 그들은 수많은 반공 청년단체를 만들었다.

그 유명한 서북청년단도 북한의 박해로 재산을 빼앗기고 남쪽으로 도망쳐 온 개신교도들이 주축이 된 단체였다.

월남으로 늘어난 기독교 신도들 덕분에 남한의 기독교 신자 수는 해방 이후에 더욱 늘어났다.

이들 반공 청년단들은 독실한 기독교 신앙과 극렬한 반공 정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제주 4.3사건과 1950년 보도연맹 학살 사건 때 무고한 사람들을 좌익으로 몰아서 수십만명이나 학살하는데 적극적으로 가담을 했다. 그들의 이념에 반대되는 자들은 좌익시 되었다.

이러한 선과 악의 이분법적 사고관은 타문화에 대한 배타적 성향으로 드러났다. 

중세 마녀사냥이나 중남미, 아프리카 노예사냥 및 중남미 원주민 학살이 자행된 이유도 이런 분명한 선악논리로 인해 타문화를 제거 내지는 정복의 대상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서북청년단의 만행에는 남한 기독교인들도 한몫을 했다.

특히, 서북청년단은 1946년 11월  한경직 목사의 영락교회의 젊은 남자 신도들이 주축이 되어 창설된 조직이었다.

기독교와 반공을 외치며 폭력으로 좌익을 탄압하는 반공 청년단들은 당시 남한을 세계 반공 전선의 전초 기지로 삼으려는 미국과 남한 정부에게 아주 훌륭한 도구였다.

이런 이유로 미군과 한국군은 제주 4.3과 보도연맹 학살사건에서 반공 청년단을 무장시켜 좌익 탄압을 위한 보조 무대로 활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반공 청년단들은 거칠고 난폭한 면이 많은데다 살인, 강간도 서슴없이 자행을 했다. 이들은 이승만 정권과 결탁하여 정치 깡패로 나서면서 국민에게 엄청난 지탄을 받았다.

그래서 훗날 1961년 5.16 박정희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구악 일소를 외치자 반공 청년단들은 정권의 탄압을 두려워하여 자진 해산했다. 청년단 중 상당수는 목사가 되어 개신교로 흡수되었다.

오늘날 많은 개신교 성직자들이 강경한 반북정책을 옹호하고 북한을 공격해서라도 공산정권을 무너뜨리자는 강한 반공 성향을 보이는 이유도 그들 중 상당수가 반공 청년단 출신이거나 아니면 그들에게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편 조선에 살던 일본인들이 일제의 패망과 함께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남긴 재산(적산)을 미군이 몰수했다가 대부분을 기독교 교회들에게 넘겨주었다. 그 때문에 기독교는 해방 직후, 재산을 급격히 불리면서 세력을 넓혀 나갈 수 있었다.

일제 강점기는 말 그대로 기독교에게는 축복이었던 것이다. 보수 개신교계에서 일제 강점기는 하나님의 뜻이며 축복이었다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제시대는 기독교 성장의 토대를 깔아 주었다. 일제 강점기는 그야말로 기독교 부흥의 결정적 기회를 열어 주었던 것이다.

뉴라이트 인사들이 일제 강점기에 대하여 식민지 근대화론을 외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제시대가 없었다면 오늘날 이와 같은 기독교 부흥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미국이 적산을 한국의 기독교 교회에 넘겨준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일부 기독교 성직자들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어서 미군과 말이 통했다. 당시 한국의 기독교계 인사들은 미국의 충실한 정보원 역할을 해주었다. 그래서 미군은 한국 기독교에 정보 제공의 대가 겸 이해관계에 철저히 따를 하수인으로 만들기 위해서 일제 강점기의 적산을 넘겨주었던 것이다.

 

실제로 1979년 1월 8일 미국 국무부의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인 리처드 홀부르크는 주한 미국대사인 윌리엄 글라이스틴에게 보낸 전문에서 “한국의 기독교 단체들이 민주화 시위에 나선다면 그들은 더 이상 미국의 지원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적었다

이는 한국의 여러 기독교 단체가 미국의 지원을 받은 대가로 미국의 의도대로 움직여왔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1945년부터 1948년까지 약 3년 동안 한국은 미군정의 통치를 받았다.

이 와중에 미군에게 잘 보여 출세하기 위해서 일부러 기독교, 특히 개신교를 믿는 사람이 늘어갔다.

특히 미군이 만든 한국군에서는 영어를 잘하고 개신교를 믿어야 출세할 수 있다는 소문이 나돌 만큼 개신교가 강세였다.

한국에서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 법정 공휴일로 지정된 때도 바로 미군정 시기였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터지자 기독교는 또 한 번의 부흥기를 맞이한다.

3년에 걸친 전쟁으로 인해 한국은 전 국토가 초토화되었고, 많은 사람이 먹을 것을 제대로 구하지 못해 굶주림에 허덕였다.

그런데 미국이 보낸 식량과 구호물자가 대부분 기독교 교회를 통해서 한국인들에게 분배되었다.

기독교를 믿지 않거나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옥수수 가루라도 얻으려면 교회로 가서 개신교 종교 행사에 참여를 해야 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기독교 신자 수는 급증했다. 식량을 나누어 주는 교회에 고마움을 느끼고 또 그런 일을 하는 기독교에 호감이 생겨서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다.
 
해방 직후, 전체 인구의 고작 3퍼센트에 머물던 기독교 인구는 2000년대 중반까지 해마다 증가하여 천주교와 개신교를 전부 합치면 1200만 명에 달했다.

이는 한국 전체 인구인 5천만명의 약 24퍼센트에 해당한다. 인구 대비로 따지자면 필리핀과 동티모르를 제외하고 동아시아 전체에서 한국만큼 기독교인 비율이 높은 나라는 없다. 지금은 해년 20만명씩 줄어드는 추세다.

 

정리하자면 한국 기독교의 부흥은 한국을 둘러싼 국제 정세에 따른 결과였다.

많은 조선인은 세계를 주도하던 강대국인 미국을 동경했고, 그런 미국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발달된 문물의 혜택을 받으려는 의도에서 미국이 믿는 종교인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만약 미국이 기독교가 아니라 이슬람교를 신봉했다면, 지금 한국 곳곳에는 교회대신에 모스크가 가득하지 않았을까? 

한국의 기독교 수용은 중국을 부러워하며 그들의 사상인 유교를 받아들여 중국보다 더 철저하게 유교 국가를 지향했던 조선의 사대주의적 태도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었다. 『자주파 VS 사대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