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만큼 보인다

일본 군국주의 부활-일본, 다시 침략을 준비한다②

진실의 역사

일본 군국주의 부활-일본, 다시 침략을 준비한다

지금의 국제정세는 구한말 시절과 놀랍도록 비슷하다.

유일한 차이는 한국이 분단국가라는 사실이다.

이제 중국은 순식간에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며 팽창주의를 취하고 있다.

중국 견제에 나선 미국은 군사력을 증강하고 일본도 미국을 등에 업고 재무장에 본격 나서고 있다.

불행히도 지금의 모습은 구한말 상황과 너무나 유사하다.

그럼에도 한국사회는 온통 분열주의로 탈출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구한말 러시아가 득세하면 친러파, 청나라가 입김이 세지면 친청파로 돌아서고, 일본이 강해지자 친일파로 돌아서서 나라를 팔아먹었다.

다시 미국이 부상하자 친미파가 득세했다. 시세의 흐름에 빠른 이 기회주의자들이 엘리트층이었다.

도덕성이 함께 갖추어졌었다면 이들이 애국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엘리트 계층은 그렇질 못했다.

이들은 친일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친일역사가 한국을 근대화시켰다고 미화를 하고 있다.

우리는 ‘한국이 어리석다’고 했던 아베 총리의 말에 분노만 할 게 아니다.

냉정하게 우리를 되짚어 보고, 눈 똑바로 뜨고 역사를 곱씹어 봐야한다.

그리고 일본 우익은 한국이 강제징용 배상금을 청구하면 일본은 한국을 금융공격으로 무너뜨려야한다고 대놓고 말한다.

일본은 장기불황, 대지진, 등에 의한 사회경제적 불안과 불만을 풀어낼 출구가 절실해졌다.

이에 아베는 ‘강한 일본’을 내세우고 군국주의 부활을 실현해 가고 있다.

문제는 단순한 주장이 아니라 치밀한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준비해 간다는 사실이다.

강한 국가는 강한 군대를 가져야한다는 명확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야욕을 드러낼 때마다 ‘평화’를 전면에 내세웠다.

임진왜란 당시도 무장집단이 지배층이었고 메이지 유신의 지배 계층도 무장세력이었다.

강한 일본은 군사력에서 나왔고 그 달콤함에 다시 취하고 싶은 일본이다.

특히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실제 일본이 침몰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주었다. 

잃어버린 20년은 강한 보수정부 아베를 낳았다.

아베는 일본 경제부흥을 위해 아베노믹스를 선포하고 무제한적 양적완화 정책을 폈다.

돈을 마구 찍어서 경제를 살린다는 극단적 처방을 선택한 것이다.

양적완화는 경기부양을 위한 마지막 처방이다.

현재는 가시적으로 성공적인 정책처럼 보이고 있지만, 일본은 국가 채무가 GDP대비 300%를 육박하고 있다.

언제 이 버블이 폭발할지 모른다. 일본 경제의 몰락은 세계경제 공황의 도화선이 될 것이다.

아베노믹스가 실패를 한다면 일본뿐 아니라 세계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가게 된다.

결국 일본은 눈을 돌려 폭발 직전의 내부문제를 밖으로 쏟아내며 해결할 것이다.

본으로서는 최악의 타개상황을 준비해야한다.

그래서 왜곡된 군국주의 과거사를 국민에게 세뇌시키고, 독도 분쟁화에 가속도를 붙이는 이유이다.

 

중국 팽창에 대한 미일 동맹강화, 남북한의 긴장 고조는 한반도를 극도의 불안 속으로 몰고 있다.

일본은 외부 침략을 통해서 생존과 발전의 길을 찾아내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임진왜란이 그랬고 19세기 정한론이 그랬다.

내부 위기감이 쌓일 때마다 어김없이 외부 침략논리를 만들어 국민을 단결시키고 강력한 리더십을 동원해서 전쟁을 벌였던 것이다.

일본은 전쟁준비가 끝나면 침략전쟁의 속셈을 여과 없이 드러내 왔다.

 

일본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승리로 굉장한 배상금으로 군비를 확충하고 산업기반을 조성해 부국강병의 기초를 놓았다.

세계자본주의는 전쟁을 통한 약탈로 쌓아올린 부이다.

전쟁을 수반하기 위해 식민지배 국가와 약소국에서 엄청난 자원을 수탈해갔다.

일본은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엄청난 부를 축적한다.

유럽이 전운에 휩싸이자 엄청난 군수 보급국으로 변신을 했다.

1929년 덮친 세계공황을 일본은 만주사변을 일으키며 돌파해 나갔다.

일본은 근본적으로 무력을 이용한 착취와 수탈이 경제부흥의 발판이었다.

 

이제 일본은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로 부상을 했다.

한국전쟁은 전후 패망한 일본경제를 회복시켜주는 결정적 사건이었다.

한국에 대한 영토 도발, 역사 왜곡을 보면 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분쟁일상화 전력이 숨어있다’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한반도는 화약고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 식민사학의 노예가 돼서 친일을 찬양하는 지식인이 많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사실을 왜곡하고 자기식 억지로 포장된 과거사는 역사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일본인이 만든 한국사를 배우고 있다.

아베는 3차 정한론을 가지고 신일본제국, 아시아 중심을 자처할 것이다.
일본우익은 “일본의 식민통치가 한국에 유익했다”라고 말한다.

유럽제국주의가 중남미를 식민지 삼고 약탈, 살인, 강간, 강제 개종을 시키고 우리는 그들을 문명세계로 개화시켰다고 하는 주장과 비슷하다.

제국주의는 약육강식의 강자의 논리이지 정의의 논리가 아니다.
잘 사는 게 정의라고 말할 수 있는가?

 

다음은 1912년 《아사히 신문》에 실린 사설이다.

“1945년 8월15일 일본 진주 미군이 일본을 병합하고 미국의 주로 만들었다”라고 전제한 후 “미국이 일본에 좋은 일을 했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겠느냐”고 질문했다.

그러자 일본은 간섭하는 미국에 대해 “절대로 감사할 수가 없다”라는 한 사설이다.

 

그러면 우리나라 사정에 그대로 적용을 해본다.

‘미국은 민주주의를 가르치며 일본을 강제 병합한다.

영어로 교과서를 배우고, 미국의 역사를 공부한다. 일장기 대신 성조기에 충성을 맹세하고 미국의 국가를 부른다.

이름도 미국명으로 개명 한다. 일본사람이 미국 병사로 전쟁에 나가고 일본의 독립운동을 탄압하며 수천, 수만의 동포를 살해한다.

이렇게 해서 미국이 일본인의 고혈을 짜내고 “일본을 발전시켰으니 감사해라”고 하면 과연 일본 기분은 어떤 기분일까.

역지사지라는 말은 한국에만 있는 사자성어가 아니다.

 

한국은 식민사학을 청산해서 정의의 역사로 바로 잡을 때 한국사회의 심각한 지도층의 부패와 도덕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더 이상 한국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가기 어렵다.

국가를 발전시키는 힘은 역사문화의 저력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의 움직임을 눈여겨보면서 한민족의 미래를 열어 나가야한다.

일본의 재무장과 군국주의 부활, 독도 침탈과 역사 왜곡 그리고 한국의 뉴라이트 부활과 식민지 근대화론을 지지하는 식민사학,

그리고 민족사학을 무너뜨리기 위해 ‘유사역사학’, ‘사이비 역사학’이란 극단적이고 혐오스러운 언어를 써가며 민중으로부터 민족사학을 분리시키고 자신들의 이익을 옹호하려 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무엇이 보이는가?

일본 군국주의 부활-일본, 다시 침략을 준비한다①

진실의 역사

일본 군국주의 부활-일본, 다시 침략을 준비한다

2014년 4월 22일 일본 각료와 국회의원 168명이 제국주의 침략전쟁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를 집단적으로 참배했다.

“전쟁에 목숨 바친 영령을 높이 받들어 숭배하는 것은 종교의 자유다. 내정간섭을 말라.”

극우세력은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보는 앞에서 당당하게 신사참배를 강행했다. 

‘강한일본’을 외치는 극우파에게 박수가 쏟아진다. 언론도 우경화를 부추긴다.

일본이 마음만 먹으면 한나절 안에 한국을 접수할 수 있다는 극언도 쏟아져 나왔다.

이를 보고 일본정세에 밝은 일부 지식인은 “이미 침략이 시작 됐다고 말한다.

 

임진왜란과 한일병탄 때처럼 무력을 앞세운 침략이 아니라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소리 없는 전쟁,

즉 ‘경제침략으로 한국을 삼킬 것이다’고 본다.

지금은 역사 속 일본 침략기와 오늘이 너무나 닮아 있다.

1592년 임진왜란과 1910년 한일병탄시기 모두 오늘의 한국 및 국제 정세와 너무 비슷하다.

 

임진왜란 직전 조선은 동인과 서인으로 당파가 나뉘어 사사건건 분열했다.

한일병합 이전 조선은 분열이 더 심했다.

개화파와 쇄국파의 정변은 나라를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그러면 오늘의 한국은 어떠한가. 먹고사는 문제 말고 분열상은 과거와 다르지 않다.

진보와 보수, 남북분단, 동서지역감정, 이념갈등 등 자기 단체의 이익만 있고 공동의 선은 없다.

 

이런 국내 흐름을 보고, 일본 우익은 “한국은 원래 홀로 설 수 없는 나라”라고 비아냥거린다.

식민사관이 판을 치고 자주독립사관이 무너진 한국은 침략하기 딱 좋은 사회 환경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20여년의 장기 침체와 리더쉽 부재 속에서 아베 총리는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며 강한 일본을 만들겠다고 일본 일체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아베의 얼굴에는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모습이 깃들여져 있는 것이다.

아베는 “나를 군국주의자로 불러도 좋다”라고 선언했다.

일본의 복잡한 내부 사정을 외부로 표출시킨 과거 군국주의는 우리에게 엄청난 민족적 상처를 남겼다.

군국주의 무장이후 첫 실천대상은 늘 가장 가까운 한국이었다.

최근 일본의 비정상적 움직임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중요한 점은 일본이 군국주의로 무장할 때마다 우리나라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는 사실이다.

 

임진왜란 당시 10만양병설은 묵살됐고, 19세기 조선은 쇄국을 고집하다 나라를 잃었다.

임진왜란, 한일병탄에 이어 한국을 정벌하겠다는 3차 경제 정한론은 이미 시작됐다.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를 보자.
일본은 독도를 놓고 끊임없이 도발에 나선다. 시비를 넘어 자기 영토라고 선언했다.

독도를 분쟁의 씨앗, 침략의 촉매로 삼고자 함이다.
일본이 분쟁 희생양을 잡는다면 당연히 중국보다는 한국이다. 그리고 그 대상은 독도이다.

 

임진왜란 때 “일본은 명나라를 치러 가니 길을 비켜달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한일병탄 때도 중국을 먹기 위해 조선을 밟고 갔다.

우리나라를 둘러싼 미.일.중.러의 신경전도 한일병탄 때와 유사하다.

 

미국은 이제 일본을 내세워 중국 팽창을 저지하고 있다.

친일파는 영원히 영속을 하며 부귀를 누리리라는 희망으로 가슴이 벅차오를 것이다.

미국은 일본의 집단 자위권 행사를 인정하고 방위력 증강에 찬성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미국도 도덕과 정의보다는 철저히 미국 국익을 선택한다는 사실을 주지해야 한다.

전범국가를 파트너로 삼고 있는 미국, 그리고 피해국가를 오히려 정복하도록 방조하고 있는 미국을 보라.

 

일본은 북한과의 밀월관계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일본은 정말 외교 하나는 제대로 하고 있는데 한국은 사교에 머무르고 있다.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 대가로 일본은 피해액 3억 달러를 지불했다.

북한에는 300억 달러를 지불하겠다고 한다. 일명 원산 프로젝트다.

임진왜란과 한일병탄시절, 때를 놓쳐 나라가 만신창이가 된 것처럼 21세기 한국이 돌이킬 수 없는 위험에 노출되지 않았는지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다음은 아베 총리의 말이다.

“한국은 그냥 어리석은 국가이다.”
“중국은 어처구니없는 나라지만 아직 이성적인 외교게임이 가능한 반면 한국은 그냥 어리석은 국가”라고 말했다.

16세기말 토요토미 히데요시도, 19세기말 정한론을 주장했던 후쿠자와 유키치도 그렇게 말했다.

 

문제는 21세기 일본지도자가 여전히 한국을 어리석은 국가라고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베총리는 어리석은 한국을 교화하기 위해 반드시 침략한다는 정한론 유전자의 소유자이다.

 

다음은 조선의 마지막 총독이었던 아베 노부유키가 조선을 떠나면서 남긴 마지막 말이다.
“우리는 실패했지만 한국이 승리한 것은 아니다.

장담하건데 한국이 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한국인에게 대포보다 더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놓았다.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조선은 실로 위대했고 찬란했으며 찬연했지만 한국은 결코,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아베 노부유키의 말대로 지금 한국에서 벌어진 역사전쟁을 보면서 이미 식민사학이 사회 깊숙이 뿌리내렸음을 보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일본의 아베총리에서 아베 노부유키의 부활이 보이지 않는가?

 

지금 한국에서는 도종환 의원 문체부 장관 지명을 둘러싸고 역사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독립운동가들이 지향하던 민족사학과 사대주의자들이 지향하던 식민사학과의 대전쟁이다. 

강단사학에서는 도종환 의원의 역사관을 가지고 “유사역사학”, “사이비역사학”에 경도되었다며 강대한 역사를 주장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국수주의, 민족주의 사관이라고 파상공세를 가하고 있다.

그러면 있는 역사와 영토를 줄이는 것이 세계주의사관이란 말인가.

 

이들은 민족을 이야기하면 이상하리만큼 경도된 반응을 일으킨다.

그러면서 ‘국뽕’, ‘국수주의’로 몰아가면서 민족사학을 매도한다.

이러한 이유는 그들의 뿌리가 민족을 배반한 친일식민사관의 후예들이기 때문이다.

동경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1973년 미 펜실베니아대에서 국제 정치학과 역사학으로 박사를 받았으며 하버드대에서 동아시아 국제 관계를 전공한 이홍범 박사는 강대국의 흥망성쇠의 원인을 역사학적으로 분석하면서 한국의 역사학의 현주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따끔한 지적을 했다.

 

역사가 망하면 민족은 멸망합니다. 우리 민족이 망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외래 종교 역사관이 ‘단군은 신화다’ 해서 한민족 민족사관을 파괴해서 자주 민족통일을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걸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민족의 귀중한 역사관을 가지고 민족 자주와 통일 번영을 이루기 위해서 홍익역사관으로 조국의 통일을 이룩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 사사건건 반대하면서 민족사관을 패배시키는 세력들이 이 땅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 세력이 소위 강단사학입니다.

외래 식민사관이 방해하고 파괴하고 그러면 결국 약한 민족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역사투쟁, 역사전쟁 중에 있습니다.

군사경제는 쉽게 알아보지만 보이지 않은 역사관은 역사 통찰력이 없으면 보기가 어렵습니다.

외래사관이 구원이든 사랑이든 평화든 경제번영을 사용하고 실증적인 용어를 들고 나오기 때문에 일반적인 사람들은 밑에 흐르는 진리정신을 통찰하기 쉽지 않습니다.

위대한 민족만이 역사정신권력을 만들어 세계사에 군림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8천만 민족을 통합하는데 실패한다면 우리는 머지않아 멸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공을 한다면 영광스런 조국통일을 이루고 세계 선진대국이 될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자주파와 사대파의 대결-한국 근현대사

진실의 역사

자주파와 사대파의 대결-한국 근현대사
한국의 역사, 한국사를 어떤 관점에서 볼 것인가? 

여러 관점이 있겠지만 큰 흐름으로 자주파와 사대파의 관점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자주파는 한국인 스스로의 노력으로 자주독립과 국가발전 및 번영을 성취할 수 있으며, 한국의 전통 역사와 문화에서 세계문화를 이끌어갈 훌륭한 가치를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반면 사대파는 한국이 주변 강대국에 비해 너무 뒤쳐져 있어서 한국인 스스로 아무것도 해내기 어려우며, 한국의 역사 문화와 가치를 국수주의로 매도하거나 비합리적인 미신으로 치부해 버리는 사람들이다.

대표적인 자주파로는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이나 일제에 맞서 싸운 독립운동가들을 들 수 있다.

반면 사대파로는 한글 창제에 반대한 최만리나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갖다 바친 친일파들이 있다. 대개 자주의식이 약하다 보면 쉽게 외세에 기대어 영달을 꿈꾸지만 대개 남에게 기댔던 인물치고 뒤끝이 좋았던 경우는 없는 것 같다.

 

<제 일은 제가 스스로 하여야 하느니라>
하루는 한 성도에게 '무엇을 사 오라.' 명하시거늘 그 성도가 다른 사람을 대신 시켰더니 일러 말씀하시기를 "그 노고(勞苦)의 대가는 그 사람이 받을 것이니라." 하시니라.
선천은 남에게 기대고 의지하는 바람에 망하나니 너희들은 하다못해 방 벽에도 기대지 말라. 남의 덕 보기를 바라지 말라. 남의 은혜를 많이 입으면 보은줄에 걸려 행동하기가 어려우니라.
낭패(狼狽)란 짐승이 외발이기 때문에 두 마리가 서로 의지하여야 행보(行步)하게 되나니 남에게 의지하면 낭패를 당하리라. (道典8:27)

 

사대파가 무조건 잘못됐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사대파도 시대에 따라서 유익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고정된 무생물이 아닌 생물이기에 상황에 따라 천변만화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대파보다 자주파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만약 자기 스스로 어떤 일을 해내겠다는 사람과 남의 힘을 빌려 편하게 이루겠다는 사람이 겨룬다면, 사람은 당연히 굳건한 자립정신을 가진자를 응원할 것이다.

 

역사 전체를 살펴보건데 한국의 사대파, 즉 사대주의자들은 대개 똑똑한듯 했지만 무지했다.

조선시대의 친명 사대주의자들은 명나라가, 일제강점기의 친일파들은 일본이 패권을 영원히 누릴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들이 영원하리라고 굳게 믿었던 명나라는 고작 300년 만에, 일본은 겨우 36년 만에 패권을 잃고 무너져버렸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가 남긴 후유증은 대한민국 곳곳을 병들게 하였다.

친일파가 주도권을 잡으면서 건국세력이 된 것이다. 독립운동세력이 매국 사대파에 패한 것이다.

이런 사회 구조는 정의가 상실된 한국사회를 만들었다. 그럼으로써 일제의 잔재는 청산되기는커녕, 사회 각 분야에 이들이 요직을 차지함으로써 일제가 뿌리고 간 식민사학의 독버섯에 마취되어 자국의 역사문화를 멸시하는 풍조가 만연하게 되었다.

 

사대주의자들은 항상 스스로 일어나려는 노력보다는 강대국에 기생하여 자국 문화를 깍아내리고 강대국에 아부하며 부귀영달을 누려왔다.

조선에, 명에 기대어 권력을 농단하던 노론계열 인사들은 일제 강점기가 되자 친일매국세력의 주류가 되어 일본에게 잘 보이려고 경쟁적으로 안달을 하였다. 후에 다시 해방이 되고 미군정이 들어서자 반공노선으로 갈아타면서 이번에는 친미를 외쳤다. 이들에게 정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들은 부귀, 출세 이외에 가치관은 없는 것이다.

 

2016년 말에서 2017년 초까지 최순실 사태에서 이들이 보여준 행동은 비정상적일 정도다.

한국 정치와 역사를 바로 세우는데 태극기라면 몰라도 성조기와 이스라엘 국기가 등장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인 것이다.

미국이 없다면 한국의 1만년 역사가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단군 이래 수천년간 찌질이 국가이던 한국이 이승만 정부가 들어서고 기독교국가인 천조국 미국의 원조로 국가 발전이 이루어졌다는 맹종적 사대주의가 아니고 무엇이랴. 2천년 전 거의 부족국가이던 찌질이 한국이 중국 한사군의 지배를 받으면서 철기문화가 전래되면서 고조선이 급속히 국가 발전을 이루었다는 식민사학자들의 주장과 무엇이 다른가.

시대만 달라졌고 사대의 대상이 중국에서 미국으로  달라졌을 뿐 똑같은 논리가 아닌가?

 

사실 조선이 일제에 넘어간 건 미국이 가쓰라 태프트 밀약에서 일본에게 넘겨서 일제 강점기 시대가 열렸던 사실은 알고 있는가? 

1905년 7월 미,일간의 가쓰라 태프트 밀약에 의해 미국은 필리핀을 점유하는 대신 일본이 한국을 점유하도록 밀약을 하였다.

미국의 승인을 받은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하는 수순을 밟게 된다.

이완용도 맨 처음에는 친미주의자였다. 그리고 친일주의자로 바뀐다.

 

지금 국제정세의 흐름을 보면 초강대국인 미국이 단일 패권을 빠르게 상실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한국의 사대파는 여전히 미국이 영원하거나 앞으로 최소한 100년 동안 세계 초강대국으로 남을 것이라 장담을 한다.

정작 미국에서는 중국의 급부상을 막지 못하다면, 2030년이 되기 전에 경제력에서 미국이 중국에 밀리는 신세로 전락한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동안의 역사를 되돌아 보건데 한국의 사대파는 지독하게도 무능했다.

조선시대의 친명 사대주의자들은 “나라는 망해도 명나라를 돕자!”라고 외쳤으나 그토록 숭배하던 명나라가 패망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일제 말기 친일파들은 자기 재산을 털어서 일제에 비행기를 헌납할 정도로 충성을 했으나 일제의 패망을 막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한국의 사대파, 즉 미국을 맹종하는 친미 사대주의자들도(합리적 사대주의야 문제가 없지만) 미국의 쇠퇴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역사에서 사대파들은 자신들이 떠받들던 종주국이 망하는 상황을 막지 못했다.

무지하고 무능한 집단이 한 나라의 정책 결정권을 쥐고 있을 때 이를 불안하게 여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자주파라고 해서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지나친 자주적 성향은 상대와의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다.

지나친 독선적인 주장은 불필요한 마찰과 갈등을 일으켜서 국가에 큰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대파라고 해서 항상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조선의 광적인 친명사대파는 조선을 멸망의 길로 이끌었고, 지금의 맹종적인 친미사대파도 대한민국을 지나친 흑백논리로 이해하고 있다.

자신하고 다른 생각을 가진 자들에 대해 적대적 선악논리를 적용하여 종북좌빨로 몰아붙이면서 대한민국을 좌우로 갈라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외세인 당나라 힘을 끌어들여 통일과 번영을 꿈꿔온 신라의 통일은 결국 북쪽에는 대진국(발해)과 남쪽에는 신라라는 남북 분열시대를 끌고 들어왔다.

지금은 어떠한가. 외세에 휘말린 한반도는 지금 남북이 서로 갈라져 적대를 하고 있다. 이제 주변국과의 슬기로운 외교와 강력한 국방력을 바탕으로하여 분열된 민족정신을 묶고, 외래 가치관이 아닌 우리민족의 문화와 역사로써 우리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해야 통일한국의 앞길이 활짝 열리지 않을까?

동북아에서 넘어간 인디언

진실의 역사

동북아에서 넘어간 인디언

환국의 환족은 베링해협을 건너 남북 아메리카대륙으로도 이주하였다.

이것은 인디언의 언어, 혈액형, 체질, 치아 등을 연구한 고고학자와 인류학자들의 주장과도 일치한다.

눈으로 보기에도 아시아인에 가까운 인디언은 동북아에서 건너 간 사람들인 것이다.

 

인디언과 동북아인의 연관성은 인디언의 생활도구와 풍습에서도 확인된다.

미국 오리건 주에서 발굴된 짚신 75켤레는 동북아의 짚신과 흡사한데 약 9천 년 전의 것이라 한다.

9천 년 전이라면, 그때는 환국시대인 것이다.

수년 전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을 들렀을 때 1층 인디언관에서 본 절구, 소쿠리, 베틀, 어망 등은

우리네 것과 너무나 흡사하였다. 그곳 전시장의 모습은 마치 한국의 시골 풍경을 보는 것 같았다.

 

북미 인디언 마을 입구의 장승과 토템 또한 한국의 그것과 유사하다.

그곳 여인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아이를 업어서 키우며, 어린이들은 우리 아이들이 하는것과 똑같은 실뜨기놀이를 한다.

중남미에 아즈텍문명과 잉카문명을 건설한 인디언 또한 환족과 깊은 연관성을 보인다.

배재대 손성태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아즈텍어(나와틀어)와 잉카어(케추아어)의 문장 구조가 한국어과 유사하며

조사의 종류와 쓰임새도 한국어와 유사하다고 한다. 우리말이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도 여럿 있다.

환족은 하늘의 광명을 숭상하여 흰옷을 즐겨 입었는데, 아즈텍 사람도 흰 옷을 즐겨 입고 사원 건물도 흰색으로 칠하였다.

그들은 또한 아이가 태어날 때 금줄을 치고, 아이를 포대기에 싸서 업고 다녔다.

- 아기가 태어나자, 산파가 점쟁이에게 찾아가서 집 앞에 칠 원형 금줄을 받고, 아기의 운명을 물어보는 장면이다.

  점쟁이를 '다마틴이(tlamatini)'라고 불렀다. 우리말 '다 마친 이(다 맞히는 이)'의 고어.

산위에 있는 산신제를 올리는 곳이다. 줄형 금줄을 치고, 신령한 나무 아래서 무당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줄형 금줄에 대한 설명에는 “새끼줄을 꼬아서 만들었고, 같은 풀로 만든 술이 일정한 간격으로 매달려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멕시코 원주민들은 태어난 아이에게 복을 빌어 주기 위하여, 집 동쪽에 깨끗한 물 한 그릇을 떠 놓고,

  아이를 안고 머리를 동쪽으로 향한 후에, 복을 빌어 주었다는 기록도 있다. 바로 우리 민족의 정한수를 떠놓고 빌던 풍습이다.

 

죽은 사람의 입에 저승 가는 노잣돈으로 옥구슬을 넣어 주고, 자정에 제사를 지내고,

제사를 다 마친 후에는 사용한 종이를 불태우고 음식을 나눠 먹었다.

이러한 생활 방식은 한민족의 육아, 장례, 제사 풍습과 너무도 유사하다.

 

남북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 문화와 한韓 문화의 관계에 대해 손 교수는

“직접적인 관련 없이 이처럼 공통점이 많기란 불가능하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인디언문명은 한민족의 조상이 베링해협을 넘어 가 개척한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고고학자나 인류학자들은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이었던 인디언이

아시아의 동부지방에서 살던 민족이 베링해협을 건너 북아메리카로 건너갔다는 데 일치된 견해를 갖고 있다.

이것은 언어, 혈액형, 체질(형질), 치아모양 등의 과학적 연구방법(DNA 추적)을 통해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 부족 최고 지도자 '아파치'는 초대 환인 '안파견'에서 유래된 것.
 - 북미에서 발굴된 짚신 75켤레는 약 9천년 전의 것이며, 동이족의 짚신과 흡사.
 - 인디언 들이 쓰던 나무절구, 소쿠리, 광주리, 삼태기, 베틀, 어망, 물레 등은 우리선조들이 쓰던 것과 거의 동일한 것이다.

- 영국 런던대 연구진은 캐나다에서 칠레에 이르는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들의 DNA 염기서열을 분석한 결과,

  최초의 이주민은 베링해가 얼어 육교를 이뤘던 1만5천여년 전 빙하기에 처음 시베리아로부터 건너온 아시아인 집단이었고

  이후 두 차례의 이주민은 중국의 한족과 유전적으로 가까운 집단임이 밝혀졌다고 네이처지에 발표했다.

 

- 인류의이동-Y염색체와 mtDNA로 추적그래프지도.

- 연세대의대 법의학과 신경진ㆍ이환영 교수팀은 1970년부터 2004년까지 선사시대 및 역사시대 유적지 중

  11곳(구석기시대 1개, 신석기시대 3개, 청동기시대 2개, 백제시대 1개, 고려시대 4개)에서 출토된 유해 35구의

  미토콘드리아 DNA(mtDNA)유전자형을 분석한 결과를 이 분야 국제저널(Human Biology) 최근호에 게재했다.(2009-01-14)

  초기 선사시대 한국인 집단이 알타이산맥의 북쪽 지역과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수로부터 기원했다는

  기존의 가설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결과라는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한민족은 파미르고원의 동방에 위치하는 천산(天山)산맥을 시원으로 하여, 시베리아에 있는 바이칼호를 근거로

천지(天地)로 이어지는 경천숭조(敬天崇祖) 전통을 지닌 인류시원 문명의 장자(長子)민족이다.  

그리고 이 중앙아시아 천산을 기점으로 북방문명의 시조인 대단위의 부족국가가 있었다는 것을 

역사적 문헌으로 밝히고 있는 곳은 우리나라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