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만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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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생활속 칠성문화③-윷놀이
  2. 아스테카인은 상투한 백의민족

생활속 칠성문화③-윷놀이

진실의 역사

[환단고기] 칠성七星문화

 

STEP2. 동·서양의 칠성문화

 

2. 생활속의 칠성문화


상투문화
동북아 민족들 중 유독 한민족에게서만 볼 수 있는 칠성문화가 있습니다.

바로 머리를 틀어 올리는 상투입니다.

상투는 상두上斗라고 합니다.

 

상투를 틀 때 앞으로 4번, 뒤로 3번 꼰다는 것은 북두칠성을 내려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상투는 머리꼭대기에 틀어 올려 꼿꼿하게 세우는 머리기둥으로써 하늘로부터 오는 기운을 받는 장소입니다.

사람의 몸에 세운 솟대라 볼 수 있습니다.

 

홍산문화 유물 중에 발견된 옥고에서 알 수 있듯이, 상투는 태고 시대에 시작되어 수천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생활문화입니다.

상투는 내 머리를 삼신상제님이 계시는 칠성을 향하게 하여 항상 상제님과 한마음으로 살겠다는 의지와 정성의 표현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상투를 시대에 뒤처지는 구습으로 알지만, 사실 상투문화에는 삼신상제님을 받들던 인류의 원형문화인 신교의 혼이 담겨 있습니다.

 

상투문화는 우리와 형태는 약간 다르지만, 중국 남방의 묘족에서 확인할 수 있고, 20세기 초 아메리카 인디언과 중미의 아즈텍인들에게서도 살필 수 있습니다.

그들과 우리는 문화적으로 혈연적으로 가까운 같은 계열의 한 민족인 것입니다.


윷놀이
한국의 대표적 민속놀이 중의 하나인 윷놀이도 칠성문화의 한 가지로, 북두칠성이 하늘을 도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윷의 기원에 대해 단재 신채호는 부여에 그 기원을 두었으며, 더불어 말하기를 부여의 제가諸加가 윷에 투영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저가猪加가 돼지를 뜻하는 ‘도’에, 구가狗加가 개를 뜻하는 ‘개’에, 양가羊加가 양을 뜻하는 ‘걸’에, 우가牛加가 소를 뜻하는 ‘윷’에, 마가馬加가 말을 뜻하는 ‘모’에 반영되었다고 합니다.

윷판의 바깥이 둥근 것은 하늘을 본뜬 것이요, 안의 모진 것은 땅을 본뜬 것입니다.

 

윷놀이에는 천문 역법과 역학의 수리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단군세기」에서는 천하天河에서 거북이 윷판을 지고 나왔다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윷판은 하늘의 법칙을 담고 있는 천강서이고 윷놀이는 놀이이면서 동시에 우주만물의 변화 원리를 탐색하는 가장 철학적인 문화입니다.

 

丙午十六年(병오십육년)이라 東門外十里(동문외십리)에 陸地生蓮(육지생련)하고 不咸(불함)에 臥石自起(와석자기)하고
天河(천하)에 神龜(신귀)가 負圖而現(부도이현)하니 圖如柶板(도여사판)이오

 

역주 (10세 노을단군) 재위 16년 병오(단기 399, BCE 1935)년, 동문 밖 십 리 떨어진 땅 위에 연꽃이 피었고, 불함산에서 누웠던 돌이 저절로 일어났으며, 천하天河에서 신령스런 거북이 그림을 지고 나타났는데 그 모양이 윷판과 같았다. (「단군세기」

 

適以是時(적이시지)에 紫府先生(자부선생)이 造七回祭神之曆(조칠회제신지력)하고
進三皇內文於天陛(진삼황내문어천폐)하니 天王(천왕)이 嘉之(가지)하사 使建三淸宮而居之(사건삼청궁이거지)하시니
共工軒轅倉頡大撓之徒(공공헌원창힐대요지도)가 皆來學焉(개래학언)하니라. 於是(어시)에 作柶戱(작사희)하야
以演桓易(이연환역)하니 盖神誌赫德所記(개신지혁덕소기) 天符之遺意也(천부지유의야)라.

 

역주 마침 이때 자부 선생이 칠회제신력七回祭神曆 을 만들고 『삼황내문三皇內文』을 천황께 바쳤다. 천황께서 기뻐하시고 삼청궁三淸宮을 지어 기거하게 하셨다. 공공·헌원·창힐·대요의 무리가 찾아와서 모두 자부 선생에게 배웠다. 그때 윷놀이를 만들어 「환역桓易」을 자세히 설명하였는데, 대체로 신지神誌 혁덕赫德이 기록한 『천부경』이 전하는 취지이다.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조선 선조 때의 문인 김문표金文豹는 윷판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윷판의 바깥이 둥근 것은 하늘을 본뜬 것이요, 안의 모진 것은 땅을 본뜬 것이니, 즉 하늘이 땅바닥까지 둘러싼 것이다. 별의 가운데 있는 것은 북극성이요, 옆에 벌여 있는 것은 28수를 본뜬 것이다. 북두칠성이 제 자리에 있으며 뭇별이 둘러싼 것을 말한다.”라고 하였습니다. [柶之外圓象天, 內方象地卽天包地外也. 星之居中者 樞星也. 旁列者 二十八宿也.卽北辰居所 而衆星拱之者也.]”(『중경지中京誌』 「사도설柶圖說」)

         

아스테카인은 상투한 백의민족

진실의 역사

아스테카인은 상투한 백의민족

 

14-16세기 멕시코에서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던 아스테카(Azteca)인이 한민족이라는

논문을 발표해 학계에 반향을 일으킨 배재대 손성태 교수가

"그들이 상투에 흰옷을 즐겨 입고 윷놀이도 하는 등

우리 민족과 문화적 동질성을 갖고 있었다"고 주장을 하였습니다.

 

손 교수는 고려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가 주관하는 추계 학술 세미나를 앞두고 발표한

'라틴아메리카로 건너간 우리 민족의 문화적 문헌적 증거 : 아스테카인, 그들은 상투한 백의민족이었다'라는 논문에서

"아스테카인이 남긴 문헌이나 유물을 조사해본 결과

이들은 흰색을 숭상하고 흰 옷을 즐겨 입었으며, 우리의 전통놀이와 똑같은 윷놀이를 했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그들의 윷놀이 방식은 우리의 것과 흡사해 윷판에 사용한 돌도 '말'이라 불렀고

단번에 '모' 자리에 오면 '좋다'라고 외쳤다."

"또한 그들이 남긴 그림을 보면 남자들의 머리는 상투했고,

여자들은 머리에 수건을 써 우리들의 모습과 일치할 뿐아니라

의상도 4세기 고구려 무영총 벽화에 나오는 의복의 특징과 일치한다."

"아스테카인들의 제사 의식도

각종 음식을 차려놓고 먼저 향을 피우고 땅에 엎드려 머리를 숙이는 방식으로 진행돼 우리와 비슷했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고어인 '나와들어(語)'와 우리말의 '고어(古語)'를 비교하면

어순과 발음, 문장의 구조적, 형태론적인 면 등이 일치하고 있으며,

이는 아스테카인이 한민족이라는 증거"라고 주장해 학계의 관심을 끈 바 있습니다.

 

아스테카인은 멕시코 북방의 아스틀란 지방에 살다가

12세기부터 남방으로 이동하기 시작해

멕시코 중앙고원에서 강력하고도 독자적인 인디오 문명을 세웠으나

1520년 스페인 군대의 침입으로 멸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