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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 위서론 쟁점④-표절의혹

진실의 역사

환단고기 위서론 쟁점④
◉ 다른 사서의 영향과 표절의혹에 대한 반론

 

위서론자들은 다른 사서들에 『환단고기』의 내용이 들어 있는 경우, 환단고기가 다른 사서의 영향을 받았다거나 그 내용을 일방적으로 베낀 것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환단고기에 나오는 ‘삼조선’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 기록되어 있으므로 『환단고기』는 『조선상고사』를 베낀 책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환단고기에는 『조선상고사』에서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삼조선의 배경이 되는 삼한과 삼신관이 동방의 원형 문화로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고, 독창적인 우리 한민족의 역사관이 밝혀져 있다.

그렇다면 어느 것이 먼저 존재했는지 자명하지 않은가.

또한 광개토태왕비 비문에 나오는,
‘17세손 국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 十七世孫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에대한 해석만 보아도 『환단고기』와 『조선상고사』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상세한 정보를 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유교 사대주의 사관으로 쓰인 『삼국사기』는 ‘고구려 역사는 700년이고 광개토태왕은 추모鄒牟 왕의 13세손’이라 하였다.

『조선상고사』는 『삼국사기』의 이러한 부정확한 내용을 비판한다.

그리고 『삼국사기』에서 부정한 『신당서』의 기록, ‘가언충의 고구려 900년 유국설留國說’을 근거로 할 때 『삼국사기』는 고구려 역사 200년을 삭감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당시 전쟁이 벌어지고 있던 요동을 시찰한 시어사 가언충賈言忠이 당 고종에게 올린 보고 중에 “『고구려비기』에 이르기를, 고구려는 900년을 넘지 못하고 팔십 먹은 장수에게 망한다고 하였습니다”라고 말한 대목을 가리킨다.

‘고구려 900년’은 해모수가 북부여를 건국하고 오가의 공화정을 폐한 BCE 232년에서 고구려가 망한 CE 668년까지를 뜻한다.

 

그런데 『환단고기』를 보면 그 진실이 명쾌하게 밝혀진다.

환단고기의 기록으로 광개토태왕비 비문에 나오는 ‘17세손’의 내력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환단고기』의 「삼성기 상」·「북부여기」·「고구려국본기」를 통해 고구려 제왕의 초기 혈통계보가 천제자天帝子인 제1세 해모수(BCE 239년에 단군조선을 계승하여 북부여 건국)→제2세 고리국의 제후 고진(해모수의 둘째 아들)→제3세 고진의 아들→제4세 옥저후 불리지(고진의 손자)→제5세 고주몽(고진의 증손자) … 제17세 광개토태왕(주몽의 13세손)으로 정립됨으로써, 고구려 900년 유국설이 입증되는 것이다.

삼성기 상 원본을 살펴보기로 한다.
▶至癸亥春正月하야 高鄒牟가 亦以天帝之子로 繼北扶餘而興하사 復檀君舊章하시고 祠解慕漱하사 爲太祖하시고 始建元하사 爲多勿이라하시니 是爲高句麗始祖也시니라. (삼성기 상)
⇒해설 : 계해(단기 2276, BCE 58)년 봄 정월에 이르러 고추모(고주몽)가 역시 천제의 아들로서 북부여를 계승하여 일어났다. 단군의 옛 법을 회복하고 해모수를 태조로 받들어 제사 지내며 연호를 정하여 다물多勿이라 하시니, 이 분이 곧 고구려의 시조이시다. (『삼성기』 상)


즉 광개토대왕은 북부여를 건국한 해모수를 태조로 하여 제사를 지냈다고 광개토대왕비에 정확히 기록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부여 4세+고구려13세를 더하면 광개토 대왕이 17세손임을 밝혀주는 유일한 사서는 바로 환단고기임을 알 수 있다.

이로써 오히려 환단고기를 통해서 완벽히 광개토대왕 비문의 해독이 가능해졌다. 결코 조작된 위서가 아닌 것이다.

 

이렇듯 『조선상고사』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불신하는 데에 그치지만, 『환단고기』는 『삼국사기』 「고구려국본기」 기록의 본래 진실까지 담고 있다.

따라서 환단고기가 『조선상고사』의 영향을 받아서 조작되었다는 위서론은 터무니없는 낭설일 뿐이다.

각종 사서史書에 나타나는 ‘900년 유국설’의 진실은 오직 『환단고기』와 대조, 분석해 봄으로써 분명하게 알 수 있게 된다.

 

현現 가톨릭대학교 교수인 이순근은 『단군세기』 서문에 나오는 “국유형國猶形하고 사유혼史猶魂하니(나라는 형체와 같고 역사는 혼과 같으니)”라는 구절이 박은식의 『한국통사韓國痛史』의 내용과 유사하므로, 『환단고기』는 박은식의 책을 베낀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다.

왜냐하면 『환단고기』는 기존에 전수되어 내려오던 삼성기.단군세기.북부여기.태백일사를 묶어서 1911년에 발간되었고, 박은식의 『한국통사』는 1915년에 발간되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구절은 『단군세기』 서문에서 역사관을 전개하기 위해 댓구적 문장으로 표현한 것인데, 그것이 어떻게 베낀 것이란 말인가.

오히려 『한국통사』의 문장이 ‘옛사람(古人)’의 말을 인용하면서 나라와 역사에 대해 언급하는 형식이므로 박은식이 다른 역사서를 인용한 것이다.

 

위서론자들은 원문 자체를 분석하지 않고, 글의 전체 논리 흐름도 파악하지 못하면서 유사한 한 구절을 떼어다가 억지 주장을 펴고 있다.

원문은 이렇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나라는 멸망할 수 있어도 역사는 멸망할 수 없다 하였으니 대개 나라는 형체요 역사는 정신이라[古人云 ‘國可滅, 史不可滅’, 蓋國形也, 史神也](박은식, 『한국통사』 서문).

이때 박은식이 인용한 ‘옛 사람의 말’은 행촌 이암의 『단군세기』 내용일 가능성이 크다.

 

또 『환단고기』 범례에 ‘낭가’라는 말이 나온다.

위서론자들은 ‘단재 신채호가 처음 사용한 낭가라는 말을 환단고기 서문을 쓴 계연수가 따온 것이기 때문에 환단고기는 그 후에 성립됐다’는 논리를 편다.

그러나 사실 『환단고기』는 낭가 문화의 원형인 삼랑三郞과 그 이후의 낭가 맥을 최초로 전해 주는 책이다.

 

이순근은 『단군세기』에 나오는 삼신일체三神一體 논리가 기독교의 삼위일체三位一體 사상을 모방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박광용 또한 “교리체계에서도 환인(하느님)의 조화, 환웅(예수)의 교화, 단군(성령)의 치화를 생각나게 하는 삼신(삼위)일체론 부분은 … 기독교에 대한 단군신앙의 교리적 대응에서 나온 것이다. 또 영혼, 각혼, 생혼의 성삼품설聖三品說이 보이는 부분도 『천주실의』에서 마테오리치가 이야기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단군세기』의 삼신일체 사상과 삼혼 논리가 명나라 때 예수회 선교사였던 마테오리치Matteo Ricci 신부가 지은 『천주실의天主實義』에서 말한 성삼품설聖三品說을 흡수한 것이므로 『환단고기』는 기독교가 전래된 후에 지어진 것이라는 주장이다.

 

『환단고기』에서 제기되고 있는 동서 신관의 중심 언어인 ‘삼신일체상제三神一體上帝’란 무엇인가?

‘조물주로서 얼굴 없는 하나님인 삼신과 한 몸이 되어 직접 우주 만유를 낳고 다스리시는 인격적 하나님’을 말한다.

비인격적인 삼신만으로는 이 우주에 어떠한 창조와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우주 질서의 주권자이신 삼신일체상제의 조화손길이 개입될 때 비로소 천지만물이 창조되고 변화한다.

삼신일체상제, 이 한 마디에는 조물주가 어떤 원리로 우주를 다스리는지 그 해답이 담겨 있다.

 

그러나 기독교의 삼위일체는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하나인데,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세 위격位格으로 계신다’는 뜻이다.

따라서 『환단고기』가 말하는 동방의 ‘삼신일체상제’와 기독교의 ‘삼위일체 하느님’은 본질적으로 전혀 다르다.

또한 마테오리치 신부가 말한 성삼품설의 영혼·각혼·생혼은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의 삼혼설에서 말하는 영靈·각覺·생生과 용어는 같으나 그 의미와 사상적 배경이 다르다.

환단고기에서 말하는 삼신설이나 삼혼설은 고대 동북아 문화의 우주론, 삼신관을 바탕으로 한 ‘삼수 원리’에 토대를 둔 것이고, 생활 문화 속에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개념이었다.

이것을 당대 최고의 철학자이자 정치가이던 행촌 이암이 『단군세기』를 저술하면서 수용한 것이다.

 

반면 마테오리치 신부의 성삼품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삼혼설에 토대를 둔 것이다.

『태백일사』「삼신오제본기」에서 말한 “영각생靈覺生 삼혼三魂”은 삼혼칠백三魂七魄의 삼혼을 말한다.

 

위서론자들은 삼신, 칠성 문화, 용봉 문화, 천지 광명의 환단 문화에 대한 기초 개념조차 정립하지 못하고, 동북아시아의 전통 문화의 기반인 삼신 우주관에 대해 치밀한 문헌 고찰도 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환단고기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의식 자체가 없고, 책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지성과 우주론이 결여된 자들이다.

원전 자체를 체계적으로 읽지 않고, 그 가치를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엉뚱한 논리를 만들어 아전인수 격으로 부정을 일삼고 있는 것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면서 불순한 목적을 가진 세력들이 동방의 오랜 전통문화와 한민족의 숨겨진 원형역사가 담긴 환단고기를 이단과 사이비로 몰고 갔다.

무당, 민족사학, 샤머니즘, 오방낭 등을 거론하면서 민족종교와 민족사학을 도매급으로 사이비로 매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전통문화를 사이비나 미신으로 매도한 것은 일제 강점기이후 민족종교 말살정책의 일환이였으며 해방이후에는 개신교계의 세력 확장 전략이었다. 

 

특정종교와 언론이 자신들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교리를 바탕으로 타문화, 타종교에 배타적이고 공세적인 자세를 취하며 동방문화와 역사를 배척하고 타도하려는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여론몰이를 하는 것이다.

자랑스러운 선조들의 역사를 가르치겠다는 국정교과서는 국정교과서가 나오기 전부터 ‘환빠교과서’라고 엄청난 음해를 하는 여론몰이를 하더니만 뚜껑을 열고 보니 정작 실린 것은 찬란했던 우리의 상고사 환단고기 내용은 한 줄도 없고 여전히 식민사학 논리를 고수하며 친일 뉴라이트 역사관과 식민사학을 더욱 공고히 뿌리를 내리도록 기술을 하였던 것이다.

최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는 일본 극우 단체들의 지원금이 국내 유수대학과 일본 유학파 출신들에게 지원하여 신친일파를 만드는 정책이 상당히 성공하였다고 분석했다.

특히 일본의 극우교과서를 추진하는 새로운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한국의 뉴라이트 단체와 상당한 친선교류를 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식민사학자와 외래사대주의, 그리고 자학사관자들이 매도하는 『환단고기』는 국정교과서 농단 사건에서 가장 큰 피해와 음해를 당했다.

자국 역사를 어떻게든 깍아내리려는 이들은 일본 극우 단체의 자금을 받고 일본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찬란하게 실존했던 한국의 고대사는 기술도 하지 않으면서 언론을 통해서 국정교과서는 환빠교과서로 여론몰이를 했다.

이들은 교활하게 민족사학을 매도하면서 자신들의 목적을 반영했다.

뉴라이트는 오히려 이전의 친일식민사학자들보다도 한술 더 떠서 친일을 미화했다.

왜냐하면 이들의 성공기반이 친일에 있었기 때문이다.

국정교과서 사건은 한국사학계가 식민사학이 주류임을 다시 한 번 입증을 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