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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 위서론 쟁점③-근대술어사용

진실의 역사

환단고기 위서론 쟁점③
【근대술어를 사용했기에 위서라는 주장에 대한 반론】

위서론자들은 국가·문화·평등·자유·헌법·인류·세계만방·산업 같은 근대 용어가 쓰였다는 이유로 『환단고기』는 최근세에 쓰인 책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언어 용례를 근거로 한 위서론자들의 주장은 얼핏 들으면 그럴 듯해 보인다.

그래서 이러한 주장이 위서론 바이러스를 전파하고 감염시키는 큰 힘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고전을 읽어 보면 이미 오래전부터 위와 같은 용어가 여러 곳에서 쓰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단어의 의미가 지금과 차이가 있을 수도 있지만, ‘문화’나 ‘인류’는 최소한 1,600년 전부터 고전에서 사용되었다.

문文과 화化가 결합된 문화라는 말은 고대에 이미 사용되었고, ‘문으로써 가르쳐 변화시키다[以文敎化]’라는 뜻이었다.

 

2천 년 전에 나온 유향劉向(BCE 77~BCE 6)의 『설원說苑』 「지무指武」에서 “성인이 천하를 다스릴 때에는 문덕을 먼저 쓰고 무력을 나중에 썼다. 대체로 무력을 쓰는 것은 복종하지 않기 때문인데, 문덕으로 교화해도 고쳐지지 않으면 그 뒤에 토벌한다[聖人之治天下也, 先文德而後武力. 凡武之興, 爲不服也, 文化不改, 然後加誅]”라고 하여 문화는 말을 쓰고 있다.

 

‘인류’란 말은 『장자』 「지북유知北游」편에서 “생물은 이를 서러워하고, 사람은 이를 슬퍼한다[生物哀之, 人類悲之]”라고 하여 인류라는 어휘를 사용하였다. 이처럼 인류는 중국의 전국시대(BCE 403~BCE 221) 이전부터 사용된 말이다.

 

구마라습鳩摩羅什의 『금강경』에는 ‘평등’이란 용어가 사용되었고, 인도 승려 구마라습(344~413)이 한문으로 번역한 『금강경』 「정심행선분淨心行善分」에, “이 법은 차별이 없어 높고 낮음이 없다[是法平等, 無有高下]”라고 하여 ‘평등’이란 어휘가 사용되었다.

 

‘국가’란 말은 『주역』 「계사繫辭」 하의 “군자는 편안할 때에도 위태로움을 잊지 않고, 존립해 있을 때에도 멸망을 잊지 않으며, 잘 다스려질 때에도 어지러움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몸을 보전할 수 있고, 나라와 집안을 보전할 수 있는 것이다[君子安而不忘危, 存而不忘亡, 治而不忘亂, 是以身安而國家可保也]”라는 구절에서 ‘국가’라는 말이 고대에도 쓰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전국시대 역사서인 『국어』에서는 ‘헌법’이란 용어가 사용되었다. 『국어國語』 「진어晉語」편을 보면, “선행을 상주고 간악한 행위를 벌주는 것은 나라의 법이다[賞善罰姦, 國之憲法也]”라고 하여, ‘법’·‘법전’을 뜻하는 ‘헌법’이 나온다.

 

‘산업’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업業은 본래 신교의 우주론을 담고 있는 언어이다.

인도어 ‘카르마’가 업으로 번역되어 쓰이기 이전부터 한민족은 우주의 업 사상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

한국 고유의 ‘업’은 ‘천지의 이상을 성취하기 위해 인간이 지극히 신성한 공력을 들이는 것’을 말한다.

이 업이 시대 변화에 따라 의미가 바뀌어 오늘날 ‘산업’이란 말이 된 것이다.

 

본업·직업·악업·선업이라는 말에서 보듯이, 업은 고전에서 적어도 1~2천 년 전부터 쓰인 용어인데, 이 땅의 주류 강단사학자들이 무지해서 그 사실을 전혀 모르는 것이다.

환단고기 위서론자들은 부정을 전제로 한 비뚤어진 역사의식으로, 학자의 양심을 의심하게 하는 불성실성으로 시원 동방문화의 창업자인 한민족 고유의 대도 역사서 『환단고기』를 대하고 있다.

이들은 어찌하면 찬란했던 우리 역사의 진실이 담긴 환단고기에 불리한 사료가 있는 것만 찾아서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다.

조금이라도 우리 고대사에 불리한 자료가 나오면 무슨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쾌재를 부른다.

 

말 근대어가 가필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환단고기』 자체가 완전 조작된 위서임을 증명하지는 못한다.

류사의 여러 경전을 돌이켜보라.

수백, 수천 년의 세월 속에서 끊임없는 가필과 재편집을 통한 보정 작업 끝에 오늘날의 경전이 되지 않았는가.

인류사의 주요 고전도 원전이 전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개 필사되거나 후에 보정이 되어서 전해진 경우가 대다수다.

『주역』은 태호 복희씨에서 공자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완성되었고, 『도덕경』은 왕필이 『덕경』과 『도경』의 본래 순서를 뒤집어 재구성한 것이다.

동양의학의 성서인 『황제내경』은 황제 헌원에 가탁하여 전국 시대를 거쳐 한대에 성립되었고, 불교의 『화엄경』도 분리되어 있던 경전들이 수차례의 결집을 거쳐 후대에 편집된 것이다.

 

환단고기를 구성하는 다섯 권의 사서가 천 년에 걸쳐 쓰여졌다는 사실과 그 중 가장 나중에 쓰인 『태백일사』가 나온 지 400년이 지나 『환단고기』가 묶어졌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원래 다섯 저자가 쓴 원본이, 무수한 전란과 외세의 사서 강탈을 피하여 온전히 전해졌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계연수가 모은 다섯 권은 필사 과정에서 인물, 연대, 장소가 오착되거나 가필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때문에 환단고기의 일부 술어와 연대 표시가 사실과 다르거나 다른 사서와 다소 어긋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인류의 시원 역사, 한민족의 국통 맥, 태곳적 한韓문화의 다양한 모습을 밝혀 주는 환단고기의 독보적인 가치를 결코 무시할 수는 없다.

그리고 계연수가 처음 펴낸 후 70년이 지나 이유립이 스승의 뜻을 받들어 환단고기를 다시 펴낼 때 가필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의도적인 조작과 첨삭이 아니라 누구의 손에 의해서든 꼭 이뤄져야 할 보정 작업이라 할 것이다.

더구나 그 보정도 원전을 훼손하지 않는 아주 미미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환단고기 역주

◆ 환단고기 술어의 고전『古典』 사용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