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만큼 보인다

명판관 여주 선생의 실제 저승 재판기록①

서프라이즈

'저승문답'(원저 : 유명문답록幽冥問答錄)1945년 전후 중국 제2의 포청천으로

명성을 드날렸던 명판관 여주(黎澍) 선생의 실제 저승 재판기록입니다.

 

저승에 대한 얘기를 명부에서 벌어지는 재판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전부 사실이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저승세계에 대해 조금 더 접근할 수 있는 글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다시 한번 되돌아 보게 하는 글이기도 합니다.

 

<죽음의 순간에 관하여>
⊙ 저승에서는 어떻게 이승 사람을 써서 저승으로 데려갑니까?

→ 부유하고 고귀한 사람들은 그 저택에는 항상 많은 신들이 수호하고 있고,

그 사람의 좌우에서 심부름하는 사람들은 오랫동안 날쌔고 힘이 장사이어서

양기(陽氣)가 왕성하기 때문에, 저승사자가 그 사람 병상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비유하면 장군이 병영 안에서 병들어 죽으면 그 4주 동안은 경위가 삼엄하고 창과 대포가 죽 늘어서 있으며,

영내의 병사들은 또 모두 소년들이어서 양기가 펄펄 끓고 있어서

저승사자 귀신이 그 앞에 가까이 갈 방법이 없기 때문에 반드시 산 사람의 혼을 써서 그를 끌어갑니다.

 
⊙ 칼로 목이 잘려 죽거나 기타 참혹하게 죽은 귀신들은 그 몸뚱이와 머리가 온전치 못한데,

    그 영혼들은 보통 병들어 죽은 귀신들과 구분이 있습니까?

→ 그 영혼만은 모두 온전하여 보통 귀신과 다름이 없습니다.

오직 그 얼굴 모습만이 조금 모호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그 상처에 핏자국이 남아 있고, 용모가 참척하여 고통이 있는 것 같습니다.

 

⊙ 사람이 처음 죽을 때 영혼이 육체를 떠날 적에 역시 고통이 있습니까?

→ 사람이 죽을 때는 모두 질병이 있고,

영혼이 육체를 떠날 때는 마치 방문을 열고 외출하는 것 같아서 처음에는 곤란이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아프고 괴로운 고통을 되돌아보면 도리어 편안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가 처자식들을 불쌍히 여기고 또는 두고 온 재산에 미련을 두어 마음속에 간직하고 숨이 떨어지지 못하면

영혼이 쉽게 육체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 때가 가장 고통스럽습니다.

 

만약 이 사람이 타고난 성품이 맑고 깨끗하여 욕심이 없고, 처자식과 재산에 대해서 또한 미련과 끌리는 욕심이 없다면,

영혼이 육체를 떠날 적에 곧바로 옷을 벗듯이 훌훌 떠나 가는데, 조금도 힘을 허비하지 않습니다.


⊙ 사람이 죽은 뒤에 그 귀신의 뜻은 얼이 빠져 꿈속 같은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으면 맑고 성성하여 평상시와 같습니까? 
→ 맑고 성성하여 살아 있을 때와 같습니다.

<저승의 생활환경 여건>
⊙ 저승에도 낮과 밤이 있고, 해와 달, 별들이 있습니까?

→ 저승에도 역시 낮과 밤이 있어 이승과 똑 같습니다. 그러나 오직 해와 달, 별들은 절대로 볼 수 없습니다.
그 정황의 모습은 마치 사천(四川)에 큰 안개가 낀 것 같고 회북(華北)에 뿌연 항사 덮인 날씨와 같아서

이승의 밝은 세계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귀신들은 따스한 8시 이후 부터 11시까지에 이르러서야 활동을 그칩니다.

그리하여 귀신들은 양기가 터지기 시작하면 모두 어둡고 그늘진 곳으로 피하여 숨습니다.

오후에 그늘이 점점 많아지면 외출합니다.

 

⊙ 저승에서는 어떤 책력을 씁니까? 음력입니까? 양력입니까?

    그리고 모든 공문서에 역시 년, 월, 일을 씁니까? 

→ 예, 만청(滿淸)시대에는 만청시대의 책력을 썼고, 공문서에서 쓰는 년, 월, 일도 이승과 똑같습니다.


⊙ 저승에도 또한 비, 바람, 눈, 서리가 있습니까?

→ 보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이승의 비, 바람, 눈, 서리를 만날 때 저승의 모든 귀신들 역시

그 추위에 덜덜 떨면서 괴로워하고 또 잔뜩 웅크리고 오그라 들어 편치 못한 상태를 보입니다.

 

⊙ 저승에도 춥고 덥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습니까?

→ 예, 그렇습니다. 다만 여름에는 이승 같은 무더위가 없고 겨울에도 이승 같은 매서운 추위에 비해 덜 춥숩니다.


⊙ 저승에도 음식점이 있습니까? 그리고 이승 사람이 만든 종이돈을 저승에서 사용할 수 있습니까?

→ 예, 음식점이 있지요. 거기에는 나물같은 음식 종류가 많습니다.

이승 사람이 만든 종이돈을 저들도 또한 사용해서 물건을 살 수가 있습니다.

나는 영계靈界를 보고 왔다②

서프라이즈

나는 영계靈界를 보고 왔다
- 광대무변한 신명계의 실상을 세상에 알린 스웨덴보그 -
 

 “나는 과거 20여년 간에 걸쳐서 육체를 이 세상에 두어둔 채

   영이 되어 인간이 죽은 후의 세계, 즉 영혼의 세계를 출입해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많은 영들과 어울려 수많은 일을 보고 들었다.
 내가 지금부터 여기에 기술하는 것은
 나 스스로 견문하고 체험한 것의 전부이다.”(스웨덴보그)
 

스웨덴보그가 고향 스웨덴을 떠나 이국땅 영국에 머물던 어느 밤,

그에게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인물(영적 존재)이 나타난다.
 
그로부터 “나는 너를 인간이 죽은 후에 가는 영의 세계로 데리고 가겠다.

그 세계에서 보고들은 바를 겪은 그대로 기록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라”는 말을 듣게 된다.

 

이로부터 ‘죽음의 기술’이 생겨 자신의 육체를 두고

자유로이 영계로의 출입이 가능하게 되었는데,

그가 영계를 다녀올 때는 다른 사람의 출입을 금하고

자기 방에 틀어박혀 며칠씩 밥도 먹지 않았다고 하며,

이를 이상하게 여긴 하숙집 주인의 증언에 의하면

그 기간은 2∼3일에서 10일 정도였다고 한다.

영계와 이 세상은 별개의 세계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이다.
이것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면,
이 세상은 영계라는 광대무변한 공간 속에 붕 떠있는 작은 고무공과 같다.
물론 고무공 속에도 영계는 스쳐 들어가 있다.
사실은 고무공 속도 영계인 것이다.
고무공 속 이외의 모든 공간은 영계이지만,
고무공 속만은 예외적으로 자연계와 공간을 초월해있는
영계의 두 세계가 같은 공간 안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태고적 인간들의 영혼을 만난 스웨덴보그
‘성운의 단체’라 불리는 단체를 방문하여
태고적 인간들의 영을 만나 나눈 대화도 기록하고 있는데
그들에 대해 이렇게 전한다.  

“그들은 이성이나 지성의 예리함 등은 어느 면에도 나타나 있지 않았고,
다른 영들과 다름없이 순진하고 순박하여
마치 동심(童心)이 그대로 얼굴이 된 듯한 온화함과 평화스러운 인상을 주었다.” 

 

“그들의 마음은 우주의 길[道]을 전부 순진한 마음으로
솔직하게 받아들여 생활하고 있었다.
태고적 사람들은 영적인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지남에 따라 세속적이거나 물질적인 것,
외면적인 지식이나 학문 등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고
그에 따라서 영적인 일에 대해서는 차차 멀어져 가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들은 영이나 영계가 있는 것조차도 알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인간계와 영계의 생명의 비밀문.
그렇다면 모든 인간과 영계의 생명의 원천은 무엇인가?
스웨덴보그가 최초로 영계에 들어갔을 때,
그는 가슴 정도의 높이에 떠있는 태양을 보고 놀라워했다.
다른 영이 영계의 태양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모든 생명은 생명의 원천과 이어짐으로써
비로소 생명이 있는 것이며, 그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영계의 모든 영은 태양과 연결되어 그 영원한 삶을 향유하게 된다.
영계의 태양은 그 빛이 영계를 비추어 영들에게 사물을 보게 하고,
또 사물을 생각하는 이성(理性)의 기초가 되고 있고,
그 열은 영들에게 생명을 부여하고 있다.” 

 

이러한 생명의 원천에 대해 스웨덴보그는
‘영계의 태양과 그 태양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영류’로 설명한다.
즉, 직접적으로 영류를 받아들여 사는 영 이외의 인간과 생명은,
그 속에 깃들어 있는 영을 통해 이 영류를 간접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생명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인간계는 영계의 종극점 이런 의문이 든다.
‘인간과 영은 어느 쪽이 본질적인가?’
인간에게 생명 그 자체를 부여하고 이것을 통제하고 있는 것은 영이다.
즉, 영이 육신을 가진 인간의 주인인 것이다. 이 말을 바꿔 생각하면,
만일 무신론자나 영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자신의 생명과 그 본질조차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으로서의 삶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이에 대해 스웨덴보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다고 하자.
단지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만으로는
의사(意思)가 완결되고 완성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것이 완성되려면 언어나 편지의 형태로 표현해야만 한다.” 

 

“인간계는 영계의 종극점(終極點)이다.”  

‘우주가 표현하고자 하는 소망과 꿈, 그 이상의 실현과 종결은 오직 인간에게 달려있다.’  

 

그가 전해주는 영계의 진실처럼, 우리는 드넓은 사막의 모래알처럼
작은 지구 안에서, 수천 수만년을 사는 영의 삶과 비교하면 찰나에 불과할 짧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프랭크 램지가 말한 것처럼,
광대무변한 우주 안에 티끌처럼 작은 존재로 보이는 인간도 원근법으로 우주를 보면 인간이 그 중심에 서있다. 

 

(참고) 스웨덴보그의 『나는 영계를 보고 왔다』(서음미디어, 2005년)
 
엠마누엘 스웨덴보그

스웨덴의 신비사상가이자 심령술의 선구자이다.

1688년 스웨덴 스톡홀름의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적부터 신비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었던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신이 이 소년의 입을 빌어서 말을 한다'는 소문이 퍼질 정도로 놀라운 언행을 보여줬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한 후 수학자, 과학자, 발명가로서의 큰 업적을 남겼고 한때 정계에서도 활약하였다.

그의 학문분야는 천문, 생리, 해부학 등 방대한 분야에 걸쳐 15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으며, 이러한 학문적 업적 이외에 그가 동시대에 끼친 영향은 온 유럽을 넘어 역사상 가장 불가사의한 인물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84세 삶 중, 후반 약 30년간은 모든 학문을 팽개치고 영의 세계와 교신하는 영매로서 그 자신이 직접 영계로 들어가서 보고 듣거나, 또는 영들과 직접 사귀어서 알게 된 지식을 바탕으로 영계의 진실을 알리는 영적 생애에 바쳐졌다.

 

나는 영계靈界를 보고 왔다①

서프라이즈

나는 영계靈界를 보고 왔다
- 광대무변한 신명계의 실상을 세상에 알린 스웨덴보그 -
 

 “나는 과거 20여년 간에 걸쳐서 육체를 이 세상에 두어둔 채

   영이 되어 인간이 죽은 후의 세계, 즉 영혼의 세계를 출입해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많은 영들과 어울려 수많은 일을 보고 들었다.
 내가 지금부터 여기에 기술하는 것은
 나 스스로 견문하고 체험한 것의 전부이다.”(스웨덴보그)
 

스웨덴보그가 고향 스웨덴을 떠나 이국땅 영국에 머물던 어느 밤,

그에게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인물(영적 존재)이 나타난다.
 
그로부터 “나는 너를 인간이 죽은 후에 가는 영의 세계로 데리고 가겠다.

그 세계에서 보고들은 바를 겪은 그대로 기록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라”는 말을 듣게 된다.

 

이로부터 ‘죽음의 기술’이 생겨 자신의 육체를 두고

자유로이 영계로의 출입이 가능하게 되었는데,

그가 영계를 다녀올 때는 다른 사람의 출입을 금하고

자기 방에 틀어박혀 며칠씩 밥도 먹지 않았다고 하며,

이를 이상하게 여긴 하숙집 주인의 증언에 의하면

그 기간은 2∼3일에서 10일 정도였다고 한다.

스웨덴보그가 말하는 영의 세계를 크게 나누면

‘정령계, 영계, 지하의 영계(지옥계)’로 나뉜다.

또 영계와 지옥계는 각각 상중하의 세 단계 영계로 나뉘어,

정령계를 포함, 총 7개의 영계가 존재하고,

각각의 영계는 또 수없이 많은 영적 그룹(단체)으로 나뉘어져 있다.
 
정령계는 사람이 죽은 후 제일 먼저 가는 곳으로,

인간계와 영계(영靈으로서 영원한 삶을 누리는 곳)의 중간에 있는 세계이다.
 
정령계는 거대한 바위산과 빙산들이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분지 모양을 띄고 있는데

인간계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며,

산맥과 산맥 사이의 여러 곳에서 영계로 갈 수 있는 통로가 나있다.

그러나 이 통로는 정령들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으며,

영계로 옮겨 갈 준비가 끝났을 때에야 비로소 눈에 보이게 된다.
 
정령은 인간과 영의 중간적인 존재로,

투시, 상념의 교류 등 신기한 영적 능력을 제외하면,

의식 속에서는 인간과 조금도 다른 데가 없을 정도이다.

심지어 어떤 정령은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조차도 모른다.

스웨덴보그가 만난 많은 정령들은

스웨덴보그가 살아있는 육체를 이승에 둔 채

정령계를 방문한 ‘불가사의한 나그네’임을 알게 되면

“나는 죽은 것이 아니라 정령으로서 살아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아직 살아있는 가족들에게 전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전한다.
 
지옥은 어떤 세계인가.

스웨덴보그에 의하면 인간으로서의 죽음 이후,

정령으로 새 삶을 시작하는 초기의 정령들은

크나 큰 놀라움과 충격에 어찌할 바를 모르며 번민에 빠지게 된다고 한다.

그것은 그들이 생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영으로서의 삶과 영계의 모습’ 때문이다.

즉, 세상의 학자나 교회의 목사들이

인간의 본질과 영이라든가 영계의 일에 대해서

아무 것도 가르쳐 주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잘못된 생각을 심어주어

‘사후의 세계’를 너무나 무지한 채로 맞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장 단적인 예는 ‘천국과 지옥’에 관한 그의 기록이다.

스웨덴보그는 지옥은 종교의 가르침처럼

현세의 악업에 대한 응보로써 신에 의해 던져지는 것이 아니라

현세에서 물질욕과 색욕, 명예욕, 지배욕 등 세속적인 욕망에만 빠져,

참다운 영적 성숙을 극단적으로 경멸했던 자들이 간다는 것이다.

물론 악업을 저지른 자들은 그들 스스로 영계의 눈이 뜨여지지 못해

결국 모두 지옥계로 빠져들게 되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그들이 원하는 바에 의해서 스스로 지옥에 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 세상과 영계는 하나의 세계, 영계는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수천 킬로미터 밖이나, 수천 수만년 전의 영과도

그 영을 생각하는 순간, 그리고 마음의 창을 여는 순간,

바로 앞에서 얼굴을 맞대고 있는 영을 보게 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자연계에서 공기를 통해 ‘말’이나 ‘소리’가 전해지듯이,

영계에서는 영류라고 불리는 시공간을 초월한

에너지의 흐름(이것은 아마도 천지에 가득한 우주의 율려라 생각된다)을 타고

영상과 소리, 상념의 교류와 영의 이동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영은 저마다의 한계가 있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상념과 언어를 영상으로 보여주기도 하고,

생전의 모든 기록과 우주의 정보들을 그대로 불러올 수도 있다.

만약 누군가 자신의 미래를 보고자 한다면,

영의 세계에 그려져 있는 자신의 일생에 관한 그림폭(또는 책과 같은 것)의 내용을

다른 영을 통해 듣거나, 그것을 본 다른 영의 눈에 보이는 표상을 통해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참고) 스웨덴보그의 『나는 영계를 보고 왔다』(서음미디어, 2005년)
 
엠마누엘 스웨덴보그

스웨덴의 신비사상가이자 심령술의 선구자이다.

1688년 스웨덴 스톡홀름의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적부터 신비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었던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신이 이 소년의 입을 빌어서 말을 한다'는 소문이 퍼질 정도로 놀라운 언행을 보여줬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한 후 수학자, 과학자, 발명가로서의 큰 업적을 남겼고 한때 정계에서도 활약하였다.

그의 학문분야는 천문, 생리, 해부학 등 방대한 분야에 걸쳐 15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으며, 이러한 학문적 업적 이외에 그가 동시대에 끼친 영향은 온 유럽을 넘어 역사상 가장 불가사의한 인물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84세 삶 중, 후반 약 30년간은 모든 학문을 팽개치고 영의 세계와 교신하는 영매로서 그 자신이 직접 영계로 들어가서 보고 듣거나, 또는 영들과 직접 사귀어서 알게 된 지식을 바탕으로 영계의 진실을 알리는 영적 생애에 바쳐졌다.

 

탄허스님이 본 지구의 미래

서프라이즈

탄허스님이 본 지구의 미래

탄허스님이 '부처님이 계신다면'이라는 책을 통해 소개한 바 있는,

역철학의 원리에 근거한 미래에 대한 내용을 알아봅니다.


"서양의 종교와 동양의 역철학이 보여주는 미래

지금 역의 진행원리로 보면 이 간방의 위치에 간도수가 비치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정역의 원리로 보면 간도수가 이미 와 있기 때문에 후천도수는 곧 시작이 됩니다.

역학을 근거로 하여 미래를 보는 눈은 그보다 훨씬 포괄적이며

나아가서 인류사회의 미래를 우주적인 차원에서 볼수 있다는 큰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말세론은 2천 년 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미래에 대한 예견은 서양종교에서 그 기원을 찾아 볼 수 있지만

동양의 역학원리에 따르면 이미 6천년 전에 복희팔괘로 '천의 이치'를 밝혔고

3천년 문왕팔괘로 지상 생활에서의 '인간절의 이치'를 밝혀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80년 전에 미래역으로 밝혀진 정역의 이치는 '후천의 자연계와 인간의 앞날'을 소상히 예견해 주고 있습니다

 

서양종교의 예언은 인류종말을 말해 주고 주의 재림으로 이어지지만

'정역의 원리'는 후천세계의 자연계가 어떻게 운행될 것인가,

인류는 어떻게 심판받고 부조리 없는 세계에서

얼마만한 땅에 어느 만큼의 인구가 살 것인가를 풀어 주고 있습니다.

 

이 정역팔괘는 후천팔괘로서 미래역입니다.

이에 따르면 지구는 새로운 성숙기를 맞이하게 되며

이는 곧 사춘기의 초조를 맞이하는 것과 같다고 할 것입니다."

(부처님이 계신다면,157~170쪽)

"빙하기 녹고 지축이 선다.

북극빙하의 해빙으로부터 시작되는 정역시대는

이천칠지의 이치 때문입니다.

이에 의하면 지축 속의 불기운이 지구의 북극으로 들어가서

북극에 있는 빙산을 녹이고 있다고 합니다.

이로써 북빙하의 빙산이 완전히 녹는데

이 때 대양의 물이 불어서 하루에 440리의 속도로 흘러내려

일본과 아시아 국가들을 휩쓸고 해안지방이 수면에 잠기게 됩니다.


이제까지 지구의 주축은 23도 7분 기울어져 있는데

이것은 지구가 아직도 미성숙 단계에 있다는 것을 말하며

4년마다 윤달이 있게 되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북빙하가 녹고 23도 7분 가량 기울어진 지축이 바로 서고

땅 속의 불에 의한 북극의 얼음물이 녹는 심판이 있게 되는 현상은

지구가 마치 초조 이후의 처녀처럼 성숙해 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처님이 계신다면,167~170쪽)

 
"그렇게 되면 한국의 장래는 매우 밝으며

지금까지 23도 7분 기울어져 있던 지축이

빙하가 녹음으로써 바로 서게 되어 극한과 극서가 없어지고

세계적인 해일과 지진으로

이것이 바로 불란서 예언가가 말한 세계멸망기가 아닌가 합니다.

또는 성경의 말세와 예언가의 말은 심판이니 멸망이니 하였지만

역학적인 원리로 볼 때는 심판이 아니라 성숙이며, 멸망이 아니라 결실인 것입니다."


지구표면의 변화

지금은 중국 영토로 되어 있는 만주와 요동반도 일부가

우리 영토로 속하게 될 것이고,

일본 영토의 3분의 2가량이 바다로 침몰할 것입니다.

일본은 손방이라고 하는데 손은 주역에서 입야로 풉니다.

'들 입'자는 일본 영토의 침몰을 의미합니다.


지금 현재는 지구 표면에서 물이 4분의3이고 육지가 4분의 1밖에 안 되지만

이같는 변화가 거쳐가면 바다가 4분의 1이 되고 육지가 4분의3으로 바뀌어집니다.

(부처님이 계신다면,163~170쪽)

소규모 전쟁

소규모의 전쟁들이 계속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인류를 파멸시킬 세계전쟁는 일어나지 않고

지진에 의한 자동적인 핵폭발이 있게 되는데

이 때는 핵 보유국들이 말할 수 없는 피해를 받을 것입니다.

남을 죽이려고 하는 자는 먼저 죽고 남을 살리려고 하면 자기도 살고 사는 법입니다.

 
중소전쟁과 중국 본토의 균열로 인해서

만주와 요동일부가 우리 영토에 포함되고

일본은 독립을 유지하기에는 너무 작은 영토밖에 남지 않기 때문에

한국의 영향권내로 들어오게 되며 한미간의 관계는 더욱더 밀접해질 것입니다.

(부처님이 계신다면,169쪽)

 

세계인류의 감소

이는 비극적인 인류의 운명인데

전세계 인구의 60%내지 70 %가 소멸된다는 것이며,

이 중 많은 사람들이 놀라서 죽게 되는데 정역의 이론에 따르면 이 때에 놀라지 교훈이 있습니다.

 
세계종교의 통일

반드시 그러한 왕도정치가 세워질 것입니다.

누구의 덕으로 사는지 모를 세상이 펼쳐질 것입니다.


그런데 종교는 과연 변모할 것인가가 궁금스러운 일이지만,

모든 껍데기를 벗어 버리고 종교의 알몸이 세상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현재의 종교는 망해야 할것입니다.

신앙인끼리 반목 질시하고 네 종교,내종교가 옳다고 하며

원수시하는 이방인이라 해서 동물처럼 취급하는 천박한 종교의 벽이 무너진다는 뜻입니다.

그 장벽이 허물어지면 초종교가 될 것입니다.

김일부 선생은 유.불.선이 하나가 된다고 했는데 그 예언의 연대가 80년대에 열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1인 독재의 통치시대는 선천사가 된 것이요.

앞으로 오는 후천시대는 만민의 의사가 주체가 되어

통치자는 이 의사를 반영시킴에 불과한 것입니다.

강태공의 말씀에 천하는 천하인의 천하요, 일인의 천하가 아니라는 것도 바로 이것을 의미하는 것일 것입니다. 

 

'정역'으로 본 한국의 미래

'주역'에서 보면 한국은 간방입니다.

간艮은 갓난아기요, 결실을 의미합니다.

80년대 전반부는 바로 어머니가 아기를 낳을 때의 진통이 있는 때입니다.

이 아픔은 희망찬 아픔입니다.

이 고통이 지나면 우리의 숙원이던 남북통일의 서광도 엿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생각으로 감지할 수 없는 새 차원의 세계가 도래할 것입니다.

(부처님이 계신다면,107쪽)


역에서 간이라 함은 사람에 비하면 소남입니다.

이것을 다시 나무에 비하면 열매입니다.

열매는 시종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남을 풀이하면 소년인데 이 소년은 시종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역은 세계적인 변화가 지도의 변화를 따라서

번천복지翻天覆地하는 대변화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북빙하가 완전히 풀려 무너질 때에 지구의 변화가 오는 것입니다.

지구가 성숙됨에 따라 후천시대는 결실시대로 변하는데,

결실을 맡은 방위가 간방이며,

간방은 지리적인 팔괘 분야로 보면 바로 우리 한국입니다.

 

젊은이들이 반항하는 우주적 이유
결실은 뿌리의 결과이니 뿌리가 시라면 열매는 종입니다.

일단 결실이 되고 나면 뿌리의 명령을 듣지 않는 것이 열매입니다.

그것은 열매가 다시 뿌리가 되기 때문에 뿌리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니,

이것으로 보아도 결실은 시종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소남은 20대 청년을 말함이니, 즉 부모의 여분이 결실인종입니다.

방위와 수목이 간의 시종을 가지고 있다면

어찌 고등동물인 20대 청년이 간의 시종을 가지고 있지 않으랴.

20대 청년들이 부모의 말도 선생의 말도 다 듣지 않고

오직 내 말만 들어보라 하는 것은 그들이 바로 결실인종이므로

부모나 선생의 말을 듣지 않고 스스로 뿌리가 되려 하는 때문입니다.


소남은 시종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간방에 간도수가 접합됨으로써 어두운 역사는 끝맺게 되고

이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수밖에 없으며

또한 인류역사의 시종이 다 같이 이 땅에서 이루어진다고 할 것입니다.

한국문제의 해결은 곧 세계문제의 해결과 직결된다고 나는 보고 있습니다.

(부처님이 계신다면,157~158쪽)

 
우리는 간방으로서 지금 이 시점은 결실시대라고 위에서 말한 바 있는데,

결실이 되려면 꽃잎이 져야 하고 꽃잎이 지려면 금풍이 불어야 합니다.

그 금풍이란 서방바람을 말하는데

이 바람은 곧 30년 전부터 우리 나라에 불어오기 시작한 이른바 미국바람이라 하겠습니다.


이렇게 금풍인 미국바람이 불어 꽃잎이 떨어지고 열매 맺는 가을철,

다시 말해서 결실시대를 맞이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나라가 미국의 도움으로

인류사의 열매를 맺고 새로운 세계사를 시작함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구의 재난과 한반도

우리 나라는 동남해안쪽 100리의땅이 피해를 입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토는 서부 해안쪽으로 약 2배 이상의 땅이 융기해서 늘어날 것입니다.

이러한 파멸의 시기에 우리 나라는 가장 적은 피해를 입게 되는데

그 이유는 한반도가 지구의 주축부분에 위치하기 때문입니다.

정역이론에 따르면 한국은 지구의 중심부분에 있고 간태가 축으로 되니까

일제시대의 일본의 유끼사와 박사는 계룡산이 지구의 축이라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부처님이 계신다면,169쪽)

한국은 세계 인류의 정신적 수도

우리 선조가 적선해 온 여음으로 우리 한국은 필경 복을 받게 될 것이다.

우선 이 우주의 변화가 이렇게 오는 것을 학술적으로 전개한 이가 한국인 외엔 있지 않으며,

이 세계가 멸망이냐 심판이냐 하는 무서운 화탕 속에서

인류를 구출해 낼 수 있는 방안을 가지고 있는 이도 한국이 외에 또다시 없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한국은 세계적인 신도, 다시 말하면 정신 수도의 근거지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시만물 종만물이 간에서 일어난다면 인류를 구출할 세계적인 정신문화가 어찌 한국에서 시하고 종하지 않으랴.

육체를 벗어난다-사후의 세계(Life After Life)

서프라이즈

죽음의 단계까지 갔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임사체험이라 합니다.
의학박사인 레이먼드 무디 박사
죽음을 체험한 많은 사람들의 경험을 연구하여 저술한 '사후의 세계(Life After Life)'를 소개합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체는 바로 자신의 육체다.

우리는 물론 '마음'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는 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이라는 것을

무척 허망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처럼 육신 안에 머무르는 방식과는 다른

어떤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상상하는 것조차 힘든 일로 되어 있다.

 

임사 체험자들 역시 그런 체험을 하기 전까지는

마찬가지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죽는 사람들은 깜깜함 터널 속으로

빠져들어간 순간 굉장한 놀라움을 느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단계에 이르러 죽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육신을 저만치 떨어진 위치에서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11살 나던 해 나는 나의 형과 함께 어떤 유원지에서 놀고 있었다.

어느 날 오후 형과 나는 수영을 하러 갔는데 다른 몇 사람들도 함께 따라갔다.

그 중의 한 사람이 호수 건너편으로 수영해 가자고 제의를 했다.

몇 차례 그래본 적이 있었기에 그렇게 하기로 하고 헤엄을 쳐갔으나

그날따라 웬일인지 도중에서 가라앉고 말았다.


몇 번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 하다가 급기야 의식을 잃는가 하더니,

나는 갑자기 나의 바깥으로 뛰쳐나와 허공으로 떠오르는 것이었다.

나의 몸은 내가 바라보는 저만치서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하고 있었다.

나는 뒤쪽에서 약간 오른편으로 치우친 방향에서 나의 육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몸 밖에 있으면서도 나 자신은 계속 일정한 형체를 갖추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마치 공기나 새털마냥 두둥실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대부분은 처음 순간엔 자신의 육체 안으로 되돌아가고 싶어 애를 쓴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되돌아갈 수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또 어떤 체험자들은 겁이 났다고도 말하고 두려웠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체험자들은 육신을 벗어난 후에도

그 어떤 다른 형체 안에 들어가 있었다고 어렴풋하게나마 증언하고 있다.

비록 무엇이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으나

어떤 묘한 상태 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이 '새로운 형체'는 그야말로 인간의 현존 언어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체험사항 중의 하나다.

설명하기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장애가 될 정도라 한다.

그에 관해 이야기한 체험자들은 누구나가 좌절감 비슷한 것을 토로하곤 했다.

 

그러면서 각자의 이야기엔 서로 공통되는 점이 없지 않다.

서로 다른 용어와 비유를 써가면서 설명하는데도

결국은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새로운 형체'의 일반적인 성격과 특징을 아주 비슷하게들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편의상 그것을 '영혼'이란 말로 부르기로 한다.

죽음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은

우선 그들의 영혼이 그 어떤 테두리 안에 갇혀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육신을 벗어난 영혼은 아무리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며

자신의 딱한 처지를 호소하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발견한다.

방 안에 있는 그 누구도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한가지 사실로는,

영혼이란 비록 이승의 사람들이 보기엔 현실감각을 결여하고 있긴 하지만

그 자체는 무어라고 묘사하긴 어려워도 하나의 실체로서 존재한다는 점이다.

각 사람의 말을 종합해보면,

그것은 둥글기도 하고 일정한 정해진 형태가 없는 구름 같기도 하지만

대체로 육신과 비슷한 모양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는 얼굴이나 지체, 머리통에 해당하는 각부분까지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비록 두리뭉수리처럼 되어 있긴 해도

윗부분, 아랫부분, 팔다리 부분의 구분이 분명히 지어져 있다는 것이다.

 

천정에 매달려 그 아래에서 사람들이

자기를 회복시키는 광경을 바라보았다는 한 여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여전히 형체를 가지고 있었다.

팔 다리를 쭉 뻗고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팔을 움직일 수도 있었고,

한 쪽 팔이 다른 한 쪽 팔보다 체온이 높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도 있었다."

멕시코에서 공인된 사진

죽는과정에서 영혼이 몸으로 이탈하는 장면을 담은 사진.

영혼이 찍히는 경우는

주변의 환경이 적당히 조성되어서

고감도 필름에 찍히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1885년 미국에서 심령연구회가 발족되어

하버드대학교수 중심으로 뉴욕서 발족한 이 학회는

인간의식과 영혼의 문제를 파고 들었는데

그결과의 하나가 유명한 영혼의무게는

21g이란 주장이다.

 

던컨 맥두걸(1866~1920)박사가

1907년 과학저널에 발표.

사람이 죽은뒤 정말로 영혼이 육체를 떠난다면

물리적으로 그실재를 측정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냐는 의문을 품었다.

초정밀 저울을 이용해 임종환자의 무게를 측정했고

그결과 사람이 숨을 거둘때는

반드시 체중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땀·속변 등의 수분과 폐에 들어있던 공기가 신체에서 빠져나가기 때문”이란 것이다.
6명의 환자 몸무겐를 정밀 측정한 결과

“수분과 공기를 합한 무겐보다 21g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사후의 세계(Life After Life)

서프라이즈

죽음의 단계까지 갔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임사체험이라 합니다.

의학박사인 레이먼드 무디 박사

죽음을 체험한 많은 사람들의 경험을 연구하여 저술한 『사후의 세계(Life After Life)』를 소개합니다.

여러 임사 체험담을 종합하여 표본적인 이야기를 순서에 따라 구성해 본다면

다음과 같은 현상들을 나열 할 수 있습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 

"죽음을 체험한 사람은 우리의 공통된 체험 밖에 있었던 까닭에

그것을 무슨 말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곤란을 겪는다.

그래서 대개의 경우 체험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기가 지극히 어렵다고 입을 모아 강조한다.

자기가 체험한 바를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적당한 말이 없다는 것이다.

현존하는 형용사나 부사만 가지고는 그것을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다."

 

그런 어려움을 어떤 부인 체험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이야기를 하기는 하지만 정말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말이란 모두가 3차원적인 언어이기 때문이다.

옛날에 내가 기하학을 배울때는 3차원 이상은 없다고 들었고, 또 실제로 그렇게 믿어왔다.

그러나 그건 잘못이었다. 4차원의 세계가 분명히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3차원의 세계이나 다음에 올 세상은 그렇지가 않다.

그것에 관해 이야기하기가 어려운 까닭은 바로 그 때문이다.

지금 나는 3차원적인 언어를 가지고 저 세상을 설명하려 하지만 그건 정말 부적당한 일이다.

아무리 비슷하게 이야기해본다 해도 꼭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완전한 설명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죽음의 선고가 들린다>

체험자들 상당수가 의사나 다른 사람에 의해 '그가 죽었다'고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


"나는 그때 병원에 가 있었는데 사람들은 내가 왜 아픈지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었다.

나의 담당 의사인 제임스박사는 나를 아래층 방사선과로 내려보내서 간장을 투시해보도록 했다.

사람들은 우선 나의 팔에다 약물에 대한 알레르기반응 여하를 테스트했다.

내가 워낙 알레르기 증세가 심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별다른 반응이 없자 그들은 진찰을 계속했다.

내가 진찰을 저지하니까 그들은 전화를 걸러 가서 의사한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박사님, 환자가 죽었는데요. 그러나 나는 죽지 않았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도 몸을 움직여 내가 죽지 않았음을 알리려고 하는 것만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들이 나를 회복시키려고 애를 쓰는 동안

나는 그들이 나한테 무슨 주사를 몇CC 놓아주어야 하겠느냐는 둥 지껄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주사 바늘이 찌르고 들어가는 감각은 느낄 수 없었다. 그들이 나를 건드리는 것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나는 내 곁에 있던 아주머니가 하는 말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사람 죽었어요?'하고 물으니까,

누군가가 '네, 죽었어요'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이런 보고들은 현장에 있었던 의사들이 얘기하는 바와 전적으로 일치한다.

예컨데 어떤 의사가 말해준 이야기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어떤 여자환자가 하나가 있었는데,

뇌막염 수술을 하려는 참에 심장마비 증세를 일으켰다.

그녀의 눈동자는 이미 점차 풀려지고 있었다.

회복을 시켜보려고 아무리 애를 썼으나 신통한 효과가 없길래 꼭 죽은 줄만 알았다.
그래서 다른 동료 의사에게 꼭 한 번만 더 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포기하자고 말했다.

그런데 그것이 성공했는지 그녀의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고 그녀는 회복이 되었다.
깨어난 후, 죽어 있는 동안 기억나는 것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다른 것은 생각이 안나지만

내가 '한 번만 더 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포기하자'고 한 소리만은 들었다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인류의 미래, 신이 된 인간

서프라이즈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인류의 미래, 신이 된 인간

불멸과 행복을 찾은 '호모 데우스',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를 다룬 '사피엔스'로 전 세계에 반향을 일으켰던

이스라엘 히브리대 교수 유발 하라리의 신작 '호모 데우스' 출간되었습니다.


'사피엔스'가 인류의 과거를 다뤘다면

'호모 데우스'(Homo Deus)는 인류의 미래를 예측합니다.

 

"인지혁명과 농업혁명, 과학혁명을 거치며 지구를 지배하게 된 인간은 어떤 미래를 맞게 될 것인가.

유전공학, 인공지능, 나노기술은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인류에게 천국을 가져다줄 수도, 아니면 아예 소멸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과거 인간의 최대 적은 기아와 역병, 전쟁이었다.

지금도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경제 성장 등으로 이들 문제는 이제 통제할 수 있게 됐다.


하라리는 "기아와 역병, 전쟁이 사라진 뒤 할 일은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짐승 수준의 생존투쟁에서 인류를 건져 올린 다음 할 일은

신으로 업그레이드하고 호모 사피엔스를 호모 데우스로 바꾸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데우스(Deus)는 라틴어로 '신'(God)의 의미로, '호모 데우스'는 '신이 된 인간'을 뜻합니다

"기아와 역병, 전쟁에서 벗어난 인간은 이제 불멸과 복, 신성을 꿈꾼다.

죽음과의 전쟁은 다가오는 시대의 주력 산업이 되고

과학자들은 한순간도 쾌감이 멈추지 않도록 끊임없이 쾌감을 제공하는 제품과 치료법을 개발할 것이다.

장기와 감정, 지능을 조작하는 일이 가능하게 되면 신과 같은 존재로 업그레이드가 가능해진다.

이는 생명공학, 사이보그(인조인간) 공학, 비(非) 유기체 합성을 통해 이뤄진다.

 

하라리는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게 되면 호모 사피엔스는 사라질 것이고

새로운 인류의 역사가 시작될 것"이라 말합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역사의 행로를 완주한 만큼 미래에는 할 일이 없어진다.

이제 기술을 이용해 훨씬 우수한 인간 모델인 '호모 데우스'를 창조해야 한다"는 결론을 제시합니다.

 

"인지혁명으로 아프리카 유인원이 호모 사피엔스로 발전했다면

이제 두 번째 인지혁명을 통해 탄생할 호모 데우스는 과거 유인원이 그랬듯

지금의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새로운 영역에 접근할 수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유전공학과 나노기술,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인터페이스다."

 

우주가 데이터의 흐름으로 이뤄져 있고

어떤 현상이나 실체의 가치는 데이터 처리에 기여하는 바에 따라 결정된다는 생각입니다.
모든 것을 연결하는 '만물인터넷'(Intenet-of-All-Thing) 데이터처리시스템이 완성되면

호모 사피엔스가 사라진다고 말 합니다.

 

하라리는 이런 상황에 대해 "예측일 뿐이며 하나의 가능성이며

기술은 그 자체로 사회를 결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의 기술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에 똑같이 적용됐다.

유토피아냐, 디스토피아냐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다."


이 책의 목표는 단 하나의 결정적인 시나리오를 예측함으로써

우리의 지평을 좁히는 대신 지평을 넓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의 스펙트럼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넓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