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만큼 보인다

불교 도교에 전파된 칠성문화⑤

진실의 역사

[환단고기] 칠성七星문화

 

불교와 도교에 전파된 칠성신앙

우리의 신교 칠성신앙은 불교에 그대로 흡수되어 우리나라의 모든 사찰에서는 지금도 경내에 칠성각을 모시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찰에서는 칠성각, 칠성전七星殿, 북극전北極殿, 북극보전北極寶殿 등의 이름으로 전각을 세워 주존인 치성광여래熾星光如來(북극성)를 중심으로 좌우에 일광변조소재보살日光遍照消災菩薩(해)과 월광변조소재보살月光遍照消災菩薩(달)로 삼존불을 이루고, 다시 좌우로 칠성여래와 칠원성군이 배치된 칠성탱화를 모십니다.

 

칠원성군七元星君이 불교적으로 수용되어 부처님의 모습으로 화현한 것이 칠성여래七星如來입니다.

특히 음력 7월 7일은 칠석七夕날이라 하여 불가의 명절은 물론 우리 민족의 세시 풍속으로 자리 잡아 왔는데, 이 날은 전국의 사찰에서 치성광여래에게 재齋를 올립니다.

이를 칠석재라 하는데 치성광여래에게 성대하고 정성스런 재를 올려 그 신통력으로 모든 재앙을 없애고 복덕을 달라고 기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한국 불교의 칠성문화는 인도, 중국, 티베트 등의 불교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입니다.

 

도교 또한 신교의 칠성사상도 내포합니다.

조선 초기, 중신 변계량卞季良이 도교 사당인 소격전昭格殿에서 북두칠성을 향해 초제醮祭를 올렸다는 기록에서도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변계량은 “저 푸른 하늘은 비록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으나, 오직 북쪽하늘에 북두가 있어서 상서로움도 내릴 수 있고 재앙도 내릴 수 있습니다”라고 하며 칠성을 찬양하였습니다.

         


칠성은 생명의 고향

칠성은 우리 인간의 생명과 영혼의 고향입니다.

오늘날 인류에게도 칠성 또는 칠성신앙은 여전히 주요한 테마입니다.

칠성으로 돌아가서 칠성과 하나 되었을 때 우리는 온전한 생명의 원시반본原始返本을 이루게 됩니다.

 

칠성은 예부터 우주의 주재자이신 삼신상제님이 계신 별입니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러한 인생의 궁극적인 물음에 우리는 칠성에서 왔으며 다시 칠성으로 돌아간다는 답을 제시해 볼 수 있습니다.

지상의 사람이 천상의 별기운와 연결된다는 천인감응天人感應 사상에 비추어 보아도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금 칠성문화, 상제문화를 회복해야 합니다.

명판관 여주 선생의 실제 저승 재판기록④

서프라이즈

'저승문답'(원저 : 유명문답록幽冥問答錄)1945년 전후 중국 제2의 포청천으로

명성을 드날렸던 명판관 여주(黎澍) 선생의 실제 저승 재판기록입니다.

 

크게 수행한 사람도 죽은 뒤에 역시 저승에 가서 재판을 받습니까?

→ 저승 법정에서 관리하는 대상은 모두 업(業)안에 끌려 다니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대개 평범한 사람들로서 큰 선행도 없고 큰 악행도 없는 사람들을 관리합니다.

 

만약에 크게 수행한 사람은 죽은 뒤에 곧바로 천계(天界)에 올라가기 때문에 저승을 거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저승 명부에 이름이 없기 때문에 저승에서 심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 중 혹시 천계에 오르는 것이 조금 늦는 사람은 어쩌다가 저승을 거쳐가기도 하는데,

이런 사람이 저승에 오면, 저승판관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내려서서 그를 공손히 맞이합니다.  

그러면 그 혼백은 걸을 때마다 점점 높아져서 마치 구름 사다리를 걷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즉시 곧바로 천계에 오르기 때문에 심판하지 않습니다.

 

저승법정에서도 서양인을 잡아옵니까?  

만약에 양인이 오면 피차에 언어는 어떻게 소통합니까?

만약에 양인이 없다면 양인이 죽은 뒤에는 어디에 가서 심판을 받습니까?

→ 내가 저승판관이 되었을 때가 마침 1900년(경자년庚子年) 8개국 연합군이

북경을 공격한 지 5일 만에 항복한 뒤이기 때문에 국내외의 군대와 민간인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저승에도 다소의 서양인들이 법정에 들어온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저승에서는 저절로 그들의 말이 통해(通解)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 난리에 죽은 한 제독과 또 충성으로 나라를 보위하다가 의분이 복받쳐 슬퍼하고 한탄하다가

몸을 버린 자가 심리를 받은 일이 있었는데, 나는 친히 그들이 똑같이 곧바로 천계(天界)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또 중국의 저승 재판소가 이미 한 곳만이 아니고, 또 구미(毆美)의 각 나라도 또한 따로 저승 재판소가 있어서

각기 그 정황에 따라 처리합니다.

 

귀신도 또한 생명의 소멸과 기한이 있습니까?

→ 예, 있습니다. 내가 본 옛 귀신은 멀리는 송나라, 원나라 때까지에만 이르고,

당나라 이상의 귀신은 절대로 본 적이 없습니다.

신선(神仙)이 된 분을 제외하고는 만고에 길이 생존할 수 없습니다.

 

천년 이상 된 귀신을 보지 못했다는 말로 영혼도 수명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살아서 그 사람이 닦은 수련의 정도와 지은 공덕에 따라 영혼의 수명도 정해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사람은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의 이르는 동안에 용모가 점점 변하여 가는데,

귀신의 용모도 또한 나이에 따라 노쇠해집니까?

→ 귀신의 용모는 그 병들어 죽을 때까지는 똑 같습니다. 해가 오래 지났다고 해서 노쇠해지지 않습니다.

 

도력(道力)이 높은 분들이 주문을 외워 죽은 혼령을 천도하면 망인에게 도움이 됩니까?

→ 주문을 외워주는 것의 이득에 대해 특별히 일괄적으로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비유하자면 그 사람이 생전에 큰 선행을 하였으면 죽은 뒤에 곧바로 천계에 오르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는 따로 주문을 읽어 줄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생전에 크나큰 죄악을 저지른 사람이라면 죽은 뒤에 즉시 지옥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도 역시 쉽게 주문을 읽어 주어야 별로 이득이 없습니다.

다만, 일반의 보통 사람들 즉 생전에 큰 선행도 악행도 없는 사람들은 주문을 읽어 주면

어두운 저승세계가 환하게 밝아져서 죄업이 경감되고 이익이 특별히 커집니다.

 

그리고 주문을 외우는 사람의 도력의 높고 낮음에 따라서 또한 막대한 관계가 있습니다.

만약 주문을 외워주는 사람이 도력이 높은 고승이고 효자 현손과 관계가 있으면,

그 주문을 읽어 주는 것이 보통 일반 사람이 외워주는 것보다 열 배 정도 이득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보통 사람이라도 주문을 지극 정성으로 외워주면 또한 상당한 이익이 있습니다.

만약 주문을 읽어주는 사람의 마음이 전일(全一)치 못하여 건성건성 외워 준다면 이익도 극히 적습니다.

주문을 읽어주는 기간은 망인의 49일 이내가 좋고, 이 기간을 지나면 망인이 지은 업에 따라

이미 다른 데에 생을 바꿔 태어나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공덕이 돌아가서 죽은 자는 바로 받을 수가 없습니다.

<주문은 많이 읽을수록 공덕이 많이 쌓입니다. 그리고, 주문에 따라 주력이 다릅니다.

 최고 최상의 주문인 태을주를 정성껏 읽어 많은 공력을 쌓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생의 전세에서부터 쌓은 그 근기가 이와 같고 또 보통사람보다 훨씬 뛰어나셨으니,

아마 내세에도 역시 윤회생사(輪回生死)를 면제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 윤회생사를 뛰어 넘는다는 게 어찌 그리 용이할 수 있습니까?

즉 나의 내생(來生)에도 역시 면할 수 없습니다.  

일찍이 같은 종사자에게 부탁하여 이에 대하여 조사를 해보았습니다.

그가 이르기를, "당신의 내세에는 응당 반드시 하남과 남양일대에서 다시 태어날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수 십년 이내에 세상의 물정과 세태인사(世態人事)가 변천하여 아마 저승의 기록도 고쳐질 수도 있을 겁니다.

   

불교를 배운 사람은 죽은 뒤에 극락세계에 태어나고 도교를 배운 사람은 동천복지(洞天福地)에 태어나지만

유교를 배운 사람들은 죽은 뒤에 어디에 가서 태어납니까?

→ 역시 하늘나라 천계(天界)에 태어납니다.

 

★ 선생은 그 뒤에 어찌하여 저승판관 노릇을 하지 않았습니까?

→ 내가 원하지 않은 지가 오래 되었고, 그리고 여러 차례에 걸쳐 휴직하기를 빌었지만

번번이 모두 허락을 받지 못했었는데 그 뒤에 동사자들이 주문을 많이 외우도록 가르쳐 주어서,

그 법대로 시행했더니, 그 공덕이 쌓여 2천 번 이상이 찼기 때문에 드디어 다시는 가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선생은 평소에도 늘 귀신을 볼 수 있습니까?

→ 내가 저승판관으로 있을 때에는 귀신을 호출했을 때나 안했을 때를 막론하고 늘 귀신을 볼 수 있었지만

중화민국(中華民國)초 이후부터는 귀신을 보는 것이 점점 적어지더니, 중화민국 10년 이후에는 완전히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맨 처음 저승판관으로 들어오라는 것을 어떻게 통지 받았습니까?

→ 어느날 밤에 꿈 속에서 옛 의관을 단정히 갖춘 한 사람이 찾아와서 내 방으로 들어서서 이르기를

"중대한 일이 있어서 정성스레 받들어 모시려하니 수고스럽겠지만 바쁜 일을 도와주시기를 청합니다."라고 합니다.

 

내가 그 사람에게 일러 말하기를,

"그대가 어떤 일을 위임하려는 지는 모르나, 다만 내 힘이 모자랄까 두렵다"고 하였더니,

 

그 사람이 말하기를 "선생께서 제발 윤허만 해준다면 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하기에,

나는 그가 본 뜻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오직 그의 예의바른 용모가 단정하고 공경하며,

그 태도가 지극 정성 간절하여 정의상 차마 물리칠 수가 없어서 마침내 묵묵히 허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마음속으로 매우 기뻐하면서,

서로 약속한 수일 내에 곧 모시러 오겠노라고 다짐하고 드디어 이별하였습니다.

깨고 보니 꿈이었습니다.

 

내 자신 속으로 한낮 꿈이라 여기고 특별히 마음에 두지 않았었는데 드디어 4~5일이 지난 뒤에,

꿈 속의 그 사람이 또 와서는 내게 일러 말하기를,

 

 "지난번의 승낙해주신 은혜를 받잡고 특별히 가마를 준비하여

정성스레 받들어 모시려고 왔습니다."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때 내가 보니까 말 한 필의 수레가 문밖에 매어 있어서

드디어 함께 수레에 올랐더니 얼마 안가서 어떤 관아(官衙)에 이르렀습니다.

 

수레에서 내려서 그 안으로 들어갔더니, 그 사람이 나를 인도하여 한 행랑방에 이르러

자리에 앉은 지 조금 후에 바로 대청마루에 올라 안건을 심리하도록 청하였는데,

한 범죄인을 끌어다가 놓고 좌우배심원들이 원안을 진술하여 주면서 나에게 판결하도록 요청하였습니다.

 

내가 이르기를, "내 본래 이의 설정을 모르는데 어찌 감히 망령되이 판결할 수 있단 말인가?" 하고 거절을 하니,

좌우 배심원이 이르기를,

"그대가 성심(誠心)으로 미루어 헤아려 보면 그 의사가 어떠한지를 곧 법에 비추어 징벌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라고 하기에

 

내가 잠깐 자세히 생각해보고 이르기를 "이러 이러한 것이냐"고 했더니, 좌우 모두가 "그렇다."고 대답하고

곧 나에게 판결문에 서명하도록 하고 죄범을 끌고 가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이내 마차로 나를 돌려 보내주었습니다.

 

★ 선생의 부모님도 이 사실을 아셨습니까?

→ 내가 저승 판관이 된 최초에는 그 비밀을 잘 보전하려고 감히 드러내어 말하지 않았었는데,

그 뒤에 부모님이 내가 빈 방에 혼자 있으면서도 간간이 사람과 말하는 소리를 들으시고는 차차 그 실정을 아시게 되었습니다.

대개 내가 저승판관이 된 뒤부터는 항상 저승친구들의 왕래가 있었는데

오직 나만이 볼 수 있고 나만이 들을 수 있었지,

다른 사람은 모두 듣지도 보지도 못하기 때문에 오직 나의 말만을 들었었지요.

 

★ 저승친구들이 올 때에는 역시 음식을 많이 장만하고 초대합니까?

→ 아닙니다. 다만 맑은 차 한 잔이면 이미 그 정을 다하는 데 족합니다.

★ 저승에서도 염불하면서 수행하는 자가 있습니까?

염불을 하고 송경(誦經)을 한 사람은 이미 이런 공덕이 있는데,

저승의 모든 귀신들이 어찌 빨리 염불 송경을 하여 지옥에서 벗어나서 천당으로 오르기를 구하지 않습니까?

→ 한 번 저승에 도착하면 바로 그의 업력(業力, 살면서 지은 죄와 공력)에 가로 막혀서 자연 그 염불하고 주문을 읽을 줄 모릅니다.

어찌 살아있을 때 수행공부를 등한히 하겠습니까? 이는 세상 사람들이 마땅히 알아야 할 이치입니다

즉 사람들이 주문을 외어도 저승에 간 사람들은 업력에 가로 막혀서 보고 들을 수가 없기 때문에,

수행은 마땅히 살아있는 이승에서 해야 업력(業力)을 쌓아 낼 수 있습니다.

 

귀신은 이미 형체가 없는 것(無形)을 볼 수가 있고 소리가 없는 것을 들을 수가 있다고 하였는데

어찌 우리들의 염불 수행하는 것은 도리어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것입니까?

→ 자기의 업력(業力)에 가리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를들면, 영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영국 사람의 얘기를 듣는다 할지라도 그 뜻을 전혀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세간의 어떤 사람이 본래 신앙이 없었는데 어쩌다가 우리들의 주문 수행을 보고 듣는다 하여도

역시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하여 곧 그로 하여금 우연히 보고 듣게 하여도 신심(信心)이 일어나지 않고, 마침내 수행하지도 않고 주문을 읽지도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