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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역사를 바꾼 북방민족③-몽고

역사를 바꾼 북방민족③-몽고

진실의 역사

역사를 바꾼 북방민족

 

STEP2. 환단고기가 밝혀주는 북방민족의 기원

 

2. 유라시아를 아우러는 대제국 몽고

 
몽고의 기원
원래 몽고蒙古라는 이름은 중국 사람들이 몽골을 비하하기 위해 ‘우매할 몽(蒙)’과 ‘옛 고(古)’를 사용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당나라 때 처음 몽와, 몽골이라는 명칭이 나타납니다. 현재 몽고의 공식 국가명칭이 몽골리아(MONGOLIA)이고 민족이나 민족어를 지칭할 때 몽골(MONGOL)이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몽골(Mongol)은 원래 ‘용감한’이란 뜻을 지닌 부족어였으나, 칭기즈칸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전체 몽골인과 몽골어를 지칭하는 표현이 되었습니다. 몽골의 기원에 대해 『환단고기』에서는 이렇게 전합니다.

 

甲申元年(갑신원년)이라. 封皇弟烏斯達(봉황제오사달)하사 爲蒙古里汗(위몽고리한)하시니
或曰今蒙古族(혹왈금몽고족)이 爲其後云(위기후운)이라
역주 오사구단군의 재위 원년은 갑신(환기 5061, 신시개천 1761, 단기 197, BCE 2137)년이다. 임금께서 아우 오사달烏斯達을 몽고리한蒙古里汗으로 봉하셨다. 혹자는 지금의 몽골족이 그 후손이라 말한다. 「( 단군세기)」

乙酉二年(을유이년)이라 藍國君今達(남국군금달)이 與靑邱君(여청구군)과 句麗君(구려군)으로 會于周愷(회우주개)하고
合蒙古里之兵(합몽고리지병)하야 所到(소도)에 破殷城O(파은성책)하고 深入奧地(심입오지)하니라
역주 재위 2년 을유(단기 1098, BCE 1236)년, 남국 왕 금달今達이 청구국왕, 구려국 왕과 더불어 주개周愷에서 만나 몽고리의 군대와 합세하여 이르는 곳마다 은나라 성책을 부수고 오지奧地로 깊숙이 들어갔다. (「단군세기」 23세 솔나단군)

    

 

몽고의 풍습
흉노, 선비, 거란, 돌궐, 몽골은 본래 동북아 초원에 살던 다양한 유목족 가운데 일부였으나 인근 부족들을 통합하면서 각 시대별 초원 제국의 호칭이 되었습니다. 몽골은 흉노의 일부, 선비·돌궐·거란의 일부로 내려오다가 13세기에 마침내 유목 민족을 통일하여 몽골 제국[元]을 건설하였습니다.

 

최근 몽골 지역 답사 내용을 보면 몽골 문화가 동방고조선 민족의 신교 문화와 같은 뿌리임을 실감하게 합니다. 백색 숭상, 천제天祭 문화, 고수레·돌장승·깃털 장식·씨름·샤먼 의식 등의 풍속, 청동기·빗살무늬 토기 등의 유적 유물, 몽골 반점, 용모, 언어, 설화, 신앙 등이 우리 한민족과 혈통적 친연성과 문화적 동질성을 공유한 동일문화권입니다. 예를 들어 몽골의 뿌리 깊은 민간 신앙인 ‘오보’는 우리의 서낭당과 같고, 오보 제祭는 소도 제천 풍속과 같습니다.

 

몽골인은 산을 신성시하여 산에 제를 지냈는데 칭기즈칸도 부르칸칼둔 산에 피신하였을 때 매일 그 산에 제를 올리고 기도를 하였다고 합니다. 몽골인들은 또 술을 마시기 전에 손가락으로 술을 세 번 튕기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는 고조선의 고수레와 유래가 같은 것입니다. 돌탑 주위를 탑돌이 하면서 세 바퀴 돌고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믿음도 있었는데, 이 또한 우리의 3수 신앙과 비슷합니다.

 

몽골에서 사용하는 말 중에는 달구(달구지), 말루(마루), 정지(부엌), 인두(인두), 오루가(올가미) 등 우리말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또 왼쪽과 오른쪽을 우리말과 같이 왼쪽, 오른(바른)쪽이라 합니다. 그리고 고구려의 5부족인 소노부消奴部·계루부桂婁部·절노부絶奴部·관노부灌奴部·순노부順奴部가 몽골에서는 동·서·남·북·중앙을 지칭하는 말이라 합니다.

 

그 밖에 몽골 아이들의 놀이 가운데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굴렁쇠 놀이가 있고, 속담에 “처녀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문지방을 밟는 것을 금하는 것 역시 우리 풍속과 동일하며 오방신장五方神將의 관념까지 같습니다.


몽고의 정복사업
12세기 몽고초원은 부족간에 다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1206년 테무친(칭기즈칸)은 마침내 초원의 패자로 등극하였고 부족간의 싸움도 막을 내렸습니다. 1211년 금나라 원정을 시작하여 화친을 맺었고, 1218년 몽골제국의 첫 분권 왕조인 오고타이 한국을 세웁니다.

 

1220년에는 서역의 호라즘 제국과 여진족의 금나라를 멸망시킵니다. 1225년 이란, 이라크, 아르메니아, 러시아 지역까지 정복한 후 돌아와서 네 아들들에게 사한국四汗國으로 분할 통치하도록 하였습니다.

 

1227년 서하西夏 원정 도중 칭기즈칸은 질병으로 사망하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들들이 뒤를 이어 1234년에 금을 멸망시킵니다. 1235년에 칭기즈칸의 손자인 바투가 유럽을 원정하였고, 1258년에는 바그다드를 정복하여 아바스 왕조를 멸망시켰으며, 1259년에는 서아시아를 침공하여 일한국을 건설합니다.

 

1259년에는 고려를 점령하여 속국으로 만듭니다. 1271년 드디어 쿠빌라이가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인 원 나라를 건설하였고, 1279년엔 남송南宋을 멸망시킵니다. 칭기즈칸 시대에 정복한 땅은 알렉산더 대왕, 나폴레옹, 히틀러가 차지한 땅을 합친 것보다 더 넓었습니다. 칭기즈칸이야말로 세계 역사 최초로 지구촌경영의 마인드를 가진 인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