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만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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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동북아에서 넘어간 인디언
  2. 아스테카인은 상투한 백의민족

동북아에서 넘어간 인디언

진실의 역사

동북아에서 넘어간 인디언

환국의 환족은 베링해협을 건너 남북 아메리카대륙으로도 이주하였다.

이것은 인디언의 언어, 혈액형, 체질, 치아 등을 연구한 고고학자와 인류학자들의 주장과도 일치한다.

눈으로 보기에도 아시아인에 가까운 인디언은 동북아에서 건너 간 사람들인 것이다.

 

인디언과 동북아인의 연관성은 인디언의 생활도구와 풍습에서도 확인된다.

미국 오리건 주에서 발굴된 짚신 75켤레는 동북아의 짚신과 흡사한데 약 9천 년 전의 것이라 한다.

9천 년 전이라면, 그때는 환국시대인 것이다.

수년 전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을 들렀을 때 1층 인디언관에서 본 절구, 소쿠리, 베틀, 어망 등은

우리네 것과 너무나 흡사하였다. 그곳 전시장의 모습은 마치 한국의 시골 풍경을 보는 것 같았다.

 

북미 인디언 마을 입구의 장승과 토템 또한 한국의 그것과 유사하다.

그곳 여인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아이를 업어서 키우며, 어린이들은 우리 아이들이 하는것과 똑같은 실뜨기놀이를 한다.

중남미에 아즈텍문명과 잉카문명을 건설한 인디언 또한 환족과 깊은 연관성을 보인다.

배재대 손성태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아즈텍어(나와틀어)와 잉카어(케추아어)의 문장 구조가 한국어과 유사하며

조사의 종류와 쓰임새도 한국어와 유사하다고 한다. 우리말이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도 여럿 있다.

환족은 하늘의 광명을 숭상하여 흰옷을 즐겨 입었는데, 아즈텍 사람도 흰 옷을 즐겨 입고 사원 건물도 흰색으로 칠하였다.

그들은 또한 아이가 태어날 때 금줄을 치고, 아이를 포대기에 싸서 업고 다녔다.

- 아기가 태어나자, 산파가 점쟁이에게 찾아가서 집 앞에 칠 원형 금줄을 받고, 아기의 운명을 물어보는 장면이다.

  점쟁이를 '다마틴이(tlamatini)'라고 불렀다. 우리말 '다 마친 이(다 맞히는 이)'의 고어.

산위에 있는 산신제를 올리는 곳이다. 줄형 금줄을 치고, 신령한 나무 아래서 무당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줄형 금줄에 대한 설명에는 “새끼줄을 꼬아서 만들었고, 같은 풀로 만든 술이 일정한 간격으로 매달려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멕시코 원주민들은 태어난 아이에게 복을 빌어 주기 위하여, 집 동쪽에 깨끗한 물 한 그릇을 떠 놓고,

  아이를 안고 머리를 동쪽으로 향한 후에, 복을 빌어 주었다는 기록도 있다. 바로 우리 민족의 정한수를 떠놓고 빌던 풍습이다.

 

죽은 사람의 입에 저승 가는 노잣돈으로 옥구슬을 넣어 주고, 자정에 제사를 지내고,

제사를 다 마친 후에는 사용한 종이를 불태우고 음식을 나눠 먹었다.

이러한 생활 방식은 한민족의 육아, 장례, 제사 풍습과 너무도 유사하다.

 

남북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 문화와 한韓 문화의 관계에 대해 손 교수는

“직접적인 관련 없이 이처럼 공통점이 많기란 불가능하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인디언문명은 한민족의 조상이 베링해협을 넘어 가 개척한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고고학자나 인류학자들은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이었던 인디언이

아시아의 동부지방에서 살던 민족이 베링해협을 건너 북아메리카로 건너갔다는 데 일치된 견해를 갖고 있다.

이것은 언어, 혈액형, 체질(형질), 치아모양 등의 과학적 연구방법(DNA 추적)을 통해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 부족 최고 지도자 '아파치'는 초대 환인 '안파견'에서 유래된 것.
 - 북미에서 발굴된 짚신 75켤레는 약 9천년 전의 것이며, 동이족의 짚신과 흡사.
 - 인디언 들이 쓰던 나무절구, 소쿠리, 광주리, 삼태기, 베틀, 어망, 물레 등은 우리선조들이 쓰던 것과 거의 동일한 것이다.

- 영국 런던대 연구진은 캐나다에서 칠레에 이르는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들의 DNA 염기서열을 분석한 결과,

  최초의 이주민은 베링해가 얼어 육교를 이뤘던 1만5천여년 전 빙하기에 처음 시베리아로부터 건너온 아시아인 집단이었고

  이후 두 차례의 이주민은 중국의 한족과 유전적으로 가까운 집단임이 밝혀졌다고 네이처지에 발표했다.

 

- 인류의이동-Y염색체와 mtDNA로 추적그래프지도.

- 연세대의대 법의학과 신경진ㆍ이환영 교수팀은 1970년부터 2004년까지 선사시대 및 역사시대 유적지 중

  11곳(구석기시대 1개, 신석기시대 3개, 청동기시대 2개, 백제시대 1개, 고려시대 4개)에서 출토된 유해 35구의

  미토콘드리아 DNA(mtDNA)유전자형을 분석한 결과를 이 분야 국제저널(Human Biology) 최근호에 게재했다.(2009-01-14)

  초기 선사시대 한국인 집단이 알타이산맥의 북쪽 지역과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수로부터 기원했다는

  기존의 가설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결과라는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한민족은 파미르고원의 동방에 위치하는 천산(天山)산맥을 시원으로 하여, 시베리아에 있는 바이칼호를 근거로

천지(天地)로 이어지는 경천숭조(敬天崇祖) 전통을 지닌 인류시원 문명의 장자(長子)민족이다.  

그리고 이 중앙아시아 천산을 기점으로 북방문명의 시조인 대단위의 부족국가가 있었다는 것을 

역사적 문헌으로 밝히고 있는 곳은 우리나라 밖에 없다.

아스테카인은 상투한 백의민족

진실의 역사

아스테카인은 상투한 백의민족

 

14-16세기 멕시코에서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던 아스테카(Azteca)인이 한민족이라는

논문을 발표해 학계에 반향을 일으킨 배재대 손성태 교수가

"그들이 상투에 흰옷을 즐겨 입고 윷놀이도 하는 등

우리 민족과 문화적 동질성을 갖고 있었다"고 주장을 하였습니다.

 

손 교수는 고려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가 주관하는 추계 학술 세미나를 앞두고 발표한

'라틴아메리카로 건너간 우리 민족의 문화적 문헌적 증거 : 아스테카인, 그들은 상투한 백의민족이었다'라는 논문에서

"아스테카인이 남긴 문헌이나 유물을 조사해본 결과

이들은 흰색을 숭상하고 흰 옷을 즐겨 입었으며, 우리의 전통놀이와 똑같은 윷놀이를 했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그들의 윷놀이 방식은 우리의 것과 흡사해 윷판에 사용한 돌도 '말'이라 불렀고

단번에 '모' 자리에 오면 '좋다'라고 외쳤다."

"또한 그들이 남긴 그림을 보면 남자들의 머리는 상투했고,

여자들은 머리에 수건을 써 우리들의 모습과 일치할 뿐아니라

의상도 4세기 고구려 무영총 벽화에 나오는 의복의 특징과 일치한다."

"아스테카인들의 제사 의식도

각종 음식을 차려놓고 먼저 향을 피우고 땅에 엎드려 머리를 숙이는 방식으로 진행돼 우리와 비슷했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고어인 '나와들어(語)'와 우리말의 '고어(古語)'를 비교하면

어순과 발음, 문장의 구조적, 형태론적인 면 등이 일치하고 있으며,

이는 아스테카인이 한민족이라는 증거"라고 주장해 학계의 관심을 끈 바 있습니다.

 

아스테카인은 멕시코 북방의 아스틀란 지방에 살다가

12세기부터 남방으로 이동하기 시작해

멕시코 중앙고원에서 강력하고도 독자적인 인디오 문명을 세웠으나

1520년 스페인 군대의 침입으로 멸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