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만큼 보인다

송나라의 황정견

서프라이즈

송나라의 황정견
송나라의 황정견이라는 사람은 자가 '산곡'으로 더 알려진 인물로

시서화에 능하여 삼절이라 불리우고 소동파 등과 같이 당송 팔대가의 한사람입니다.

그가 과거에 급제하여 26세가 되던 해에
어느 고을에 부임을 하여 갔는데 낮잠을 자다가 바깥으로 나가는 꿈을 꾸면서,
한참을 걸어서 어느 집 앞에 당도하니 노파 한사람이 나와서  

집 앞에 차려 놓은 상에 향을 피우고 죽을 한그릇 놓고 무어라 기도를 하는 듯 하더니 집으로 들어 갑니다.

   

그는 한눈에 그것이 맛있는 미나리 죽임을 알고 마파람에 게눈 감추 듯 먹어 버리고 돌아 왔다가 꿈을 깹니다.

산곡은 아직도 미나리 향기가 입안에 남은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다음 날 다시 낮잠을 자다가 똑같은 꿈을 다시 한번 꾸게 되어서

깨고 난 다음 하도 이상한 생각이 들어 관아를 나가 보니,
낯익은 길거리처럼 자신의 발걸음을 인도하는데 얼마를 가 보니 정말로 자신이 미나리 죽을 얻어 먹은 똑같은 집에 이릅니다.

   

문을 두드려 사람을 찾으니 머리가 하얀 노파가 나오는데 

"혹시 어제 미나리 죽을 쑤어 밖에 내놓지 않았는가?" 무슨 일로 그러는가 물으니,

노파는 내게 딸이 하나 있었는데 평소에 열심히 불법을 숭상하고 채식을 하며 특히 미나리 죽을 좋아하다가
아깝게 26년여 전에 돌아 갔기에 바로 어제가 그 제사 날인지라,

아이가 가면서 하는 말이 "멀지 않아 다시 만나요"하고 간 것이 생각나 제사날이면 그렇게 미나리 죽을 쑤어 거리에 내어 놓은 것입니다.

 

황산곡은 이상하여 노파를 따라 집으로 들어가니 딸이 사용하던 궤짝이 있는데,

노파는 열쇠가 어디 있는지 몰라 그냥 두었다 하는 소리를 듣고

산곡은 문득 열쇠가 어디 있음을 생각하고 찾아내 궤를 열어 보니,

그 안에는 딸이 썼다던 시문이 가득한데 하나 하나가 다 황산곡이 시험을 볼때마다 답으로 적어 낸 글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비로소 황산곡은 자신의 전신이 노파의 딸이었음을 알고 노파를 자신의 처소로 모시고 돌아 가실 때까지 잘 봉양합니다.  

후에 정자 하나를 지어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 놓고,
“승려같으나 삭발하지 않았고, 속인인듯 하나 이미 속세를 떠났네.
꿈 속에서 또 꿈을 꾸고 나서야 이 몸 이전에 또 몸이 있었음을 깨달았네."
하고 화제를 써 놓았다 합니다.

   

또 산곡은 늘 참선을 하고 채식을 하며
사람들에게는 살생을 금하는 게를 지어 널리 알리니 이와 같습니다.

   

"내 육신과 다른 중생의 고기는 이름만 다를 뿐 바탕은 꼭 같네.
원래부터 동일한 성품이건만 다만 형상이 다를 뿐이로다. 

저들이 받는 모든 고통은 내가 맛있는 것 탐하기 때문이니,
그 과보를 어찌 염라대왕에게 물을 필요 있으랴.
본인 스스로 생각해 보면 알겠거늘."

(송나라 때 황정견[黃庭堅]의 글씨, 자서송풍각시[自書松風閣詩] 부분)

현몽으로 임진왜란을 막은 이순신

서프라이즈

현몽으로 임진왜란을 막은 이순신 - 이순신 장군과 신명(神明)에 관한 이야기

 

크고 작은 일을 물론하고 신도(神道)로써 다스리면 현묘불측(玄妙不測)한 공을 거두나니

이것이 무위이화(無爲以化)니라. (道典 4:5:1)
 
이순신은 임진왜란에서 일본 수군을 상대로 많은 승리를 거두었다.

거북선의 눈부신 활약과 함께 한산대첩, 명량대첩 등에서 뛰어난 전법이 승리의 주요 원인이었다.

거북선 고안에서부터 전략 전술에 이르기까지 이순신의 뛰어난 능력과 지혜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꿈에 거북을 보고 거북선을 고안하다.

 

신묘(辛卯 1591)년 47살의 이순신은 유성룡의 천거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에 오른다.

이순신은 왜침을 예상하고 미리부터 군사를 훈련하고 장비를 갖춘다.

특히 거북선을 제조하여 전쟁에 대비한다.

어느 날 이순신은 나랏일로 고심하다가 잠이 드는데, 이 때 거북선 고안의 단초가 되는 신기한 꿈을 꾼다.

나는 병사들에게 먹일 식량을 찾아 바다로 나갔다. 무척이나 먼 곳까지 노를 저어 왔지만 아무 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거대한 거북이 바다에서 솟아올랐다.
 
나는 식용으로 쓸 요량으로 거북을 잡기 위해 화살과 무기를 총동원했다.

그러나 노력도 헛되이 도무지 내 손으로는 거북을 잡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 거북의 입에서는 불이 뿜어져 나왔다. 참으로 무시무시한 광경이었다.
 

놀라 잠에서 깨어난 이순신은 거북 모양으로 생긴 특수한 전함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거북선은 두꺼운 나무판을 높히 이어 붙인 다음 그 위에 튼튼한 철갑을 둘러 만들어졌다.

또 거북선의 뱃머리는 용머리처럼 생겼는데, 그곳을 통해 대포가 발사되고 유황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임진(壬辰, 1592)년 5월, 사천해전이 발발하기 이틀전의 일이다.

5월 27일 밤에 잠시 눈을 붙이고 있던 이순신은 신비로운 꿈을 꾼다.

 

꿈속에서 신령님 같은 노인이 나타나 이렇게 외쳤다.

“일어나라! 왜적이 나타났다.”
이순신은 벌떡 일어났다. 이 때, 경상우수영으로부터 도와달라는 급한 보고가 날아들었다.

5월 29일 새벽, 거북선을 앞세운 이순신의 함대는 사천을 향해 기운차게 진격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3일간의 해전 끝에 왜군 함선 13척을 격침시키고, 왜군 2,600여 명을 사살한다.


노모의 죽음을 알리는 꿈을 꾸다.

정유(丁酉, 1597)년 1∼2월에 일본은 대군을 동원하여 조선을 다시 침략해온다.

정유재란이 발발할 즈음 이순신은 누명을 뒤집어쓰고 파직 당한다.

 

서울로 잡혀 올라온 이순신은 옥에 갇혀 한 차례 고문을 받는다. 다행히 풀려나지만 백의종군하라는 명을 받는다.
이순신은 금부도사에게 이끌려 도원수 권율이 있는 경남 합천의 초계로 내려가게 된다.

그러던 차에 순천으로 피란갔던 83세의 노모가 배를 타고 올라오다가 끝내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접한다.
 
노모가 숨을 거두던 그날, 이순신은 불길한 꿈을 꾼다. 그리고 이틀 후 부고를 듣는다.

이순신은 난중일기에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4월 11일〕 새벽에 꿈을 꾸었는데 몹시 번잡스러워서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덕’을 불러 대강 이야기하고, 또 아들 ‘울’에게 이야기하였다.

마음이 몹시 언짢아서 취한 듯 무엇에 홀린 듯 마음을 가라앉힐 수가 없으니 이 무슨 조짐일까.

병환 중인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물이 저절로 흘렀다. 종을 보내어 어머니의 소식을 알아오게 하였다.
 

〔4월 13일〕 조금 있자니 배에서 달려온 종 순화가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했다.

방을 뛰쳐나가 슬퍼 뛰며 뒹굴었더니 하늘에 솟아 있는 해조차 캄캄하였다.
 
이순신은 비통한 심정으로 시신을 집으로 모셨다.

그러나 조정의 명령을 어길 수 없다는 금부도사의 재촉에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합천으로 향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이순신은 또다시 꿈을 꾼다. 그리고 꿈속에서 죽은 형님들을 만난다.
 
〔5월 6일〕 꿈에 돌아가신 두 분 형님을 만나 서로 붙들고 울었다.

형님들이 말씀하시기를 “장사를 지내기도 전에 천리 밖에서 종군하고 있으니, 누가 일을 맡아서 한다는 말이냐?

통곡을 하더라도 어떻게 할 것인가?”하셨다.

두 형님의 혼령이 천리 밖까지 따라오셔서 이와 같이 근심하고 걱정하시니 슬프고 마음이 아파 견딜 수가 없다.

꿈에 신인이 나타나 전술을 알려주다.

후임 통제사 자리에 올랐던 원균이 7월 칠천량 전투에서 대패하고 자신도 전사한다.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빠지자 이순신은 8월 초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된다.

장군은 9월 16일 겨우 12척의 함선을 이끌고 출동,

서해로 향하는 133척의 일본전선을 명량해협(울돌목)의 거친 물살을 이용해 대파한다.
 
명량대첩 직전에 이순신은 전투의 승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꿈을 두 차례 꾼다.

신령스럽게도 꿈에 한 신인(神人)이 나타나 적군의 행적과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 전술을 예지해 주었다.

 

이순신은 꿈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해보고, 또 꿈에서 계시 받은대로 실전에 임한다.

그리고 대승을 거둔다. 이순신은 당시의 상황을 난중일기에 이렇게 적고 있다.


〔9월 13일〕 매우 이상한 꿈을 꾸었다. 
임진년 승전했던 한산대첩 때 꾸었던 꿈과 흡사하였다. 이는 무슨 징조일까?

 

〔9월 15일〕 여러 장수들을 불러모아서 병법에 이르기를 ‘죽으려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 하였고….
꿈에 신령스런 분이 나타나서 이렇게 진을 치고 저렇게 군사를 배치하면 크게 이길 수 있으나 달리하면 질 것이라고 가르쳐주셨다.
 

9월 16일〕 곧바로 명령을 내려 적장 ‘마다시’를 토막토막 잘랐더니 적의 기세가 크게 꺾였다.

적선 31척을 깨뜨리자 적선은 도망하고 다시는 우리 수군에 가까이 오지 못하였다. 이번 일은 참으로 하늘이 도우셨다.

 

조선의 형세가 누란(累卵)과 같이 위급하다보니 아마도 천상의 조선신명들 사이에 비상이 걸렸었나보다. 
그리고 충심어린 이순신에게 조선을 구할 묘책을 계시한 모양이다.

즉, 국난이 닥치자 천상의 신명과 지상의 인간이 함께 역사하여 이를 수습한 것이라 판단된다. 
 

〈참고서적〉
이순신의 『난중일기』 (서해문집, 2004)
디어더 배럿의 『꿈은 알고 있다』 (나무와 숲, 2003)
 
거북선에 대한 기록은 『태종실록』에 처음 보이며, 이후 이순신에 의해 철갑선으로 개발, 창제되었다.

거북선 제작연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난중일기』에 따르면 거북선에 비치한 포(砲)를 처음 발사한 날은

임진왜란 발발 한달 전인 1592년 3월 27일, 장계(狀啓, 지방관원이 임금에게 올리는 보고서)에 따르면

처음 해전에 참가한 것은 5월 29일 사천해전이라 하였다.

 

거북선은 최초의 돌격용 철갑선으로 서양보다 무려 250년이나 앞섰다.

미국 워싱톤의 전쟁기념관(War Memorial Museum), 영국 해사박물관(Maritime Museum), 중국, 독일, 불란서, 캐나다 등

세계 각지의 역사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
 
송구봉의 ‘구선도’를 보고 거북선을 제조하다.

 

이순신의 거북선을 둘러싸고 또 다른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순신에게는 송구봉이라는 스승이 있었다.

그는 비록 서출이었지만 학식과 인품이 높아 많은 이들이 따랐다.

 

이순신이 12,3세 때 친구들과 돌을 모아놓고 진법 연습을 하고 있었다.
송구봉이 그걸 보고 있다가 집에 다녀가라고 했다.

그래서 이순신은 밤에 송구봉의 집에 갔는데, 그는 방에 누워 있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이순신은 송구봉의 방에서 구선도(龜船圖)를 보고 집에 왔다. 송구봉이 묵언으로 교지한 것이다.
 
세월이 한참 흐른 어느 날, 이순신은 여수 수사로 와서 여수 둔덕재의 솔을 가지고 거북선을 만들었다.

배를 만들었는데 여덟 개의 구멍 중 한 개의 용도를 몰라 송구봉에게 다시 가서 여쭈어보았다.

그랬더니 그 구멍은 사청목(巳聽目)이라 했다. 뱀은 눈으로 소리를 듣기 때문에 바깥의 말을 듣기 위해 한 구멍을 놔둬야 했다.
 
송구봉이 비범한 인물임을 이 이야기를 통해서도 짐작해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구봉(龜峰)이란 호의 거북 구(龜)자가 이순신의 거북선과도 전혀 무관하지 않았으리라.

이순신이 임진왜란에서 승리한데는 이처럼 숨은 공로자가 있었다.

현대과학은 신명(神明)의 알음귀-화학자 케쿨레

서프라이즈


현대과학은 신명(神明)의 알음귀로 열렸다

 

신이 정말 있나요? 


꿈에 [벤젠]의 분자구조를 본 화학자 케쿨레
 

이로부터 지하신(地下神)이 천상에 올라가 모든 기묘한 법을 받아 내려
사람에게 '알음귀'를 열어 주어, 세상의 모든 학술과 정교한 기계를 발명케 하여
천국의 모형을 본떴나니 이것이 바로 현대의 문명이라.
서양의 문명이기(文明利器)는 천상 문명을 본받은 것이니라. (道典 2:30:6∼8)
 
오늘날의 찬란한 문명은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과 신명의 합작품이다. 

역사적으로 전해지는 재미있는 일화를 통해, 천지신명들이 인간의 꿈이나 사색의 영역으로 찾아와서

열어주는 알음귀 덕택에, 지난 수백년 동안 인류문명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케쿨레는 1990년 독일 화학학회에서 강연의 요지를 제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꿈꾸는 법을 배운 다음에는 우리도 진실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케쿨레는 그 강연에서 두 가지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두 가지 꿈 모두 두 가지 주요한 과학적 성과의 토대가 되었다. 

첫 번째 꿈 이야기
런던에 있을 때, 나는 주로 클레팜가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런던 정반대 편에 살고 있는 친구 휴고뮬러와 저녁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얘기들을 나누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화학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어느 여름날 저녁이었어요.

그날도 그 친구 집에 갔다가 마지막 버스를 타고 인적 없는 도시를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오던 중이었습니다.

잠시 몽상에 빠진 듯했는데, 글쎄 내 눈앞으로 원자들이 튀어 오르는 게 아니겠어요.

 

나는 작은 두 원자가 어떻게 서로 한 쌍으로 결합되는지, 더 큰 원자가 작은 원자를 어떻게 둘러싸는지,

훨씬 큰 원자들이 작은 원자들을 어떻게 세 개, 혹은 네 개까지 둘러싸는지 지켜보았습니다.

가장 존경하는 나의 옛 스승 코프가 나타나 멋진 설명을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장이 “클레팜가”라고 외치는 소리에 그만 꿈을 깨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꿈에서 보았던 그 형태들을 밑그림으로라도 그려 놓으려고 밤잠을 설치며 매달렸습니다. 
 
케쿨레는 “이것이 바로 ‘화학 구조 이론’의 출발점이었다”고 말하면서,

탄소가 다른 원자들과 결합되는 방식을 명확하게 설명했다. 이는 현대 유기화학의 기초가 되었다.


어느 덧 7년이 흐른 후, 케쿨레는 [벤젠]의 구조를 밝혀내기 위해 고심하고 있었다.

다른 화학물들과 달리, [벤젠]의 구조는 기존의 화학기호 체계로는 설명이 불가능했다.

독일 화학학회 강연에서, 케쿨레는 그 문제 해결과 관련된 두 번째 꿈 이야기도 함께 들려주었다.

두 번째 꿈 이야기

벨기에의 헨트에 있을 때였지요. 내 방 창문은 좁은 골목으로 나 있어 낮에도 햇볕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교재를 써보겠다고 앉아 있었지만,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았습니다.

마음은 이미 다른 곳에 가 있었지요. 나는 난로 쪽으로 의자를 돌려놓고 잠깐 눈을 붙였어요.
 

그때 또 다시 내 눈앞에 원자들이 나타났어요. 

 

이번에는 작은 원자 그룹들은 표면에 나타나지 않았지요.

몇 겹으로 겹쳐진 배열 구조들이 눈에 들어왔는데, 뱀이 움직이는 것처럼

원자들이 가까이 달라붙어 짝을 지어 꼬여 있기도 했어요.
 

그런데 저건 또 무엇이란 말인가? 뱀 한 마리가 제 꼬리를 물고는 내 눈앞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나는 번갯불이라도 지나간 듯 화들짝 놀라 깨어났지요.

이번에도 역시 그 가설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밤새 연구에 매달렸습니다.
 

케쿨레는 [벤젠]의 분자는 직선으로 연결된 사슬 구조가 아니라 고리 구조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혀 냈다.

그는 이밖에도 원자를 직접 눈으로 본 경험이 많았다고 했다.

눈을 감고 있거나 아니면 졸고 있는 상태에서 늘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에두아르드 파베르는 1996년 케쿨레 100주년 기념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꿈이나 환영을 하찮은 것으로 비웃어 넘기지 말고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연구해볼 가치가 있다.

이는 현대 화학에서도 마찬가지다.”

꿈에 아인슈타인과 연구활동에 전념한 어느 공학자

스티븐 레버지 교수는 한 컴퓨터 공학자로부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 공학자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문제가 막힐 때마다 꿈에 의지해서 문제를 풀어보려 했다고 말했다.
 
나는 밤에 셜록 홈즈 시대에나 있을 법한 구식 응접실에 앉아 있는 꿈을 꾼다.

덥수룩한 백발의 아인슈타인과 나란히 앉아 있다.

꿈에서 그는 나의 친절한 친구로 나온다.

 

우리는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흑판에 컴퓨터 플로차트(flowchart)를 그린다.

훌륭한 성과가 나오면 서로 마주보고 웃음을 짓는다.

아인슈타인은 “나머지는 역사에 맡겨 두지”라고 말한다. 아인슈타인은 잠을 자러 가야 한다고 양해를 구한다.
 

나는 그의 안락의자에 앉아 노트에 컴퓨터 코드를 이리저리 그려보다가, 마침내 하나의 코드를 완성한다.

그것을 들여다보면서 혼자 읊조린다. “깨어나서도 이 플로차트를 기억해 내고 싶다.”

나는 흑판과 노트에 온 신경을 집중시킨다. 그런 다음 잠에서 깨어난다.
 

깨어나는 시각은 보통 새벽 3시 30분 정도다.

나는 베개 밑에 두었던 손전등을 꺼내 침대 옆에 놓아 둔 노트에 최대한 빨리 옮겨 적는다.

나는 프로그램을 짤 때마다 이 방법을 썼으며, 대부분 99퍼센트의 정확도를 보였다.

출처 : 『꿈은 알고 있다』 디어더 배럿, 나무와 숲, 2003

 

 

루스 몽고메리가 전해주는 '알음귀'에 대한 이야기

미국의 저명한 여성 저널리스트 루스 몽고메리의 저서 중에서 알음귀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대목을 소개한다.
 

“아인슈타인이나 오펜하이머 등은 그곳(지상)에서는 천재로 간주되지만 이곳에서는 물리학에 소질을 지닌 아주 진보한 영혼일 뿐이다.

그리고 그들이 지상에서 육체 상태로 있을 때 이곳 영혼들의 도움을 받아 기적처럼 보이는 일을 성취했다.”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220쪽, 초롱, 1999)
 

“어떤 사람들은 수면상태에서만이 아니라 깨어있을 때도 자주 영혼들로부터 생각이나 암시를 받아들인다.

갑작스럽게 떠오른 영감이 돌파구를 찾게 해주고, 바로 곁에 있는 새로운 도구나 책에서 멋진 해결책을 찾아낸다.

졸 때나 수면 중의 잠재의식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의식적인 마음에도 영감이 스며든다.

지상의 문제들에 대한 대부분의 해결책은 이곳(천상)에서 그 문제에 종사하는 영혼이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좋은 아이디어를 파괴적인 목적으로 악용하는 것은 육체적 인간들이 한 짓이지 영혼이 한 것은 아니다.”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273쪽, 초롱, 1999)